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9. 총통(銃筒)과 조보(朝報). (1) >
“세종대왕 시절 만들었던 일총통(一銃筒)과 이총통(二銃筒)을 참고하여 더 작게 만들라는 지시를 받고, 나름대로 크기를 줄였사옵니다만, 실제 발포를 해보니 화력이 너무도 미약하여 1척 4촌 4푼(44.1㎝) 이하로는 만들 수가 없었습니다.”
최공손이 내민 것은 대금처럼 생긴 작대기의 모양을 하고 있었는데, 청동으로 만들어졌기에 무게는 4kg가 넘는 것 같았다.
“약통에 심지를 꽂아 불붙여 쏘는 것은 다른 총통과 같사오나, 화약과 탄환을 막는 격목 대신 찰흙을 넣어 쓰는 것이 다르옵니다.”
“격목 대신 찰흙을?”
“네. 본래 총통의 약실에는 화약을 넣은 후 화약을 다지고 쏟아져 나오지 않게 격목을 넣습니다. 이후 탄환이나 전(箭)을 넣어 쏘는데 이 승선총통(乘船銃筒)은 그 입구가 1촌(3cm)밖에 되지 않아 격목을 쓸 수가 없었습니다.”
최공손의 말마따나 총통의 입구가 3cm밖에 되지 않으니 화약을 고정하는 격목을 쓰는 게 어려울 것 같았다.
“해서 찰흙을 격목처럼 넣어 실험을 해보니 격목보다 간편하기도 하고, 더 폭발력이 크게 나오기도 하였습니다.”
“오호 대단하구만. 헌데, 찰흙으로 쏘게 되면 총통의 안에 들러붙거나 하지 않겠는가?”
“그것은 쏘고 난 이후 쇠로 된 솔질을 하여 찰흙을 털어내면 되옵니다. 여기 한번 쏘아 보시지요.”
실제 화약과 찰흙, 탄환을 넣고 다시 찰흙으로 장전한 승선총통을 받아 심지를 꽂았다.
“배에서 사용하기 위해서는 일총통처럼 뒤에 나무 꼬챙이를 길게 댈 수가 없기에 쇠뇌의 손잡이를 달아 들어 쓰는 것으로 만들었사옵니다.”
쇠뇌의 손잡이 모양 위에 승선총통이 올라가자 궁극적인 추구 방향인 소총과 외향이 비슷해졌다.
원종은 자신의 어드바이스 없이 배에서 사용하기 위한 편의성을 고려해 제작했다는 것에 아주 만족스러웠다.
“탄환으로는 뭘 넣은 겐가?”
“납으로 만든 탄환을 넣었사옵니다. 15알이 들어가게 되옵니다.”
원종은 30보 정도 떨어진 화기반 실험장의 사격 벽 표적을 보고 심지에 불을 붙였는데, 심지가 타들어 가는 시간도 관리를 하는지 가장 짧은 심지는 정확하게 5초의 시간이 걸렸다.
[터앙!]
흑색화약이 터지며 총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뿌연 연기가 눈앞으로 피어올랐다.
“괜찮으십니까?”
“괜찮네. 반동이 좀 있지만, 이 정도면 누구든 쓸 수 있을 것 같구만. 표적으로 가보지.”
표적지에는 전체적으로 납탄이 흩뿌려진 표식이 남아 있었는데, 구멍의 크기가 새끼손톱만 했다.
“전체적으로 흩어져서 날아가는 산탄인 게 마음에 드는구만.”
원종은 최공손에게 명을 내리면서도 처음부터 조총 같은 것을 바라지 않았다.
아직 유럽의 배들이 희망봉을 돌기 전이었고, 조총이 아시아에 전해지려면 몇십 년이나 더 남았기에 지금 당장 조총이 필요하지 않았다.
지금 원종이 원하는 것은 배의 갑판에서 벌어지는 선상 백병전을 대비한 개인화기일 뿐이었다.
이런 선상 화기들을 만들다 보면 노하우가 생겨날 것이고, 그러면 자연스레 총도 만들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승선총통은 꽤나 완성도 높은 무기였다.
선상 백병전이 벌어지는 경우를 보면 배를 옆으로 대어 줄을 타고 건너오든지 아니면 갈고리를 걸어서 배를 당긴 후에 넘어오든지 하는 단계가 필요했다.
그 단계가 되기 위해 양측의 배가 가깝게 붙게 되는데 그때까지는 그저 선원들은 무기를 들고 대기를 하거나 화살을 쏘는 것이 전부였다.
하지만, 이 승선 총통이 있다면 그런 대기 시간부터 대량 살상 공격이 가능하게 되는 것이었다.
15발의 산탄이 나가는 승선총통 3개면 백병전을 위해 갑판에 대기하는 수십 명의 적을 한 번에 무력화시킬 수 있는 것이었다.
“제 걱정과 달리 절제사님은 이 승선총통을 마음에 들어 하시지만, 제가 보기에는 그 화력이 너무나 미약하옵니다. 해서 이렇게도 만들어 보았습니다.”
최공손은 승선총통 2개를 다시 꺼내주었는데, 건네받고 보니 승선총통이 붙어 있었다.
총통의 몸체를 이루는 청동끼리 붙어 있는 게 아니라, 철판 2장으로 승선총통 2개를 휘감아 붙인 것이었다.
“쌍승선총통(雙乘船銃筒)인가?”
“네. 가뜩이나 작은 총통이기에 그 부족한 화력을 보완하고자 두 개를 붙여보았습니다.”
최공손은 다시 쌍승선총통을 쇠뇌의 손잡이에 붙여 주었는데, 5초짜리 가장 짧은 심지를 두 개 모두 꽂아주었다.
“심지를 아무리 같게 잘라 꽂는다고 해도 두 총통이 완전히 같게 발사가 되지 않습니다. 해서 쌍승선총통은 반드시 두 손으로 잡고 쏘아야 합니다. 네. 그렇게 잡으면 좀 더 안정적으로 잡을 수 있습니다.”
원종은 최공손이 말을 하기도 전에 사격 자세를 잡았는데 조준간을 눈에 붙이는 서서쏴 자세가 아니라 총을 가슴에 붙여 쏘는 서서쏴 자세를 잡았다.
“불붙이게나.”
[텅! 터엉!]
두 승선총통이 거의 비슷하게 쏘아지며 반탄력이 느껴졌다.
하지만, 반탄력이 크지 않아서 발사속도 차이에서 오는 반동에 의한 오조준 문제는 없을 것 같았다.
“이거 좋구만.”
표적지에 구멍이 잔뜩 뚫려 있는 모습을 보니 상선을 뺏기 위해 올라오던 놈들이 총통에 맞아 나자빠지는 모습으로 연상되었다.
이 쌍승선총통 2개를 모든 배에 배치시키면 백병전의 상황에서 60발의 납탄이 쏟아져 전세를 바로 뒤집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대운선의 경우에는 배가 크니 3개를 비치한다면 100여 명의 적이 온다 치더라도 두려울 일이 없을 것 같았다.
“이 쌍승선총통은 한 발씩 나눠 쏘기도 가능하니 이걸 한 100개쯤 만들게나. 모든 배에 백병전용으로 쓰게 할 거네.”
“100개나요? 요 녀석이 주조로 만드는 것이라 제작은 쉬우나 문제는 청동으로 만들기에 큰돈이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아니, 돈이 문제가 아니라 주석을 구하기가 힘이 들 것입니다.”
최공손이 재료가 없다고 앓는 소리를 하자 구리와 주석의 가격을 확인해보았다.
원종이 원하는 대로 쌍승선총통을 100개 만들게 되면 말라카에서 얻었던 이익의 절반을 써야 할 정도였고, 돈이 있다고 해도 청동에 들어가는 주석 자체를 그만큼 구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었다.
조정에서 만드는 총통의 경우에는 광산에서 강제로 긁어모으는 것이기에 제작이 가능할지는 몰라도, 우리 같은 경우에는 청동으로 뭘 만드는 것이 거의 불가능했다.
왜국에 전해진 조총은 물론이고, 서양에서도 더 안정적인 청동을 두고서 터져나가는 강철로 총을 만든 이유가 바로 이 재료 수급 문제 때문이었다.
“그러면 가진 것을 다 모아서 20개라도 만들어 주게나. 그리고, 야금(冶金)에 뛰어난 대장장이나 종(鐘)을 만드는 장인을 모으게. 그들과 함께 철을 두드려 둥글게 말아 총통의 몸체를 만드는 법을 한번 고민해 보게나.”
조총의 경우에는 검을 만드는 검 장인들이 강철을 두들겨 둥글게 말아 총신을 만든 이후에 철판을 총신에 2번 감아 총이 터지는 것을 최대한 막는 제조법을 만들어 내었었다.
그렇게 철판으로 총신을 말아두었기에 총신이 터지더라도 사람이 다치는 것을 최소화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런 강철 총신을 가진 총의 필요성이 생겼으니 이제 야금 기술자들이 그 필요성을 충족시키기 위해 고생을 할 차례였다.
“조선에서 실력 좋다는 야금 쟁이는 모두 다 불러도 되네.”
***
배를 지킬 승선 총통이 만들어지는 동안 왜로 가서 교역할 물건을 준비하기 시작했고, 한양에서 배다른 동생 진기를 위한 우정사업의 바닥을 다져주기로 했다.
하지만, 바닥을 다지기는커녕 원종도 수렁에 빠져들고 있었다.
“형님. 이 한자는 또 뭔가요?”
“어, 음. 그래. 이건 승(溗)인데 물이 흐르지 않을 승이니 승전이라고 하면 마른 논이라는 뜻이다. 그러니깐 주소가 승하현의 마른 논 옆 김박달네 집이다.”
이제 가로쓰기 언문은 춘봉 상단의 모든 이가 쓰고 읽을 수 있게 되었지만, 일반인들이 보내는 편지는 그렇지 못했다.
더구나, 평민들은 한자를 모르기에 주위에 한자를 아는 서생들에게 부탁하여 글을 써달라고 하는 것이 보통이었는데, 이 서생들이 문제였다.
그들은 자신의 문성(文城)을 자랑하려는 듯이 유려한 문장으로 편지를 썼는데, 그런 명(?)문장들이 우리를 힘들게 하고 있었다.
그냥 가로쓰기 언문으로 다 변경해서 해주고 싶어도, 보부상들이 편지를 가져다줬을 때 언문을 아는 사람이 없으면 가로쓰기 언문도 도로 아미타불이었다.
좀 더 편하게 표준화시키기 위해서는 가로쓰기 언문이 정착되어야 하는데, 그러기엔 너무나도 멀고 험한 길이었다.
“안 되겠다. 문경에서 김재원 행수를 불러올려야겠다.”
문경에서 6년 갈이의 인삼 재배지를 다 만들었다고 보고도 올라왔기에 한문학적으로 가장 교양있는 김재원을 불러 이 일을 맡기는 것이 가장 좋을 것 같았다.
이런 한자 문제도 있고, 편지든 화물이든 결국 서류와 장부가 필요했는데, 아직 어린 진기가 감당할 수 없었기에 김재원을 부를 수밖에 없었다.
“편지가 언문으로만 주고받는 게 아니기도 하고, 한자에 대한 소양이 부족하여 불러올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문경에 인삼밭을 만드는 게 일단락되었기에 할 일도 없었습니다. 전장 일과 우정 일을 제가 한번 맡아 보겠습니다.”
과거를 준비했기에 학문이 깊었고, 나름 원길 형과 동문수학한 동기간이니 믿고 맡길 수 있을 터였다.
그리고 우정 일이 어느 정도 기반을 잡으면 전체 상단을 아우르는 대행수의 역할을 맡길 수도 있는 사람이었다.
매월 초에는 삼식이의 배가 한양에 오고, 매월 중순에는 희재의 배가 한양으로 오갔기에 정기적인 화물과 편지 운송을 알리기 시작했다.
북방의 동항과 전라의 목포, 경상의 동래로 가는 인원은 승선료를 받고 태워주기도 했다.
“이보시오. 여기서 편지를 받아 전해 주는 일도 한다고 들었는데, 이 기별지(奇別紙)를 동래 관아에 좀 전해 주시오.”
“기별지면 조보(朝報)가 아니오? 조보는 따로 전국 관아로 옮기는 파발이 있지 않소?”
“조보를 옮겨 적는 데 시간이 걸려 파발이 먼저 떠나 버렸소이다. 해서 배가 동래로 간다는 말을 듣고 급히 왔소이다. 배는 언제 떠나오?”
“배는 내일 출발하는데, 동래까지 가는 데 일주일이 걸리오.”
“파발에 비해 하루 이틀 정도 늦겠지만, 그 정도라면 크게 상관없을 것이오. 잘 부탁하오.”
편지와 화물 접수를 받는 곳에서 동래 관아로 가는 조보가 접수되었다는 것을 알려오자 조보를 구경하기 위해 마포 나루의 접수처로 김재원과 함께 갔다.
“조보는 기별지라고도 불리는데, 조정의 소식을 알리는 것이기에 밀봉을 하지 않습니다. 누구든 읽을 수 있는 사람은 보아도 된다는 뜻이지요.”
조보는 조정에서 어떤 결정을 내렸고, 각 지방에 어떤 지시를 내렸는지를 알려주는 기관지의 역할도 했지만, 유교적 사상과 통치의 정당성을 전파하는 선전의 수단이기도 했기에 밀봉하여 보내는 것이 아니었다.
해서 조보에는 성종의 치세를 찬양하고 백성들은 어떻게 살아야 한다는 프로파간다적인 선전내용도 들어 있었다.
이 조보를 직접 읽어 본 원종은 좋은 생각이 났다.
“재원 형이 일을 하나 더 맡아 주셔야겠습니다.”
“어떤 일입니까?”
“언론, 아니 춘봉주보(春峰週報)를 발행하는 발행인이 되어 주셔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