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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쉐프 조선을 부탁해!-262화 (262/327)

< 262. 격동의 조선 정계. (1) >

“그게 말입니다. 말라카에서 물산을 실은 염호진 행수의 선단이 벽란도에 도착을 했었습니다. 6개월 만에 돌아온 것인데, 돌아온 배의 숫자가 18척이었습니다.”

“배가 6척 늘었군. 해적의 배를 나포한 것인가?”

“해적에게 빼앗은 배는 한 척이고 다섯 척은 중국에서 배를 구매했다고 합니다. 송상이 두 척, 내수사가 세 척을 구매해서 선단에 합류시켰습니다. 그리고, 그 배 가득 이국의 물산을 실어 왔습니다.”

내가 중국 남부에서 정크선을 구매했다는 모험기를 보았기 때문인지 송상과 내수사도 그렇게 한 것 같았다.

“오호. 각기 한 척의 배로 가서 서너 척으로 돌아왔으니 큰 이득을 보았겠군.”

“네. 그래서 이 사달이 난 것입니다. 송상이 은자 900냥을 투자하여 은자 5000냥 이상을 벌었다고 말이 퍼졌고, 내수사도 그 이상을 벌었다고 하다 보니 양반네들이 다들 선단을 만들겠다고 난리입니다.”

“허허. 상업을 천시 여기며 물건값을 흥정하는 것도 천하다고 하던 자들이 웃기는구나.”

“뭐 물론, 아직까지 그렇게 생각하는 양반네도 있지만, 그런 양반들은 먹지 못하는 감 찔러나 본다는 식이겠지요.”

“그럼 저 양반네들을 다 데리고 근해 무역을 하고 있는 것이냐? 장부까지 다 보여달라고 하지 않더냐?”

“후후후. 상단주님은 이게 문제입니다요. 다른 양반네들도 상단주님 같은 줄 아시는 게 문제입니다요. 저치들도 선단을 만들어 큰 이익을 보고 싶어서 나섰지만, 다들 입만 살아있는 자들입니다요.”

“그럼, 말로만 배운다고 하고 안 배운다는 말이냐?”

“물론입지요. 저들이 이리 나선 것은 송상의 김검수 때문인데.”

“잠시만, 김검수? 송상 총대방 김만춘의 아들 말이냐?”

“네. 이번에 송상 배의 책임자로 말라카에 다녀왔습죠. 그러고는 한양의 기방이란 기방을 다 다니며 말라카에서 겪었던 일을 떠들기 바쁩니다.”

희재의 말을 들으니, 송상의 김검수가 900냥을 투자해서 말라카에서 은자 5000냥을 벌었다고 신나게 입을 털었던 것 같았다.

“왜구들과 싸운 이야기나 말라카에서 눈이 크고 피부가 검은 계집을 품어 봤다고 하면서 어찌나 입을 구성지게 푸는지 젊은 양반네들이 다들 넘어갔습니다.”

“하하하. 그거 웃기구나. 겨우 그런 허풍에 양반들이 다 들썩거리다니.”

“그 허풍이 큽니다요. 양반네들이 자신들도 송상의 김검수처럼 선단을 만들어 만석꾼이 되어 보자고 이리 나서는 것입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배를 타고 그냥 근해를 유람하는 것이고, 그 아랫사람들이 일을 배우고 있습니다.”

“하하하. 아마 그건 김검수도 비슷할 것이니 딱 맞긴 하구나.”

“네. 실제 말라카에 다녀온 선원들은 대충 김검수가 어찌했다는 걸 알지만, 양반네들은 그런 걸 모르지 않겠습니까. 그저 씀씀이가 어마어마하니 그저 선단만 꾸리고 김검수처럼만 하면 된다고 다 믿을 수밖에요.”

“하긴. 은자 5000냥이면 백미로 만석이니. 만석꾼의 재산을 벌어들였고, 그걸 기방에서 쓰는 것을 보았다면 다들 혹할 수밖에 없었겠지.”

“네. 거기다 우리 상단은 배가 10척이니 몇만 냥을 벌었을 거라고 다들 난리입니다.”

“이럴 때일수록 돈 자랑은 하면 안 되느니라.”

“네. 그리고, 우리 상단에 있다가 나갔던 권항필이란 자가 있었지 않습니까? 돌아가신 권신 권남의 조카라는...”

“그래 기억하지.”

“그자가 경상의 최홍서와 함께 선단을 꾸린다고 투자자를 모았습니다.”

“권항필이? 허허. 금산이 말로는 뭔가를 꾸미고 있다고 하더니 선단을 꾸리는 일을 하고 있었군.”

“그러자, 만상이 나섰고, 송상도 나서서 말라카로 가는 선단을 꾸린다고 난리였습니다.”

“경상에 이어 만상에 송상까지? 그들은 선단을 다 꾸리긴 했나?”

갑작스레 여러 선단이 만들어진다는 말에 걱정이 되었다.

“네. 결국, 만상에는 내수사가 붙었고, 권항필과 경상은 송상과 붙어 저번 달에 말라카로 떠났습니다.”

“허허 새로운 선단이라니. 조정에서는 아무 말이 없었는가? 해금령은 어찌하고?”

“그것이 전하께서 오히려 더 적극적이십니다. 명의 해금령과는 다르게 가기 위해 고심하시고 계십니다.”

“전하께서 더 적극적이라고?”

희재의 말에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성종은 후추에 대한 사랑이 지극했고, 향신료를 넣은 음식 먹는 것을 즐겨 했지만, 명나라의 해금령을 따르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던 사람이었다.

그런 성종의 생각이 바뀌었다는 것이 신기했다.

“어떻게 그리된 것이냐? 내수사의 전수 내관 이치현이 전하를 구워삶은 것이냐?”

“그것이 아닙니다. 전하께서 적극적으로 바뀐 것은 도련님의 처가 때문입니다.”

“내 처가? 처조부이신 신숙주 어르신이 뭔가를 하신 것이냐?”

“신숙주 어르신이 아니라 넷째 아드님인 신정님 때문입니다.”

“신정?! 아아. 설마, 계집 때문이더냐?”

희재의 입에서 신숙주의 넷째 아들 신정이라는 이름이 나오자, 그가 염호진 선단이 출발하기 전에 부탁했던 것들이 떠올랐다.

신정은 말라카에 가서 미색이 좋은 계집을 사 오라고 했었기 때문이었다.

“네 맞습니다. 염호진 행수가 말라카의 재상 뚠빼락에게 부탁하여 미희(美姬) 4명을 데리고 왔는데, 그걸 신정 어르신이 전하께 바치었습니다.”

“허허. 여색이라...”

“전하께서 이제까지 여색을 밝히시지 않으셨는데, 저자에서 들리는 말로는 이국의 미희들에게 빠져 정전에도 잘 나오시지 않는다고 합니다.”

본래 성종은 조선 시대인 것을 감안하더라도 재가 금지라던지 어우동 사건에서 극보수적인 견해를 보였었다.

이 시대의 ‘유교 보이’ 같은 임금이었다.

그런 유교 보이가 물 건너온 미희들을 보고 여색에 빠졌다고 하니 의외였다.

그만큼 말라카의 재상 뚠빼락이 가려 뽑은 미인들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다른 것도 떠올랐다.

“그럼, 공혜왕후(한명회의 딸)께선 어찌하시고?”

“그것도 좀 애매합니다. 공혜왕후께서 몸이 편찮으셔서 친정인 한명회 대감의 집으로 가셨는데, 병환에 차도가 없다고 합니다.”

“병환에 차도가 없다는 것이 애매하다는 말이냐?”

“아, 그게 아니오라. 한명회 대감과 전하의 관계가 좀 애매해졌습니다. 미희들에게 빠져 정전에 자주 안 나오시지만, 정전에 나오시면 한명회 대감과 자주 큰 언성이 오가신다고 합니다.”

“흠...”

역사가 또 변한 것이었다.

성종은 본래 어릴 때부터 같이 자라듯이 했던 한명회의 딸인 공혜왕후 한 씨를 많이 아꼈었다.

그래서 공혜왕후가 아파서 친정으로 갔을 때는 거의 매일 업무가 끝나면 처가에 들러 병중을 지켰다고 했었다.

그런데, 병환으로 친정에 간 공혜왕후를 챙기지 않고, 미희들에게 빠져 있다고 하니 조정에 큰 변화가 있을 것 같았다.

그동안은 훈구파의 거두인 한명회와 신숙주가 조정을 주도했는데, 그 둘을 이어주던 공혜왕후가 찬밥 신세가 되었으니 균형을 이루던 서로의 힘이 어찌 될지 알 수 없는 것이었다.

“그리고, 처조부이신 신숙주 어르신도 몸이 편찮으셔서 공직을 모두 내려놓으시고 칩거를 하시고 계십니다.”

“편찮으시다고?”

아차 하는 심정으로 연도 계산을 하니 처조부가 돌아가실 날이 2년 정도밖에 안 남은 거 같았다.

몸이 불편해 정계를 은퇴하고 집안에서 노환으로 돌아가시게 되는데, 그것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이었다.

성종이 여색에 빠진 것과 한명회와의 거리감, 그리고 훈구파를 유하게 지탱해온 처조부 신숙주의 사망까지...

그냥 단순한 변화가 아니라 큰 변화가 있을 것 같았다.

한양으로 빨리 올라가서 전체를 살펴봐야 했다.

“그리고, 한양의 김재원 행수가 부산포 인근에 조선소를 만드는 것을 알아보라고 했습니다.”

“조선소를? 부산에?”

지금까지는 수영의 군선을 만드는 조선소에서 배를 만들어 왔는데, 조선소를 별도로 만들겠다고 하니 이유가 궁금했다.

“그게 선단을 꾸려서 원양 교역을 하는 것이 유행처럼 되었지 않습니까? 그러다 보니 배가 부족해졌습니다.”

“이런, 수영에서 나오는 누전선을 받을 수 없게 된 것이구나.”

“네. 권세 있는 여러 대감들께서 수영의 조선소에다가 줄을 서고 있습니다. 기존의 누전선이 신숙주 어르신이 만드신 병조선(兵漕船)으로 대체되며 그 누전선을 우리가 쉽게 받았는데, 이제는 그걸 받기가 힘들어졌습니다.”

“조선소를 지을 수밖에 없게 되었군.”

뭔가 다른 세력들에게 밀려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사실 원종도 조선소를 만드는 것을 생각하고 있었다.

발해방의 대영일과 더불어 시베리아와 북미 진출을 하려면 좀 더 크고 튼튼한 배가 있어야 했다.

유럽의 캐럭이나 갤리온 같은 대양에서 버틸 수 있는 선박을 만들려면 수영의 조선소로는 한계가 있었다.

시기가 좀 더 빨라졌지만, 이왕 만들어야 하는 조선소라면 빨리 만드는 것이 나을 것 같았다.

“근해 교역을 하며 각 수영 조선소에서 일머리 있는 목장들을 모으거라.”

“네. 부지를 알아보고 올해 안으로 만들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선원 학교에 배를 만드는 목장 과정을 만들 것이니 나이가 들어 배 만드는 일을 그만둔 경험 많은 목장들도 따로 모으거라.”

“아! 장인을 아예 키우실 생각이시군요. 현명하십니다!”

배를 만드는 것도 있지만, 만들어져 운행되는 배도 항해 후에는 수리를 받아야 했다.

그런 수리를 위해서라도 우리가 조선소와 기술자를 데리고 있는 것이 맞았다.

뭔가 점점 대항해 시대의 무역회사가 되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남미의 옥수수와 감자, 고구마를 최대한 빨리 가져오려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리고, 궁극의 향신료인 고추와 토마토도 남미산이다 보니 꼭 가야 할 이유가 있었다.

***

한양에 부는 변화의 바람이 거센 것 같아 마누라가 있는 목포에 들르지도 못하고 벽란도로 향했다.

쇠퇴했던 벽란도도 몇 년간 우리 상단이 상주하며 번화가가 만들어져 있었고, 창고들도 줄을 서서 세워져 있었다.

과거의 영화가 벽란도에 다시 찾아오는 듯했다.

“가져오신 물건이 상당하십니다. 이게 한 번에 풀리게 되면 피해를 보는 이들이 생길 것입니다.”

총 행수이자 형의 친구인 김재원이 수급 가격의 안정화를 위해 공급을 조절해야 된다고 했는데, 한양은 조절하되, 지방은 최대한 물건을 풀어 주는 것으로 계획을 잡았다.

“나는 한양으로 가서 조정이 어찌 돌아가는지를 챙겨야 할 것 같으니, 총 행수께서 원행을 다녀온 선원들을 챙겨주시오.”

“네. 맡겨주십시오. 그리고, 경상의 최홍서란 자가 ‘한양전장’이라는 전장을 만들었습니다.”

“전장을요? 설마, 교환권도 만들었습니까?”

“네. 우리 상단에 있던 권항필이 그쪽에 붙어 교환권을 찍어 유통하고 있습니다.”

김재원이 한양 전장이라고 한자로 쓰인 교환권을 보여주었는데, 내가 만들었던 교환권과 글씨를 빼고는 똑같았다.

“허허. 이거 사용처는 제대로 있습니까?”

“경상과 송상에서 운영하는 가게에서 쓸 수 있게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최홍서가 단주님이 돌아오시면 만나고 싶다고 연통을 몇 번이나 넣었습니다.”

“아마도, 교환권을 우리 전장이나 상가에서 쓸 수 있게 해달라는 이유겠지요?”

“네. 그럴 테지요. 어찌할까요?”

“생각할 것 있습니까? 당연히 받아 준다고 하면 됩니다.”

“네? 그렇게 간단히 결정을 내려도 되는 것입니까?”

김재원은 크게 생각하지 않고, 교환권을 받아 주라는 원종의 말에 놀랐다.

자신은 나름대로 오랫동안 고민을 하고 생각을 했던 사안인데, 원종은 그저 쉽게 받아 주라고 하니 이해를 할 수가 없었다.

“이게 큰일 같지만, 쉽게 생각하면 아주 단순한 일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나중에 아주 재미있는 일을 만들어 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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