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6. 그게 무슨 상관인가? >
“아니 그게 무슨 말이냐? 오후인데, 아직까지 맞수도 못 했다니. 마포에서 소금을 사가는 이가 없다는 말이냐? 마포나루가 무너지기라도 했느냐?”
“아니, 저 그, 그것이 춘봉 상단에서 백미 1섬에 소금 7섬 값으로 소금을 판다고 합니다.”
“뭐? 7섬? 춘봉 상단? 육조거리 앞에 있는 거기 말이냐? 거긴 소금이 주력이 아닐 텐데?”
“네. 맞습니다요. 헌데, 아침에 나루로 소금을 사러 왔던 이들이 여기는 왜 이리 비싸냐며 다들 춘봉 상단 쪽으로 가 버렸습니다요.”
“헌데 그게 말이 되느냐? 소금값이 백미 1섬에 소금 7섬이라니. 어제까지만 해도 4섬을 조금 넘었는데, 어떻게 하루아침에 그렇게 떨어진다는 말이냐?!”
마포나루에 있는 8명의 소금 상인을 일컫는 팔염상 중 한 명인 척청은 점원들에게 말도 안 되는 거라며 화를 내었다.
하지만, 자신의 가게뿐만 아니라 마포에 있는 다른 염상들도 맞수조차 하지 못했다는 말에 직접 육조거리 인근에 있는 춘봉 상단으로 움직였다.
그리고, 춘봉 상단 앞에 공시되어 있는 소금값을 보고 놀랄 수밖에 없었다.
진실로 백미 1섬에 소금 7섬이었고, 소금을 살 때는 교환권 2장에 한 되를 판다고 쓰여 있었다.
그리고, 소금이 절반 가격으로 떨어졌다고 교환권으로 소금을 사 가려는 사람들이 줄을 서고 있었다.
척청은 소금에 다른 것을 섞어서 파는 것인지 확인해 보기 위해 직접 소금 한 되를 사서 맛을 보았다.
“으, 짜구나. 입안이 쓸 정도로 짜.”
소금에 다른 것을 섞어서 팔면 이러한 짠맛이 나올 수 없었고, 진짜 소금이 맞았다.
그리고 쓴 입안처럼 4할이나 저렴한 가격으로 소금을 팔고 있는 춘봉 상단의 행태에 열불이 났다.
그런 척청의 눈앞으로 소달구지에 실려 오는 소금가마가 보였는데, 대충 보기에도 40여 가마는 되어 보였다.
“이보게. 이 소금을 어디서 가져오는 건가?”
“남도에서 상단의 배가 들어왔기에 나루에서 가져오는 것입니다요.”
“아니, 그거 말고. 어느 군 마마의 가마에서 가져오냐는 말일세.”
“아아, 월산대군 어르신의 가마에서 만들어진 소금입니다요.”
“월산대군 어르신의 가마라고? 다른 마마의 가마는 없고?”
“그건 저도 잘 모르겠고, 저는 월산대군 어르신의 가마라고 알고 있습니다요.”
척청이 알기로는 내수사에서 배정한 각 군 마마의 소금가마는 4개에서 10개로 알고 있었다.
월산대군이 지금 상감마마의 형이라고 해도 10개 이상의 소금가마를 가질 수 없었다.
그리고 10개의 소금가마 솥에서 이렇게 많은 소금을 만드는 것이 가능한 것인지 의아했다.
춘봉 상단의 소금 가격에 대해서 대책을 세워야 했기에 척정은 마포나루 팔염상들을 불러 모았다.
“아니, 소금을 이렇게 많이 만드는 게 말이 되냐 이 말이야. 이거 불법 아닌가? 의금부로 가야 하는 거 아닌가?”
“불법은 아니네. 그 가마에서 얼마만큼의 소금을 만들어내는지는 본래부터 정해진 게 없다는 거 다들 알지 않나.”
같은 중인이라도 양반의 서출 출신인 이상엽이 불법이 아니라고 하자, 다들 입을 다물었다.
자신들도 군 마마의 소금가마에서 어떻게든 소금을 더 만들어내기 위해 불법 벌채를 하고 노비들을 몰아세웠던 적이 있었기 때문이었고, 소금가마에서 소금을 더 많이 만들어낸다고 불법이 아니라는 것은 다들 알고 있었다.
“그저, 하루 열두 시진 불을 지피고 소금을 구워낼 수 있는 방도가 있는 것이지. 그리고, 아는 사람을 통해 알아보니, 소금을 실은 배가 더 올라올 거라고 하네.”
“그, 그럼 가격이 더 낮아질 수도 있다는 말 아닌가? 그럼 이거 어찌해야 하는 겐가?”
“7섬보다 더 낮아지면 우리가 군 마마들께 빌린 제염권의 값도 나오지 않을 걸세. 다들 비슷한 가격으로 제염권을 빌리지 않았나?”
“흠. 그럼 군 마마께 가서 제염권의 가격을 좀 낮춰 달라고 이야길 해보는 게 어떻겠나?”
“오! 그렇구만. 소금 가격이 낮아졌으니 이제는 제염권의 가격을 그렇게 못 드리겠다고 하면 되겠구만.”
“군 마마들께서 가격을 낮춰 주시지 못하더라도 사정을 이야기하면 춘봉 상단에게 가격을 올리라고 할 수도 있으니 다들 제염권을 빌린 군 마마들께 한번 가봅시다요.”
염상들은 각자가 제염권을 빌려온 군 마마들에게 달려갔다.
그런 염상들을 보며 이상엽은 한참 동안 고민하더니 그들과는 다른 방향으로 움직였다.
***
“소금값이 떨어진 것이 무슨 상관인가? 소금가마에서 나오는 소금에 대해 나라에서 정한 세금만 제대로 낸다면 괜찮은 것이지 않은가?”
밀성군 이침은 뭐가 문제인지 척청에게 물었다.
“하오나 마마. 지금의 소금 가격이라면 마마께 임차한 소금가마의 값을 치를 수가 없습니다.”
“그래? 헌데, 그게 나와 무슨 상관인가? 그대가 값을 치르지 못하면 다른 상인에게 가마를 빌려주면 되는 것인데, 그게 나와 무슨 연관이 있다는 건가? 소금값이 하늘로 치솟든, 땅으로 꺼져 들어가든 나와는 아무 상관없지 않으냐?”
염상 척청은 밀성군의 말에 뒤통수가 얼얼했다.
그랬다. 대군 마마들은 그저 본인들이 가지고 있는 제염의 권리를 돈을 받고 빌려주기만 하면 되는 것이지 소금값이 오르든 내리든 아무 상관이 없었다.
오히려, 네놈들은 소금값이 올랐을 때 더 돈을 준 적이 없지 않느냐고 물으면 할 말이 없는 것이었다.
소금값이 더 떨어져 모든 상인들이 손해를 보며 제염권을 빌리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렇게 되어도 군 마마들은 임대료를 내리지 않을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빈손으로 밀성군의 저택을 나오는 척청은 춘봉 상단의 가격 공세를 버텨내는 상인들만이 살아남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가지고 있는 소금이 400가마가 넘었고, 앞으로 충청에서 올라올 소금이 천여 가마가 있다는 생각까지 들자 머리가 아팠다.
손해를 계산하다 아예 소금을 만드는 제염권을 춘봉 상단에 팔고, 소금을 춘봉 상단에서 받아서 파는 것은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된다면 원상(原商)에서 도매상이 되는 것이지만, 그렇게 함으로써 감내해야 하는 위험은 줄일 수 있었다.
물론, 소금값이 급등하게 되면 큰 이익을 볼 수는 없겠지만, 안정성이 원상일 때에 비해서는 늘어나게 될 터였다.
결심을 한 척청은 염상들이 다시 모이기로 했던 곳이 아닌 춘봉 상단으로 움직였다.
그리고, 거기서 춘봉 상단의 한양 책임자인 오추 행수 앞에 이상엽이 앉아 있는 것을 보았다.
“서, 설마, 자네도 제염권을?”
“맞네. 소금과 새우젓을 주력으로 하는 내 힘으로는 안 될 것 같아 제염권을 넘기고 받아서 팔기로 마음을 먹었네.”
“흠흠. 자네들도 여기에 온 것인가?”
“아니, 자네들두?”
이상엽과 척청은 뒤이어 들어서는 구본일과 다른 상인을 보며 야너두를 외칠 수밖에 없었다.
마포의 염상 팔염상 중 절반인 네 명이 제염권을 팔러 오자 오추는 서로 담합하지 못하게 잘 구슬려 제염권을 적당한 가격으로 살 수 있었다.
이들처럼 원상의 지위를 버리고 춘봉 상단의 도매상이 된 소금 상인이 있는 반면에 끝까지 자신의 제염권 지위를 지키고자 가격을 낮추어가며 버티는 이도 있었다.
하지만, 오지 않는 손님으로 인해 점점 말라 들어갈 뿐이었다.
그러다 방문한 손님이 있자 염상 패현은 크게 웃으며 손님을 맞았다.
“나는 경상의 최홍서라고 하오. 우리 안면이 있지 않소? 이쪽은 권항필이라고 하는데, 춘봉 상단에게 피해를 당하고 있다고 들었소.”
점점 말라 들어가는 염상 패현은 한양에서 크게 곡식 장사를 하는 최홍서를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가 제시하는 본(本) 전장에 참여하라는 권유에 넘어가 본 전장에 참여를 하기로 했다.
***
원종이 훗날 김포 터미널이 생길 부지에 소금 창고를 짓고 소금을 쌓고 있을 때 비금도에 1000헥타르 9.9k㎡ 규모의 염전이 완성되었다는 보고가 올라왔다.
대운선이 나오며 선원학교에 있던 수군들도 대부분이 선원이 되었지만, 염전에서 일하는 것이 대우가 나쁘지 않자 염전의 일꾼이 된 사람도 있었다.
그 수는 40여 명으로 비금도 주민들이 삯을 받으며 일하는 것도 있었기에 100여 명이 비금도 염전에서 일하는 것이었다.
그 100여 명이 조선에 유통되는 소금의 25%를 만들어 내는 것이었다.
이어서 비금도 옆의 도초도와 암태도에서도 염전을 만들기 위해 땅을 알아보고 있다고 했으니 앞으로 쏟아져 나올 소금양이 기대되었다.
가을이 되고 겨울 동안은 소금이 잘 만들어지지 않을 테지만, 겨우내 다른 섬에서도 땅을 골라 염전을 만든다면 내년 초 중반부터는 조선에 유통되는 소금의 절반 이상은 춘봉 상단에서 움직일 수 있을 터였다.
그러면 자연스레 소금의 가격도 내려갈 것이고, 염장 문화가 발달하며 먹거리의 비축량도 자연스레 늘어날 터였다.
물론, 다른 염상들이 어떻게 이렇게 많은 소금을 만들어내는지 염탐을 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완전히 내 편이 된 것이나 마찬가지인 수군들이 알아서 알려줄 것이고, 그럴 때는 따로 소금가마에서 소금을 한번 불에 올렸다가 꺼내며 작업하는 것을 보여주면 되었다
그리고, 천일염의 비밀을 알아 간다고 해도 이미 군 마마들이 가지고 있던 제염권의 절반을 확보했으니 단일화되지 않은 염상들은 제대로 염전을 만들어 보지도 못할 터였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소금 장사들이 정리가 되면 이후로 남는 소금은 왜 나 중국에 팔면 되는 것이었다.
현대에서는 이 소금이 그렇게 교역 물품이 되는 건지 의아스러워 하지만, 이 소금이 있었기에 한반도에 맥궁이 나올 수 있었던 것이었다.
고구려 때부터 한반도에서는 맥궁 즉, 물소의 뿔로 만든 활이 만들어지고 사용되었는데, 이 물소의 뿔을 가지고 조선으로 왔던 상인들이 주로 한반도에서 구매해갔던 것이 소금이었다.
그 소금이 있었기에 아랍 상인들이 동남아시아에서 물소 뿔을 사서 한반도로 왔고, 동남아시아의 작은 왕국에서도 교역을 위해 물소 뿔을 들고 왔기에 한반도의 맥궁이 만들어지게 된 것이었다.
그러다 왜구의 발호로 교역 길이 끊기며 서로가 존재를 잊어 갔는데, 내년이면 남아도는 소금으로 동남아시아와 왜국, 중국의 소금 상인들과 거래를 시작하면 되는 것이었다.
그런 소금 교역의 준비를 위해 왜국으로 한번 가야 했는데, 그 전에 꼭 필요한 것이 있었다.
무식한 왜놈들과 거래를 하기 위해서는 무력이 있어야 했는데, 지금 원종에게 가장 부족한 것이 무력 중에서도 육상 전력이었다.
삼식이와 금산이를 통해 힘 좀 쓰는 이들을 모으라고 했기에 건장한 이를 오십여 명 모았지만, 그들을 이끌 만한 장수가 없다는 것이 문제였다.
김고도개처럼 조선에 귀화한 여진족도 몇몇을 받았으나 개개인의 용력은 뛰어나도 사람을 이끌만한 장수가 없었다.
“저는 벌써 되련님을 모신지가 10년이 넘었지만, 도통 되련님의 속을 알 수가 없습니다요. 장수를 뽑기 위해 회령 개시로 가보겠다고 하니 참으로 이해를 할 수가 없슴다뇨.”
요즘 왜어를 배운다고 그런지 삼식이는 발음이 좀 요상해지고 있었다.
“장사들을 이끌 사람이 없으면 무과 급제자에서 데리고 오면 되는 거 아니겠습니깜뇨.”
“이놈아. 너도 알잖느냐 무과 급제자 중에 오랫동안 있는 이들이 몇 없다는 거. 대부분이 북방으로 갔다가 음으로 양으로 힘을 써 후방으로 빠지는 것이 현실이다.”
“뭐, 제대로 된 이들은 북방에 말뚝처럼 박아 둔다는 말은 들었는데, 그런 사람을 데리고 오겠다고 회령까지 올라가시겠다고 하시니. 저는 도통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뇨.”
“이놈아 지금 태극 선단을 이끌고 말라카로 간 염참군 같은 이가 한양에 있었더냐? 남도 끝에서 아무도 모르게 있었지 않았느냐. 분명 북방에도 그런 숨어 있는 이가 있을 것이다.”
“흠. 그렇게 이야길 들으니 되련님의 말이 맞는 것도 같슴다뇨. 그럼, 장수를 구하면 바로 왜로 가는 것입니깜뇨?”
“화기반의 최공손 박사가 내가 원하는 걸 만들어 낸다면 바로 왜로 출발할 것이다.”
“캬아, 그럼 제가 배운 왜어를 제대로 써먹을 수 있겠군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