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1. 한양 직구족. >
천안 동산 달동 마을의 이채을과 10여 명의 사람들이 소달구지에 짐을 싣고 한양으로 출발했듯이 이 춘봉주보를 보고 이채을처럼 한양으로 움직이는 이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다들, 주보에 나와 있는 저렴한 소금값에 놀랐고, 담비 가죽부터 물개 가죽, 여우 가죽 같은 방납에 필요한 물건들을 팔고 있다는 사실에 다들 한양으로 올라가는 것이었다.
특히나, 붓이나 유기 같은 것을 조정에 올려야 하는 역이 있는 장인들도 분량을 채우지 못할 것 같자 한양의 춘봉 상단에 몰려들었다.
“이거 마치 코스트코에 시장 보러 오는 사람들 같구만.”
원종은 춘봉 상단 앞에 소달구지 수십 대가 줄을 서며 물건을 사고, 팔자 명절날 코스트코의 대기 줄을 보는 것 같았다.
“네? 코스트코는 뭡니까요?”
“그런 게 있습니다. 헌데, 장터에서 주보를 들고 오는 이들이 많다고요?”
“네. 이제 춘봉주보 2호를 인쇄해서 보내었는데, 1호를 보았던 이들이 다들 주보를 들고 장터에서 이것들을 먹으러 왔다고 공공연히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 이들이 2화 주보를 가져가야 한다고 2호는 300장이나 찍었습니다.”
주보를 찍는 종이는 A3 사이즈의 큰 종이인데 300장이나 찍었다고 하니 놀라웠다.
“딱딱한 조보와 다르니 평민들에게 인기가 있는 것이군요.”
“네 조보와는 달리 주보는 읽기 편하고 언문을 이미 알고 있는 이들은 금세 읽을 수 있으니 평민들에게 퍼져나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나중에는 그 주보 자체를 돈을 받고 파는 것도 생각해 보십시오. 처음에는 우리와 거래하는 곳에 하나씩 무료로 보내주다가 사람들이 계속 주보가 필요하다고 하면 돈을 받고 판다고 하면 사서 볼 것입니다.”
“음. 그것도 좋은 방법 같습니다. 그리고, 주보에 교환권에 대한 것도 넣었더니 한양에 온 김에 교환권을 구해가는 이들도 많아지고 있습니다. 어쩌면 추가로 더 찍어야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교환권을 전국적으로 어떻게 알리지 하는 고민을 했었는데, 이 주보로 인해 전국에 알리는 일이 자연스레 이루어지고 있었다.
다들, 물건 값으로 다른 물건을 들고 오지 않고 교환권만 있으면 쉽게 거래가 되니 너무 간편하고 좋다고 입을 모았다.
“저기... 단주님. 보부상들이 찾아와선 단주님을 뵙고 싶어 합니다.”
“보부상들이? 왜?”
“그 이야기는 하지 않고, 막무가내로 단주님도 보부상의 계에 들어 있기에 같은 보부상끼리 할 이야기가 있다고 직접 만나서 이야기를 해야 한다고 합니다.”
“내가 보부상 계에 들어가 있긴 들어가 있지. 그래. 압구정의 사택에서 보자고 전하게나.”
***
“지금 저희를 다 굶겨 죽일 작정이십니까?”
“아니 그게 무슨 말인가? 내가 자네들을 다 굶겨 죽이다니. 설명을 해 보게나 무엇이 문제인지.”
압구정 사택에 모인 십여 명의 보부상들은 앉자마자 불만을 토로해 냈다.
“운영하는 춘봉 상단 앞에 줄 선 달구지들을 보았지 않습니까? 거리가 멀더라도 한양이나 춘봉 상단에 올 수 있는 여력이 있는 자들은 모두 다 직접 와 버리니 우리 보부상들이 죽어 나가고 있지 않습니까?”
“맞소이다. 주보인지 주봉인지 하는 종이에 소금값이나 상품 값이 나와 있다 보니 우리가 소금값을 비싸게 받는다고 우리를 사기꾼 취급을 하고 있소이다.”
“나도 방납으로 가죽을 대신 구해다 준다고 했다가 가격을 듣고는 나랑 말도 하기 싫다며 난리를 쳤소이다. 그렇게 가격을 다 공개해 버리면 어쩌자는 것이오!”
“물산을 들고 옮겨주며 이익을 얻는 것이 우리인데, 그렇게 싸게 해서 판다는 것을 공개해 버리니 우리 보부상들이 신뢰를 잃고 죽어 나가고 있소이다. 힘들게 물건들을 지게에 지고 옮기고 있는데, 비싸게 판다고 욕을 하니 정말 힘이 빠지오.”
보부상들이 단체로 찾아와 열변을 토하는 이야기를 듣고 보니 이들의 입장이 이해도 되었고, 안타깝기도 했다.
하지만, 개선점을 찾으려고 하지 않고, 그 원인이 되는 내게 찾아와 불만을 토로하는 것은 올바른 방법이 아니었다.
지금 보부상들은 마치 현대한국의 전통시장 상인들과 같은 입장이 되어 버린 것이었다.
가격이 저렴하지도 않고, 품질이 좋은 것도 아니며, 사람에 따라 가격을 바꿔 팔기도 하는 그런 시장 상인들 말이다.
보부상이 하는 말은 대형 마트가 들어왔을 때 생존권 보장을 해달라며 시위를 하던 시장 상인들의 주장과 일맥상통했다.
그리고, 그렇게 시위를 하며 난리를 치던 대부분의 전통 시장들은 천천히 고사(枯死)되어 사라졌었다.
현대 한국에서는 그런 전통 시장을 살리기 위해 여러 가지 방안이 나오고 했겠지만, 지금은 조선 시대였다.
원종은 다른 것을 신경 쓰지 않고, 통보와도 같은 강경책으로 밀고 나갈 수 있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다들 보부상을 그만두고, 내 밑으로 들어오게. 보부상을 접고, 춘봉 상단의 점원이 되면 되는 일일세.”
“아니 그게 말이 됩니까? 춘봉 상단 점원들이 버는 돈이 얼마인 것을 아는데, 우리에게 점원이 되라니요. 보부상 일로 버는 것의 반도 안 되는데 어찌 그걸 대안이라고 이야길 하는 겁니까?”
“그럼, 내가 뭘 해주길 원하는 겐가? 내륙 마을 사람들이 한양이나 목포, 동래 지점으로 물건을 사러 오는 것을 막으라는 건가?”
“그냥 그 주보에서 가격을 명시한 것을 빼주십시오. 그러면 가격을 알 수가 없으니 사람들이 춘봉 상단으로 가서 직접 구매하고 파는 것을 하지 않을 것 아닙니까.”
“그렇게 해서 우리에게 오는 손님이 줄어드는 손해는 누가 보장해 줄 것인가? 한양에 와서 마을 단위로 직접 구매하는 물량을 보면 1년에 몇천 냥은 이득을 볼 것 같은데, 그걸 그만두게 되면 그 몇천 냥도 사라지게 되네. 그럼 그 손실을 누가 책임져 줄 것인가? 자네들이 대신 그 손실을 보장해 줄 것인가? ”
원종이 손실 보상을 보부상들에게 이야길 하자 다들 입을 다물었다.
이들은 이제까지 쉽게 얻은 이득이 원종에게 쏠리니 그 이익을 잃기 싫어 찾아온 자들이지 진짜 보부상으로 힘들어서 찾아온 것이 아니었다.
진짜 이들이 같은 보부상들을 생각했다면 각 보부상마다 물건 품목을 정해 취급하게 하는 차별을 없애야 했다.
그리고, 각자의 구역 상권 없이 지역도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게 했어야 옳았다.
지금의 보부상은 계에 가입하는 조건에 따라 거래 물품도 정해주고, 구역도 정해주는 경쟁 없는 상권이었기에 좋은 자리와 품목을 차지한 이는 쉽게 돈을 벌고 그렇지 않은 보부상은 등골이 빠지는 구조였다.
그런 구조가 원종으로 인해 흔들리고 바뀌게 되니 이제는 모든 보부상을 대표한다는 듯이 찾아와 이렇게 난리를 치는 것이었다.
“아무도 그런 보상을 해주지 않는데, 나에게는 주보에서 상품 가격을 빼라고 하니 너무한 것 아닌가? 나만 손해를 보라는 거지 않나. 자네들은 아무런 손해도 보지 않고 나만 손해를 보는 이건 아니지.”
원종이 보부상에 가입할 때만 해도 힘이 없었기에 보부상들의 눈치를 보고 같이 가는 방향으로 크게 튀지 않았지만, 이제는 서로의 입장이 달라졌으니, 거칠 것이 없었다.
“이제 자네들에게는 선택할 수 있는 게 몇 없네. 그대로 우리 때문에 상권이 줄어든 채로 일을 하든지, 아니면 내 아래로 들어오든지 선택을 해야 할 거네.”
“너무하외다! 지금이야 농한기라 사람들이 일이 없으니 직접 한양으로 와서 물건을 사고, 팔고 있지만, 농번기가 되면 한양으로 올 수 없으니 다시 우리 보부상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을 것이오.”
“맞네. 농번기에는 바쁘니 그렇게 사람들이 한양으로 오기 힘들겠지. 그래서 농번기에는 우리가 직접 상단을 꾸려 마을로 찾아갈 것이네. 남아도는 것이 소와 수레이니 소달구지가 움직일 수 있는 곳은 우리 상단의 배송 점원들이 직접 가서 물건을 전해 줄 것이네.”
“아니 그게 무슨. 조선의 산천이 그렇게 소달구지가 쉽게 움직일 수 있는 곳이라 생각하오? 그건 무조건 실패할 거요.”
“자네 말처럼 험한 산천으로는 소달구지가 가지 못하지. 하지만, 소달구지가 그 인근으로만 가도 충분하네. 한양까지 오는 것보다는 지근거리의 저잣거리까지만 배송해 줘도 수월하니깐. 보부상에게 물건을 살 필요가 없는 것이지.”
“이익...”
“그리고 산천이 험한 강원도나 북방 지역에는 동해에 거점을 찍어 배로 옮겨주면 되는 것이니 춘봉주보의 상품 가격을 보고 주문만 하면 그 거점으로 보내주기만 하면 될 것이야. 그러면 자네들 보부상이 앞으로 할 일은 그 저잣거리에서 집으로 옮겨주는 간단한 일밖에 남지 않을 것이네.”
“말도 안 되오! 우리가 그렇게 하게 놔둘 것 같소? 우리가 만만하오? 우리도 실력을 보여주겠소. 다들 일어섭시다.”
“그럼 이 말 한마디만 더 듣고 가게. 얼마 후에는 다시 말라카에 갔던 배가 돌아오는데, 이번에는 배가 더 많은 것을 알 것이네. 그 배에 설탕과 후추를 잔뜩 들고 올 것이야.”
보부상들도 다들 한양에서 배가 떠나는 것을 보았기에 이 말이 금세 와닿았다.
“그 설탕과 후추는 우리 춘봉 상단의 협력 보부상으로 등록하지 않은 자에게는 도매가로 팔지 않을 것이네.”
“지금 우리를 갈라치기하려는 것이오? 우린 그런 정도에 무너지지 않소. 우리는 의리 있는 보부상이오.”
“더 듣게. 말 안 끝났네. 더불어 우리 소금도 그렇게 될 거네. 협력 보부상이 아니라면 소금을 주지 않을 것이네. 그렇게 되면 자네들은 더 비싸게 소금을 사게 될 것이네. 저렴한 지금 가격으로 춘봉 상단의 물건을 받아 가고 싶다면 협력 보부상으로 등록을 하게. 그것도 싫으면 아예 전문 배송 점원으로 내 밑으로 들어오게.”
“뭣들 하오. 다들 일어섭시다. 더 들을 필요 없소.”
“방금 이 제안의 유효기간은 이달 말까지네. 이달 말까지 협력 보부상이 되지 않는다면 방금 말한 것처럼 설탕, 소금, 후추는 받아 가지 못할 것이고, 우리 배도 이용하지 못하게 될 것이네. 뭐가 자신에게 이득인지를 다들 판단하게.”
보부상들은 어서 일어나라는 이의 말에도 엉거주춤 일어서며 이야기를 다 듣고 방을 나섰다.
“감히, 우리 보부상을 배제하겠다고?! 흥. 본때를 보여줘야지. 다들 내일 밤 육조거리에 모이시오.”
“서, 설마 또 협조 안 하던 상인을 처리하듯이 불을 지르려고 하는 것이오?”
“본때를 보여줘야 하지 않겠소!”
“하지만, 상단이 육조거리에 있소이다. 큰불이 나서 육조의 건물을 불태우게 되면 우리가 죽을 수도 있소.”
관공서인 육조 건물을 불태울 수도 있다는 말에 바로 목표를 수정했다.
“그럼 마포 나루에 있는 지점과 승선 접수를 받는 거길 불태웁시다. 우리가 어떻게 나가는지를 알려줘야 이놈들이 우리를 적대할 생각을 하지 못할 거요. 다들 내일 저녁 마포 나루로 모이시오.”
십여 명의 보부상들은 급진적인 몇몇 말에 끌려가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중 한 명은 헤어져 돌아가다 급하게 금산이 있는 가패로 찾아 들었다.
“그러니깐 이놈들이 불을 지를 거라고? 멍청한 놈들이 제 명을 끊으려고 발악을 하는구나.”
“네. 그리 멍청하니 제가 있는데도 그런 이야기를 한 것이겠지요.”
금산이에게 달려와 알린 이는 왕십리의 함덕 일가의 식솔이었다.
처음 원종과 금산이 보부상에 가입한 이후 거래 상품을 늘려갈 때마다 이권에 관계되어 있는 보부상들과의 다툼을 피하고자 함덕 일가나 참열이의 가패 식솔들을 보부상에 가입시켜 이권 다툼을 피했었다.
그러다 보니 알게 모르게 춘봉 상단의 점원들 중에 보부상의 계에 가입된 이가 많았고, 그런 이들 중 한 명이 있는 것도 모르고 불을 지르겠다고 모의를 한 것이었다.
금산은 이런 일을 대비해서 보부상에 우리 사람들을 가입시키고 힘깨나 쓰는 이들을 점원으로 받아들인 원종의 선견지명에 감탄을 할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