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5. 짠맛이 만들어 내는 변화. >
“네. 그 대운선 두 척에 은자 2천 냥이나 들어갔다고 하더라고요.”
“그럼 대운선 한 척에 천 냥씩이군. 그러면 기존에 만드는 누전선에 비해 대여섯 배나 비싼 거구만.”
“네 그래서 수영에서는 만들 엄두를 못 내고 있습니다. 같은 한 척을 만드는데, 돈이 대여섯 배나 더 들어가니 만들 수가 없는 것이지요.”
“허허. 그만큼 우리는 대단한 배를 타게 되는 것이군. 이거 기대가 되는구만.”
그런 선원들의 기대에 부응하듯 100명의 선원들이 수영으로 내려가 대운선을 몰아왔고, 가장 처음 대운선에 실은 화물은 비금도의 천일염이었다.
천일염을 싣고 목포에 대운선이 도착하자 수군 별장 김도립이 배를 넘겨주며 배에 대한 설명을 해줬다.
“중국 정크선의 격벽 구조에 조선 누전선의 맞물림 제작으로 견고함을 높였고, 다우선의 삼각돛을 접목하여 바람 방향에 따라 돌 수 있는 선회력이 강화되었습니다.”
“최 박사(博士)가 보기에 선창이나 갑판의 보강은 충분한 듯하오?”
“제가 이야기 한 대로 잘 만들어졌습니다. 안전을 위해 화포 간의 거리를 벌려야 한다고 한 요청이 잘 받아들여졌습니다.”
화포반의 책임자인 최공손은 화포 간의 거리를 붙이지 않고 벌리게 배치를 해야 한다고 했는데, 화약 관리가 잘되는 현대라면 몰라도 지금 시대에는 널찍하게 떨어트려 놓는 것이 맞는 판단 같았다.
그래도 선창에 3문, 갑판에 3문 해서 한 면에 6문의 화포를 배치한 것이라 지금 시대를 따졌을 때는 최강의 함선에 가까웠다.
배의 앞뒤로도 한 문씩 배치를 하여 총 14문의 화포를 가졌기에 상선이라고 하기보다는 전투함이 더 맞을지도 몰랐다.
그리고 배에서 소금 가마니가 내려지기 시작했는데, 200여 가마 중 50여 가마를 선원 학교 인근에 사는 이들에게 무상으로 나누어 주겠다고 사람들을 불러 모았다.
소금 장사를 하여 돈을 벌어 변화를 만들어 내는 것도 좋았지만, 그렇게 이득으로 만들어 내는 변화보다는 아예 염전 인근에 소금을 싸게 풀어 전라남도에서의 소금 수요를 없애버릴 참이었다.
그렇게 되면 전국적으로 소금 가격이 떨어질 것이고 소금이 비싸 엄두도 내지 못했던 것들이 만들어지기 시작할 터였다.
소금이 흔해지면 식문화에 대 변화가 올 것이라 믿었다.
“서방님. 헌데, 이걸 무상으로 나눠줘도 되는 것입니까? 한양으로 가서 팔게 되면 큰 이익이 생길 터인데요.”
“일부러 나눠 주는 거네. 여기 사람들은 그동안 갯벌이나 물이 얇을 때 잡는 조개나 짱뚱어 같은 것들을 그냥 먹기만 했지 그걸로 젓갈을 담을 생각을 하지 못했네. 소금이 그런 것들보다 더 비쌌으니 엄두를 못 낸 것이지.”
“그건 그렇지만, 귀한 소금을 그냥 나눠 주신다고 하니...”
“걱정 말게. 내가 나눠준 소금으로 만든 젓갈과 염장식품이 나중에 우리 먹거리를 풍족하게 해줄 것이네.”
그리고 원종은 소금을 나눠주면서 아낙들을 따로 불러 모았다.
좀 더 빨리 식량 비축을 만들어 내기 위한 것이었다.
“다들 집에서 닭이나 오리를 키울 것이네. 이제 가을이 되면 겨울을 나기 위해 닭이나 오리를 잡을 것인데, 그것을 오랫동안 먹을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고자 하네.”
“저.기 저는 소작으로 더부살이를 해서 그런 닭이나 오리가 없는데 그냥 소금만 받아 가면 안 되는 것입니까요?”
“집에서 키우는 것이 없다고 하더라도, 가을이 되면 철새가 이 목포와 인근을 날아다닐 것인데, 그걸 덫을 놓아 잡을 수 있는 것 아니겠나? 그런 야생오리로도 할 수 있는 것이니 배워 두게나.”
소금을 준다기에 왔다가 음식 만드는 것을 배우게 되었다고 몇몇은 탐탁지 않아 했지만, 눈앞에서 양반이 닭과 오리를 잡아 깔끔하게 손질하는 것을 보고는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한양에서 유행한다는 나이기온이라는 옷에는 닭털과 오리털이 들어간다고 털을 버리지 말고 모아서 쓰라는 말에 다들 겨울에 털옷을 만들어 입는 것까지도 생각할 수 있었다.
“이렇게 뼈 손질이 끝난 닭고기와 오리고기에는 곱게 간 소금을 묻혀서 하루를 그냥 두게. 핏물이 소금 때문에 나올 것이야. 그리고 하루가 지난 고기들은 이렇게 둥글게 뭉쳐주면 되네. 모양이 잡히도록 삼베 실로 묶어주면 흐트러지지 않네.”
원종은 미리 준비한 고기들을 실로 묶어서 둥근 통고기를 만들었다.
“나무통에 이렇게 소금을 깔고 그 위로 둥근 통고기를 넣곤, 통고기가 잠길 정도로 소금을 덮어 주면 되네. 염장을 하는 거지.”
원종은 미리 만들어 둔 묶은 고기 위로 고기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소금을 덮어 주었다.
“저기, 그러면 고기에서 나온 물에 소금이 녹지 않을까요?”
“육즙에 소금이 조금 녹을 수는 있지만, 소금은 계속 쓸 수 있으니 걱정 말게나. 이 소금 통에서 한 달 동안 통고기를 놔두었다가 꺼내어 보면 이렇게 고기가 줄어 있을 거네.”
원종이 미리 만들어 두었던 통고기 햄을 꺼내자 색이 거무스름하게 변해 있었고 크기도 절반 가까이 줄어 있었다.
“색이 이상해서 상한 것 같아 보이지만 상한 것이 아니네. 이후 소금기를 없애기 위해 겉을 식초 섞은 물로 씻어주고는 부뚜막에 걸어두면 되네. 부뚜막의 연기로 겉이 검어진다면 1~2년은 충분히 놔두고 먹을 수 있는 음식이 되네.”
“고기를 1~2년을 놔두고 먹을 수 있다고요? 썩을 것 같은데요.”
“전혀 썩지 않네. 소금과 부뚜막의 연기가 몇 년 후에도 먹을 수 있게 만들어 줄 것이네.”
원종이 몇 년 후에도 먹을 수 있다고 이야길 했지만, 사람들은 그렇게 먹을 수 있는 것은 간장 말곤 없다며 믿지를 않았다.
애초에 만들어 둔 햄이 있다면 이게 몇 년 묵은 거라고 먹을 수 있다고 보여주면 되는데, 돼지를 키우는 왕십리에서도 이 소금이 올라가야 햄을 만들기 시작할 거라 아직 샘플이라고 할 만한 것이 없었다.
“그럼 연기를 입히지 않고 한 달 염장만 한 것이지만, 이걸 한번 맛보게나. 몇 개월 후에 맛이 이렇고, 이 고기는 그대로 선원학교 부뚜막에서 1년을 둘 것이네. 1년 후 부뚜막의 연기 향이 들어가면 더 맛있다는 것은 1년 후에 자네들이 직접 확인해 주면 되네.”
원종이 색이 좀 거무스름했지만, 고기를 맛보게 해주겠다고 하자 다들 줄을 섰다.
원종은 깻잎과 김도 가져오게 해서 얇게 저민 햄을 깻잎과 김으로 싸서 주었는데, 사실 소금에 염장한 옛날 방식의 전통 햄은 그냥 짠맛이었기 때문에 생각해낸 방식이었다.
그리고 이 깻잎과 김으로 싸서 먹는 방법은 현대 한국에서도 하몽(Jamon)을 먹을 때 쓰는 방법이기도 했다.
“오호. 이거 짭조름한 것이 맛있는데, 색이 썩은 거처럼 거무스름해서 고약한 맛이겠구나 했는데 전혀 아니야.”
“그러게 깻잎이랑 고기를 같이 먹으니 맛있는데, 김도 아무 맛 없는 줄 알았는데, 이 김이 고기와 어울리는구만. 근데 너무 작게 주시네.”
“어쩔 수 있나. 사람이 몇인데.”
“집에 가서 한번 만들어봐야겠어.”
“더부살이해서 뭐가 없다며?”
“집엔 없지만, 강 하구에서 기러기라도 잡아야지.”
고기로 만든 햄 맛을 본 이들은 공짜로 받은 소금으로 햄을 만들어 먹어봐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그런 사람들을 위해 춘봉 상단에서는 10m에 달하는 마 줄로 만든 그물을 팔거나 대여도 해주었는데, 수확이 끝난 논밭이나 강 하구 갈대밭에 그물을 치고 새를 잡으라는 것이었다.
물론, 아직은 가을이 오지 않았기에 그물로 새 대신에 고기를 잡았다.
고기를 잡는 것도 갯벌에 나무 장대를 꽂아 그물을 그 사이에 치는 방식이었는데, 마로 만든 질긴 그물이 없을 때는 짚으로 꼬아 만든 짚그물을 사용했었다.
하지만, 마로 만든 촘촘한 그물로 바꾸는 것만으로도 고기가 더 많이 잡혔고, 그물을 연결하여 100m씩 갯벌에 그물을 치자 마을 사람들이 다 먹기도 힘들 만큼 매일 잡혔다.
그렇게 남아도는 생선과 조개류는 흔해진 소금 덕분에 자연스레 염장 음식이 되었다.
***
“춘봉 상단이 소금 가마를 아주 크게 한다고 하던데, 소식 들었나?”
얼굴이 커서 얼큰이로 불리는 동래 내상의 마관삼 행수는 바로 옆 상관에 인사차 들렸다.
“무슨 소식? 소금값이 좀 떨어지긴 했는데 뭔가가 있는 겐가?”
남자치고는 키가 작아 짱달이로 불리는 장길 행수는 소금거래가 주력이었기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특히나 동래부에서 왜관 개시로 상권을 만들어 가지고 있는 동래 내상의 행수들은 들려오는 풍문에 민감할 수밖에 없었는데, 내상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던 박영철이 해적을 만나 배를 모두 잃어버린 이후로는 더 외부의 정보에 신경 쓸 수밖에 없었다.
“춘봉 상단의 삼식 행수라고 있잖은가. 그 배를 14척이나 끌고 조운과 교역을 하는.”
“아 알고 있지. 우리 포목도 한양에서 실어준 곳이 삼식 행수네.”
키 작은 행수는 자신도 그 선단의 배를 잘 이용하고 있다고 아는 척을 했다.
“그 삼식 행수의 배에 이번에 소금이 가득 실려 온다고 하네. 그래서 소금값이 폭락할 거라고 하던데.”
“에이. 아무리 소금이 많이 난다고 해도 그게 가능한가? 소금 가마에 들어가는 땔감이 있다면야 소금을 그렇게 만들어 낼 수도 있겠지만, 바닷가에 땔감으로 쓸 나무가 어디에 있나?”
“그건 나도 잘 알고 있지.”
“듣기로는 동해의 염장들은 바다 건너 우산국에까지 가서 나무를 해와서 소금을 구울 정도로 땔감이 정말 없네.”
“그래 그건 나도 아는데, 나주에서 온 보부상이 목포에는 소금이 너무 많이 나서 아예 춘봉 상단에서 소금을 공짜로 뿌리기까지 했다고 이야기를 해주었네.”
“에이, 그게, 말이 되나? 소금이 그리 많이 나온다고, 공짜로 뿌리다니. 그냥 아예 길거리에 은자를 뿌렸다고 이야길 하게나.”
“허허. 진짜라니깐 그러네. 그 보부상이 나랑 알고 지낸 지가 몇 해인데 거짓부렁을 하겠나.”
“그럼, 자네 가게의 소금부터 내게 싸게 팔아보게. 내가 살 테니.”
자신의 말을 믿으라고 했던 마관삼은 이렇게 될 줄 몰랐다며 멈칫했지만, 이내 마음을 먹은 듯이 말을 꺼내었다.
“좋네. 백미 1섬에 소금 5섬을 넘기겠네.”
명확한 거래 조건이 나오자 이제는 그냥 정보교환의 대화가 아니었다.
결국, 키 작은 짱달이 행수는 백미 1섬에 소금 4섬으로 거래되는 것을 5섬으로 해서 모두 매입했다.
그가 아는 제염업은 그렇게 쉽게 대량의 소금이 나올 수 있는 게 아니었기 때문에 지를 수가 있었던 것이었다.
그렇게 짱달이 장길 행수는 마관삼의 소금을 모두 들여오게 되었고, 1섬 이상의 이득을 얻었다고 좋아했다.
하지만, 마관삼의 말 그대로, 춘봉 상단의 14척 배에 소금이 가득 실려 왔다는 이야기를 듣자 얼굴이 흙빛이 될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춘봉 상단은 그렇게 실어온 소금을 백미 1섬에 7섬으로 판다고 했으니 장길은 미치고 팔짝 뛸 판이었다.
‘절대 소금은 이렇게 많이 나올 수가 없다. 땔감이 없는데 어떻게 소금이 이리 난단 말인가?’
장길 행수는 실어 온 것이 진짜 소금이 맞는지 확인하기 위해 찾아가 보았고, 춘봉 상단 울타리 앞마당에서 되로 팔고 있는 소금을 볼 수 있었다.
“이게 소금이라고? 이렇게 알갱이가 있는 것이 소금이라고?”
장길 행수는 자기가 아는 소금이 아니라며 이것이 짤리 없다고 소금을 주워 먹어봤다.
하지만, 입안이 다 쓰릴 정도로 짰다.
분명 소금이 맞았다.
“어떻게...어떤 방법으로 소금을 이리 많이 만든 것이오? 제염으로 끓여 만든 것이 맞소?”
삼식이는 허탈하다는 듯이 물어보는 장길 행수를 무시하려다가 그래도 안면이 있기에 이야길 해줬다.
“저기 하늘이 만들어 주는 것이오.”
“하늘이? 어떻게 하늘이 만들어 준다는 거요?”
“하늘 같은 우리 상단주 님이 만들어 내시는 거요. 그리고, 다른 상인들의 소금을 많이 매집했다고 하던데, 손해를 봐서라도 파는 걸 추천하오.”
“서, 설마 이보다 더 많은 소금이 있다는 말이오?”
“지금은 14척의 배에 실어 왔지만, 다음은 더 많을 수도 있소. 그러니, 어서 가지고 있는 소금을 처분해야 더 손해를 보지 않을 거요.”
“어떻게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말이 안 되긴 왜 안 되겠소. 왜관 개시에서 소금을 거래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을 테니 왜놈들에게 소금을 어서 팔아 치우시오. 그 이후에 더 떨어지는 소금값을 나는 책임지지 못하오.”
장길은 삼식의 말을 듣고는 얼른 안면이 있는 왜국 상인들을 찾아 나서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런 일은 한양에서도 일어나고 있었는데, 동래의 내상들은 왜국의 상인들에게 소금을 넘기기라도 할 수 있었지만, 한양은 그렇게 넘기기를 할 곳조차 없었다.
이제까지 마포나루에서 소금으로 이득을 챙긴 자들은 엄청나게 큰 대운선 두 척에서 내려지는 소금을 보곤 날벼락을 뒤집어쓰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