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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쉐프 조선을 부탁해!-228화 (228/327)

< 228. 운명의 소용돌이. (2) >

“그러니깐 자네가 춘봉상단의 중국 교역선을 처음 만들 때부터 함께 했다는 것이지?”

경상의 대표로 권항필을 기방으로 불러낸 최홍서는 재차 확인하듯 물었다.

“네. 어디 제가 중국 교역선만 했겠습니까? 지금 육조거리에 있는 공랑 점포도 제가 만든 것이나 마찬가지이지요.”

권항필은 마치 자신이 춘봉 상단의 주춧돌을 놓았다는 듯이 공랑 점포를 만들 때와 중국으로 갔던 무역선에 대한 이야기를 자랑스럽게 쏟아 내었다.

그리고 그런 이야길 들은 기생들이 가패는 물론이고, 겨울에 입는 나이기온 옷이 좋다며 맞장구를 쳐주자 더 기분이 좋아졌다.

“요동 반도의 발해방이나 산동과 남경의 신라방 또한 제 인맥이나 마찬가지이지요. 저 멀리 말라카 왕국의 재상 뚠빼락 형님과는 허물없이 지내는 사이입니다. 크하하하.”

“오! 한나라의 재상과 형님 동생 하는 사이라니 이거 대단하구만.”

“왜 전원종 상단주가 저를 데리고 다녔겠습니까? 제가 비록 음서로 호조의 서리가 되었지만, 덕분에 서류로 하는 업무에는 저를 따라올 자가 없습니다. 전원종 상단주는 제가 없으면 서류 일도 제대로 하지 못했습니다.”

“오호라, 그렇구만.”

“더구나 전 상단주 혼자서는 유학자 적인 교우 관계를 맺을 수가 없기에 어디를 가든 저를 꼭 데리고 갔었지요. 으흠.”

권항필은 나름의 먹물을 먹은 사람이라고 자부심을 내비쳤다.

“하긴 그렇지. 사실 전 상단주가 제조의 벼슬을 하고는 있지만, 학문이 있는 것은 아니었지.”

“그렇지요. 그리고 어디 그뿐인 줄 아십니까? 제가 교역선에 싣고 가야 하는 상품도 일일이 조언을 해 준 것입니다. 제가 사옹원의 서리였지 않습니까. 그래서 말라카로 가야 할 때 도자기를 챙겨가자고 한 것입니다.”

권항필은 상 위에 놓여있는 대접을 들어 보였다.

“이런, 시중에 흔한 도자기도 말라카에 들고 가면 은 20냥짜리가 되게 됩니다.”

“으잉? 어떻게 그렇게 되는 것인가?”

은 1냥도 안 되는 대접이 20냥이 된다는 말에 최홍서는 숨이 넘어갈 뻔했다.

기방에 있는 도자기만 다 팔아도 몇백 냥이 생길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 동네에서 석가와 같은 종교의 수장이 있는데, 비싼 금은으로 된 그릇을 쓰지 못 하게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 도자기 그릇의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은 것이지요.”

“아니, 그럼 직접 만들면 되는데, 그쪽에는 기술이 없는 것인가?”

“흙이 다르다고 합니다. 그리고....”

권항필은 말라카는커녕 중국도 가본 적 없는 경강상인들에게 자신이 겪은 일이나 주워들은 이야기를 신나게 하기 시작했다.

상인들과 기생들도 처음 들어보는 이국의 이야기에 시간 가는 줄 몰랐다.

“그리고, 장안의 화제가 되고 있는 춘봉상단의 교환권. 그것도 제가 전장에 있으면서 모두 관할 하였지요. 크흠. 목이 마르는군요.”

“기랑아 어서 잔을 채워 드리거라!”

권항필은 나긋나긋한 기생이 따라주는 술잔을 들이키고 보니, 다들 자신의 입만 보고 있다는 사실에 너무 행복했다.

모두에게 주목받는 삶이 이런 삶이구나 하는 쾌감에 자신도 원종처럼 상계의 풍운아가 될 수 있고, 교역선을 몰고 다니는 기린아가 될 수 있다는 생각에 기분이 날아갈 것 같았다.

“이 춘봉 전장을 만들 때도 말입니다. 부원군(한명회)께 제가 직접 찾아갔었지요...”

***

“내 이야길 듣다 보니 허풍이 좀 있는 위인 같은데, 정녕 저치의 말이 맞느냐?”

“네 나리. 저희만 알아본 것이 아니라 내수사의 내관들과 중국에 갔던 역관들이 가진 정보로도 확인했습니다. 전원종 상단주가 산동 반도에서 조선으로 들어가려는 것도 막아가며 머나먼 말라카까지 데리고 갔었다고 역관들에게 재차 확인했습니다.”

“흐음. 그렇다면 품행에 비해서 재주는 있는 자로군.”

최홍서는 경상이라 불리는 경강상인 중에서 나름 연장자였기에 일을 주도하고 있었는데, 왠지 권항필에게 믿음이 가지 않았다.

춘봉 상단을 따라 전장을 만들고, 교역권이라는 것을 찍어 내는 일을 하고자 권항필을 모셔오다시피 했지만, 왠지 마음 한편이 서늘했다.

하지만 몇 번이고 다르게 확인했음에도 전원종 상단주가 어디를 가든 저자를 끼고 돌았다고 하니 믿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 일에는 원철 대감과 삼정승을 두루 거친 영의정 홍윤성이 뒤를 봐주기로 했기에 잘못될 일은 없을 것이라 믿었다.

“헌데 만상에선 아무 연락이 없더냐? 동래 내상은 여력이 없다고 하여 제외했지만, 만상은 여력이 충분할 터인데.”

“만상의 대방 홍득주는 참여치 않는다고 했습니다. 다만, 평양의 유상에서 참여하고 싶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그으래? 평양의 유상은 생각지도 않았는데. 날을 잡아 한번 보자고 하거라. 판에 끼려면 판돈이 필요하다고 전해주고.”

***

“단주님 그러니깐 사옹원의 일부를 전라도 강진 인근으로 옮길 것이란 말입니까?”

“그래. 대부분은 그대로 두지만 본자기를 만들 수 있는 도공들은 강진으로 옮길 것이다. 예전 고려 시대부터 도자기를 만들던 고장이니 가마나 고령토를 훑던 곳이 있을 것이다. 그런 곳으로 알아보거라.”

삼식이는 잘 돌아가는 사옹원을 분리하겠다는 원종의 말에 의구심을 가졌지만, 뭔가 이유가 있겠지 하는 생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예 도공들과 함께 가거라. 말라카에서 주문받은 청화백자를 다 만들었다고 하니 여유시간이 있을 것이다. 그러니, 관광 삼아 배에 태워 준다고 하면 도공들이 흔쾌히 강진까지 내려갈 것이다.”

“아하, 관광 삼아 간다고 눈을 속이라는 말씀이시지요?”

“하하하. 그래. 그거다. 이제는 하나만 말해도 둘을 알아듣는구나.”

눈치 없던 삼식이가 이제는 한 수 앞을 생각할 수 있는 눈치 빠른 상인이 되었다는 것에 원종은 기뻤다.

“본래 사옹원은 개인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곳이었지만, 처조부(신숙주) 덕분에 이제까지는 내 것처럼 썼었다. 허나, 이 청화백자가 돈이 된다는 걸 알게 되면 다시 돌려달라고 할 것이다. 그러면 우리만이 생산할 수 있었던 장점이 사라질 것이야.”

“하지만, 회회청(回回靑)만큼 토청(土靑)의 색을 밝게 하는 것은 우리만 알고 있지 않습니까요?”

“토청의 색이 어두운 것을 비소(砒素)를 넣어 회회청만큼 밝게 하는 것이 나름의 비밀이긴 하지만, 이것도 사옹원의 도공이라면 이제 다 아는 것이다. 사옹원의 운영을 조정에서 가져가면 금방 알려질 것이야. 하지만, 본자기는 다르다. 처음 만들 때부터 일반 도공들에게 기술을 가르쳐 주지 않았으니 비밀을 지킬 수 있을 것이다.”

“흠. 실력 좋은 도공들을 왜 강진 인근으로 옮기려고 하시는지 알아 들었습니다요.”

“그래. 그리고 목포에 선원학교를 위한 부지를 미리 사두도록 하거라. 최대한 넓게.”

“네. 아예 산 하나를 사서 준비를 해두겠습니다.”

원종은 가장 큰돈이 되는 사옹원 도공들을 빼돌릴 계획을 세웠고, 그다음으로 중요한 사람을 데리고 가기 위해 움직였다.

***

“선원학교의 화기박사(火器博士)가 되어 달라는 말입니까?”

원종이 찾은 이는 최무선의 손자인 최공손이었다.

선원학교를 단순한 선원을 키워내는 학교에서 사관학교로 바꾸기로 한 만큼 화기를 다루는 것이 기본이 되어야 했다.

“말라카를 같이 가보셨기에 아시지 않습니까? 위협적인 해적들과 싸우려면 화포가 있어야 한다는 것을요. 그리고 대월과 참파 왕국의 전쟁도 보셨지 않습니까? 그런 위험한 곳으로 가기 위해서는 화포가 있어야 합니다.”

“흠. 그건 동감합니다. 만약 저번 항해에 화포가 없었다면 인명이 많이 상했을 것입니다.”

“조선의 배가 그런 해적이나 전쟁이 벌어지는 곳을 헤쳐 나가려면 그만큼 강한 무력이 있어야 하고, 반드시 화포가 필요합니다. 그러니 선원들이 화포를 다룰수 있게 화기를 가르쳐 주십시오.”

최공손은 자신 집안의 가보와 같은 책을 찾아 준 은혜도 있었기에 원종의 말을 따르려고 했지만, 한양에서 3대째 살아오던 곳을 떠나야 한다는 생각에 고민을 할 수밖에 없었다.

“선원학교는 배를 수리하는데 필요한 조선(造船)을 배우는 과정과 화기를 전문적으로 배우는 화기 과정, 역관의 말을 전문적으로 배우는 통역 과정도 포함이 될 것입니다. 지금 조선에 있는 성균관 같은 경전을 배우는 곳과는 완전히 다를 것입니다.”

“흐음. 그럼, 중국 남경에 갔을 때 산동 반도에 있다는 초석 광산 이야길 같이 들었지 않습니까? 거기서 초석을 구해 오실 겁니까?”

“거기서 구해 오기도 하겠지만, 염초 밭도 같이 만들어 볼까 합니다. 그래서 초석만 제대로 구해진다면 화약을 충분히 만들어 훈련하면서도 화포를 발포할 수 있게 해드리겠습니다.”

“좋습니다. 선원학교의 화기박사로 가도록 하겠습니다. 가산을 정리하여야 하니 며칠만 기다려 주십시오.”

이제까지는 조정 관리들의 눈치를 본다고 화약을 제대로 쓰지를 못했었다.

하지만, 중국에서 초석을 들여오고, 염초 밭이라는 것을 만들게 된다면 화약은 아주 마음대로 쓸 수 있을 것 같았다.

“가산을 정리하지 않고, 몸만 내려가도 됩니다.”

“아닙니다. 그러면 미련이 생겨 다시 올라오려고 할 것이니 다 정리하고 가는 것이 맞습니다.”

원종의 최공손의 말을 듣고는 깨닫는 것이 있었다.

압구정동 인근에 만든 집도 그냥 상단의 건물로 돌려 버리고, 목포로 마누라와 함께 다 내려가기로 마음먹었다.

***

“염참군 혼자서 상선들을 이끌고 갈 수 있겠소?”

“네. 우리 배 12척은 이미 한번 다녀온 선원들이니 문제가 없습니다. 해적을 물리치고 얻는 배를 운용하기 위해 넉넉하게 사람들을 태웠으니 가는 동안 훈련시키고 하면 충분할 것이옵니다.”

원종이 선원학교 일을 맡아 같이 가지 못하니 말라카에서 주문받은 청화백자 교역을 염호진에게 맡길 수밖에 없었다.

“말라카에 우리 상관을 만드는데 알맞은 인물을 찾았다고?”

“네. 등잔 밑이 어두웠습니다. 공랑 점포의 직원으로 있던 이 중에 말라카 사람들이 쓰는 아랍어를 쓰는 이가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허허. 아랍어를 쓰는 이가 있을 줄은 나도 몰랐네. 어떻게 그런 자가 있었던가?”

“석달래란 자 이온데. 예전 고조할아버지인 석합지(石哈只)때 경주로 왔다고 합니다.”

합지(哈只 Hajj)라는 이름은 이슬람교를 믿는 무슬림 중에서 메카 성지순례를 완료한 이에게 붙는 칭호였으니 교역을 위해 경주로 왔다가 정착한 것 같았다.

“이야길 듣고 석달래를 직접 만나보니 조선 사람들과 피가 섞여 말라카에서 보았던 아랍인들과는 많이 달랐습니다. 하지만, 곱슬머리와 눈두덩이가 깊어 두건을 쓴다면 그리 크게 이질감은 안 느껴질 정도였습니다.”

“오호, 그럼 어찌 아랍어를 쓸 수 있다는 것을 알아낸 것인가?”

“대만 국의 나지쭈와 그 일행들이 참파에서 아랍어를 쓰기도 했는데, 공랑점포에서 그들이 하는 말을 듣고 석달래가 아는 척을 했답니다. 그래서 나지쭈와 어울리는 것을 사람들이 알아보고 묻자 아랍어를 쓸 수 있다고 했답니다.”

“하하하. 이거 나지쭈를 잘 데리고 왔구만.”

“네. 그리고 나지쭈에게는 서얼이기는 하나 양반가에서 자란 여인을 베필로 붙여주었기에 이번에 갈 때 같이 가서 혼례식을 올려주기로 했습니다.”

동남아의 대만을 생산거점 및 기항지로 만드는 작업의 바탕작업이 착착 진행되고 있었다.

“석달래를 데려가 말라카에서 우리 상관을 운영하게 하고, 될 수 있으면 아랍 상인들과 어울려 아프리카의 모가디슈까지 가는 것을 알아보게 하게. 가배차라 불리는 고피(coffee) 씨앗을 가져올 수 있게 자금을 넉넉하게 주게나.”

“네 헌데, 단주님이 주신 그 지도에 따르면 모가디슈까지의 거리가 너무 멀기에 몇 년이 걸릴 수도 있습니다.”

“알고 있네. 정화 태감보다 더 멀리 갈 수도 있는 길이니 내 따로 그에게 포상도 할 것이야.”

커피는 아프리카의 에티오피아 고산지대가 원산지인데, 그 옆 나라인 소말리아의 모가디슈까지 가기만 한다면 충분히 구해 올 수 있을 터였다.

물론 에티오피아의 고산지대와 소말리아 모가디슈의 거리가 한반도 종단 거리에 육박했지만. 그래도 커피가 가진 상품 가치를 알기에 석달래를 보낼 수밖에 없었다.

청화백자 도자기로 독점적 수익을 거두어 들이는 것은 아마도 두세 번, 최대로 다섯 번 정도 선단을 보내는 것이 한계였다.

그 이후로는 다른 상단과 나눠 먹어야 하기에 이익이 대폭 줄어들 터였다.

그 이후를 커피와 녹차, 홍차 같은 소비재 상품으로 시장을 준비해 가야 했다.

< 228. 운명의 소용돌이. (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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