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4. 먹는 가마니. >
“새로운 걸 만들어 먹는 기념으로 아예 재료부터 같이 준비를 해보시는 것은 어떻습니까?”
월산대군의 비대해진 몸을 보고 즉흥적으로 운동을 겸할 겸 해서 말을 꺼내었는데, 월산대군은 그렇지 않아도 근래 밖을 나가본 적이 없다고 흔쾌히 따라나섰다.
“그런데, 뭘 사러 나가는 것인가?”
“본래 콩을 사서 포(泡 두부)를 만들려고 했으나, 바로 마마께서 드실 수 있게 파는 포를 사러 나갈 것입니다.”
“포로 만드는 생전 처음 먹어보는 음식이라... 참고로 난 싱겁고 싱숭생숭한 포의 맛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네.”
“그런 밋밋한 맛이 아니니 걱정하지 마시옵소서.”
월산대군과 공랑 점포와 나루터를 돌아다녔는데, 두부인 포를 사러 나왔음에도 두부 장수 앞에서 이리저리 둘러보기만 하고 지나치자 월산대군은 그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그러다 오후가 되어 다리가 아플 때쯤에야 원종이 두부를 골랐다.
“아니, 이 두부는 전혀 특별한 두부가 아니지 않은가. 오히려 낮에 보았던 두부에 비해 얇은 것 같기도 하고, 오래되어 물기도 다 마른 거 같지 않은가. 엇? 그러고 보니 여기도 한참 전에 한번 왔던 가게이지 않은가? 왜 그때는 안 사고 지금 사는가?”
“네. 오전에 왔던 곳이 맞습니다. 낮에 왔을 때는 제가 원하는 두부가 아니었는데, 이제는 제가 원하는 두부가 되었기에 사는 것입니다.”
월산대군은 이게 무슨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인가 싶었다.
낮에는 아니었는데, 오후에는 맞는 두부가 되었다니.
“두부는 콩을 갈고 간수에 굳혀 물을 빼 만드는 음식 이온데, 이 두부를 처음 만들었을 때는 물을 뺀다고 해도 다 빠지지 않고 간수와 콩물이 어느 정도는 남아 있습니다.”
“그렇지. 그리고 그때 먹어야 퍼석하지 않고 탄력이 있는 거 아니겠나?”
“네. 하오나 제가 만들 음식에는 오히려 그런 물이 남아 있으면 안 좋습니다. 그래서 시간을 들여 가게를 돌며 더는 콩물을 위에 뿌리지 못하게 해서 구매를 한 것입니다.”
“그럼, 그냥 두부를 사서 집에서 말리면 되었지 않은가?”
“네 그렇게 하여도 되지만, 그러면 또 운동...이 아니라 많은 양을 한 번에 말리기가 힘이 들기에 가게들을 돌아다니며 물이 빠지길 기다린 것이옵니다.”
걸어 다니는 것만으로도 땀을 흘리고 있는 월산대군을 조금이라도 걷게 하기 위한 의도도 살짝 있긴 있었다.
그렇게 물기가 충분히 빠진 두부를 세 곳에서 구매해 대군의 집으로 돌아왔다.
구매해온 두부의 절반은 얇게 썰어 종이에 올려 한 번 더 물을 뺐고, 나머지 반은 숟가락으로 눌러서 으깨었다.
으깬 두부에는 설탕과 식초를 넣었고, 오이와 당근, 파, 양파를 잘게 채 썰어 볶고 소금으로 간을 했다.
그러곤, 삼베 주머니에 다 같이 넣어 물기를 한 번 더 짜주었다.
얇게 썰어 종이로 물을 빼 둔 두부는 기름에 튀겼는데, 기름에 기포가 생길 듯 말 듯 하는 낮은 온도에 튀겼다.
“오! 두부가 기름에 튀기니 크게 부풀어 오르는구나.”
낮은 온도에서 튀겨지는 두부는 속에 있던 수분으로 인해 부풀어 오르게 되는데, 흰색의 두부가 노릇노릇해질 때 꺼내었다.
튀겨진 두부를 식히는 동안 불을 강하게 하여 기름에서 기포가 뽀글뽀글거릴 만큼 뜨거워졌을 때 튀겨두었던 두부를 다시 넣어 튀겼다.
한번 튀겨져 노릇노릇했던 두부가 연한 갈색으로 색이 입혀지며 겉이 거칠어졌다.
그리고 그 안쪽으로는 공간이 생겨나며 딱딱해지기 시작했다.
연갈색의 모습에 이제는 두부라고 부르기 뭐한 튀긴 두부가 되어 버렸다.
“허허 두부는 구워서 먹어 본 적이 있으나, 이렇게 색이 변하고 요상하게 변한 두부는 처음이로군. 이제 먹으면 되는 겐가?”
“먹어도 상관은 없사오나, 이렇게 먹으면 아무런 맛이 없는 밋밋한 튀긴 두부가 될 뿐이옵니다.”
원종은 튀겨진 두부를 아니 이제는 유부(油腐)가 된 두부를 밀대로 밀어 얇게 만들었고, 삼각형과 사각형으로 반으로 잘랐다.
잘 튀겨진 유부는 알아서 속이 벌어졌지만, 잘 벌어지지 않는 유부는 일일이 칼집을 내어 유부 주머니를 만들었다.
다이어트를 위해서라면 바로 이 유부에 두부와 채소로 만든 속을 넣고 싸주면 되지만, 그렇게 먹으면 맛이 없었다.
물을 섞은 간장과 설탕, 식초를 넣어 조미 물을 끓였고, 유부를 넣어 간장과 식초의 맛을 유부에 입혔다.
색이 진한 갈색으로 물들자, 유부를 꺼내 식히고, 미리 만들어 두었던 두부와 채소 속을 넣어 유부초밥을 만들기 시작했다.
짠맛이 베이스이긴 했지만, 밥 대신 두부를 썼기에 건강식이 맞았다.
그래도 밥이 아예 안 들어가면 식사가 아니라는 생각이 있었기에 두부 속에 밥을 섞어서 제대로 된 유부초밥도 만들어 주었다.
원종은 둥근 접시에 원형으로 삼각형의 유부초밥을 줄 세웠고, 중앙에는 사각형으로 만든 유부초밥과 동치미 무를 썰어 놓았다.
그리고 그 위로 참깨를 양손으로 비벼 마지막 데코레이션을 했다.
“유부(油副)초밥이옵니다.”
“포(泡) 초밥이 아니라 유부(油副)초밥?”
본래 조선에선 월산대군처럼 두부를 포(泡)라고 불렀는데, 그렇다고 또 두부란 말을 쓰지 않은 것은 또 아니었다.
이는 한자 때문인데 두부와 유부의 한자는 豆腐, 油腐로 이 부(腐)자는 썩히다 썩다, 나쁜 냄새가 난다는 한자였다.
고기를 삭혀 먹는다는 고기 육(肉)에서 만들어진 한자로 식물성 콩에서 만들어진 음식에는 어울리지 않는 한자를 이름에 쓰는 것이었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설이 있는데, 처음 두부를 만들었다는 유안(劉安)이 신선이 되기 위해 연단술을 실험하다 두부를 만들었고, 이후 도사들이 먹었는데, 두부의 특성상 하루만 지나도 쉬어 버리기에 그 쉬는 특성을 보고 썩힐 부(腐)자를 쓴 것이지 않을까 하는 설이었다.
그리고 처음 일본에서 유부가 만들어질 때도 두부 상인들이 팔지 못하고 남은 쉬기 직전의 두부를 튀겨 만들었기에 튀긴 후에도 쉬고, 맛이 간 냄새가 난다고 하여 썩힐 부(腐)자를 쓴 것이라는 말도 있었다.
그 외에도 두부가 뇌수(腦髓)처럼 연하고 물렁물렁해서 삭힌 고기와 같다고 하여 썩힐 부 한자를 썼다는 말도 있었다.
하지만, 조선에서는 이 썩힐 부(腐) 한자를 쓰기보다는 거품 포(泡)자를 써서 불렀다.
먹는 음식에 썩힌다는 부정적인 한자를 쓰는 것을 삼갔던 것이었다.
그래서 원종도 종친에게 그런 썩인 음식이라고 알려주는 부(腐)자를 쓸 수 없었고, 해서 버금가다, 부차적이다라는 뜻의 한자 부(副)를 써서 유부(油副)라고 작명을 한 것이었다.
“기름으로 도운 식초 밥이라는 뜻이군. 어디 한번 먹어볼까.”
월산대군은 젓가락으로 조심스레 유부초밥을 들어 먹었는데, 유부 특유의 질긴 식감은 확실히 처음 먹어보는 식감이었다.
‘근래 식욕이 동하여 조선의 진미란 진미는 다 먹어보았지만, 이런 달면서 초 맛이 나는 두부는 또 처음 먹어보는구나.’
질긴 유부가 씹히면서 그 주머니 안에 있던 두부와 채소 속이 같이 씹혀 입안을 채웠는데, 설탕과 식초, 간장의 절묘한 세 가지 맛이 입안을 즐겁게 해주었다.
그리고, 아삭하게 씹히는 오이와 당근의 식감이 유부의 질김과 대비가 되며 씹는 즐거움마저 만들어 주었다.
“움화화하 주상께서도 먹어보지 못한 음식이라고 하기에 내 처음에는 뭔가가 부족한 음식이기에 주상께 올리지 못한 음식이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렇지 않구나. 아주 색달라. 정말 이제까지 먹어본 것 중에서 가장 독창적인 음식이야.”
“과찬이십니다.”
평범한 유부초밥을 색다르다며 칭찬을 하는 월산대군의 말에 괜히 켕겨서 급하게 다른 것도 만들었다.
사각형으로 자른 유부 주머니의 양옆을 잘라 넓게 펴고는 그 위에 김을 한 장 넣었다.
그리곤 유부 속을 김밥처럼 펴서 넣었고, 동치미 무를 길게 잘라 단무지처럼 넣고 텃밭에서 이제 막 자라고 있는 새싹 채소들도 넣었다.
이후 김밥을 싸듯이 돌돌 말아 썰어 주었는데, 이게 또 비주얼적으로는 훌륭했다.
“유부 김밥이옵니다.”
나름의 색다름을 추구해 보고자 한양으로 올 때 가져온 말린 김을 추가해서 김밥처럼 만 것이었다.
“하하하. 이것 또한 특이하구만.”
월산대군은 유부와 김의 질김에 이어 동치미 무의 씹는 맛이 내는 식감이 재미있다고 느꼈고, 간장과 식초의 맛에 동치미 무가 가진 시원한 맛이 더해지자 이것 또한 마음에 들었다.
“아주 좋구만. 집안의 부엌어멈에게 알려주게나. 내가 자주 해 먹을 것 같아.”
“네. 마마. 그럼 뭔가가 생각이 안 나시옵니까?”
“응? 아아, 그야 당연히 싸게 주어야지. 이렇게 새로운 음식을 알려주었는데, 그 공을 치하해야 하지 않겠는가. 제염권리를 반값에 빌려주겠네.”
월산대군은 자신만이 먹을 수 있는 새롭고도 비밀스러운 먹거리가 생겼다는 생각에 아주 기뻐했고, 본래 제염권리 가격으로 내놓았던 것의 반값에 원종에게 빌려주었다.
원종은 싸게 제염권을 받았지만, 사실 조금 씁쓸했다.
원종이 유부초밥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한 이유가 이 소금과 약간은 연관이 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갈색의 유부에 흰색의 두부가 담긴 유부초밥은 언뜻 보기에도 소금이 들어찬 소금 가마니의 형상이었다.
그래서, 제염권리를 넘길 때라도 제염하는 이들이나, 나라에서 유통이 되는 소금을 생각하라고, 사각형의 유부 주머니에 소금처럼 속을 담아 낸 것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것도 소금을 어찌 굽고 어찌 담는지를 아예 모르면 연상 자체가 불가능한 것이었다.
소금을 만들고 구워내는 과정을 하나도 모르고, 철과 소금을 왜 전매를 하는지 이유도 모르는 이가 소금을 만들어 파는 권리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니 뭔가 씁쓸했다.
최소한의 현장을 보는 교육도 종친에게 필요하다고 생각되었지만, 말도 꺼내지 못했다.
씁쓸하게 월산대군의 집을 나서는데, 아예 두부도 만들어 먹겠다고, 백태를 사오고, 콩물을 잘 내리는 이를 데리고 오라는 소리가 들렸다.
원종은 그런 들려오는 소리를 애써 외면했다.
***
“엉엉엉. 이게 먹고 싶었어요.”
“저도요. 정말, 이 삼지 숟가락을 쓸 일이 없어서 매일 닦기만 했다구요.”
“허허허. 녀석들 우리는 수군 생활을 안 겪어 본 줄 아느냐. 천천히 먹어라. 이놈들아 아무도 안 쫓아 오니.”
비금도에 전라 좌수영에서 운영하는 누전선이 와 닿았는데, 그 배에 타고 있던 훈련소 출신 아이들은 염전의 생활관에 와서 눈물을 흘리며 밥을 먹고 있었다.
“진짜 찬밥에 소금기가 살짝 들어간 주먹밥만 주는데, 도대체 어떻게 배를 탄 건가요?”
“어쩌긴 존나게 버틴 거지. 너희도 존버해야지. 그래야 선원이 될 수 있는 것 아니겠느냐. 하하하.”
염전에서 일하고 있던 수군들은 훈련소를 거쳐서 수군에 간 아이들이 달라진 환경에 억울해하고 슬퍼하는 것을 재미있게 보았다.
그리고 약을 올리면서도 아이들이 제대로 먹지 못한다는 걸 알기에 남는 밥을 가져다주었다.
“그런데, 경상 수영과 전라 수영에서 엄청나게 큰 배가 만들어졌다고 하던데, 얼마나 큰 거냐?”
“그게 누전선의 거의 3배 크기예요. 거기엔 아예 선창에 화포를 놓는 자리가 따로 있어요.”
“선창에 화포를 둔다고?”
“네. 선창과 갑판까지 해서 2열로 화포가 배치가 돼요.”
“허허 직접 보지 않으니 상상도 안 되는구나.”
“이제 건조는 다 끝났고, 조만간에 목포 선원학교에 보내진다고 했으니 타실 수 있으실 거예요. 이 대운선(大運船)을 보고 각 수영에서도 군선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말은 나오는데, 뭐 돈이 없어서 수영에서는 못 만들 것 같아요.”
“허허. 그 정도로 비싸고 큰 배라고?”
< 234. 먹는 가마니. > 끝
작가의말
사실 두부의 유래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썰이 있습니다.
전한의 유안이란 한고조의 후손이 만들었다는 썰과, 유목민이 만들었다는 썰, 인도에서 불교와 함께 들어왔다는 썰등.
여러 가지 썰이 있습니다.
오랫동안 내려온 음식이다 보니 썰도 많고, 여러가지 다른 이름으로 부르는 경우도 많은 음식이 두부입니다.
한마디로 복잡한 음식이라는 거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