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2. 유구의 초. >
“이게 전부인가?”
원종은 어부들이 오늘 잡아 왔다는 고기들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
어부들이 오늘 잡아 온 고기들은 많았지만, 횟감으로 쓸만한 고기가 없었다.
그러고 보니, 같은 일본이라고 하더라도 오키나와에서는 스시가 유명하지 않았고, 오키나와에서 잡힌 생선은 본토로 팔리지도 않았다.
오키나와의 따뜻한 바다에서 자란 고기들은 살이 무르기 때문이었다.
같은 참돔과의 생선이라도 일본 근해에서 잡힌 것과 오키나와에서 잡힌 것은 그 살의 탄력성이 달랐다.
이는 일본 근해가 쿠로시오 난류(Warm Current)와 오야시오 한류(Cold Current)가 만나는 조경수역(潮境水域)이었기에 차이가 있는 것이었다.
그 살의 탄력 차이는 생선과 초밥의 신선도와도 연결이 되는데, 무른 살은 밥 양념에 들어가는 식초에도 금세 겉면이 녹아 눅눅해지기 때문이었다.
물론, 스시를 처음 먹어 보는 토호들이었기에 이곳에서 잡은 무른 생선 살을 올려줘도 되었지만, 열대 생선들의 살이 가지고 있는 그 생 살맛을 내가 모른다는 게 문제였다.
제대로 맛을 파악하지 않고, 음식에 올려 쓴다는 것은 말이 안 되는 것이었다.
어쩔 수 없이 생선 초밥 대신 조개류를 올리는 것을 생각해 보았지만, 이 조개류도 마찬가지였다.
따뜻한 해류에서 자란 조개는 독이 있을 수도 있었고, 일본과 한국의 조개와 크기가 다른 이곳의 조개를 그대로 쓰기에도 그 조개 맛을 몰랐다.
그저 일본 본토에 대한 찬양 일색일 토호들에게 생선 초밥을 먹이며 자신의 고향에서 자란 식재료가 최고라는 신토불이(身土不二)의 마음을 알려주려고 했는데, 갑자기 난이도가 높아진 미션이 되어 버렸다.
청어알을 올리거나 성게알을 올리고 김을 싸는 군함류 초밥?
하지만, 이 알을 올리는 초밥도 그 신선도가 문제였다.
관리가 제대로 안 된 알류는 생선 살보다 먼저 상하는 재료였다.
그럼 오징어나 문어?
두족류(頭足類)는 생선과 달리 해류의 영향을 받지 않는 생물로 전 세계 어디든 그 살맛이 탱글탱글했기에 딱 맞는 재료였다.
“뭐? 오징어나 문어는 없다고?”
알맞은 재료를 찾았는데, 잘 먹지 않아 잡아 둔 게 없다고 하니 일이 더 꼬여 버렸다.
“그럼, 게나 새우는 있는가?”
“새우가 잡히긴 하지만 지금 없습니다. 하지만, 게는 바로 앞 해변에 가면 있을 것이옵니다.”
어부들은 해변을 뒤지면 게가 나온다고 했지만, 원종이 이야기하는 게는 갯벌이나 모래 해변에 사는 그런 작은 게가 아니었다.
초밥에 쓰이는 게는 붉은 살을 가진 대게였기 때문이었다.
“손가락 두세 개 크기의 게는 필요가 없다.”
“손바닥보다 더 큰 게도 있습니다.”
“손바닥보다 더 크다고?”
성인 남자의 손바닥이 보통 15cm에서 20cm가량인데, 손바닥보다 더 큰 게가 있다면 충분히 그 살을 발라 초밥 재료로 쓸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놈을 잡으러 가자꾸나.”
김고도개와 어부들 여섯 명이 바닷가에 뛰어들어 뻘밭과 모래사장을 살폈고 원종도 살펴보았지만, 흔히 볼 수 있는 작은 갯벌 게들만 눈에 띄었다.
“여기 잡았습니다!”
어부 한 명이 크게 소리를 지르며 잡은 게를 들고 왔는데, 그들이 이야기했던 데로 25cm에 이를 정도로 큰 녀석이었다.
하지만, 원종은 그 게를 보곤 어이가 없어서 웃을 수밖에 없었다.
이들이 게라고 잡아 온 생물은 게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이것은 게가 아니다. 쏙이라고 하는 것이다. 일본 본토에서는 샤코(しゃこ)라고 부르는 갯가재다.”
“갯가재요?”
“그래. 이렇게 갑각을 가지고 있고, 집게 비슷한 것을 가지고 있으니 게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이것은 게가 아니다. 우리는 이것을 쏙이나 갯가재로 부른다. 이제는 게와 혼동되지 않게 갯가재로 부르도록 하거라.”
“저기...그럼, 이 게는, 아니 이 갯가재라는 것은 못 쓰는 것입니까?”
“아니 쓸 수 있다. 오히려 게보다 더 좋은 재료이니라. 더 잡을 수 있다면 더 잡아 오거라.”
갯벌 게라도 크기가 크면 게살을 뽑아 군함 초밥을 하려고 했는데, 오히려 더 좋은 재료인 갯가재를 구한 것이었다.
이 갯가재란 녀석은 집게가 사마귀의 손 모양과 같다고 하여 맨티스 슈림프(Mantis Shrimp)라고 부르는데, 근래에는 열대어처럼 관상용으로 키우기도 하는 인기 있는 생물이었다.
물론, 그 맛도 일품인 식재료였다.
해감도 필요 없이 껍질째 소금물에 삶아 갑각을 떼어내고 쓰는데, 그때 나오는 살이 연한 보라색을 띄었기에 흰살생선에서 붉은 살 생선으로 넘어가는 중간에 놓아 변화를 알려주는 용도로 쓰기도 하는 재료였다.
그리고, 제대로 초밥을 즐기는 사람들은 새우나 대게 살로 만든 초밥보다 이 갯가재 샤코 초밥을 갑각류 최고의 초밥으로 치기도 했다.
새우류보다도 더 촉촉하고 쫄깃하며 더 단맛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암컷이 알을 배고 있을 때는 그 육질감과 촉촉함도 배가 되어 살에 찰기가 도는데 그때 씹는 맛은 그 어떤 식재료도 따라올 수 없는 것이었다.
어부들이 더 잡아 온 갯가재를 소금물에 삶아 등갑을 떼어내자 연보라색의 탱글거리는 살이 드러났다.
이 살을 둥글게 잘 모아 밥을 감아 내듯이 초밥을 쥐었다.
그리고, 그 위로는 설탕과 마를 갈아 넣은 단맛의 간장 소스를 발라 주었다.
“이것은 무엇이기에 이리 귀한 쌀밥 위에 올려주시는 겁니까?”
“흐음. 식초로 간을 한 밥 위에 올려져 있으니 계란을 올린 것처럼 그냥 집어 먹으면 될 것 같은데...이 생김새가 계란의 먹음직스러운 노란색과는 비교가 되는구만.”
토호들은 계란 초밥과는 달리 젓가락을 드는 것을 망설였다.
이런 토호들의 반응을 어느 정도는 예상하긴 했었다.
실제 현대의 초밥집에서도 식감을 돋우는 붉은색의 살이 아닌 보라색의 살과 새우처럼 층이 진 살의 모습에 거부감을 가지는 사람들이 꽤 있었기 때문이었다.
해서 그런 시각적인 거부감을 줄이기 위해 설탕과 마를 넣어 진하게 만든 간장 소스를 발라 준 것이었는데, 그것으로는 부족한 것 같았다.
그래도 용기를 내어 입으로 갯가재 초밥을 가져가는 이들도 있었는데, 처음 입에 넣었을 때의 미심쩍었던 표정은 금세 지워져 버렸다.
아미미오섬 북부 다쿠조 마을의 촌장이자 호족인 진구지는 용기 있게 갯가재를 먹었다.
사츠마 번의 상인 히로타가 저 젊고 어린 소공자에게 굽신거리는 것을 보았기에 그의 눈에 들기 위해 먼저 먹어보는 것이었다.
갯가재 초밥을 입에 넣자, 단맛을 강하게 한 간장의 쌉싸름한 맛이 먼저 입안에 느껴졌다.
그 간장의 짜고 단 맛에 입맛이 동하여 초밥을 씹게 되자 입안에서 터질 것처럼 쫀득거리는 갯가재의 식감에 놀랐다.
‘마치, 육고기를 먹는 듯한 육질감이구나.’
씹히는 질감이 질긴 듯하면서도 쫀득거리고, 찰기가 있으면서도 입에 달라붙지 않으니 기가 막힌 맛이었다.
“도대체 밥 위에 올려진 이게 무슨 고기입니까?”
“이런 씹는 맛은 처음 느껴봅니다. 짭조름하면서도 단맛이 나는 고기라니.”
“이것도 사츠마 번의 본토에서 가지고 온 것이옵니까?”
사츠마 번의 히로타도 이건 처음 먹어 본다며 손을 내저었다.
이 고기가 무엇이냐고 궁금해 하는 토호들을 위해 원종은 김고도개에게 살아있는 갯가재를 들고 오게 했다.
“이건 게 아닙니까? 이 녀석이 이런 맛이었다니.”
“응? 난 예전에 삶아 먹어 보았는데, 이런 맛이 아니었는데. 어찌 이런 맛이 나는 것이지?”
“먼저, 이것은 게가 아니라 갯가재라는 이름이 있네. 다들 혼동되지 않게 갯가재로 부르도록 하게나. 그리고, 예전에 먹었을 때는 이런 맛이 아니었던 것은 아마도 삶는 방법 때문에 그럴 것이네.”
원종은 한번 삶아진 갯가재 두 마리를 들고 오게 해서 등갑을 까 살을 조금씩 나눠 주었다.
“응? 같은 게가, 아니 갯가재인데도 맛이 다릅니다. 어찌 이런 차이가 나는 것입니까?”
“바로 삶는 물이 다른 것이네. 다들 갑각류나 조개류를 먹을 때 진흙 뻘을 빼내야 한다고 맑은 민물에 담가 그 뻘을 뺄 것이네. 그리고, 민물에 넣어 삶아서 먹지. 하지만, 이 갯가재나 몇몇 갑각류는 소금물에 삶아야 하네. 그래야 몸의 진액이 빠져나가지 못해 맛이 나는걸세.”
민물에 갑각류를 삶게 되면 갑각류의 몸에 있는 소금기, 진액이 빠져나가 살이 전체적으로 퍼석거리고 맛이 없게 되었다.
그런 퍼석거림 대신 쫀득함을 살리기 위해서는 민물이 아닌 소금물에 삶아야 제대로 된 맛을 낼 수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 갯가재는 아마도 이 유구에서 나는 갯가재가 가장 맛이 있을 것이네.”
“본토보다 말입니까?”
“그래. 히로타도 처음 먹어 본다고 하지 않았나. 이렇게 큰 갯가재는 일본 본토에서 찾기 힘들 것이네. 유구만의 특산품이자 자랑이라고 할 수 있지.”
실제, 유구인 오키나와에서는 생선회보다 새우튀김류의 갑각류 가게가 더 많았다.
기온문제로 갑각류의 양식에 최적화된 지역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먼저 먹었던 계란 초밥에 쓰인 계란도 이곳 아마미아섬에서 구한 계란이네. 아무리 본토가 좋다고 해도 이 고장의 물건이 가장 좋은 법이네.”
“헤헤. 그것은 사실 저희도 다 알고 있었습니다. 그저 히로타 공의 체면을 올려드린 것입니다요.”
“하하하. 그렇다면 내가 괜한 짓을 했구만.”
토호들은 사츠마 번의 히로타가 내게 굽신거리는 걸 보곤 이 자리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알아챘기에 바로 사츠마 번을 치켜세우는 것은 그만두었다.
“견문이 얇아 거려에서 여기까지 오신 귀인을 몰라뵈었습니다.”
“이보게. 이제는 나라 이름이 바뀌었어, 고려나 거려가 아닌 조선이라 불러야 하네.”
“응? 그래? 난 거려에서 왔다길래 초 사람들 때문에 온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구만.”
“아아, 그러고 보니 초사람들이 있었군.”
“초사람들? 누구를 말하는 겐가?”
“그게 조선이 고려일 때 이곳으로 온 고려인들을 우리는 초 사람들이라고 합니다.”
“고려 때 유구로 온 유민들? 초사람?”
원종은 머릿속으로 번뜩 떠오르는 이름이 있었다.
“혹시 그대들이 이야기하는 초 사람들이 ‘삼별초’라 불리던 사람들 아닌가?”
“그 초가 삼별초였나? 흐음. 저희도 그냥 윗대로부터 고려 때 넘어온 초 사람들이라고만 들어서 그게 삼별초인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그때 배를 타고 온 이들의 후예들이 오키노에 라부섬에 모여 살고 있습니다.”
이후로 토호들의 이야길 들어보니 분명 삼별초가 맞았다.
최씨 무신 정권의 사병으로 출발했던 야별초에 정규군이었던 좌별초, 우별초, 원나라에 피해를 입은 자들이 모인 신의군까지 합쳐져 삼별초가 만들어졌었다.
하지만, 고려 왕실이 원나라에 투항한 이후로도 원나라와 고려 왕실을 인정하지 않고 투쟁했던 민족주의적 성격의 군벌이었다.
물론, 후대의 평가가 그런 것이지. 실제로는 고려 왕실이 원에 투항한 이후 최씨 무신 정권하에서 저지른 일과 원나라에 피해를 입혔던 보복이 두려워 계속 삼별초를 유지하려고 했었다는 것이 중론이었다.
강화도에서 진도, 진도에서 탐라도를 거쳐 항쟁했지만, 결국 다 토벌당했다고 알려졌었다.
헌데, 이 머나먼 유구 땅에 삼별초의 후예들이 있다고 하니 놀라울 따름이었다.
“삼별초의 사람들은 대충 몇이나 되나?”
“정확하지는 않은데 한 200여 인은 될 겁니다.”
지금 있는 아마미오섬에서 삼별초의 후예들이 있다는 라부섬까지는 대략 2~3일 걸리는 거리였다.
어서 가서 만나보고 싶었다.
그렇지 않아도 유구에 만들 사탕수수밭을 어떤 이들에게 맡길지가 고민이었는데, 같은 민족의 후예가 있다면 그들에게 맡기는 게 맞는 일일 것 같았다.
그렇게 삼별초의 후예들과 연계가 된다면 유구에 상관을 따로 만들지 않아도 될 터였고, 바닥부터 기반을 닦지 않아도 될 일이었다.
문제는 그들이 고려에서 토벌되어 망명하듯이 유구까지 도망쳐 왔다는 것이었다.
고려를 이은 조선에 악감정이 있다면 그들에게 사탕수수 재배를 맡기기 힘들 수도 있었다.
그런 악감정이 아니라고 해도 고향을 떠나온 지 200년 가까이 지났기에 한민족의 특성 자체를 다 잃어버렸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우선은 그들이 진짜 삼별초의 후예인지 만나서 확인하는 것이 중요했다.
작가의말
예전 KBS 역사추적에서 삼별초의 잔류 세력이 유구로 망명을 했다는 프로그램을 방영했던 적이 있습니다.
삼별초가 진도에서 항쟁했던 곳인 진도군 용장리의 용장산성에서 발견된 기와 문양과 연호가 유구에서 발견된 기와 문양과 연호와 일치한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습니다.
고려의 삼별초가 유구로 건너가 유구 왕국에 영향을 주었다는 프로그램이었는데, 사실 아직 유물사적으로 검증된 학설은 아닙니다.
하지만, 재미를 위해 실제 그런 삼별초의 후예들이 유구에 망명해서 살고 있다는 설정을 잡아 보았습니다.
혹시 모르지 않습니까? 나중에 뭔가가 더 발견되고 한다면 이게 진짜가 될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