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쉐프 조선을 부탁해!-265화 (265/327)

< 265. 미희들의 고향 맛. >

“세상이 넓고 다양한 민족들이 있다는 것을 글로만 보았는데, 내 이제 깨달았네. 그리고 그들은 자기들만의 음식을 먹고 산다는 것도 말이지.”

성종은 예전 태종 때와 세종 때의 일들이 기록에 남아 있다 보니 회교도에 대한 것을 글로 보아 알고 있었다.

“그때 세종대왕께서 회회사문(回回沙文)들을 정리하지 않았다면 지금도 그들이 먹었던 아얌고랭이라는 것이 남아 있었을 텐데 말이지. 다행히 자네가 회교도들의 음식을 알고 있다고 하니 마음이 든든하구만. 자네를 알게 되어 참으로 다행이야. 하하하.”

성종은 아얌고랭을 회교도들의 음식으로 지레짐작하고 있었으나 아얌고랭, 즉 닭튀김은 인도네시아와 브루나이 인근의 향토 음식이었다.

조선에 있던 회교도 이슬람인들은 고려 원나라 때 실크로드를 따라 들어온 이들이었기에 동남아의 이슬람교도들과는 완전히 다른 이들이었다.

하지만, 굳이 바로 잡아줄 필요는 없었다.

다만, 성종이 이야기한 세종대왕의 회교도 정리가 없었다면 지금까지도 아랍인들의 양고기 문화가 전해지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은 들었다.

조선 초 태종대왕은 원나라 때 들어온 회교도들에게 집과 땅을 주고 정착하게 도왔는데, 생활 방식이 달랐기에 주변의 조선인들과 문제가 많이 일어났었다.

현대에도 문제가 되는 이슬람의 경직성 때문에 문제가 계속 일어나는 것이었다.

회교도들은 자신들의 문화만을 주장하며 그들만의 복장과 종교를 강요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이들은 조선의 백성들과 섞이지 않았고, 세종대왕 시절 예조에서 ‘회교도들은 조선 사람들과 의관이 달라 백성들이 그들과 혼인하기 부끄러워한다.’고 상신을 했다.

그리고, 그들의 기도의식도 불교와 달라 불편을 주니 그 의식도 폐지함이 마땅하다는 의견을 올렸다.

결국, 세종대왕은 이에 대해 알아보게 했고, 세종 9년 예조의 요청대로 회교도들의 복장을 규제했으며, 주위에 피해를 주는 기도의식도 하지 못하게 막았다.

조선인들과 섞이지 않고, 자신들의 문화만 강요하는 회교도들이 조선에 도움 되지 않는다고 판단한 것이었다.

이후 회교도들이 조선을 떠난 것인지, 아니면 조선인들과 동화가 된 것인지에 대한 이야기는 나오지 않는데, 결국 이 강제적인 조치가 문제를 해결했다는 것이었다.

그러한 회교도 이후 처음으로 회교도인 미희들이 조선에 들어온 것이었는데, 회교도에 대한 것은 그 누구도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저 다들 아얌고랭이라는 회교도의 음식이 무엇인지 궁금해할 뿐이었다.

당장 요리를 해달라는 성종의 말에 수라간으로 가니 성종과 다른 대관들도 따라붙어 성종이 앉아서 볼 수 있는 좌석까지 만들어졌다.

“닭이 어떤 것이 준비되어 있습니까?”

“전하께서 순살로 된 닭튀김을 자주 드셔서 순살은 항시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수라간의 숙수는 물론이고 다른 이들도 그제야 미희 ‘타두’가 먹고 싶어 한 아얌고랭이 닭요리라는 것을 알았다.

준비되어 있는 순살로 만들까 했으나, 고향의 맛을 그리워하는 것이었기에 인도네시아나 부르나이에서 먹는 그대로 해주는 것이 나을 것 같았다.

“가서 막 초란을 낳은 닭 다섯 마리를 잡아서 목과 다리, 창자를 빼고 가져오십시오.”

큰 닭보다는 이제 초란을 낳을 수 있는 막 성체가 된 닭이 가장 적당한 크기였다.

닭을 잡아 오는 동안 춘봉 상단의 본단에 사람을 보내 요리재료를 들고 오게 했는데, 한때 수라간의 숙수로 있었던 철금이도 같이 오게 했다.

“철금이 너는 안남미로 밥을 안치는데, 밥에 이 코코넛 말린 것을 같이 넣어서 하거라.”

철금이는 말린 코코넛이란 하얀 조각들이 무엇인지 궁금했지만, 우선은 시킨 대로 말린 코코넛을 넣어 밥을 안쳤다.

“미희께서 이야기한 아얌고랭의 아얌(Ayam)은 닭이고, 고랭(Goreng)은 튀김, 볶음이라는 뜻이니 나중에 미희께서 다른 이름의 고랭을 해달라고 하면 앞의 글자가 무엇인지만 파악하면 될 것이오.”

하지만, 원종은 닭이 준비되자 솥에 물과 넣어 삶아내었는데, 방금 튀김이라고 이야길 들은 숙수들은 혼란스러워했다.

삶은 후에 다시 튀긴다는 요리법을 처음 보는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튀기기 전에 삶는 것은 잡내를 제거하기 위한 것도 있었지만, 튀겨낼 때 고소한 맛이 더 잘 배게 하기 위한 것이오. 그리고, 아얌고랭을 할 때는 반드시 이 기름으로 해야 하오.”

원종은 철금과 함께 들여온 기름을 숙수들에게 보여주었는데, 들기름이나 참기름과는 다르게 흰빛의 투명한 기름이었다.

“따뜻한 남국에 자라는 코코넛이라는 과육에서 짜낸 기름으로 이 기름으로 닭을 튀겨내야 아얌고랭이라고 할 수 있소.”

“다른 기름으로는 안 되는 것입니까? 이역만리에서 가져온 기름이라 다른 대체재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다른 기름으로 해도 되긴 되나, 그 맛의 차이가 아주 크오. 비교를 하기 위해 들기름을 넣은 솥도 하나 만들어 보시오.”

닭이 삶아지는 동안 튀길 기름을 준비했고, 닭튀김의 반죽도 준비를 했다.

밀가루와 달걀, 전분, 후춧가루가 들어가는 아주 흔한 치킨 반죽이었다.

“재료만 보면 저 코코넛 기름 빼고는 특별한 것이 없어 보이는군요. 제가 삶아진 닭에 반죽을 바르오리까?”

철금이가 알아서 일을 하겠다고 나섰지만, 원종은 그런 철금이를 막았다.

“여기서부터가 특이한 조리이니 다들 똑똑히 보시오.”

원종의 말에 성종과 대신들도 집중했다.

원종은 삶아진 닭 다섯 마리에 반죽을 바르지 않고 그대로 달궈진 기름에 집어넣었다.

파자자자작!

“닭튀김인데 반죽 없이 튀긴다니 특이하구만. 헛! 저거...”

코코넛 기름에 들어간 닭이 튀겨지는 흔한 광경이었음에도 특이점을 알아챈 이가 있었다.

“튀겨지는 거품이 흰색인데 정상입니까?”

“이것이 코코넛 기름만이 가진 특성입니다. 이 흰 기름이 기름 면에 한가득하게 찰 때까지 놔두십시오.”

닭이 튀겨지며 만들어지는 거품이 기름 면에 가득 차게 되자 원종은 만들어 두었던 반죽을 국자로 떠 기름 위에 뿌렸다.

파파파파팍!

반죽에 남아 있던 물기가 기름에 튀겨지며 맛있는 소리를 내었고, 반죽은 금세 흰 튀김 거품 속으로 사라졌다.

“제조님. 이렇게 반죽을 기름에 뿌려 넣어도 되는 것입니까? 닭에게 입혀지지 않는 것 아닙니까?”

철금이는 물론이고 다른 숙수들도 튀겨진 반죽이 기름 위에 둥둥 뜰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기름 위에 있던 거품이 사그라들어 솥 안을 보게 되자 다들 환호성을 질렀다.

“이야! 그냥 넣은 반죽옷이 닭에게 입혀졌어. 어찌 이런 일이.”

“이것이 코코넛 기름이라는 재료의 특성입니까?”

“반죽 없이 닭을 넣고 반죽을 뿌리듯이 넣었는데, 반죽이 입혀지다니. 이런 신기한 조리법이 있을 줄이야.”

숙수들은 물론이고, 기름에서 건져낸 닭을 보는 성종이나 대신들도 신기해했다.

황금빛으로 잘 튀겨진 밀가루 반죽이 보슬보슬한 모습으로 닭고기에 입혀졌으니 절로 군침이 돌았다.

길쭉한 접시에 튀겨진 닭을 올리고 그 위로 반죽에 입혀지지 않은 튀김 가루들을 위에 올려주었다.

그러곤, 말린 코코넛을 넣어 지은 밥을 그릇으로 모양을 내 옆에 올렸다.

이제 가장 중요한 삼발 소스를 만들어야 했는데, 문제는 이 삼발 소스에 들어가는 고추와 토마토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매운맛을 내는 산초와 후춧가루를 베이스로 양파와 오이, 시금치, 파, 생강, 마늘을 잘게 다져 으깨었고, 설탕과 소금, 액젓, 식초를 넣어 시고 짠 맛이 나게 만들었다.

그렇게 만든 현지화 삼발 소스를 그릇 한 쪽에 올리고, 제주에서 진상된 귤을 반으로 자른 후 귤에 식초를 뿌려 올렸다.

“전하 이것이 말라카와 그 인근 지역에서 먹는 아얌고랭이옵니다. 소신이 가져온 재료의 한도 내에서 가장 비슷하게 만든 것이 옵니다.”

원종은 성종과 미희 다섯 명에게 줄 그릇을 올렸다.

음식들이 미희들의 방으로 옮겨져 갔고, 성종은 수라간 한쪽에 마련된 자리에 앉아 상을 받았다.

“회교도는 물론이고, 말라카의 사람들도 수저를 쓰지 않고, 손으로 집어 먹기에 뜨거울 때는 먹지 않고, 어느 정도 식으면 먹사옵니다.”

“허허. 특이하군. 음식을 갓 했을 때 먹지 않고, 식은 후에 손으로 먹는다니.”

“그것은 남국의 뜨거운 날씨도 한몫을 하옵니다. 1년 내내 한여름의 더운 날씨다 보니, 방금 조리한 뜨거운 음식을 더워서 먹지 못하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우리는 그냥 뜨거울 때 먹어도 되겠구만.”

성종은 수저를 들었지만, 이걸 어찌 먹어야 할지 난감했다.

“전하 먼저 식초를 뿌린 귤을 손으로 으깨어 귤의 과즙을 닭고기에 뿌리시지요. 시큼한 식감이 식욕을 올려줄 것이옵니다.”

성종은 들었던 수저를 놓고, 귤을 직접 으깨어 여기저기에 과즙을 뿌렸다.

“이후 수저로 닭고기의 살코기를 발라서 밥 위에 올리시고, 저 삼발 양념이라는 것을 덜어서 비벼 드시면 되옵니다.”

“흠. 그럼 그냥 내가 좋아하는 순살로 하는 것이 더 좋을 뻔했군. 어디 닭고기부터 먹어볼까.”

성종은 젓가락으로 바른 닭고기를 입으로 가져갔는데, 젓가락에도 바삭바삭하게 부서지는 튀김 반죽의 부드러움이 느껴졌다.

기름에 번들거리는 부드러움이 아니라 고운 가루가 튀겨져 언제든지 바삭거리며 부서질 것 같은 부드러움이었다.

“아, 기름이 고소하구나. 뭔가 단맛이 나는 닭튀김이야. 이것이 코코넛 기름의 맛이로군. 이제까지 해 먹었던 순살 닭튀김과는 확연히 다른 맛이야.”

성종은 한입을 먹었을 뿐인데 혀로 코코넛 기름의 향과 맛을 바로 알아차렸다.

그리고, 삼발 양념이라는 것에 고기를 찍어 먹었는데, 자극적으로 입안에서 퍼지는 후추와 산초의 맛에 방금까지 느껴졌던 기름진 맛이 느껴지지 않았다.

삶은 후 튀겨진 부드러운 닭고기는 금세 목구멍으로 사라져 버렸고, 입안에는 쌉싸름한 신맛이 남아 다음 음식을 기다리고 있었다.

닭고기와 삼발 양념이라는 것의 맛을 알았으니 원종이 알려준 대로 밥 위에 닭고기를 올리고 삼발 양념을 비벼 먹었다.

그러자 방금 먹어서 아는 맛이라고 여겼던 맛이 다시 한번 바뀌었다.

‘밥이 달구나!’

성종은 길쭉한 모양의 쌀알이 남국에서 들어왔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쌀로 밥을 해 먹은 사람들은 찰기가 없어 밥을 먹어도 먹은 것 같지 않다고 양반들이 먹을만한 쌀은 아니라고 했었다.

그래서 성종은 아직까지 안남미로 한 밥을 먹어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처음 먹어본 안남미에서는 마치 설탕을 탄 우유가 들어가 있는 듯이 달콤하면서도 은은한 부드러운 맛이 났다.

그런 부드러운 은은한 단맛에 고소하게 튀겨진 닭튀김이 더해졌고, 후추와 산초의 강한 맛과 은은한 신맛이 더해지니 입안에서 여러 가지 맛이 섞여 ‘음. 음.’ 하는 감탄사를 내며 씹을 수밖에 없었다.

“이것이 타두가 이야기한 아얌고랭의 맛이었군. 이런 맛이니 생각이 날 수밖에. 숙수는 이 조리법을 전 제조에게 제대로 배우게나.”

“네. 고향의 맛을 기억하실 수 있게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성종은 닭고기 뼈를 발라서 밥 한 공기를 다 먹고는 자리를 떴다.

미희들이 제대로 맛을 보고 있는지가 궁금하여 얼른 먹고 일어난 것이었다.

성종이 자리를 뜨자 대신들도 같이 자리를 떴어야 하지만, 대신들은 성종을 배웅한 이후 수라간으로 다시 들어왔다.

“자자 줄을 서게나. 당상관은 이쪽 당하관은 저쪽! 전 제조, 그 코코넛 기름으로 하는 것은 우리 당상관 쪽이네.”

“대감! 너무하십니다. 저희도 코코넛 기름으로 한 본토의 맛을 보고 싶습니다.”

“어허! 아직 당하관에겐 어림도 없지. 이역만리에서 가져온 기름이라 어쩔 수 없는 게야. 하하하. 숙수는 어서 아얌고랭을 해주게나.”

“그런데, 전하께서 수라간에서 이렇게 대신들이 먹을 수 있게 허락해 주신 겁니까?”

원종의 물음에 좌의정인 서거정이 답을 했다.

“미희들과 시간을 보내는데 방해하지 않는 조건으로 오늘 특별히 전하께서 수라간 이용을 허락해 주셨네.”

유학 꼰대 급인 서거정부터 미희들에 대해 열린 마음(?)을 보여주고 있으니 신숙주의 걱정처럼 혼란을 넘어 난잡이 되어가고 있는 것 같았다.

“전 제조 어른! 전하께서 아주 기뻐하셨습니다. 미희들이 고향에서 먹었던 아얌고랭과 맛이 똑같다고 고향의 맛이라고 눈물을 보이셨습니다.”

“다행이군.”

“그래서. 이제는 나시고랭이라는 것을 만들어 달라고 하십니다. 그건 어떤 요리인 겁니까요?”

“나시(Nasi)는 쌀, 밥이라는 뜻이네.”

“그럼, 아까 제조님이 고랭은 튀긴다는 뜻이라고 했으니 밥 튀김을 해달라는 말입니까요?”

작가의말

참고로 글의 연도 시기가 정사와는 조금 다릅니다.

신숙주는 사실 연산군의 회임 사실을 모르고 죽었습니다.

실제 역사와는 살짝 1~2년치씩 차이가 나는 부분이 있으나 그냥 한 번에 같이 일어난 일로 처리를 했습니다.

그리고, 정확하게는 성종이 한명회의 딸인 공혜왕후를 사랑하여 그녀가 살아 있을 때는 숙의로 들인 폐비 윤 씨에게 그리 자주 들락거리지 않았습니다.

성종은 공혜왕후가 죽고 1년 동안 중전을 새로 간택하지 않았는데, 이후 숙의 윤씨가 임신을 하자 중전으로 승격시켰습니다.

그 이후로는 후궁을 많이 들였는데, 평생 동안 16명의 부인을 두었습니다.

세종대왕과 더불어 조선 최고의 정력왕이었습니다!

< 265. 미희들의 고향 맛.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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