274. 한라마.
원종은 이름을 지어 달라는 투르안의 말에 사준사구(四駿四狗) 같은 상징적인 이름을 붙여줄까 생각했지만, 대만의 대(對) 씨처럼 성씨를 만들어 주는 게 맞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상징적인 이름보다는 성씨부터 정하는 게 맞는 것 같네.”
"성씨? 우리의 성씨는 당연히 보르지긴..."
투르안은 말을 하다 말았다.
자신들은 분명 칭기즈칸의 성씨인 보르지긴을 물려받은 황금씨족의 후손들이라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 보르지긴이란 성씨는 부족을 나타내는 '오복(Obog)’의 이름이기도 했다.
그리고, 이제는 쓸 수 없게 된 이름이었다.
원종이 마을을 불태울 때 자신들의 혈통을 증명할 수 있는 종이 뭉치들도 다 태워 버렸었다.
조선인이 되어 자유롭게 살고 싶었기에 미련을 두지 않으려 태워 버린 것이었다.
하지만, 종이들을 태울 때 생각하지 못했던 성씨 문제가 나오자 칭기즈칸 때부터 이어진
'보르지긴'이란 성을 버려야 할지 고민이 되었다.
“이제 조선 사람이 되면 호적을 만들고 호패를 차야 하는데, '보르지긴'이란 성씨는 쓸 수가 없네. 보르지긴의 한자어인 박이제길특(博爾濟吉特)을 쓰게 되면 원나라 사람인 걸 바로 알아볼 것이네."
“그럼, 한 글자 성씨여야 하오?"
"흠. 보르지긴의 앞자리를 따서 보(계보 보)씨가 될 수 있고, 원나라 출신이란 것을 기리기 위해 원(元)씨도 될 수 있네. 그게 아니면 보르지긴의 한자어인 '박이제길특'에서 박(博 넓을 박)씨를 쓸 수도 있네."
"그렇다면 그 세 개의 성씨 중에서 조선에 많은 박씨로 해주십시오. 그래야 조선 사람들과 섞이기 쉽지 않겠습니까?"
"쉽게 섞이기 위한 방안이라면 박씨가 무난하긴 하겠군. 그럼 제주 박씨라고 해서 호적을 올리도록 하지."
원종은 종이와 책에 제주 박씨는 원나라 시절 고려왕에게 시집오는 공주를 따라와 정착했다는 시조의 근원을 썼고, 마을 사람들 이름이 다 올라간 족보를 만들게 시켰다.
"족보가 만들어 지면 호적을 등록해서 호패를 만들어 주겠네. 그렇게 하면 조선 팔도 어디를 가든 상관이 없을 걸세.”
족보와 호적, 호패를 받게 될 것이라는 말에 투르안, 아니 이제는 박투르안은 기분이 묘했다.
기나긴 족쇄와 같던 신분이 진짜 바뀌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새로운 시조가 만들어졌으니 그것을 기념하는 축배를 드세나.”
마을이 불태워지기 전에 옮겨두었던 술들이 나오기 시작했는데, 술의 색이 막걸리처럼 뿌연 색이었다.
흔히 말하는 마유주 아이락(aupar, alrag)이었다.
말이나 낙타, 양의 젖을 발효시켜 만드는 술인데, 알코올의 느낌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고, 살짝 신맛이 나는 요구르트의 맛이었다.
현대 몽골에서 파는 마유주의 알코올 도수는 맥주와 비슷한 5~7도인데, 이건 더 낮은 듯했다.
말의 피에 섞어 먹었던 소주인 아라길을 마시고 싶었는데, 아라길은 더 없었다.
아이락을 증류해서 아라길을 만드는데, 먹고 살기 힘든 판이었으니 아라길을 더 만들지 못한 것 같았다.
하지만, 이제 말이나 소, 양의 젖으로 아이락을 만들고 아라길 소주를 만든다면 그것이 돈이 될 수 있었다.
청화백자 도자기 술병에 든 투명한 소주라면 충분히 상품 가치가 있었다.
결국 알코올이 거의 없는 것 같은 아이락 술을 마시며 연회를 즐겼고, 이튿날부터는 다들 훈련원 건물 짓는 일에 동원이 되었다.
“흠. 이거 술에 취한 것 같지는 않은데, 왜 다르게 보이는 것이지?"
원종은 늦게 일어나 운동을 겸해서 달리기를 하는데, 말의 크기가 이상해 보였다.
제주도의 조랑말은 분명 머리통이 크고 키도 작은 소형 종의 말인데, 오늘 보이는 말들은 그
크기가 훨씬 더 컸고, 머리통도 작아 보였다.
가장 큰 차이는 다리가 길쭉길쭉하다는 것이었다.
제주마의 특징인 굵고 짧은 다리가 아니었다.
“길쭉한 게 한두 마리가 아니네."
기존의 제주마와 다른 말들을 원종이 신기한 듯이 살펴보자 테우리(목동)가 다가왔다.
“처음 제주에 왔을 때 선조들이 가져왔던 한혈마의 후손들입니다."
“한혈마?"
땀으로 붉은 피를 흘린다는 한혈마의 후손이 제주도에 있다는 것에 깜짝 놀랐다.
그리고, 제주말에 대한 이야기가 떠올랐다.
제주도에 몽골 말이 처음 들어온 1300년에서 700년이 흐른 2000년대의 제주말은 그 형태가
실제 몽골에서 키우는 말과 다르다는 논란이었다.
제주마의 발굽에서 어깨까지 평균 높이는 115~120cm 정도인데, 실제 몽골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말은 어깨높이가 120~140cm로 크기에서 차이가 나버리며 외형이 다르다는 이야기였다.
이게 700년간의 섬 왜소화 진화를 했다는 말도 있었고, 제주와 달리 평원의 몽골 말들은 다른 혈통의 말들과 섞여 몸집이 커졌다는 말도 있었다.
이런 논란의 답이 무엇인지는 몰라도 일단 제주말은 크기가 가장 작은 조랑말 (Pony) 체급이라는 것은 확실했다.
그리고, 저 한혈마의 후손이라는 길쭉한 녀석들을 종마로 쓴다면, 현대의 서러브레드
(Thoroughbred)와 제주마를 섞은 '한라마'를 미리 만들어 낼 수 있을 것 같았다.
물론, 제주마가 몽골 말이기에 지구력이 좋고, 생명력이 강하다는 장점이 있지만, 예전처럼
수천km 장거리 원정을 하는 지구력 싸움은 더는 없을 터였다.
덩치가 크고 돌파력이 좋은 말이 더 각광을 받는 시대라는 뜻이었다.
그리고 교잡종이 병에 더 강하다는 건 기본 상식이었으니, 10여 마리의 수말들로 교잡종인 한라마를 만들어 내는 것이 여러 방면에서 이득이었다.
원종은 10여 마리의 수말 중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두 마리를 이끌고 제주 목사 임영철에게
움직였다.
***
"흐음. 태조께서 타시던 팔준마 중에서 응상백이 제주 말로서 이렇게 다리가 길었다고 하지."
임영철은 내가 가져온 말을 이리저리 살펴보며 감탄을 했다.
"응상백처럼 흰색의 백마는 아니지만, 말의 모습이 보통의 제주마와는 다르니 진상을 해야겠어."
"진상을 하기 전에 이놈들로 씨를 뿌려야 합니다. 그래야 이놈들의 새끼들이 다 길쭉하게 태어날 겁니다."
“아하! 그렇군. 한두 마리보다는 이런 말이 수십 마리가 된다면 확실히 이득이지. 그런데, 자네는 이 말을 어디서 구했는가? 내가 제주로 온 이후 이런 명마는 본 적이 없는데. 어떻게 구한 건가?"
“달자들의 마을을 불태우고 그들의 말을 압수했는데, 거기에 이 두 마리가 섞여 있었습니다."
"오호라! 그놈들이 보물처럼 들고 있는 것이었군. 그럼 이 두 마리를 어찌할 것인가?"
“제주 관아에서 말을 따로 키우는 목장이 있는 것으로 아는데, 거기에 기증을 하겠습니다. 다만, 그놈을 통해서 나오는 망아지 20마리를 주셨으면 합니다. 그 이후로는 목사님이 진상을 하든지 마음대로 하십시오."
"흠, 씨값이로군.”
말은 보통 25~30년의 수명을 가지기에 임영철이 보기에는 새끼 20마리를 씨값으로 달라는 것이 그리 나쁘지 않은 계신 같았다.
"그렇게 하지. 암수 구분 없이 저놈의 새끼들 20미리를 주겠네.”
"그리고, 이놈들의 족보도 만들어야 합니다."
"족보? 말의 족보를 말함인가?"
“네. 좋은 말을 기르는 데는 혈통관리를 해야 합니다. 근친교배라던지 하는 것을 피해야 하고, 다리가 짧게 나오는 녀석들은 따로 처리하는 등 다리가 길고 머리가 작아 달리기 좋은 말을 만들기 위한 관리를 해야 합니다."
제주목사 임영철은 아직도 말의 족보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목동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혈통관리의 중요성에 동의했다.
“노비를 예로 든다면, 누구의 씨인지 모르는 잡놈 노비가 한 명 있고, 지금은 노비이지만, 전조의 왕족으로 족보에 이름이 남아있는 이가 한 명 있다면, 누구를 좋게 보고, 비싸게 사가겠습니까?”
"그야 당연히 근본을 알고 있는...그렇구만. 왜 말에게 족보를 만들어 줘야 하는지 알겠구만."
“기존의 제주마와는 달리 높은 키를 가진 말이니 제주의 높은 산인 한라산의 이름을 따서
한라마로 이름을 지었습니다. 그러니 목사께서는 이 두 마리의 이름을 정해 한라마 족보를 만들어 주십시오."
"그렇게 하지.”
"그리고 이 한라마의 새끼들이 명마가 된다면 명나라나 왜에도 말을 따로 팔 수가 있을 겁니다."
“흠흠. 진상을 해야지 그러면 쓰나.”
임영철은 입으로는 그러면 안 된다고 했으나 은근히 좋아하는 눈치였다.
“그럼, 이 한라마를 따로 키울 수 있는 목장을 아예 따로 만들도록 하세나. 내가 사람들을
동원하도록 함세.”
그렇게 돈이 되는 한라마를 키우고자 인근의 도민들이 동원되어 숲의 나무를 자르고, 목초지를 만들기 시작했다.
***
꿔엉-꿩~!
푸드드득~
"꿩 날아간다!"
원시림이 우거져있던 동백숲의 나무를 개간하는데, 사람들에 쫓겨 몰려있던 꿩들이 한번에 날아올랐다.
[퍼엉!]
배에서 백병전을 위해 만들어진 선상총통의 산탄들이 발사되자 3마리의 꿩이 바로 떨어져
내렸다.
“와! 다 잡았다!”
활을 들고 꿩을 잡으려던 이들도 있었지만, 불붙은 심지를 바로 가져다 대는 방식으로 개량된 선상총통의 산탄을 따라올 수가 없었다.
그렇게 잡은 꿩이 30여 마리가 넘어가자 꿩으로 탕을 끓여 사람들에게 먹였다.
“이거 오래 살고 볼 일일세. 관에서 불러 일을 시키는데, 꿩탕을 줄 줄이야."
"그러게. 늘 꿩을 우리가 몰아주고 잡아도 꿩 깃털 하나 안주더니 오늘은 이렇게 꿩탕을 다
끓여주는구먼. 무슨 험한 일을 시키려고 이러는 것인지 걱정부터 되기는 해.”
이미 관에서 부림을 받아 고생을 해 본 이들이기에 꿩탕을 받아먹으면서도 걱정이 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땅을 개간하는 만큼 나무에 살던 벌레들이 나와 그걸 먹으려고 꿩들도 모여들었고, 그 꿩을 잡아 일꾼들에게 먹이기 시작하자 다들 개간 일에 열의를 가지기 시작했다.
꿩 맛을 본 사람들은 아예 개간을 시작하기 전에 몽둥이를 들고 수풀을 이리저리 쳐가며 꿩을 몰았고, 그렇게 몰린 꿩들이 날아오르면 호위대가 산탄으로 꿩을 싹쓸이로 잡았기에 다들 신이 나서 잡았다.
그렇게 목장을 만들 만큼 땅을 개간하고 사람들이 돌아가게 되었는데, 고생한 이들에게 꿩엿을 해주기로 했다.
꿩엿은 냉장고가 없던 시절 가을에 잡은 꿩고기를 오랫동안 보관하기 위해 만들어진 자연발생적 요리인데, 고기를 달게 해서 먹는 특이한 음식이었다.
먼저 탕으로 삶아진 꿩의 살을 발라 모아두고, 꿩을 끓였던 육수를 식혀 찹쌀밥과 엿기름을 넣어 삭히는 것이 첫 일이었다.
이후 제대로 삭혀지면 그것을 다시 팔팔 끓여 엿물을 만들고 발라낸 꿩고기를 넣어 줄 때까지
끓이면 되는 것이었다.
과정은 단순한데, 이 졸이는 과정에 사람의 인력이 24시간 붙어 있어야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미 조청을 만들며, 솥을 휘저어 주는 물레방아 주걱을 만들어 두었기에 쉽게 꿩엿을 고아 만들 수 있었다.
만드는데 수고가 많이 들어가는 귀한 꿩엿을 사람들에게 나눠주니 개간에 동원되었던 이들은 원종을 칭송할 수밖에 없었고, 훈련원의 건설 현장에도 나와서 일을 도와줄 정도가 되었다.
훈련원이 들어선다는 이야기가 퍼지고 그 근방의 조세를 훈련원이 거둔다는 말이 알려졌을 때만 해도, 살던 곳을 버리고 도망친 이들이 나올 정도였는데, 그런 이들도 다시 돌아왔다.
수탈에 민감한 만큼, 곰탕과 꿩탕, 꿩엿을 나눠주었다는 말이 돌자 이제는 서로 와서 훈련원 인근에서 살고 싶다고 할 정도였다.
수탈에 민감한 만큼 선정을 베푸는 것에도 민감하고 빠르게 반응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런 이들이 많아지자, 원종은 목장을 만들 수 없는 산오름을 개간해야 한다고 일꾼을
모으기 시작했다.
“아니, 산오름에는 뭘 심을 수가 없는데, 뭣을 한다고 사람들을 모으는 것이지?"
"난들 아나, 하지만, 30일을 일하면 잡곡을 준다고 했으니 그걸 한번 믿어 보자고."
*
[작가의 말]
동의보감 액탕편에 보면 '소주가 원나라 시절에 시작되었고, 맛이 매우 맵고 극렬하여 많이 마시면 사람이 상한다.' 라고 되어 있기에 조선에 전해진 아라길 소주는 여러 번의 증류를 거친 독한 술이었습니다.
해서 안동소주가 40도 이상의 독한 술로 전해 내려오는 것입니다.
하지만, 실제 몽골에선 그렇게 도수가 높은 아라길 소주는 없다고 합니다.
도수 높은 소주는 2~4번의 증류를 거치며 도수를 끌어 올리는데, 일단 나무 장작도 잘 없는 몽골에서 그렇게 불을 몇 번이나 붙여서 할 여유가 없었다고 하더군요.
해서 몽골의 아라길 소주는 알코올 도수 10도 전후의 약한 소주입니다요!
그래서 그런지 몽골 사람들도 러시아의 보드카를 자주 먹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