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7. 협잡.
“밥은 잘 모르겠지만, 내가 아주 고생을 했다니깐 그러네."
“도대체 어느 대감께서 그렇게 사옹원에 욕심을 내시는 겁니까?"
"이조 판서인 윤필상 대감과 좌찬성인 노사신 대감이네.”
처숙부인 신정의 이야길 듣고 보니, 정말 그의 말대로 고생을 하긴 했을 것 같았다.
욕심을 냈다는 윤필상은 그 성씨에서 느낌이 오다시피 세조 때부터 외척 세력의 일원이었고, 노사신 또한 세종대왕의 장인인 심온의 외손자로 왕족과 가까이 얽혀있는 집안이었다.
내가 신숙주와 한명회 라인이라면 저쪽도 왕족과 외척 세력을 등에 업고 있는 것이었다.
"그럼, 그들을 어떻게 달래신 겁니까?”
아무리 처조부인 신숙주와 한명회의 비호가 있다고 해도 돈이 되는 청화백자가 관계되어 있다면 쉽게 물러나지 않았을 터였다.
단순한 입씨름이 아니라 뭔가가 오고 갔을 것 같았다.
“주고받긴 뭘 주고받나? 그저 나의 언변으로 설득을 한 것이지. 내 외가가 또 윤가 아니겠나. 윤필상 대감과 담판을 지었지. 자네가 역(役)으로 오는 도공들을 먹이고 입혀서 청화백자를 만들었는데, 그걸 어찌 빼앗기겠나? 안 될 말이지."
진짜 언변으로만 이 일을 마무리했다면 대단한 일이었다. 신정이 이렇게 능변가였던가 생각을 하다 보니 왠지 마음속에서 의심의 불길이 일어났다.
처숙부인 신정은 본래 역사대로라면 평안도 관찰사일 때 성종의 인신(印信 도장)을 위조해
재산을 강탈하다 걸려 사사(賜死) 당하는 인물이었다.
즉, 조선 초 중기를 대표하는 사기꾼이자 악덕 관리였던 것이었다.
'에이 설마, 아무리 양아치라도 조카의 남편에게 사기를 치겠어.'
마음속으로는 설마 친족에게 사기를 칠까 싶었지만, 이게 말을 나누면 나눌수록 의심이 될 수밖에 없었다.
“처숙부. 그럼, 승정원에서는 제 벼슬에 대해서는 어떻게 이야기가 나왔습니까?"
“아, 그건 말이지. 지네의 특기를 살릴 수 있는 칙을 찾다 보니 호조의 아문(衙門)인 사도시
(司寺)의 제조가 적당하다고 보고 있네.”
“사도시요?”
사도시란 궁중의 미곡과 장(醬), 기타 음식 재료를 관리하는 직책이었다.
정 3품의 당상관 벼슬이긴 했으나, 결국 따지고 보면 도자기와 같은 물품을 관리하는 직종이 아니라 음식에만 한하게 되는 일이라 길게 생각하면 사옹원을 완전히 가져가기 위한 물밑 작업이나 마찬가지였다.
사도시의 제조직이 적당하다며 이야길 하는 신정을 보니 분명 피가 이어진 처숙부였지만, 이건 남보다 못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면, 윤필상이나 노사신과 이미 붙어먹는 것일 수도 있었다. 그런 이들과 다리를 놔주고 중간에서 이득을 취하려고 하는지도 몰랐다.
어쩌면, 사옹원을 당장 빼앗아 가면 도공들의 불만이나 자잘한 문제가 생길 수 있으니 나를
떨어트려 두고, 찬찬히 가져가겠다는 협잡질 중인지도 몰랐다.
문제는 이러한 협잡질을 알고 있다고 하더라도, 뭔가 뾰족한 답이 없었다.
물론, 오키나와로 떠나기 전에 미리 본자기를 만들 수 있는 일급 도공들을 해남으로 빼돌리긴
했었다.
하지만, 내가 기껏 만들어 둔 사옹원과 청화백자로 다른 이들이 쉽게 부를 쌓게 되는 것 같자 기분이 더러웠다.
내 것을 더 이상 빼앗기지 않을 힘이 있어야 했다.
"처숙부께서 다시 입씨름을 좀 해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응? 사도시의 제조직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냐?”
“마음에 들고, 들지 않고를 떠나 제가 사도시의 제조가 되어 궐에만 있게 되면 조선 전체에 손해가 오게 될 것입니다. 이런 아문직 말고, 속아문의 훈련원(訓鍊院)을 맡아보고 싶습니다.”
"훈련원? 무과를 거치지 않았지 않은가?"
"그게, 도성에 있는 훈련원이 아니라, 수군을 위한 훈련원을 만들고 싶어서 그렇습니다."
"그거라면 선원 학교라는 것이 있지 않은가?"
“병마절제사를 제수받아 임시로 선원 학교를 운영하고 있지만, 이게 1년에 수군 200명을 받아 선원으로 만드는 것이 끝입니다. 이걸 제대로 된 훈련원으로 만들고 싶습니다."
“흠. 이게 병조의 문제라 내가 뭐라고 이야길 하기 힘들 것 같은데."
신정은 힘들다고 이야길 하면서도 눈을 반짝거리고 있었다. 뭔가 딜을 할 수 있는 이익을 달라는 눈빛이었다.
“휴. 처숙부도 아시다시피 다들 사옹원을 탐내는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사옹원에서 나오는 청화백자가 이국으로 가게 되면 비싸게 팔리기 때문입니다. 헌데, 이번에 다른 상인들이 선단을 꾸리는데, 큰 고생을 했을 겁니다.”
"그건 나도 알고 있다. 배는 중국에서 구매할 수 있다고 하지만, 숙련된 선원을 구하지 못해서 야단이었다고 들었다."
“네. 그래서 소생이 사옹원에서 나오는 청화백자로 좀 더 많은 이익을 낼 수 있게 그 선원과 수군을 길러내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도성에 있는 훈련원과는 별도의 수군 훈련원이 필요합니다."
“흠. 필요한 당위성이 확실히 있긴 하군. 헌데, 이게 병권과 관련된 일이라 쉽게 허락이 날지
모르겠군. 사병이라던지 그런 문제가 있는 것은 자네도 알지 않은가."
태종이 일으킨 왕자의 난이나 세조가 일으킨 계유정난(癸酉靖難)의 주체가 그들의 사병과
사병화된 병사들이었기에 자신도 똑같이 당하지 않고자 사병이나 병부의 일은 심각할 정도로 규제가 많았다.
신정이 이리 자신 없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당연했다.
“저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만들겠다고 하는 것은 수군이지 않습니까? 땅에 올라서면 관아의 병졸보다 못한 존재가 될 것입니다.”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숙부 사옹원의 청화백자도 어찌 보면 곡식과 같습니다. 제때 팔아야 할 때를 놓치면 그 값이
떨어지게 됩니다. 같은 것을 중국에서 만들어 팔게 될 것이니깐요. 선원이 부족해 그때를 놓치면 결국 그 손해는 전하와 대신들에게 미칠 것이옵니다."
"흠."
신정도 왕의 재산을 관리하는 내수사가 배를 띄운 것을 알고 있었고, 많은 대신들이 음으로 양으로 선단에 투자한 것을 알고 있었다.
모두의 이익을 위해서 수군 훈련원을 만들어야 한다는 원종의 말이 옳게 들려왔다.
"좋아, 내 한번 대감들과 입씨름을 해보지. 잘 안 먹히면 미희들을 입에 올리면 될 것이야. 수군 훈련원이 생기고 배가 더 많이 띄어지면 저 멀리 있다는 색목인 미희도 데리고 올 수 있다고 하면반대할 이가 몇 없을 것이야."
"색목인 미희요? 그게 대신들에게 먹히겠습니까?"
“당연하지. 내가 진상한 전하의 미희들을 본 대신들은 자기들도 가지고 싶다고 내게 기별을 따로 넣을 정도야. 염호진 선장이 다음에 갈 때는 한 20명을 데리고 올 수 있도록 이야길 해주게. 내가 돈은 섭섭지 않게 줄 테니. 하하하.”
배고플 일이 없고, 가진 것이 많은 대신들이다 보니 유일한 즐거움인 색(色)에 빠져드는 것
같았다.
하긴, 조선 시대뿐만 아니라 일제 강점기까지 첩을 두는 문화가 있었으니 어떻게 보면 이러한
이국의 미희를 원하는 것이 당연한 것일 수도 있었다.
“대신들에게 수군 훈련원이 생긴다면 제가 책임지고 색목인 미희를 데리고 오겠다고
이야기해주십시오."
"그러지. 그리고 사옹원에서 생산되는 청화백자의 분배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는 양보할 생각을 해야 할 것이야."
이미 사옹원을 내가 온전히 지킬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청화백자 분배 문제도 어느 정도 양보하겠다고 약속을 했다.
"며칠 기다리게 내가 멋지게 성사시켜 볼 테니."
***
처조부 신숙주의 집에 머물며 한양 돌아가는 것을 살핌과 동시에 오키나와에서 받아왔던 국서를 예조에 접수시키고, 내가 원하는 대로 오키나와의 후예들이 죽었는지 살았는지 찾을 수 없다는 조서를 만들어 삼식이에게 주었다.
그러면서 좌승지인 신정이 그날그날 누구를 만나고, 어떤 협상을 제시했다는 이야기를 자연스레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나흘째 되는 날 신정은 호기롭게 웃으며 귀가했다.
" 으하하하. 전하께서 수군 훈련원을 허(許)하셨네. 자네는 이제 부절만 받으면 될 것이야."
신정에게는 이틀 후 병권을 상징하는 도끼인 부절을 수여하는 가절 예식이 있을 것이라고
알려왔다.
"수군 훈련원도 지금의 훈련원과 다 같은데, 문젠 수군 훈련원의 우두머리인 지사(知事, 정2품)로 병조참의인 유자광이 겸하게 된다는 거야."
"유자광이요?"
“그래, 그 서얼 유자광, 아버님과는 얼굴 붉힐 일이 있었지. 아마도 윤필상 대감이나 노사신
대감의 입김이 들어간 것이겠지.”
유자광은 서얼 출신으로 세조 때 이시애의 난과 남이의 난 이후로 승승장구한 인물인데, 온양 별시의 과거 답안지를 처조부인 신숙주가 탈락시켰던 악연이 있는 자였다.
하지만, 세조가 온양별시를 연 이유가 서얼 출신인 유자광을 끌어올리기 위해서 열었던
것이었기에 탈락한 답안을 세조가 장원으로 올렸었다.
그때 처조부인 신숙주와의 관계가 틀어져 버린 것이었다.
결국, 내 사옹원을 받고 수군 훈련원을 만들어 주는데, 그 지시의 겸작으로 척진 사람을 심어서 견제하겠다는 것이었다.
“지사 밑에 2명의 도정(都正 정3품 당상관 자리에 자네가 내정되었고, 다른 한 자리는 병조의 사람이 내정될 거네. 물론, 그도 겸직일 것이야."
"균형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것이었겠지요."
분명 손해였지만, 이 훈련원을 운영하게 됨으로써 생기는 별도의 이익이 있었다.
먼저, 내가 돈을 다 들이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었고, 관원을 뽑을 수 있는 시취(試取)의 권한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었다.
시취란 시험을 보아서 인재를 뽑는 것을 말하는데, 무과를 주관할 수 있다는 말이었다.
훈련원의 경우 초시(初試)는 한성에서 70명을 선발할 수 있었고, 각 도에서 병마절도사 책임 아래 120인을 뽑아 하급 권관으로 삼을 수 있었다.
이들 190인을 병조와 훈련원에서 함께 주관해 복시를 통해 28인을 선발하고, 이 28명에서 최종적으로 전시(殿試)를 보아 장원을 결정했다.
즉, 내 사람들에게 벼슬을 줄 수 있다는 것이었다.
물론, 유자광이나 다른 도정이 관여를 하겠지만, 수군의 일이라면 내 밑의 사람들이 다른 이들에게 질리 없었다.
그리고, 정식으로 훈련원이 만들어지기만 하면 유지광은 물론이고 조정의 간섭을 받지 않을 계책도 가지고 있었다.
***
이틀 후 성종에게 병부와 부절을 받았고, 병부 판서 구문신(文信)과 마주 앉았다.
“그래, 지금 듣기로는 목포에 선원 학교가 있다고 하던데 거기에 수군 훈련원을 세울 것인가?"
“아닙니다. 목포의 선원 학교는 선원을 삼 개월간 교육시키는 목적이라 장소가 협소한 곳입니다. 그리고, 수군을 제대로 훈련 시키려면 거친 바다가 있어야 합니다."
"하면 어디에 수군 훈련원을 세울 것인가?"
“탐라도(耽羅島)에 세울까 합니다.”
“탐라?"
침착하고 유한 성격의 구문신이 깜짝 놀랐다.
“허허 멀리 유배를 보낼 때에나 생각나는 것이 탐라인데, 거기에 수군 훈련원을 만들겠다고?
거기에서 제대로 운영이 될 수 있겠나?"
이 당시 조선 사람들이 탐라에 가지는 관념은 구문신이 하는 생각과 동일했다.
바로 죄를 지으면 보내지는 유배지였다.
그리고, 정확한 측량법이 없다 보니 지금 시기에는 강화도와 거제도, 탐라가 거의 같은 크기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았다.
더구나, 유배된 이들이 조운선을 타고 제주도로 가다 죽었다는 상소도 자주 올라오는 시절이라 그런 외지 중에서도 외지인 탐라에 수군 훈련원을 만들겠다는 원종을 이해할 수 없었다.
“강하게 수군을 키우려면 어쩔 수가 없사옵니다. 강한 수군을 훈련시켜 왜구들을 물리쳐야 조선 사람들이 마음 놓고 바닷가에서 해산물을 채취하고 고기를 잡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허허. 자네의 그 생각에 동의하네. 험한 파도를 이겨내는 수군이 되어야지.”
병부 판서 구문신은 강한 수군을 만들겠다는 원종의 생각에 동의를 해주었고, 그와 관련된
서류에도 쉽게 직인을 찍어 주었다.
그리고, 그 뒤로는 똥 씹은 표정을 짓고 있는 유자광이 보였다.
조선의 내륙에 수군 훈련원을 만들게 되면 유자광은 물론이고, 배를 띄우려는 내수사나 다른 대신들의 입김이 닿을 수 있었다.
하지만, 바다 건너 멀리 떨어져 있는 유배지인 탐라라면 그 입김이 미치지 않을 터였다.
그리고, 조정과 멀리 떨어지면 떨어질수록 내가 힘을 기르기 좋았다.
마침, 큰형이 있는 북방 동항에서 염호진도 내려왔기에 그와 수군 훈련원을 만드는 일을 논의하러 했다.
"큰 형님이신 전원길 목사에게 명나라의 벼슬이 제수되었습니다.”
“형님이 명나라의 벼슬을 받았다고? 아니 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