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0. 총통(銃筒)과 조보(朝報). (2) >
“춘봉주보(春峰週報)요? 그건 무엇입니까?”
“저 조보(朝報)의 형식을 빌리는 것입니다. 우리 춘봉 상단에서 있었던 것들을 조보처럼 10여 일에 한 번씩 찍어내어 알리는 것입니다.”
“찍어낸다면 조보처럼 손으로 필사하는 것이 아니라, 활자로 인쇄를 하시겠다는 말입니까?”
“맞습니다. 교환권을 찍은 이후 책을 만들기 위해 직인들이 작업을 하고는 있지만, 책을 언문으로 만드는 번역 작업이 힘들다 보니 활자 압착기나 직인들이 놀고 있습니다.”
“놀고 있는 사람을 어떻게든 쓰시고 싶다면야 만들어야지요. 하하하. 헌데 조보, 아니 춘봉주보에 들어갈 내용이 있습니까?”
“오늘 조정에서 조보를 받았으니 이 조보에 나와 있는 내용 중에서 몇 부분 발췌를 하고, 그 이외의 공간에는 생활 상식이라거나 방설환의 홍보 광고를 넣는 것이지요.”
“흠. 춘봉 주보를 만드는 날짜를 잘 맞춘다면 조보를 옮기는 사령에게 우리 주보도 같이 관아나 향교에 보내 달라고 할 수 있을 것도 같군요.”
“오 그렇게 된다면 최고이지요. 하지만, 설령 그 날짜를 맞추지 못하게 되더라도 큰 상관은 없을 겁니다. 우리 배로 상단 지점에 보낼 수 있으니 상단 입구에 다들 보라고 놔두기만 해도 될 것 같습니다.”
“오, 그렇게 상단에서 언문을 가르치는 교재로도 쓸 수 있겠군요.”
“네. 거기에 아예 한양의 물건 가격을 주보에 넣어 버린다면, 한양과 지방에 따른 가격 차이를 사람들이 알게 될 것입니다. 그게 방납의 시기에 알려지게 된다면 어찌 되겠습니까?”
“하하하 그렇게 되면 아주 난리가 나겠는데요. 중간에서 가격으로 장난을 치던 이들의 장난을 잡아낼 수 있는 자료가 될 테니깐요. 주보에 상품의 가격을 넣는 것은 아주 좋을 것 같습니다.”
한양과 각 지점의 가격을 주보로 인쇄해서 상단 입구에 놔두기만 해도 사람들은 춘봉 상단이 지방에서 가격으로 장난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고, 신뢰를 가지게 될 터였다.
물론, 그 주보에 교환권을 홍보하거나, 상단의 배가 회령이나 왜에 다녀와서 몇 달 동안은 무슨 물건이 싸다고 광고를 하게 되면 재고 관리에도 도움이 될 터였다.
“그러고 보니, 가격을 주보에 계속 적어 몇 년 치를 모으게 된다면, 그 몇 년의 시간 동안 어떤 물건이 어느 시기에 싸지고 비싸지는 것을 확인할 수 있을 것입니다.”
원종은 김재원의 말에 깜짝 놀랐다.
원종은 주보를 단순히 광고판이나 알림판으로 생각해서, 이걸로 언론을 장악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만 했는데, 김재원은 이 주보를 통계로 삼아 가격의 변동을 이용하려고 하는 것이었다.
단순히 한자 경서만 읽어온 선비로 보았는데, 이런 생각을 했다는 것이 놀라웠다.
“그렇게 주보를 통계의 자료로 쓰는 것도 김 ‘대.’ 행수께서 해주시면 됩니다. 아예 이 주보를 위한 건물을 하나 매입하여 거기서 상시적으로 일을 하는 이도 뽑아 쓰십시오.”
춘봉주보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주보에 ‘한양 미식기행’ 같은 글이나 ‘한양 최고맛집 3곳’ 같은 광고를 넣는 것도 이야기를 했고, 주보의 모서리에 행운권을 넣어 추첨으로 상품을 주는 것까지도 이야기가 나왔다.
“하하하. 이 행운권은 엄청날 것 같습니다. 행운권 추첨이 들어가는 주보는 서로 챙겨 가려고 난리가 날 것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그 주보에는 중국에서 비단을 들여온 다른 상인이나 자신의 약을 팔려는 한약방의 광고를 넣어주고 돈을 받는 것도 추진해 볼 수 있을 겁니다.”
“네? 주보에 다른 이의 상품 광고를 넣어주고 돈을 받는 다고요? 허허허. 그러면, 이 주보도 돈을 벌 수 있게 되는 것이군요. 새로운 공간을 만들어 낼 수 있겠군요.”
현대 신문에는 아주 당연한 광고 시스템이지만, 조정의 기관지나 다름없는 조보만이 있는 시대였기에 돈을 받고 광고를 싣는다는 그 개념 자체에 김재원은 놀라고 생각이 많아질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말입니다. 일전 상단주님이 하셨던 것처럼 현수막을 만들어 선전을 한 것처럼 이 주보도 벽보처럼 붙이는 것이 가능할 것 같습니다.”
“오, 늘 사람들이 볼 수 있게 붙여두는 것도 나쁘지 않습니다.”
“사람이 많은 나루터에 언제 배가 출발하여 어디로 갈 것이라는 승선 알림 광고부터 물건 입고 광고까지. 햐! 이거 생각해 보니, 주보란 것이 엄청난 물건입니다. 물론, 종이 값이 싸졌으니 가능한 것이긴 합니다.”
김재원은 현대의 신문을 접해보지도 않았지만, 신문의 광고 기능을 단박에 이해해버렸다.
“아예 나루터에 주보를 붙일 수 있는 나무판을 만들고 주보를 읽어주는 변사(辯士)를 세워 사람들에게 주보를 읽어주는 것도 생각해 보십시오.”
“오! 그거 좋은 생각입니다. 가로쓰기 언문을 모르는 이들이라면 그렇게 변사가 읽어주는 것만으로도 언문을 깨우치는 이들도 나오겠지요. 한양에서는 나루터에서 그렇게 하고, 지방에서는 상단 건물 앞에 그 나무판을 세우고 읽어주게 하면 될 것 같습니다.”
그렇게 김재원과 이야기를 하며 많은 아이디어가 나왔고, 12일에 한 번씩 발행하는 것으로 결정했다.
12일에 한 번씩 주보가 나오기에 배가 한양에 들를 때마다 이 춘봉 주보를 배에 싣고 갈 수 있을 터였다.
***
“교관 나리! 조보를 관아에서 받아왔사온데, 춘봉주보라는 것도 이번에 같이 왔다고 하여 가지고 왔습니다.”
천안향교의 교관(敎官) 고승관은 조보 외에 주보라는 것을 들고 왔다는 일꾼의 말에 그것이 무엇인가 싶었다.
그래서, 주보라는 것을 보니, 해괴하게 언문이 쓰여 있었는데, 대충 아는 언문을 읽어 보려고 해도 읽어지지 않았다.
고승관은 이게 뭔가 싶었지만, 한자로 쓰인 부분을 발견했다.
“오, 이 해괴한 언문을 읽는 방법이 한자로 쓰여 있구만. 가로로 쓰여 있고,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언문을 읽는다고? 흠. 특이하군.”
고승관은 향교의 교관이란 직책에 어울리게 호기심이 많았는데, 덕분에 처음 읽어 보는 가로쓰기 된 글씨를 읽기 시작했다.
“한양에 오면 꼭 먹어봐야 할 장터 음식 5선이라. 흠. 어떤 음식이길래 이렇게...”
고승관은 성종이 직접 경회루에서 먹어보고 감탄을 했다는 설탕이 가득 들어가는 호떡과 닭고기를 발라 꼬치에 끼워 구워 먹는 닭 꼬치에 대한 글을 보곤 침을 꼴딱 삼켰다.
언문으로 음식의 맛이 쓰여 있다 보니 한자로 글을 읽으며 음과 뜻을 생각하는 것에 비해 머릿속으로 그 음식의 맛이 바로 떠오른 탓이었다.
“아니, 고 교관께서는 뭘 그리 맛있게 보고 계십니까? 종이에서 먹음직스러운 냄새라도 나는 겁니까? 하하하.”
한양에서 같이 파견되어 천안 향교로 온 훈도(訓導) 채재우는 침을 삼키며 종이를 들고 있는 고승관을 신기하게 보았다.
“오. 채 훈도로구만. 어서 와서 이거 보게나. 주보라는 것이 조보에 끼어 같이 왔는데, 아주 재미있는 글이 있어서 말이야. 먼저 이 가로쓰기를 읽는 법부터 보고 읽어 보게나.”
[...밀가루 반죽에 잣과 호두를 잘게 부수어 넣고 설탕을 듬뿍 넣어 기름에 구운 호떡은 베어 물었을 때 비로소 천상의 맛을...]
꿀꺽!
“하하하. 자네도 바로 침을 삼키는구만.”
“이 글을 보니 침이 흘러나와 어쩔 수 없군요. 일전에 먹어보았던 설탕의 그 단맛이 떠올라 침을 안 삼키고는 못 배기겠습니다. 하하하. 헌데, 이 종이...춘봉주보? 이건 어디서 구하신 것입니까?”
“향교의 일꾼이 관아에서 조보를 받아 오며 한양에서 같이 왔다며 이것도 가져왔다네.”
“오, 그러고 보니 이거 필사로 쓴 것이 아니라 활자로 찍어 낸 것 같습니다.”
“활자로 찍었다고? 어디!? 오, 그렇구만 진짜 활자로 찍은 것이군. 춘봉 상단 발행 1호라. 1호라면 2호도 있다는 거로군. 아, 12일마다 발행이 된다고 하니 다음에 2호도 조보와 같이 오면 봐야겠어.”
“교관님이 다 보신 거라면 제가 이 주보 좀 가져가서 보겠습니다. 친우가 이달 말에 한양에 가는데, 이걸 보여주고 한양 장터 음식 5선을 꼭 다 먹어보라고 이야기해 줘야겠습니다.”
***
“아니, 내가 한양에 가서 먹고 왔을 때는 다들 아무 관심도 없더니 이 주보를 보고는 왜 이리 난리인가?”
“아 그야 자네는 그 음식이 어떻다는 말없이 그냥 다 맛있다고 뭉뚱그려 이야길 하니 우리가 그걸 공감할 수 있었겠나?”
“맞아. 자네는 그냥 다 맛있었지. 하면서 끝 아닌가. 헌데 이 주보는 이렇게 뭘 넣고 어떻게 해서 맛이 있다는 게 잘 설명되어 있으니 관심이 가는 것이지.”
“하긴, 실제 먹고 온 내가 이 글을 봐도 다시 먹고 싶어지긴 하네. 진짜 그 베어 물었을 때 설탕물이 뚝뚝 떨어지는 게 캬아! 진짜 자네들도 그 맛을 봐야 알 거네.”
“내가 이달 말에 한양에 가는데 꼭 이 장터 음식을 다 먹고 오겠네.”
향교에 다니는 학생들을 교생(校生)이라고 부르는데, 교사인 훈도 채재우를 통해 주보가 교생들에게 전해지며 다들 한양에 가면 이 5선 음식을 먹어봐야 한다며 난리였다.
그렇게 주보를 돌려보다 보니 다들 가로쓰기 언문을 자연스레 습득하게 되었고, 모두가 주보를 쉽게 읽어 볼 수 있게 되었다.
다른 이들이 다 보게 되자 향교에 다니는 평민 출신인 달길이에게도 자연스레 주보가 전해졌는데, 달길이는 양반 교생들과는 다른 것이 눈에 들어왔다.
평민인 달길이에게는 한양의 음식에 대한 것보다 그 아래 나와 있는 상품의 가격이 더 눈에 들어오는 것이었다.
‘허허. 이거 신기하구나. 어찌 소금의 가격이 이렇게 저렴한 것이지? 분명 저잣거리에서 소금을 샀었을 때 이 가격이 아니었는데.’
달길이는 이 주보를 보고 소금뿐만 아니라 포목의 가격이나 곡식의 가격도 차이가 난다는 것을 보곤 놀랐다.
한양의 가격과 자신이 살고 있는 천안 동산의 저잣거리 가격이 적게는 2할 많게는 4할가량 차이가 나자 뭔가 억울하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저기 나리님. 이 주보에 쓰여있는 가격이 진짜 가격이 맞습니까요?”
“그래 달길아 그 가격이 맞다. 한양의 춘봉 상단에서는 그 가격에 팔 것이다. 다른 지역에 있는 춘봉 상단도 거기 나와 있는 가격에서 크게 차이는 나지 않을 것이다.”
실제 한양에 다녀온 적이 있는 양반네들의 말에 달길이는 향교에 그대로 있을 수가 없었다.
주보를 가져온 훈도 채재우에게 이야길 하여 주보를 들고 본인이 사는 마을로 뛰었다.
***
“그러니깐 백미 한섬에 소금이 8섬이라는 게 진짜냐?”
“네. 향교의 다른 양반 나리들께 확인을 하니 이 주보를 찍어서 보내는 춘봉 상단에서는 이 가격으로 소금을 판다고 합니다요. 이 베나 마도 마찬가지로 여기서 사는 거보다 3할가량 더 쌉니다.”
“흠. 본래 물건이란 같은 물건이라도 있는 곳에 따라 귀하게 되고 천하게 된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그 차이가 이리도 심할 줄이야.”
동산에 위치한 달동마을의 이채을은 소금 가격이나 다른 가격을 달길에게 듣고는 고민을 했다.
달구지에 쌀이나 곡식을 싣고 가 팔고 소금이나 다른 생활 물품을 사서 오는 게 무조건 이득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다만, 가는 길에 호환이나 산적들을 만나지 않아야 하겠지만, 그런 일 없이 잘 다녀오면 마을 사람들 모두가 이득을 볼 수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방납에 필요한 담비의 가죽을 회령에서 들여왔다는 글귀를 읽어주는 달길이의 말에 마음을 굳혔다.
아직까지 관에 내어야 할 가죽을 못 구했기에 춘봉 상단에서 구해오기만 해도 방납으로 인한 손해는 안 볼 터였다.
“소달구지를 가져오고, 남는 곡식을 한번 다 실어 보거라. 마을에서 힘 좀 쓰는 이들은 다 같이 한양으로 가서 곡식을 팔고 소금과 가죽을 사서 내려오자꾸나.”
작가의말
향교는 왕권이 약해진 고려 중기 이후 중앙집권 체계를 강화하기 위해 지방에 관리들을 보내 유학을 가리키게 된 것이 시초입니다.
조선시대에 이르러서는 성종 시기에 모든 군 현에 향교가 설치되어 유교를 신봉하는 인재들을 길러내게 됩니다.
조정에서 운영하기에 당연히 선생으로 교관과 교임으로 관리를 파견했는데, 종6품의 교수 72명 종9품의 훈도 257명을 전국의 향교에 파견했었습니다.
하지만 서원이 발달하고, 성균관으로 가는 지방인재들이 많아지자 향교의 교육기능이 상실되기 시작하여 관에서 관리들을 파견하지 않게 됩니다.
이후로는 지역의 유지들인 양반중에서 교임을 뽑아 학생들을 가르치게 됩니다.
향교의 학생들을 교생이라고 부르는데, 조선 전기에는 대부분의 교생이 양반이었으나 중기 이후로는 평민이상의 자제들도 향교에서 교육을 받을수 있었습니다.
물론, 향교의 교생이 되면 군역을 면제 받는 경우도 있었기에 군역을 피하기 위해 향교에 입학금을 내고 교생이 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군면제 작업도 유구한 전통이 있는 것이었습니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