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4. 교환권. (2) >
“투전판에 패물이나 노리개를 들고 가면 이것들이 가격을 제대로 안 쳐주지 않는가.”
“그렇지.”
“그래서 난 이 교환권이라는 것을 패물이나 금, 은 대신에 한번 투전판의 판돈으로 태워 보려고 하네.”
“교환권을? 가수저라(카스테라)라는 단맛 나는 것을 사 먹는 교환권을 누가 판돈으로 인정해 주겠는가? 차라리 저화(楮貨)가 나을 거네.”
“그럴 수도 있겠지만, 한번 들어 보게나. 이번에 육조 거리에 생긴 육조 장터에서는 이 교환권으로 밥도 사 먹을 수 있고, 춘봉 상단에서는 이걸로 곡식까지 교환할 수 있다고 하네.”
“그래? 그러면 그게 저화와 무슨 차이가 있는 겐가? 그냥 저화와 같지 않은가? 그렇다면 그 교환권도 나날이 가치가 떨어지는 저화와 같아질 것 같은데.”
“나도 그렇게 생각해서 처음엔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었네. 헌데, 춘봉 상단이 만든 춘봉 전장 앞을 지나는데 매일 아침 교환권의 가치를 써서 밖에서 볼 수 있게 해놓았더군. 오늘은 교환권 1장에 보리 반 말(약 9리터)로 교환이 된다고.”
“오, 그런 교환비를 써두었다면 괜찮은데.”
“그리고, 교환권이 총 몇 장이 교환되어 나갔는지도 같이 쓰여 있었네.”
“응? 교환권의 총 장수를 알려 준다고? 오. 그건 저화와는 좀 다르구만. 조정에서는 몇 장이 풀렸는지를 알려주지 않으니. 그러고 보면 교환되는 장수를 알 수 있으니 그 가치가 그대로 유지가 될 수도 있겠구만.”
“맞네. 저화처럼 마구잡이로 찍어내지 않는다면 그 가치가 유지될 것이네. 뭐, 시간이 지나면 저화처럼 마구 찍어내게 되겠지만 그렇게 되기 전까지는 우리가 써먹을 수 있지 않겠나?”
“그 총 찍어내는 숫자를 속이지만 않는다면야 가치가 덜어지지 않을 테니 자네 말처럼 써먹을 수 있겠어. 매일 가서 장수를 확인하면 되니.”
“제일 중요한 것은 가격이 매일 공시가 되니 패물이나 노리개를 도당에서 바꾸지 않고, 전장에서 교환권으로 바꾸게 되면 투전판에서 가격 후려치기를 안 당할 것이라는 거 아니겠는가?”
“그렇지. 내가 판을 쓸어 땄을 때도 그 값어치를 계산하기도 쉬울 것 같고.”
“그럼, 말 나온 김에 그 춘봉 전장이라는 곳에서 교환권으로 바꿔서 가보세나.”
***
“아니. 김 선비님. 이 천 쪼가리가 무슨 판돈이 된다는 겁니까? 이게 저화라도 된다는 말입니까? 이런 걸 판돈에 태우실 거면 그냥 돌아가십쇼.”
“허허. 이게 저화보다 더 좋은 거라니깐. 넌 춘봉 전장에 안 가봤냐? 거기에 보면 오늘 교환권 1장에 보리 반 말로 교환해 준다고 쓰여있어. 그러니 이 4장이면 보리 두 말이니깐 판돈이 되는 거야.”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말입니까? 어찌 이런 천 쪼가리 두 장이 보리 두 말이 되는 겁니까?”
“아 글쎄 된다니깐!”
도당에서 판잡이를 하는 쇠돌이는 말도 안 된다며 패물이나 곡식 없이 온 선비들을 내쫓으려 했다.
“응? 교환권으로도 판에 끼워주는 거라면 나도 있네. 나도 끼워주게. 가패에서 쓰고 남은 게 있는데, 어떤가?”
다른 판에 있던 선비도 교환권 소리에 자신도 있다고 끼고 싶다고 이야길 하니, 쇠돌이는 도당의 우두머리인 철용이를 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철용이의 고개가 위아래로 움직이자 춘봉 전장의 교환권은 매일 공시되는 그 가격 그대로 투전판에서 쓰이게 되었다.
***
“이거 오늘 대운, 대길이 내게 들었구만. 크하하하”
북악산 샘물을 떠 물장수 일을 하는 창정이는 오랜만에 온 대운에 웃을 수밖에 없었다.
근 한 달 만에 대운이 들어 판을 휩쓴 것이었다.
그리고 예전 같으면 판을 쓸더라도 패물이며 금붙이 은붙이를 바리바리 챙겨 자리를 뜨기 힘들었는데, 교환권이 판돈으로 쓰이기 시작하면서 쉽게 판 돈의 정리가 가능해졌다.
“아니, 이 인간이 집에 일찍 온다고 해놓고는 이제 오면 어쩌하우! 응? 이건 뭐요?”
창정의 처 박 씨는 잔소리를 한바탕 쏟아부을 작정이었는데, 창정이가 내미는 것이 뭔가 싶어 입을 다물었다.
“임자. 이게 춘봉 상단에서 쌀을 교환해 준다는 교환권이네. 이걸로 제사상에 올릴 쌀이나 사게.”
“아니, 이런 천 쪼가리로 무슨 쌀을 준다는 거예요? 비단으로 되어 있어서 곱기는 하다만, 이렇게 다 조각이 난 비단으로 무슨 쌀을 준다고 이걸 내밀어. 어디서 속은 거 아니야? 어이구 이 화상아, 내가 못 살아 진짜!!”
“아니라니까 임자. 진짜라니깐. 거기 쓰여있는 글이 있어서 이걸 들고 춘봉 상단에 가면 곡식으로 바꿔준다니깐. 진짜라니깐.”
처 박 씨는 긴가민가했으나 서방이 진짜라고 몇 번이나 강조하며 말을 하자 미워도 제 서방이라 믿어볼 수밖에 없었다.
다음 날 박 씨는 아침 일찍 춘봉 상단으로 향했는데, 뭐라고 쓰여있어도 글을 몰랐기에 사람들에게 교환권으로 진짜 곡식을 살 수 있는지 물었다.
“언문을 아예 모르는가 보구만. 옆에 전장으로 가서 언문을 모른다고 하면 종이에 백미, 보리, 콩을 써준 것을 줄 것이네. 거기서 곡식 이름이랑 숫자는 배워오게나.”
박 씨는 달라는 곡식은 안주고 언문을 배우라는 말에 화딱지가 나 집에 가서 남편을 쥐잡듯이 잡을까 싶었지만, 혹시 몰라 전장으로 향했다.
“오, 곡식 언문을 배우러 온 사람 세 명이 채워졌군.”
전장에서는 사람이 모이면 가장 기본이 되는 교환권, 백미, 보리, 콩 이 네 가지 단어와 숫자를 알려주었는데, 바로 옆에 써 둔 그날의 교환권 시세를 확인할 정도만 딱 가르쳐 주는 것이었다.
“알 거 같습니다. 알 것 같아요. 그러니 이게 교환권 한 장에 보리 반 말 이라는 뜻이죠?”
“맞네. 이 종이를 받게. 위에 순서대로 교환권, 백미, 보리, 콩이라고 쓰인 언문이네. 아래는 일부터 십까지 숫자가 쓰여있네. 집에서도 이걸 보고 교환권을 보는 방법을 외우게나. 그러면 언제든 시세를 확인할 수 있을 거네.”
“아이고, 이 귀한 종이까지 주는 겁니까?”
박 씨는 이 교환권이란 천 조각으로 진짜 곡식을 살 수 있다는 것을 확인했고, 숫자를 배우자 매일매일 바뀌는 시세도 알게 되었다.
‘잠시만, 지금은 춘궁기라 곡식값이 비싸지만, 나중에 가을이 와서 수확기가 되면 곡식이 늘어나서 가격이 떨어지게 되잖아. 그럼, 그 시세대로 곡식을 바꿔 먹을 수 있다는 거잖아.’
나름 총기가 있던 박 씨는 춘봉 상단과 전장에서 발행한 이 교환권의 가치와 계절 시세에 따라 곡식의 양이나 가치가 달라진다는 것을 바로 깨달았다.
지금 백미 한 가마를 바꿔가기보다는 가을까지 교환권을 들고 있다 쌀값이 떨어져 한 가마 반의 시세가 되었을 때 바꾸면 이득이라는 걸 깨달은 것이었다.
박 씨는 남편이 준 15장의 교환권 중 다섯 장만 써서 백미와 콩을 바꿔 집으로 왔고, 교환권 10장은 소중하게 간직했다.
그리고 매일 아침이 되면 춘봉 전장이나 상단 앞으로 가서 가격이 공시되는 걸 보기 시작했고, 사람들에게 언문으로 곡식 이름을 보는 법과 한자와 아라비아 숫자를 보는 법을 알려주기 시작했다.
***
“냄새가 나는구만 냄새가 나.”
“무슨 냄새 말입니까요?”
춘복이는 최부자 최권영의 냄새가 난다는 말에 자신의 몸을 킁킁거렸다.
“그 냄새가 아니라 돈 냄새가 난다는 말이다. 내가 일주일째 춘봉 전장을 보고 있는데, 점점 드나드는 사람이 늘고 있어.”
속칭 최부자라 불리는 최권영은 육조 거리 옆에 만들어진 장터에도 가보았고, 거기서 쓰이는 교환권을 보며 이게 돈이 되리라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교환권을 바꿔준다는 전장에 드나드는 사람들이 늘어나자 왠지 가패를 했을 때처럼 끼어들면 무조건 된다는 확신이 들었다.
최권영은 홍삼을 준비해서 원종을 찾았다.
이제까지 가패나 국숫집을 쉽게 허락해 준 것처럼 교환권에도 참여를 허락해 줄 것이라 생각했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안타깝게도 이게 나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네. 처의 외조부께서 같이하는 것이라 내가 어떻게 더 허락을 해줄 수가 없네.”
“처의 외조부시라면... 상당부원군(한명회)이시군요.”
“맞네. 그분과 함께 하는 일이라 이미 몇몇이 찾아왔지만, 끼워 줄 수가 없다네.”
눈치 빠른 몇몇이 이미 다녀간 것 같았지만, 한명회가 이미 선점을 했다면 뭘 어떻게 해볼 수가 없는 일이었다.
다른 이가 끼어 있다면 안면 있는 벼슬아치들에게 도움을 요청해 어떻게든 같이 나눠 먹자고 운이라도 띄워볼 수 있었겠지만, 한명회는 그럴 수 없는 존재였다.
‘이거, 한명회가 혼자 먹을 심산이로구만.’
최권영은 물러나면서도 방법을 궁리해봤지만, 방법이 없었다.
왕인 성종에게 고한다고 해도 장인인 한명회를 어떻게 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맛있는 밥이 잘 익어가며 좋은 냄새를 풍기고 있었지만, 그 수문장을 넘을 수 없었기에 욕심이 있었음에도 최권영은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저 자신이 운영하는 가패와 국수 가게에서 교환권을 받아들여 모으고, 밀가루와 같은 재료를 춘봉 상단에서 구매할 때 쓸 뿐이었다.
이런 최권영처럼 교환권 사업이 돈이 된다는 걸 알아챈 이들이 나타났지만, 다들 한명회가 뒷배라는 소리에 최권영처럼 들이대는 것조차 포기해 버렸다.
***
본래 이 화폐 발행만큼 떼돈을 버는 장사는 없었다.
그래서 유럽에서는 주화 발행으로 얻는 이익을 시뇨리지(seigniorage)라고 하는데, 이 말 자체가 영주(시뇨레)의 특권이익이라는 뜻이었다.
그리고 이 이익은 마르지 않는 샘물과 같았다.
주화 화폐를 발행해서 끊임없이 공급해도 돈이 돌면서 숨어들고 보관의 목적이 되다 보면 축재가 되어 늘어난 표시가 잘 나지 않게 되니 계속 발행해도 계속 이익을 얻을 수 있다는 말이었다.
이런 이익을 알고 있는 원종이었지만, 처음 찍어 만든 은 2,400냥에서 더는 찍어내지 않고 있었다.
초반에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하면 고려말, 조선 초에 있었던 저화(楮貨)처럼 가치가 추락할 것이 뻔했기 때문이었다.
저화(楮貨)와 동전 통보가 조선에서 실패한 원인이 여럿 있겠지만, 가장 큰 것은 조정 대신들에게 강제로 녹봉으로 저화를 지급했다는 것과 공식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사용처를 만들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매 분기 저화로 관리들에게 녹봉을 지급했는데, 정기적으로 풀려나오는 저화는 있으나 그 저화를 조정에서 회수하지 않았다는 것이 가장 큰 원인이었다.
그렇게 유통되는 저화의 양이 늘어나자 인플레이션이 발생해 저화의 가치가 떨어질 수밖에 없었고, 물건을 파는 상인도 가치가 떨어지는 것이 보이는 저화를 받을 때 미리 본래 가격보다 낮춰서 저화를 받아 버렸다.
그렇게 세종 1년(1419년)에 저화 한 장에 쌀 석 되의 가치가 세종 3년에는 저화 한 장에 살 두되, 세종 4년에는 저화 석 장에 살 한 되가 될 정도로 가치가 폭락했었다.
이 저화를 조정에 가져갔을 경우에 세금이나 방납으로 받아주었어야 했는데, 조정에서는 저화로 세금을 받지 않았으니 제대로 쓰일 곳이 없는 저화의 가치는 더 떨어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었다.
이런 저화의 실패를 거울삼아 원종은 교환권을 공식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상단과 전장, 장터와 같은 가게를 만들어 그 효용성과 보급, 신뢰성을 구축한 것이었다.
더불어, 알게 모르게 투전판의 도당이나 부자들이 시세 차익을 노려 축재까지 하기 시작하자 교환권의 수량이 부족해지기 시작했다.
< 224. 교환권. (2) > 끝
작가의말
사실 투전(鬪牋) 혹은 투패(鬪牌) 라고 불린 도박은 인조 때 즉 1600년 초중반에 중국을 통해 들어온 것이라고 추정합니다.
그래서 인조 때는 엽전 통보로 도박을 했습니다.
물론, 패물이나 금, 은 덩이로도 했구요.
장희빈의 5촌 당숙이자 중국 역관인 장현이 명나라에서 동관패란 도박을 배워왔는데, 이것이 조선 도박의 시초로 보고 있습니다.
이 동관패는 원나라때 만들어진 마조(马吊, 馬弔)의 한 갈래가 아닌가 추정합니다.
그 이전에는 제대로 된 룰을 가진 도박이라는 것이 조선에 없었다고 합니다.
장현은 배워온 동관패가 장수가 많고 룰이 복잡하여 간소화 시켰고, 이후 여러 가지 방법의 도박이 만들어 져 투전이라 불리게 됩니다.
투전은 조선 말기 일제 치하까지 인기가 있었는데, 일본의 화투가 들어오며 고스톱의 인기에 묻혀 사라졌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 투전의 게임 방법은 숫자가 있는 화투에 그대로 입혀 졌습니다.
‘섯다’나 ‘도로짓고 땡’이 투전 때 생긴 게임으로 화투패에 그대로 남아 지금도 사람들이 즐기고(?) 있습니다.
원나라 때 만들어진 이 마조(马吊, 馬弔) 카드 게임은 중동과 유럽의 문화까지 다 섞이며 만들어져 나온 것으로 전 세계적인 영향력을 남겼습니다.
조선에서는 투전으로, 중국에서는 마작으로 일본에서는 화투로 발전하게 됩니다. 당연히 유럽에서는 트럼프 카드가 남겨지게 된 겁니다.
칭기즈칸 형님이 대륙통합 하시면서 도박도 만들어내신 것입니다.
그리고, 카드와 쌍벽을 이루는 주사위 도박은 당나라의 엽극이 그 원조로 추정된다고 하는데, 중국 쪽의 문헌에 따른 것이라 진짜인지는 확인이 사실 불가능 합니다. ^^
ps : 본 글에서는 장현이 들고 온 기록에 있는 동관패 도박이 아닌 원나라 때 몽골인이 직접 들고 들어온 도박이 조선에 있었다는 것으로 설정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