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쉐프 조선을 부탁해!-247화 (247/327)

< 247. 구주일주. (3) >

“당주님께선 교토로 상경을 하셨기에 뵐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삼식공을 꼭 주인님께 소개해 드리고 싶었는데, 참으로 아쉽습니다.”

사츠마 번의 상인 히로타는 영주인 시마즈 타츠히사에게 우리를 소개해 주고 싶어 했으나, 타츠히사가 교토로 상경을 했기에 만날 수가 없었다.

“후쿠오카에서 들으니 교토에서 큰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는데, 군사를 이끌고 가신 겁니까?”

“그건 아닙니다. 호소가와 가쓰모토 나리의 동군에 합류하긴 하였으나 군사는 파병하지 않았습니다. 파병을 했다면 군량미나 그런 일 때문에 아마 저도 따라갔을 겁니다.”

“엇! 동군이라면, 오우치 가문과는 반대쪽 진영이군요. 후쿠오카에 상관을 만들며 들으니 오우치 가문의 당주는 2만의 군사를 이끌고 서군에 가담했다고 하는데, 동군인 사츠마에 상관을 만드는 데 문제는 없겠습니까?”

“뭐, 단순히 상관만 두는 것이라면 별문제 없을 겁니다. 그리고, 진정한 상인이야말로 양쪽에 줄을 대어야 하는 것이기도 하지요. 하하하”

“하하하. 그렇지요. 진정한 상인의 마음을 알아주시니 감사합니다. 그럼 동군인 사츠마 번에도 상관을 만들 수 있도록 도와주시겠습니까?”

“기꺼이 제가 도와드려야지요. 상관 자리를 제가 알아봐 드릴 테니 가시지요.”

히로타를 따라 사츠마 번의 번화가를 둘러보며 분위기를 살폈는데, 역시나 규슈 남부는 평화로운 것 같으면서도 전란의 냄새가 풍겨왔다.

북 규슈인 후쿠오카 일대는 오우치 가문의 당주인 오우치 마사히로가 제대로 장악을 하고 있었기에 지역이 안정되어 있었는데, 이곳 사츠마는 그러지 못했다.

교토에서 일어나고 있는 쇼군의 후계자 싸움인 ‘오닌의 난’에 버금가게 남규슈에 위치한 시마즈 가문의 계승문제도 심각했다.

시마즈 가문의 5대 당주였던 시마즈 사다히사(島津貞久) 대에 장남이 일찍 죽고 둘째도 병사하자 셋째와 넷째 아들에게 가문을 쪼개어 분할 상속을 시켰는데, 이것이 남규슈 혼란의 시작이었다.

지금의 10대 당주인 시마즈 타츠히사는 물론이고 앞으로 100년은 더 시마즈(島津)란 이름을 두고 두 가문의 주도권 싸움이 이어질 터였다.

그러면서 여러 주변의 다이묘들도 끼어들게 되어 남규슈는 평화로울 틈이 없었다.

외부의 적이 있을 때는 같은 핏줄이니 협력을 하지만, 외부의 적이 없어진다면 서로가 가문의 당주가 되기 위해 싸울 수밖에 없는 구도가 된 것이었다.

만약, 시마즈 가문에 내분이 없었다면, 조총을 앞세워 규슈를 좀 더 빨리 일통했을 것이고, 그렇게 되었다면 도요토미 히데요시와의 일전도 가능했을 터였다.

그걸 위해 원종이 시마즈 가문의 내분에 끼어들어 정리를 도와주는 것도 문제가 있었다.

역사 속의 히데요시가 아닌 새로운 괴물을 키우게 되는 것일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해서 서투르게 사츠마 번에 손을 댈 수가 없었다.

“음? 히로타 님! 고토섬에서 돌아오신 겁니까? 가신 일은 잘되신 겁니까?”

상관 자리를 알아보기 위해 움직이는데, 히로타를 알아보는 상인이 말을 걸었고, 두 사람은 한쪽으로 움직여 한참을 심각하게 이야길 했다.

다른 구경을 하며 안 듣는 척하면서 삼식이와 훔쳐 들었는데, 무슨 구리를 팔고 가져온 금을 교토로 보낸다고 하는 것 같았다.

이야기 속에 구리란 단어가 귀가 꽂혀 들어왔다.

배에서 사용하는 총통인 승선 총통을 구리와 주석이 없어 대량으로 만들지 못했기에 구리를 수출한다는 말이 귀에 박힐 수밖에 없었다.

삼식이에게 급하게 이야길 했고, 다시 상관 자리를 봐주는 히로타에게 삼식이가 입을 열었다.

“히로타공 아까 들으니 구리를 중국 상인에게 팔아서 금을 받아 온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는데, 사츠마 번에서는 구리가 많이 납니까?”

“많이는 나지 않지만, 팔 정도는 된답니다. 삼식공이 필요하시다면 판매해 드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대금은 금으로 주셔야 합니다.”

삼식이는 구리를 사는데 반드시 금으로 대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말에 고심을 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원종이 눈을 껌뻑이며 받아들이라고 하자 구리 대금을 금으로 지급하겠다고 합의했다.

***

“단주님. 구리나 주석이 필요한 것은 아는데, 우리가 금이 어디에 있습니까? 말라카에서 가져온 것은 대부분이 은이지 않습니까?”

“우선은 말라카에서 가져온 모든 금을 다 주더라도 구리를 사가야 한다.”

“그 정도로 총통이 중한 것입니까?”

삼식이는 가지고 있는 금을 모두 주는 한이 있더라도 사츠마 번의 구리를 사야 한다고 하니 이해할 수가 없었다.

특히, 삼식이는 바다에서 해적을 만나 총통을 써본 적이 없다 보니 그 위력을 모를 터였고, 이런 생각이 당연하기도 했다.

하지만, 원종이 사츠마 번의 구리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총통 때문만은 아니었다.

“이 구리를 많이 가져가면 가져갈수록 상행의 이익이 천문학적으로 늘어나게 될 것이다.”

“에? 천문학적으로요? 그게 말이 됩니까요? 설마, 구리로 총통을 만들어서 밑천이 들지 않는 해적질이라도 하시려는 겁니까요?”

“허허. 나를 뭐로 보고 그런 해적질을 할 거라고 생각하느냐. 그 천문학적인 이득은 바로 그 구리 자체에서 나오는 것이다.”

삼식이는 구리 자체에서 천문학적인 수익이 나온다는 것을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가 없었다.

“나중에 히로타가 파는 구리를 봐야 확실하게 알 수 있겠지만. 왜국의 야금(冶金) 기술은 우리보다 뒤떨어진다. 해서 그들이 파는 구리에는 금과 은이 같이 들어가 있다.”

“네? 구리에 금과 은이 들어가 있다고요?”

“그래. 구리 광석을 녹인 괴(塊)에도 들어있고, 녹이기 전의 광석에도 들어가 있다. 총통을 만들기 위해 재주 좋은 야금쟁이들을 전국에서 모으라고 최공손 박사에게 이야기 해두었으니 구리 괴나 구리 광석에서 금과 은을 뽑아낼 수 있는 이도 있을 것이다.”

이때의 일본은 물론이고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광물에서 금과 은을 빼는 기술을 가지고 있지 못했다.

해서, 중국은 그런 나라들에서 납과 구리를 대량으로 구매를 해선 중국에서 다시 녹여 금과 은을 추출해 이득을 보고 있었다.

조선도 단천연은법(端川鍊銀法)이 연산군 대에 알려지기 전까지는 그런 나라들과 비슷했다.

오로지 광석을 태워 녹여 나오는 금과 은을 채취하는 회취법(灰吹法)만이 존재했었다.

하지만, 연은법이 알려진 이후로는 납과 구리 광석에서 금과 은만 따로 추출해 낼 수 있게 되었고, 금·은의 생산량이 급증했다.

실제 이 연은법이 1500년 중순에 일본에 알려져 이와미 은광이나 사도 금산에서 생산되는 은과 금의 생산량이 비약적으로 증가했고, 한때는 전 세계 은 생산의 20%를 차지하기도 했었다.

“허얼. 그럼, 사츠마에서 구리를 사 가는 게 아니라, 금과 은을 구리 값으로 사 가는 것이나 마찬가지겠군요. 그래서 천문학적인 수익이 생긴다고 하신 거고. 이해했습니다요.”

“그래. 그러니 유황도 중요하지만, 배에 실을 수 있는 만큼 구리도 가득 싣도록 하거라. 중국의 상인들보다 더 쳐준다고 하면 우리에게 팔 것이다.”

“넵. 그래도 생명의 은인인데 중국 상인들보다는 싸게 주겠지요. 하하하.”

이후 히로타와는 고토섬에서 얻은 포목과 물건들을 넘겨주고 유황을 구매했고, 비단을 다 넘겨주는 조건으로 구리를 사려고 했으나 히로타는 곤란해했다.

“이게 제 마음 같아서는 생명의 은인인 삼식공에게 비단을 받고 구리를 넘겼을 거요. 하지만, 금으로 꼭 받아야 하다보니...”

“흠. 왜 꼭 대금을 금으로 받아야 하는지 물어도 되겠소이까?”

“휴우. 그건 히노 도미코 님 때문이라오.”

“히노 도미코? 견식이 짧아 그분이 누구인지를 모르겠군요.”

“지금 교토에 계신 제8대 쇼군이신 아시카가 요시마사 님의 부인이시라오.”

원종은 삼식이와 히로타의 이야기를 듣자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일본 역사에서 3대 악녀로 지칭되는 악녀 중의 한 명이 바로 히노 도미코였다.

우유부단한 자신의 남편 아시카가 요시마사를 허수아비로 만들고 전란의 시대로 가는 입구였던 ‘오닌의 난’을 벌어지게 만든 여자였다.

그리고, 조선의 한명회처럼 고리대금업으로 아주 유명한 여자였다.

“당주님이신 다츠히사 님이 군사는 거느리지 않고, 교토로 가셨는데, 군사를 대신하여 동군에 헌납금을 지불하기로 하셨습니다. 그때 도미코 님에게 금을 빌려서 지급하셨답니다.”

“흠. 군사 대신 금을 내는 것이라면 어찌 보면 나을 것도 같습니다. 헌데, 뭔가 이상하군요. 히노 도미코 님이라면 서군인 야마나 소젠 측이지 않습니까? 헌데, 돈을 빌려줘서 동군에 헌납하게 하다니요.”

삼식이의 말마따나 원종도 이해가 가지 않았다.

자신의 아들인 요시히사를 밀고 있는 야마나 소젠은 서군이었기에 히노 도미코도 서군 쪽이었다.

헌데, 금을 적군인 동군에 헌납하겠다는 시마즈 타츠히사에게 돈을 빌려줬다는 게 앞뒤가 맞지 않았다.

적군에게 군대를 운영하라고 돈을 빌려주다니.

현대인의 관점에서는 말이 안 되는 일이었지만, 월남전 때 미군의 장비를 월맹군에 팔아먹고 했던 사람들을 생각하고 보니 그렇게 없는 일도 아니었다.

아니, 어쩌면 훗날 멀쩡한 교토 시내에 검문소를 만들어 지나다닐 때마다 돈을 걷었다고 하는 히노 도미코란 여자의 관점에서는 이상할 것이 없는 일일 수도 있었다.

“그렇다면, 지금 가지고 있는 금 100냥(약 3.7kg)을 드릴 터이니 히노 도미코 님께 빌린 대금을 변제하는 데 쓰십시오.”

“오! 금이 100냥씩이나 있었다니. 좋소이다. 금액에 맞는 구리를 준비하겠소이다. 하하하.”

히로타는 3kg이 넘는 금을 구할 수 있게 되자 기분이 좋아졌다.

이때의 금과 은의 교환비는 1:6에서 1:10까지 유동적이었지만, 전란의 시대에는 금의 가치가 더 높을 수밖에 없었고, 지금 왜국의 금과 은의 거래 비율은 1:13에 육박하고 있었다.

일본이 이런 전란의 시대로 혼란스러울 때 구리와 납을 대량으로 구매해 조선에서 금과 은을 뽑아내고 그 금과 은으로 다시 구리를 사가기만 해도 앉아서 돈을 벌 수 있는 것이었다.

교토가 전쟁터가 된 오닌의 난은 몇 년은 더 이어질 전란이었고, 그 전란이 끝이 나면 다시 전국 시대가 시작되게 되니 그 혼란을 틈타 이익을 최대한 뽑아 먹으면 되는 것이었다.

“다음에 올 때는 금을 더 들고 올 것이니 사츠마에서는 구리와 유황을 더 준비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헌데, 고토섬에서 싸게 구매한 것은 다 푸시는데, 왜 배에 있는 토기와 옹기 같은 것은 풀지 않으시는 겁니까? 값싼 물품을 빼고 다른 것을 실으면 될 것 같은데.”

“아, 저 물건들은 유구로 가기 위해 실어둔 것이라 아껴두고 있는 것입니다.”

“류큐로 가시는 이유가 후추 때문이라면 거기까지 안 가셔도 됩니다. 류큐에서 후추가 유명했으나 이제는 중국 상인들을 통해 고토섬에서 충분히 구하실 수 있으실 겁니다.”

“네. 유구에서 나는 후추에 대한 중요성이 없어지긴 했으나 반드시 가야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작가의말

오닌의 난이란.

무로마치 막부의 8대 쇼군인 아시카가 요시마사의 후계 문제로 친 동생에게 후계자 자리를 넘겨주었는데, 1년 만에 아들이 태어나며 이 후계자 문제로 내전이 벌어지게 됩니다.

이 내전을 오닌의 난이라고 합니다.

아시카가 요시마나의 동생인 ‘요시미’를 밀고 있는 ‘호소가와 가쓰모토’와 아들인 ‘요시히사’를 미는 ‘야마나 소젠’이 맞붙은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가쓰모토와 소젠이 불러들인 전국의 다이묘들도 편을 갈라 싸우게 되었는데, 이러한 싸움이 10년이나 계속됩니다.

아들 측인 소젠에게 11만(서군), 동생 측인 요시마나에게 16만(동군)의 병력이 모입니다.

규슈의 오우치 가문은 서군인 소젠 측에 붙었고, 시마즈는 동군에 붙게 됩니다.

몇 년의 전쟁 끝에 동생인 요시미가 조카에게 쇼군의 자리를 양보하고 후계 문제는 마무리 되지만, 소젠과 가쓰모토의 전쟁은 끝이 나지 않습니다.

뒤에서 놀기만 하던 8대 쇼군이 이제 그만 끝내자고 해도 계속 전쟁이 이어집니다.

그러다 보니 다이묘들은 이제 쇼군을 허수아비 취급하게 됩니다. 쇼군의 말을 듣지 않아도 되는구나 하는 것을 학습하게 된 겁니다.

이후 소젠과 가쓰모토 둘 다 1473년 죽게 되면서 소강 상태가 되고 그 후계들이 1477년 전쟁을 끝냅니다.

승자도 없고, 패자도 없이 그냥 수도인 교토가 박살이 나고 천황과 쇼군은 허수아비라는 결론만을 남기게 되는 전쟁이 끝이 난 겁니다.

이후 아들이 9대 쇼군이 되자 히노 도미코는 정치적 권세를 가지고 여러 사업을 하게 됩니다.

대표적인 게 이전부터 해왔던 고리대금업이었고, 교토 내 시가지에 검문소를 만들어 검문소를 지나다니는 사람에게 통과세를 걷는 것이었습니다.

지금으로 보면 멀쩡한 국도에 갑자기 톨게이트를 만들어 톨비를 받는 것이라 보면 됩니다.

교토에 상주하게 되면 교토의 재건에 돈을 내라고 다이묘들을 닦달하니 다이묘들은 자신들의 영지로 돌아가게 되는데, 문제는 10년 간의 전란 동안 영지를 비운 후유증이 생겨나게 됩니다.

바로 교토에 다녀온 다이묘의 뒤통수를 가신들이 치기 시작한 겁니다.

그런 가신들과 슈고 다이묘들 간의 싸움이 시작되게 되고, 그런 싸움들이 토요토미  히데요시가 활약하게 되는 일본 전국시대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일본에서는 이 오닌의 난을 전국시대로 들어가는 입구라고 정의하며 나름의 중요도를 가진 전란이라고 합니다.

물론, 우리는 몰라도 됩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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