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쉐프 조선을 부탁해-268화 (268/327)

268. 사신단.

"만귀비께서 황자님을 낳은 것에 대한 고마움에 조열대부(朝列大夫) 좨주(祭酒)직을 내려주셨다고 합니다. 그리고 단주님께...”

"뭐어? 뭐라고? 만귀비가 황자를 낳았다고?”

원종은 명나라에서 벼슬을 받았다는 것보다 만귀비가 아들을 낳았다는 것에 놀랐다.

본래 만귀비와 황제인 성화제 사이에서는 첫 황자가 태어났지만, 얼마 가지 않아 이름도 없이 죽었고, 그 이후로는 아이가 없었다.

그리고, 지금 시기를 따져보면 훗날 홍치제가 되는 주우탱이 태후의 인수궁(仁壽宮)에서

보호받으며 자라고 있을 시기였다.

그런데, 만귀비에게서 아들이 태어났다고 하니 놀란 것이었다. 역사가 달라져 버린 것이었다.

“형님이신 전 목사님이 동항에서 여진인들과 만든 수유(油 치즈)를 북경의 만귀비께

진상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단주님이 알려주었던 신선로 요리를 먹었기에 황자님을 낳았다며 그 공으로 벼슬을 내린 것입니다."

"허허."

헛웃음이 나왔다. 그 말이 사실이라면 음식으로 체질이 바뀌었고, 그로 인해 아들이 태어나 역사가 바뀌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단주님께도 벼슬을 내리셨습니다.”

"나에게도?"

“네. 형님과 같은 조열대부 좨주의 직입니다."

“좨주(祭酒)의 직이라..."

좨주란 나라에서 향연을 베풀 때 술로 제사를 지내는데, 그때 술을 뿌리고 음식을 맡아 보던

예식을 담당하는 관리였다.

즉, 실권이 없는, 명예직인 벼슬이었다.

종 4품의 대부라고 불리는 벼슬이기에 낮다고는 볼 수 없었지만, 그렇다고 높다고도 볼 수 없는 어정쩡한 벼슬이었다.

“그럼, 염 선단장과 함께 명의 사신들이 온 것인가?”

"아닙니다. 명의 사신은 육로로 오기에 시간이 더 걸릴 것입니다.”

“육로로? 아니 왜 배를 타지 않고 육로로 오는 것이지?"

“그게, 오가며 받는 접대와 돈 때문이지 않겠습니까?”

“어휴.”

그랬다. 요동에서부터 사신들이 지나오는 길목의 고을 수령들은 중국에서 오는 사신들을

대접해야 했고, 뒷돈도 찔러줘야 했다.

산동 반도를 통하거나 근해를 따라 북경까지 가는 우리 선단이 있더라도 그들은 이용하지 않을 터였다.

“돈 좋아하는 놈들이라면 내게도 한밑천 받아 가려고 할 것 같은데.”

왠지 중국 애들에게 뜯길 것이 아까워 핑계를 대고 제주도로 뜰까 싶었다.

"그건 아닐 것입니다. 좨주의 벼슬이 명예직이라고는 하지만, 만귀비님께서 내리신 것이지 않습니까? 서투르게 은전을 요구하지 못할 것입니다."

"흠. 그럼 한번 기다려 보지."

벼슬을 받는 것도 있었지만, 만귀비의 황자가 태어난 이후 북경의 상황이 궁금했기에 사신들이 오기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그러면서 목포의 마누라를 한양으로 올라오게 해서 처조부를 간호하게 했고, 훈련원에 들어갈 재원과 준비물을 챙겼다.

그리고, 짜증 나는 일도 있었다.

“전하께서 수군 훈련원을 허락해 주셨으나 그 위치가 이해 가지 않소이다. 수영이 있는 전라와 경상의 다도해에 수군 훈련원을 만들면 될 것인데, 왜 멀리 탐라에 만들겠다는 것이오? 혹여, 다른 의도가 있는 것이 아니오?"

바로, 병조참의이자 수군 훈련원의 우두머리인 지사직을 겸하게 된 유자광이었다.

다른 의도가 있다는 말에 사실 조금 켕기긴 했다.

“다른 의도가 있다니요. 천부당만부당합니다. 탐라가 최적지이기에 그렇게 정한 것입니다."

병부 판서 구문신에게 했던 이야길 다시 해야 했다.

“참의께서 이야기한 수영이 있는 경상과 전라의 다도해는 말 그대로 섬이 많아 파도가 거칠지가 않습니다. 제대로 배를 타는 수군을 길러내기 위해서는 거친 파도가 몰아치는 넓은 바다가 있어야 합니다."

“그럼, 도성과 가까운 강화도와 백령도에 만들어 황해의 넓은 바다를 활용하면 될 것 아닌가?"

“황해는 남해에 비해 파도 자체가 잔잔하옵니다. 그리고, 한양과 가까운 강화나 백령에서 배를 타면 한강 나들목까지 닿는 데 하루면 되옵니다. 오히려 가까이 훈련원을 만든다고 하면 대신들이 더 반대를 하였을 것이옵니다."

한양까지 배를 타고 들이닥칠 수 있는 수군이 가까운 거리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부담이 되는

시대였다.

그리고, 황해와 남해의 파도가 같다고 생각하는 유자광을 보니 남해에서는 아예 배를 타본 적도 없는 것 같아 안심했다.

애써 겸직인 지사직의 일을 위해 탐라까지 오지 않을 것 같았다.

“흠흠. 그렇게 보면 그렇군. 하지만, 큰 섬인 진도도 있고, 거제도도 있는데 탐라라고 하니 마음에 안 드는구만."

"소인도 진도를 생각해 보았으나, 옛일 때문에 제외를 하였습니다.”

"옛일?"

"전조 때 삼별초가 있었지 않았사옵니까?"

"아아, 그러면 더더욱 탐라에 자리를 잡으면 안 되는 것이 아닌가? 삼별초가 탐라에서 다 죽었을 터인데."

"그래서 탐라에 만들기로 한 것이옵니다."

“아아. 그렇군. 무슨 말인지 알겠어. 애초에 다른 마음이 없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이었군.”

탐라에서 딴마음을 품으면 다 죽는다는 그런 의미도 되기에 유자광은 의심을 지웠다.

“그렇지요. 그리고 탐라는 모든 것이 부족한 유배지이지 않습니까. 삼별초도 밀리고 밀리다

도망쳐 간 곳입니다. 다른 마음을 품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저 뛰어난 수군을 키워내기 위한 것만 생각할 것입니다."

원종은 유자광을 안심시키기 위해 저자세로 이야길 했다. 그럼에도 유자광은 쉽게 마음을 열지 않았다.

"그리고 대감께서도 경상의 선단에 재물을 투자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수군 훈련원에서 나온 이들이 훗날 선원이 되는 것이니 궁극적으로는 우리 모두를 위한 일일 것입니다."

“크흠.”

유자광은 내 말에 불만족스러워하면서도 자기에게 도움도 되는 일이기도 했기에 더 이상의 태클은 걸지 않았다.

다만, 자기 심복 4명을 군관으로 넣어서 탐라로 같이 가게 했다.

***

육로로 움직여 왔던 명의 사신들이 개성을 지녔다는 파빌에 도성에서도 선위사(慰使)가 나가 맞았고, 그들의 원행에 대한 노고를 치하했다.

성종이 직접 나서 그들을 맞이하는 연회를 열었는데, 연회에서 재주직에 대한 수여식이 열렸고 사신과 함께 온 환관은 내게 따로 만귀비의 서신을 건네었다.

북경에서 체류할 때 얼굴을 보았던 안면 있는 환관이었다.

꽤 긴 서신이었는데, 미사여구를 정리하면 대충 이러한 내용이었다.

[...그대가 만든 음식들로 즐거움을 찾았기에 다른 이들에게도 그대의 요리를 먹여주고 싶으니 속히 새로운 요리법을 가지고 상경하라...]

새로운 요리법을 가지고 오라는 서신이었기에 그저 식도락을 위해 빨리 오라는 것으로 여겨졌다.

헌데, 앞에 쓰여있는 다른 이들에게 먹여주고 싶다는 말이 괜히 마음에 걸렸다.

그 다른 이가 황제인 성화제는 아닐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이 서신이 공식적인 국서로 온 것이오? 아니면 만귀비님의 개인적인 서신이오?"

"귀비님께서 소신에게 직접 주신 것이라 국서는 아닙니다. 헌데, 왜 그리 물으시는지요? 어떤 내용인지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서신을 들고 온 환관은 그 내용도 모르고 들고 온 듯했다.

“다른 이들에게 내 요리를 먹이고 싶으니 북경으로 새로운 요리법을 가지고 오라고 하셨네. 만귀비님께 새로운 친우분이 생기셨나?"

"그게...."

환관은 생각을 하는 눈치였는데, 쉽게 입을 열지 못했다.

"좀 알려주게나. 어떤 분인지 알아야 거기에 맞는 요리를 준비할 수 있지 않겠나.”

"그것이, 소신은 먼발치에서만 모셨기에 그렇게 친하신 친우분이 새로 생겼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흠, 알았네.”

환관과 헤어져 연회에 참석하면서도 북경 정가에 대한 정보가 없다 보니 생각이 많아질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나서지 않아도 되었지만 일부러 옷을 숙수들이 입는 옷으로 갈아입고 연회에 음식을

올리며 사신들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사신단의 관리들은 다들 중국과 다른 조선의 음식에 신기해했고, 오는 길에 먹었던 음식들과도 다른 것을 보자 이것이 조선의 궁중요리이구나 하며 좋아했다.

특히 만귀비에게 선보였던 신선로가 연회에 등장하자 다들 면면에 웃음이 가득했다.

"황자님의 존안이 신선과 같고 튼튼함이 태산과 같은 이유가 바로 이 신선로 음식 때문이라고 했는데, 드디어 조선에서 본토의 맛을 보겠구만."

“본토의 맛이라니 하하 그래. 이 신선로는 젓가락을 넣어도 검어지지 않겠지?"

찰싹!

"입조심 하게, 조선에는 우리 말을 하는 이들이 많아."

뺨을 후려친 관리는 주위를 살폈는데, 중국 말을 알아들을 수 있는 역관이 없다고 여겼는지 다시 수저를 들었다.

하지만, 뺨을 맞은 이는 구시렁거리면서 품에서 몰래 은 젓가락을 꺼내 신선로의 국물에 넣었다 뺐다 하며 눈치를 보다 고기와 야채를 꺼내 먹었다.

이런 사신단의 모습을 원종은 다 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장면을 보자 편지의 내용이 떠올랐다.

다른 이에게 내가 만든 새로운 음식을 먹이고 싶다는 것이 왠지 독살과 연관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도, 내가 전한 신선로가 화제가 되며 다른 이들이 먹을 때 만귀비가 독을 쓴 것 같았다.

실제 성화제의 차남인 도공태자 주우극과 그 어미인 현비 백씨는 독살로 죽었었다.

이후 삼남인 주우탱은 장민이란 환관이 몰래 빼돌려서 키웠는데, 주우탱의 생모인 기씨와 환관 장민 또한 의문사와 자살을 했었다.

내가 만든 음식으로 독살을 모의하고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현실로 다가왔다.

후계 문제가 급박하게 얽혀들고 있는 북경의 정보가 필요했다.

왜와 오키나와는 고정된 활동을 위해 상관을 만들고 정보를 모을 생각을 했는데, 중국에는 그런 정보책을 만들 생각을 하지 않았다는 게 실수였다.

연회가 끝이 나지 않았음에도 급히 물러 나와 상단으로 왔고, 북경으로 사람을 파견해 상관을 만들고 정보를 수집해 보내오도록 지시했다.

역사대로라면 만귀비가 차남인 주우극을 독살한 이후로는 홍치제가 되는 주우탱의 존재를 알면서도 인수궁에서 자랄 수 있게 방관을 해줬었다.

하지만, 지금은 만귀비가 아들을 낳았고, 더 나이 많은 황자들을 다 죽여 버리기만 하면 자연스레 자신의 아들이 황제가 될 수 있는 상황이 되었다.

그런 독살에 나와 내 요리를 쓰기 위해 나를 부르는 것이니 괜히 거기 갔다가 고래 싸움에

새우등이 터질 것 같았다.

하지만, 이미 서신을 받았기에 우선은 알았다고 바로 가겠다고 하고는 탐라로 도망가서 날씨와 병을 핑계 삼아 버텨야 할 것 같았다.

이럴 때는 또 명의 사신단이 육로로만 다니는 게 좋았다.

"아차! 형이 있구나."

내가 가지 않으면 형을 불러들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급히 편지를 써서 북경으로 가면 화를 당할 수 있으니 조선으로 들어오라고 했다.

***

“내 듣기로 춘봉 상단의 전원종 단주가 명나라에서 벼슬을 받은 것이 음식을 잘해서라고 하던데. 그 덕분에 이제 춘봉 상단의 배들은 중국 연안을 항해할 때 편의를 볼 수 있다고 하외다.”

“이득이 되는 상황에 따라 조선의 배라고 하거나 명의 배라고 박쥐처럼 변경할 수 있으니 그 이득이 클 것이오."

“내 이번에 명의 사신들에게 음식을 대접하며 이야길 들어 보니 명과 우리의 음식이 달라 흔한 조선의 음식도 명나라에서는 진미가 된다고 했소이다. 그러니 우리도 숙수를 명에 보내어 벼슬을 받아오는 게 어떻겠소?"

노사신은 숙수를 보내어 벼슬을 받아오자는 말에 찬성했다.

"그렇게 되면 요리를 한 숙수가 벼슬을 받게 되니 우리 사대부 중에서 요리 잘하는 이가 직접 하는 게 어떻겠소?"

송상과 경상의 대방들이 마주 앉은 탁자에서는 조용했고, 양반들이 있는 곳에서도 요리를 한다고 나서는 이가 없었다.

“요리 잘하는 이가 없다면 수라간의 숙수를 몇 명 데리고 사은사(謝恩使)와 함께 가는 것이

어떻겠소이까?"

"그럼 누가 가시겠소?"

"북경의 정계에서 활동을 해야 하니 노사신 대감이 직접 가는 것이 어떻겠소이까? 우리가 원하는 벼슬을 얻어 오려면 결국 면이 있는 이가 나서서 발언을 해야 하니 무게감이 있는 노사신 대감이 가시는 게 가장 맞소이다.”

“맞소이다. 노 대감 정도는 가야 무시당하지 않고, 제대로 된 벼슬을 받아 올 수 있지 않겠소이까.”

"흐음. 알겠소이다. 그럼 요리 잘하는 숙수들을 뽑아주시오, 내가 가서 명의 벼슬을

받아오겠소이다."

***

명의 사신들이 돌아가는 날이 되자 배웅을 위해 대소 신료들이 도성을 벗어나서도 한참이나 따라갔는데, 원종도 정보를 얻기 위해 환관의 옆에 붙어 한참이나 이야길 하며 움직였다.

“헌데, 조선에서는 멀리 원행을 할 때 건번이라는 딱딱한 곡물 조각을 먹는다고 하던데, 그거 말고는 없소이까? 내 건번을 한번 먹어 보니 맛이 없었소이다."

"맞소. 맛있으면서 쉽게 만들어 먹는 그런 여행 식은 없소? 앞으로 북경까지 만릿길인데, 먹는 것이 걱정이오."

조선에 있을 때는 대접을 받을 터이니 압록강을 건너서가 걱정이라는 뜻이었다.

"그럼 소생이 한번 새로운 것을 만들어 드리지요. 다행히 명나라로 가는 숙수들이 있으니 도구와 재료도 있을 터. 간단히 길에서 만들어 먹을 수 있는 것을 해주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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