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8. 만남과 헤어짐. >
“일이라면, 어떤 일이시온지요?”
“그전에 묻고 싶은 것이 있네. 왜 이곳 도호부에 5년이나 있었나? 중간에 본가인 충청에 다녀오기는 했지만, 보통은 2~3년이면 다른 곳으로 가는데 무슨 일로 여기에 5년이나 있었는 겐가? 따로 죄를 지었나?”
“그것이...”
박치산은 망설이다 입을 열었다.
“내자(內子)가 여진인이옵니다.”
“아!”
박치산이 함경도를 떠나지 않고 5년 넘게 도호부에 있는 이유는 가족 때문이었다.
아내와 아이 때문에 남들은 2~3년이면 떠나가는 함경도 도호부를 말뚝처럼 5년이나 지키고 있었던 것이었다.
현대 한국에서도 외국인과의 혼혈이나 국적 문제가 있듯이 조선 시대에도 오랑캐라 불리는 이들에 대한 처우와 차별 문제가 있었다.
대표적인 것이 백정이었고, 여진족과 왜국 출신도 차별을 받았다.
조선은 북방 유랑 민족을 받아들일 때 화척이라고 하여 공민(公民) 대우를 하지 않고 고기를 잡아 파는 천민으로 백정을 만들었고, 임란 이후 왜국 출신은 따로 마을을 만들어서 거기서만 거주할 수 있게 거주이전의 자유가 없었다.
그리고, 여진인에 대한 것은 세종조에 귀화를 받아들여 성씨까지 하사를 하였지만, 대부분의 여진인들은 거주이전의 자유 없이 광산이나 고된 일에만 종사하게 하였다.
그 산증인이 김고도개였기에 박치산에게 말을 하기 수월했다.
“우리 상단에 여진 출신 김고도개가 있고, 그의 가족들은 전라도 목포에 살고 있네. 자네가 나와 같이 일을 하게 된다면 자네 가족은 조선 어디에서든 살 수 있을 것이네. 어떤가?”
“네. 권관으로서 영광이옵니다.”
“헌데, 벼슬을 내려놓아야 하네.”
“과, 관직을 내려놓아야 하는 것이옵니까? 그럼, 불온한 일이온지요.”
“전혀 불온하지 않네. 관의 일이 아니라, 내 개인적인 일에 자네를 쓰고 싶음이야.”
“그 개인적인 일이 무슨 일인지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내가 외국으로 갈 때 나와 상단을 제대로 지켜줄 수 있는 무사단을 만들려고 하네. 거기에 자네 같은 사람이 필요해서 그러네.”
“호위의 일에는 제가 맞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가전 무술도 없으며, 저보다 검과 창을 잘 쓰는 이들은 더 많사옵니다.”
“맞아. 그런 재주 좋은 무사는 더 있을 수 있겠지. 하지만, 내가 필요한 건 그런 무사들을 이끌어줄 수 있는 장수네. 병사를 아낄 줄 아는 장수를 찾고 있었지. 내 무사단의 우두머리가 되어 주게나.”
박치산은 한미한 가문 출신으로 무과 급제 후 나름의 입신양명을 생각하며 함경도로 왔었다.
하지만, 이곳에서 여진 여인을 만나고 아이까지 낳게 되자 살기가 힘듦에도 함경도를 떠날 수가 없었다.
헌데, 가족들과 함경도를 떠날 수 있는 기회가 왔으나 어릴 때부터 입신양명을 생각했던 관직을 포기하고 개인 무사가 되는 일이다 보니 고민이 될 수밖에 없었다.
“나도 광산에서 돌이나 캐던 이였지만, 이제는 상단의 사람으로 전국을 다니고 있네. 그리고 내 처자식들은 다 전라도 목포에서 배부르고 따뜻하게 있네. 덕분에 아이들도 다 배를 타고 돌아다니고 싶다고 상단에 들어오려고 하지.”
김고도개의 말에 박치산은 그제야 무엇이 중요한지 깨달았다.
자신의 입신양명이 문제가 아니라, 앞으로 커갈 아이들을 생각하는 게 먼저였다.
본인 나름대로 아들에게 글공부를 시켜 과거를 준비시키려고 했으나 결국, 제 어미의 출신 때문에 급제 자체가 안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었다.
출신 때문에 벼슬길에 나서지를 못한다면 전권대사가 운영하는 상단에서 자유롭게 사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더구나, 여진인을 측근으로 데리고 다니는 사람이라면 출신 성분으로 차별을 하진 않을 것 같았다.
“부족하지만, 소임을 맡겨주시면 충심을 다해 보필하도록 하겠습니다.”
“하하하. 고맙네. 나흘의 시간을 줄 테니 주변을 정리하고, 꼭 같이 데리고 가고 싶은 이가 있다면 준비를 시키게나.”
나흘 동안 원종은 동북 여진인과 거란인들에게 양젖과 말젖으로 치즈를 만드는 법을 알려주었는데, 이 치즈로 곡식을 교환할 수 있으니 만드는 족족 구매해 주겠다고 약속했다.
나흘 후 도호부를 떠날 때 박치산은 휘하 갑사로 있던 4명과 그 일가족을 데려왔는데, 20여 명이었다.
“배에 물건이 가득 찼는데, 이렇게 목포까지 가는 것이옵니까?”
“아니네. 두만강을 내려가면 큰 배가 있으니 걱정 말게나.”
박치산과 일행들은 두만강 하구에 정박해 있는 대운선을 보고 놀랐는데, 내륙에서 살았던 이들이라 이렇게 큰 배가 있는 것을 처음 보는 것이라 대운선에 올라서도 신기해했다.
***
[남쪽에서 배가 올라옵니다! 다섯 척! 아니 여섯 척입니다!]
한선에 가득 싣고 온 화물을 대운선에 옮겨 싣는데, 갑자기 배가 온다는 조견수의 외침에 다들 비상이 걸렸다.
이 시대 배가 가장 취약할 때가 바로 화물을 싣고 내릴 때인데, 제대로 된 항·포구가 아니라면 방어를 위한 시설도 없고, 다시 닻을 올리고 돛을 펴는 일들을 해야 했기에 가장 위험한 순간이었다.
삼식이와 수군들은 짐을 가장 먼저 내린 한선 한 척을 앞세워 올라오는 배 쪽으로 보내었다.
만약 적이라면 한 대가 희생하는 동안 다른 배들은 싸울 수 있는 준비를 마쳐야 했다.
조선의 내해라고 너무 안일하게 짐을 싣고 한 것 같았다.
“어! 녹색 깃발을 흔듭니다. 다행히 적은 아닌 것 같습니다.”
“다행이군. 헌데 이곳 함경도까지 다섯 척의 배를 가지고 올 상단이 있는가?”
“송상 외에는 없는 것으로 아는데, 제가 직접 가 보겠습니다뇨.”
급하게 준비된 한선 한 척을 더 끌고 삼식이가 내려갔다가 여섯 척의 배와 천천히 올라왔는데, 배들에 내 걸린 깃발이 보였다.
“바큇살에 삼족오? 저건 고구려의 문양인데.”
고구려를 상징하는 삼족오의 문양을 쓰는 상단이 있었나 생각하다 보니 떠오르는 곳이 한군데 있었다.
“설마, 발해방 사람들의 배인가?”
가까이 다가온 배는 진짜 발해방 사람들의 배였고, 대영일과 고주태가 배에서 손을 흔들고 있었다.
***
“동모산의 어르신들에게 허락을 받으신 겁니까?”
“그렇소. 자네가 알려준 그 이야길 들으시고는 나이 많으신 어르신들끼리도 많은 이야기가 오고 갔소.”
대영일은 주위를 물렸는데, 자신에게서는 고주태만, 원종 측에서는 삼식이만 배석을 허락했다.
“일전에 이야기한 동명성왕의 유산이 무엇인지는 다들 모르셨지만, 많은 분들이 알고 있는 것이 있었네. 바로 안변부(安邊府) 안주(安州)에서 동쪽으로 배를 타고 나가면 큰 섬이 있다는 것이었네.”
원종은 발해방의 대영일에게 고주몽 동명성왕의 유산이나 부여 천랑왕 해모수의 이야기를 하며 동쪽으로 움직여 아메리카 대륙으로 가게 만들 생각이었다.
헌데, 그 동쪽의 이야기를 듣고는 발해 출신 노인들이 북해도나 사할린이 있다는 것을 떠올린 것 같았다.
아메리카 대륙을 찾아 나서는 것보다는 못하지만, 북해도와 사할린을 제대로 확인해 주고 거점으로 삼을 기착지를 개척해주기만 해도 이득이었다.
기착지가 생기면 쿠릴 제도 섬들을 이용해서 캄차카반도로 갈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캄차카반도에서 알류샨 열도 섬들을 이용해 움직여 나간다면 알레스카 반도의 폭스 제도에 도착할 수 있을 터였다.
아메리카 대륙으로 직접 가는 것이나 탐험대로 내 사람들을 보내는 것에 부담을 느끼고 있었는데, 새로운 발해를 만들기 위해 나선 대영일이 그 전초 기지 일을 해주겠다는 것이니 기쁠 수밖에 없었다.
해서 원종은 일본과 북해도는 물론이고 사할린과 캄차카반도까지 그려두었던 지도를 건네었다.
“집안에서 내려오던 지도를 바탕으로 새로 그린 것입니다. 아직 직접 가보지는 않았으나 이 지도가 맞는다면 능히 일국을 세울 수 있는 땅이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곳에서 이어진 섬들을 타고 간다면 새로운 땅이 나온다고 유업을 받았기에 언젠가는 가야 할 곳입니다.”
대영일은 건네받은 지도를 보며 놀랄 수밖에 없었다.
조선도 함께 그려져 있음에도 왜국이 더 크게 그려져 있었고, 발해 15부 위쪽으로 이어져 있는 땅은 그 면적이 훨씬 더 커 보였기 때문이었다.
“이 북쪽이 엄청나게 커 보이지만, 실제 사람이 살 수 있는 지역은 몇 곳 없을 것입니다. 다들 순록이라는 사슴을 키우며 유목 생활을 하는 것이 전부인 지역입니다. 그들과 순록 가죽 거래는 꽤 할 만하지만, 다른 지역의 땅은 사람이 살기 힘든 지역입니다.”
“그러면 여기는 어떤가?”
“북해도는 능히 사람이 살 수 있는 곳이라 이미 몇몇 부족이 있을 것입니다.”
“교역이 가능하겠군.”
“교역뿐만 아니라, 발해의 신민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북해도는 물론이고, 연해주, 쿠릴열도까지 아이누족이 살고 있을 터였기에 이들을 잘 구슬릴 수 있다면 새로운 발해의 구성원으로 만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대영일과 고주태는 지도를 보며 고민을 할 수밖에 없었다.
제법 상세하게 그려진 지도가 있음에도 원종이 가지 않았다는 것은 뭔가 미심쩍었다.
하지만, 안변부(安邊府)의 위쪽 지역은 너무 추운 지역이라 가지 않은 것이 또 이해는 되었다.
그리고, 그런 추운 지역은 땅으로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도움이 될까 싶었다.
하지만, 새로운 발해를 건국해야 하는 대영일의 입장에서는 이 크나큰 땅이 아주 매력적으로 보이기도 했다.
새로운 나라를 세우려면 결국 그 땅에 살고 있는 이들을 죽이거나 복속을 시켜야 하는데, 이곳 요동과 만주 지역은 이미 여진족의 세력이 융성하고 있고, 명나라의 간섭까지 있다 보니 거의 불가능한 지역이었다.
그런 현실적인 문제를 알기에 발해방 사람들은 내가 해준 이야기에서 큰 섬을 생각해 내었고, 그곳에서 새로운 발해를 만들기 위해 이렇게 대영일을 보낸 것이었다.
“북방의 섬과 영토를 개척하신다면 제가 지원을 해주겠습니다. 요동에서 발해 사람들이 옮겨오는 것에 도움을 드릴 수 있고, 북해도에 정착하신다면 안정될 때까지 식량과 의복 같은 것을 옮겨 드릴 수도 있을 것입니다.”
“고맙군. 하지만, 왜 그렇게 우릴 돕는 건가? 이 지도를 내준 것만 해도 사실 자네가 할 것은 다 한 것이네. 아니면, 운송 일에서 이득이 될 것 같아서 그런가?”
“분명, 북해도에 정착지를 만드시고 우리가 물건과 사람을 옮겨준다면 이득이 생길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얻는 이득보다는 남쪽으로 내려가 교역하는 것이 훨씬 더 큰 이득을 줄 것입니다.”
“허면?”
“한민족 아니겠습니까? 우리가 남입니까? 우리 모두 고조선 단군 왕검의 후손이지 않습니까. 제 마음 같아서는 이 요동 벌판에서 다시 발해가 일어서길 원하지만, 그게 힘이 드니 자리를 옮기는 것이고, 제대로 나라가 만들어질 수 있게 돕고 싶을 뿐입니다.”
한민족이라 돕고 싶다는 원종의 말을 대영일은 곧이곧대로 믿고 받아들이지는 않았지만, 실제 대영일의 입장에서는 손해 보는 일은 없었기에 믿어보기로 했다.
“고맙군. 자네의 호의를 오해할 뻔했어.”
“아닙니다. 이 북해도를 기점으로 해서, 왜의 땅에서 발해가 세워진다면 왜놈들의 해적질도 줄어들 것이니 이것 또한 저에게 이득이 있는 것이옵니다.”
“그렇군. 나라가 안정이 될 수록 바다를 편히 다닐 수 있게 되니 자네에겐 이득이겠어.”
“네 그러니 이 북해도에서 대 발해의 부활을 돕도록 하겠습니다.”
발해방의 배는 그렇게 북쪽에 있는 안주(安州)로 움직여 갔다.
***
“그래, 배에서 쓸 수 있는 승선총통(乘船銃筒)은 만들어졌는가?”
한양에서의 생활을 끝내고 내려온 최공손에게 배에서 쓸 수 있는 총통을 만들도록 지시를 내렸는데, 사실상 개인이 쓸 수 있는 승자총통(勝字銃筒)을 만들라는 지시였다.
다만, 이 승자총통은 후대인 선조 시대에 만들어지는 물건이었기에 과연 비슷한 물건이 만들어졌을까 하는 궁금증을 가지고 원종이 물은 것이었다.
“그것이 만들다 보니 절제사님이 지시한 내용과는 조금 다른 것이 만들어져 버렸습니다. 이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