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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쉐프 조선을 부탁해!-253화 (253/327)

< 253. 이게 문제네... >

원나라 항쟁기의 고려 왕실은 원나라와 화평을 맺고, 원나라의 신하국이 되기로 했는데, 이런 결정을 하게 만든 이유가 있었다.

물론, 원나라의 강대한 힘에 굴복할 수밖에 없기도 했지만, 당시 고려를 지탱하고 있던 무신 정권과도 연관이 있는 일이었다.

고려 왕실은 왕권 위에서 횡포를 부리던 무신 정권을 쳐내기 위해서라도 원나라에 몸을 굽힌 것이었다.

무신 정권은 당연히 자신들의 권력을 빼앗기게 되었으니 원나라와의 화평에 찬성할 수 없었고, 삼별초는 그 출발점이 무신 정권의 사병이었기에 무신들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결국, 삼별초는 난을 일으켜 승화후(承化侯) 왕온(王溫)을 왕으로 추대하여 새로운 고려를 세우려 했다.

하지만, 여몽 연합군에 패할 수밖에 없었고, 강화도를 버리고 진도로 옮겨갈 수밖에 없었다.

이때 삼별초는 새로운 왕인 왕온의 이름으로 왜에 국서를 보내었는데, 원나라와 싸울 원병을 요청하는 국서였다.

왜에서는 갑자기 원병을 요청하는 고려의 국서가 오자 교토로 급히 보고했으나, 실제 고려의 돌아가는 상황을 알지 못해 아무런 대응을 하지 않았다.

이 국서를 왜에 전달했던 사신이 진도로 돌아왔고, 전황이 좋지 않자 왜국으로 망명이나 도피를 주도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되었다.

그렇게 제주도에서 도피한 삼별초의 후예들은 규슈지역에서 빈 땅을 찾지 못했고, 빈 땅을 찾아 내려오다 이곳 유구까지 내려온 것이 아닐까 하는 가정을 했다.

삼별초의 후예들이 살고 있다는 라부섬은 동서로 길쭉하고 남북으로는 좁은 섬이었는데, 거제도의 1/4 정도의 크기를 가진 섬이었다.

섬 중앙에 있는 낮은 산을 제외하고는 평탄해서 섬 전체에 밭이 일구어져 있었다.

밭에서 재배되는 작물이 콩인 것 같았는데, 알이 굵은 것이 조선의 콩보다 커 보였다.

“여기부터 초의 사람들이 사는 곳인데, 그대들이 온다는 연락을 받곤, 사람들을 다 불러 모았다고 하오.”

안내를 해주는 자는 안내를 해주면서도 곤란해했는데, 초의 사람들이 마을 입구에 진을 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

“고려, 아니 이제는 조선에서 사람들이 와서 우릴 찾는다고?”

배를 타고 섬들을 오가는 상인들에게서 자신들을 찾고 있는 조선의 거상이 있다는 소리에 배일욱은 심각하게 인상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마주 앉은 김가 마을의 김수도 표정이 굳었다.

“큰 배를 열 척이나 가지고 온 거상인데, 삼별초의 후예를 찾고 있다고 해서 다들 여기에 살고 있다고 이야길 해주었다네.”

소식을 전해주러 온 오키나와의 상인 케루하는 그런 둘의 표정을 모른 채, 조선 상인들이 엄청난 부자로 보였다느니, 선원들이 다 키가 크다느니 하는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삼별초의 후예들은 두 개의 마을에 나뉘어 살았는데, 배중손의 후손들이 모여 사는 배씨 일가 마을과 김통정의 후손이 모여 사는 김씨 일가 마을이었다.

“김가야. 암만해도 너희들을 잡으러 온 것 같다.”

“무슨 소리. 잡으러 왔다면 둘 다 잡으러 온 것이겠지.”

“아니지. 우리 배가의 시조인 중손 어르신은 진도에서 돌아가셨는데, 너희 어르신인 통정 어르신은 탐라에서 끝까지 저항하다가 돌아가셨지 않았느냐. 그러니 당연히 마지막 장수였던 김씨 후손들을 정리하려고 온 것이겠지.”

“무슨 헛소리야!”

김수는 입으로는 헛소리라고 뱉어냈지만, 마음 한편에서는 켕기는 것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헌데, 죄를 지어 도망친 이들의 후예라고는 하지만, 거의 200년이나 지난 거 아니오? 설마 아직까지 그 일로 찾겠소?”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상인 케루하의 말에 희망을 가졌지만, 씨족을 책임져야 하는 존장으로서는 최악의 경우도 생각을 해야 했다.

“김가야. 일단 아이들과 여자들은 다른 마을로 보내어 숨기고 남자들만 남아서 진을 한번 쳐보자. 진짜 우리를 잡으러 온 것이라면 한번 싸워는 봐야 하지 않겠느냐?”

“싸운다고 이길 수는 있겠어? 큰 배가 10척이면 못해도 오백 명인데...”

두 마을의 장한들을 다 모은다고 해도 겨우 100명이 될 뿐이었다.

“김가야. 우리 윗대 어르신들도 다 그렇게 중과부적으로 싸우셨다. 우리가 머릿수가 없지, 힘이 없는 것은 아니잖으냐.”

“그래도...에휴...그래. 일단 배가 네 말대로 해보자. 케하루 그대는 혹시라도 싸움이 벌어져 우리가 다 죽으면 우리 처자식을 좀 부탁하오.”

“아니, 그게 진짜 그리 되겠소?”

즐거운 마음에 조선 상인들이 온다는 소식을 전한 것이었는데, 졸지에 전쟁을 알리는 일이 되어 버렸으니 케하루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케하루도 친할머니가 초의 후예 출신이기에 남 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래서, 케하루는 라브섬 여기저기에 사람을 풀어 도와줄 수 있는 이들을 모았는데, 초의 마을로 40여 명의 장한들이 더 몰려들었다.

다들 배씨와 김씨의 성은 쓰지 않지만, 외가이거나 윗대에서 갈라져 나온 피가 섞인 이들이었다.

그리고, 원종은 마을 입구에 진을 치고 있는 이들을 보곤, 뭔가가 잘못되어도 대단히 잘못되었구나 하는 걸 느꼈다.

“조선에서 온 상인 전원종이라고 하오. 나쁜 의도가 있어서 온 것이 아니오, 그저 같은 한민족이 여기에 산다고 하여 거래를 하고 자주 만나 이역만리에서 고향의 정이나 공유하려고 온 것이오.”

혹시나, 조선어를 다 까먹은 것인가 싶어 왜어로 다시 말하려고 했는데, 진을 친 쪽에서도 조선말이 나왔다.

“응? 우릴 잡으러 온 것이 아니오?”

“절대 아니오. 그저 교역을 위해 유구로 와서 삼별초의 후손들이 있다고 해서 온 것일 뿐이오.”

“진짜요? 저기 칼을 매고 활을 든 이들이 있는데, 저들은 뭐요?”

“이역만리 교역을 위해 움직이는데, 자기를 지킬 병사는 있어야 하지 않겠소? 부담스럽다면 멀리 물리도록 하겠소.”

박치산의 호위대를 물리고, 교역할 물품만 들고 온 이들만이 남자 진에서 2명이 나왔다.

“진짜 교역을 위해서 온 거요? 난 배일욱이고, 이쪽은 김수라고 하오. 두 마을의 대표라고 보면 되오.”

“진짜 교역을 위해 왔습니다. 춘봉 상단의 전원종이라 합니다.”

“뭐, 원종? 배가야. 고려 때 우리를 추살하라고 명을 내렸던 왕의 이름이 원종이라고 안 했었냐?”

김수의 말에 원종은 아차 했다.

당시 고려의 왕이 원종, 원에서 내린 이름은 충경왕이었다.

“오해요. 불리는 이름이 같은 것은 우연일 뿐이오!”

이름까지 안 도와주는구나 하고 있는데, 다행히 배일욱과 김수는 이름이 같다고 당황하는 내 모습에 안심을 했는지, 굳었던 분위기가 풀렸다.

그래서 가지고 온 짐들을 내려 먼저 상품을 보여주었고, 그제야 의심을 풀고 사람들이 접근해 왔다.

조선에서부터 가지고 온 포목과 옹기, 토기를 보여주고, 놋쇠로 된 숟가락, 젓가락, 그릇들이 나오기 시작하자 남자들이 어디론가 가서 여자들을 데리고 왔다.

“이곳에는 콩이 많은 듯한데 여유가 있다면 콩을 팔고 우리 물건을 사시오.”

콩과 말려둔 해산물을 받고, 생필품을 주었는데, 오키나와 상인이라는 케하루가 가격이 좋다며 살 수 있는 만큼 다 사라고 난리였다.

“진짜 배 돛값도 안 나오는 가격으로 파는 거요. 이역만리에서 만난 한민족이니 거의 원가에 주고 있다는 것만은 알아줬으면 좋겠소.”

삼식이의 생색에 케하루도 동의하자, 배일욱은 김수와 이야길 해서는 연회를 열기로 했다.

“오해가 풀렸고, 앞으로의 교역을 위해 같이 술을 먹어봅시다. 해가 졌으니 한잔하기에 딱이오.”

배일욱이 술을 따라주었는데, 황색이 어느 정도 비치는 술이었다.

“하브슈(ハブ酒)요. 이건 귀한 술이니 맛을 보지 말고 바로 삼켜야 하오.”

맛을 보지 않고 바로 삼켜야 하는 술이라는 소리에 그게 뭔가 싶어 쉽게 마시지를 못했다.

“허허. 아 믿고 마시면 내일 아침에 바로 그 효과를 보는 술이니 어서 드시오. 1년에 한 번만 꺼내 먹을 수 있는 술이라 아주 귀하오.”

“아침에 효과가 있는 술이라면...혹시 뱀술입니까?”

“아하하. 맞소이다. 아주 독한 독을 지닌 살모사로 담은 술이오.”

원종은 살모사라는 소리에 어떤 뱀으로 담근 술인지 알 것 같았다.

바로 오키나와에서만 사는 반시뱀(飯匙蛇)이었다.

일본 최고의 독사로도 불리는데, 크기도 2m 넘게 자라기에 어린아이까지도 잡아먹는 무서운 뱀이었다.

그리고, 이 반시뱀이 널리 알려지게 되는 일도 재미있는데, 본래 오키나와에서는 한국의 제주도처럼 화장실에서 흑돼지를 길렀다.

속칭 ‘통시’, ‘똥돼지간’ 이라 부르는 돼지우리에서 돼지를 기른 것이었다.

이런 통시를 가지고 집에서 돼지를 길렀기에 오키나와에 독이 강한 반시뱀이 있었어도 뱀에 물리는 일은 별로 없었다.

돼지가 집으로 들어오는 뱀을 잡아먹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오키나와가 일본의 땅이 되고, 똥돼지간이 없어지며 살모사인 반시뱀에게 물려 죽는 사람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1910년대 일본인들은 뱀을 잡기 위해 뱀의 천적인 ‘몽구스’를 들여오게 되는데, 이 몽구스로 인해 한국에까지 반시뱀의 이름이 알려지게 된 것이었다.

바로, 외래종이 토종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대표적인 사례가 된 것이다.

살모사인 반시뱀을 잡아먹으라고 들여온 몽구스는 잡아먹으라는 반시뱀은 놔둔 채, 좀 더 쉽게 사냥할 수 있는 작은 뱀이나 조류들을 잡아먹기 시작했고, 어떤 때는 사람들이 키우는 닭장에도 침입해 재산에 피해를 끼칠 정도가 되었다.

그리고, 한번 퍼진 몽구스는 퇴치가 거의 불가능해서 오키나와의 생태계는 물론이고 오키나와를 거쳐 가는 철새들에게까지 영향을 주고 있었다.

그렇게 나름대로 유명한 반시뱀으로 담근 술을 보니 신기하기도 해서 한 잔을 쭉 들이켰다.

“크흑. 독하군요.”

독한 술이라 입안이 얼얼했는데, 뱀술이라는 생각에 입안에서 비린 파충류의 느낌이 남는 것 같기도 했다.

“자자 입가심으로 이 술을 마시게.”

이어서 나오는 청주와 황주를 마시는데, 그 향이 향긋한 것이 쌀로 담가 증류를 한 술 같았다.

“라부섬으로 오면서 보기도 했지만, 다른 섬에도 벼농사를 할 수 있는 논이 없었는데, 어떻게 쌀이나 곡식으로 만든 술이 있는 겁니까?”

오키나와의 섬들은 석회암질의 땅으로 물이 쉽게 빠지는 땅이었기에 논을 만들기가 힘든 땅이었다.

헌데, 이렇게 쌀로 빚는 증류주가 있을 정도였으니 의문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쌀은 대월에서 상인들이 가지고 오네. 저기 케하루도 대월과 남중국에 다녀왔지. 거기서 쌀을 가져오면 밥을 지어 먹기도 하지만, 이렇게 술도 담아 먹네.”

작은 배로 대만을 지나 남중국이나 베트남까지 가서 쌀을 사 온다는 말에 대단하다고 생각되었다.

“자 조선에서 내오는 상에 비해 부족하겠지만, 우리 나름대로 옛 방식을 지키며 찬을 만들어 먹네.”

술이 돌자 안주가 아닌 밥상이 들어왔는데, 꿈꿈한 냄새가 나는 것이, 청국장이 밥과 함께 나왔다.

“어떤가? 조선의 청국장과 냄새가 비슷한가?”

“냄새는 똑같습니다. 여기에서 콩이 많이 나니 어쩌면 여기 청국장이 더 맛이 있겠지요.”

200여 년이 지났음에도 콩으로 장을 만들어 먹는 식습관을 지키고 있다는 것에 감탄을 했고, 꿈꿈한 냄새와 입안에서 퍼지는 청국장의 맛에 조선에 돌아온 것인가 하는 기분마저 들었다.

“여기 두부는 어떤가?”

“두부도 좋습니다. 콩 자체가 좋고, 간수로 쓰는 바닷물이 지척이니 두부 맛이 나쁠 수가 없습니다.”

원종은 물론이고, 삼식이와 선원들도 청국장의 맛에 감탄을 하며 원종에게 배운 따봉을 날려 대었다.

원종은 두부와 밥을 같이 먹기 위해 밥을 한 숟가락 들었는데, 멈칫할 수밖에 없었다.

“아, 이건 어쩔 수 없겠구나.”

원종의 힘 빠지는 소리에 뭔가 하던 삼식이도 숟가락을 들다 멈칫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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