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쉐프 조선을 부탁해!-223화 (223/327)

< 223. 교환권. (1) >

“장터거리 조성에 배정된 예산의 반으로 땅을 매입할 수 있었고, 목장을 구해서 건설을 할 수 있었습니다.”

“예산의 반? 어떻게 그렇게 저렴하게 한 건가? 육조 거리 앞이기도 하고, 가패와 그 인근에 송상이나 최권영이 차린 가게가 많을 터라 비쌀 것 같았는데.”

“네. 바로 그 번잡함의 덕을 보았습니다. 애초에 나고 자란 땅을 떠나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오히려 그 반대였습니다. 주위가 번잡하게 변하다 보니 토박이들이 시끄러워 살기 힘들다고 쉽게 팔아 주었습니다.”

이런 일을 부드럽게 처리한 오추는 사냥꾼 출신이었지만, 공랑점포를 맡으며 제법 경륜을 쌓은 것 같았다.

“그렇군. 하긴, 유동 인구가 늘어나고 해서 시끄러울 만도 하겠지.”

가패와는 직선거리로 100m 정도 떨어진 곳의 집 6채를 밀어 버리고는 ‘육조 장터’를 만들고 있었는데, 울타리를 치고 사람들이 앉을 수 있는 탁자와 의자를 설치하고 있었다.

도성 한복판에 이렇게 울타리를 만드는 가게는 처음 본다며 다들 궁금해했다.

“헌데, 어떻게 이런 형태의 가게를 생각해 내신 것입니까요? 한쪽의 판매대에서 음식을 사서 공용으로 쓰는 의자와 탁자에 앉아 먹는다는 것은 생각지도 못한 장사 방법 입니다요.”

오추는 경회루 1층에 만들어졌던 장터를 보지 못했기에 궁금해했다.

이 장터의 아이디어는 길거리 음식에서 따온 것이지만, 그 형태는 마트나 백화점 내에 있는 푸드코트(food court)와 같은 방식이었다.

처음에는 말 그대로 난장에서 파는 길거리 음식을 생각했으나, 아직도 조선은 개개인이 마음대로 난장을 펼칠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조선 초 수도를 한양으로 옮기며 상인들에게 공랑 점포를 이용하게 하였는데, 상인들에게 임대료를 받으며 그들에게 내건 조건이 임의로 생기는 사설 난장의 엄금이었기 때문이었다.

공랑 점포 상인들의 권리를 보호해준다는 미명 아래 조정에서 정해준 시장 외에는 열리지 못하였기에 이런 울타리를 치고 울타리 안에서 푸드코트를 운영하는 방식을 취할 수밖에 없었다.

문경새재의 여관에서도 쓰는 방식으로 울타리를 친 땅까지 ‘육조 장터’란 가게의 앞마당에서 장사하는 것이기에 난장이 아니라는 법의 허점을 노리는 것이었다.

“10개의 판매대 자리 중 우리가 다섯 개를 가지고 나머지 다섯 개는 외부에서 들어오고 싶다는 상인들에게 삼 개월 계약으로 빌려주게나. 대신에 거래의 수단은 반드시 교환권으로 해야 한다고 약조 받고.”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원종은 국밥을 파는 판매대와, 당수육, 호떡, 오뎅꼬치, 닭꼬치 판매대를 일일이 점검했고, 철금이에게 지도받은 조리사들이 직접 만든 음식도 먹어보며 조언을 해주었다.

***

“아 글쎄. 이 장터 가게 안에서는 무조건 이 교환권으로만 음식을 사 먹을 수 있소이다. 저기 양반들 안보이슈? 가패에서 쓰던 교환권을 그대로 써서 호떡을 사 드시고 있잖소.”

“그럼 가패에서 쓰던걸 여기서도 바로 쓸 수 있다는 거요?”

“물론이요. 춘봉상단의 상점에서도 쓸 수 있으니 지금 여기서 다 못쓴다고 해도 춘봉상단에 가서 곡식이나 다른 물품을 사는데 쓸 수 있소이다.”

“하지만, 그래도 저 천 조각 같은 것으로만 무조건 바꿔야 한다고 하니 거부감이 생길 수밖에 없구료.”

“그건 어쩔 수가 없소이다. 다른 가게들을 보시오. 서로 포목의 길이나 두께가 다르다고 싸우고, 곡식으로 거래하는 이는 궤(櫃)가 차이 난다고 서로 궤가 크니 작니 가격을 다투고 있잖소. 음식을 팔면서 저렇게 흥정에 시간을 들이면 어찌 음식을 해줄 수 있겠소.”

“하긴 그렇지만, 그래도 너무 정이 없는 것 같소이다. 호떡 하나 사 먹기 위해 교환권을 바꾸는 수고를 해야 하니.”

“설탕이 듬뿍 들어간 호떡을 맛보려면 어쩔 수 없소이다. 그리고, 호떡을 먹어보려면 어서 가봐야 할거요. 아침부터 다들 호떡과 닭꼬치에 줄을 서서 먹고 있어서 다 떨어질지도 모르오.”

“헉! 그럼 빨리 교환권부터 바꿔야 하겠구만.”

육조 장터의 곳곳에 이런 안내원이 서 있었는데, 이들은 교환권에 대한 안내뿐만 아니라 탁자에서 먹고 난 이후의 그릇 수거와 쓰레기 정리까지 하고 있었다.

이런 안내원들의 활동과 이미 가패에서 교환권을 임시로 써본 이들, 그리고, 경회루 장터에서 성종이 좋아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양반들이 거부감 없이 교환권으로 교환해서 먹거리를 사 먹고 있었다.

“무청으로 만든 국밥이 시장에서 먹는 국밥의 전부인 줄 알았는데, 이리 돼지고기가 들어 가 있는 국밥일 줄 몰랐구만. 그 선농단에서 먹는다는 그 탕과 비슷해 보이는구만. 허연 국물이 닮았어.”

“맞아. 나도 그 탕을 봤지. 뽀얀 국물이더라고.”

“그런데, 돼지는 노린내가 많아 소에 비해 맛이 없다고 들었는데, 그것도 아닌가 보이.”

“그러게. 여기 순대도 들어가 있고, 이거 꽤 먹을 만 하구만. 이 작은 새우젓을 고기와 같이 먹으라고 하던데 이렇게 따로 주는 것도 신기하고.”

“새우젓뿐만이 아니야. 같이 나오는 초절임 무도 맛이 있고, 김치도 시원한 것이 아주 좋구만. 이런 국밥집이 있다면야 매일 올 수도 있겠어.”

오군영에서 육조에 나와 있던 병졸들이 삼삼오오 모여앉아 국밥을 먹고 있었고, 다른 탁자에서는 아전들이 당수육을 시켜 조밥과 먹고 있었다.

“이리 신맛이 나면서 달짝지근하고, 짭조름한 양념이라니 이거 먹어보지 못했다면 믿지 못할 맛이로구먼. 고기를 튀겨서 양념에 먹으니 든든하기도 할 것 같고. 난 다 마음에 드네.”

“그래도 난 마음에 안 드네. 이렇게 한 상에 다 같이 먹는 것이 영...”

“이보게 이건 한 상도 아니고 독상도 아닌 미묘한 상이네. 이 쟁반 같아 보이는 게 상이네. 아래를 보게나.”

턱수염이 길게 난 아전은 밥과 당수육이 올려진 쟁반을 살짝 들어 보았는데, 쟁반 아래에 한치(약 3cm) 길이의 다리가 달려 있었다.

“이 다리 짧은 것도 상다리라고 한다면 우리는 독상을 받은 거네. 그런 독상 4개를 이 탁자에 올려서 같이 먹게 한 것이니 한 상이면서도 독상인 미묘한 독상이 된 것이네.”

“편법이지 않은가. 예의범절을 이리 교묘하게 때우려 하다니.”

“자네는 의전을 따지는 일을 하니 그런 것이네. 난 편법이라도 이걸 상으로 보기에 독상을 받은 거라 생각하네. 그리고, 보게나. 다들 탁자를 하나씩 차지하고 먹었다면 사람들이 다 앉아서 먹을 수 있었겠나?”

“하긴. 그렇지. 그리고 이렇게 마주 앉아서 이야기도 못했을 거네. 밥 먹을 때 침이 좀 튀긴 하지만, 대화 하면서 먹는 것도 나쁘지 않구만. 이런 것도 저 철금이라는 수라간 출신 숙수가 고민해서 이 상을 만들어 낸 것이겠지.”

육조에서 일하는 아전들은 나름의 의전을 매일 챙기다 보니 이런 독상에 대한 것에 민감했는데, 개인별로 음식이 담겨 나온 쟁반에 다리가 달려 있었기에 이걸 개별 독상으로 봐야 하는 건지 언쟁이 있었지만, 다들 문제를 제기하지는 않았다.

이 쟁반 상은 원종과 철금이가 머리를 맞대고 만들어 낸 아이디어였는데, 이 쟁반이 푸드코트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혼자이면서도 함께 먹는 그런 테이블 문화를 처음으로 도입한 것이었다.

쟁반 상이 추가되어 일일이 안내원들이 쟁반 상을 치우는 일이 추가되었지만, 한 개 탁자에 4명을 받을 수 있다는 것에 의의가 컸다.

그리고 호떡이나 닭고치, 오뎅의 경우에도 길에서 서서 먹는 것을 천하게 보았기에 모두 다 탁자에 쟁반 상을 받아먹었으니 쟁반 상으로 합석을 시키는 것도 가능했다.

물론, 같은 신분의 사람들과 앉혀야 하는 것이 문제이긴 했다.

원종은 가득한 탁자와 줄을 서 있는 사람들을 보았지만, 뭔가가 아쉬웠다.

장터는 사람들의 인기를 끌며 성공한 것 같았지만, 중요한 뭔가가 빠진 것 같았다.

“아 알겠다. 음료 파트구만.”

“네?”

“장터에 부족한 것이 먹고 난 이후에 즐기는 차(茶)가 없다는 것일세. 국밥 한 그릇 먹고 나갈 때 요구르트 나 맥슴 모카실버 한잔으로 마무리를 딱 때려야 하는데.”

그러고 보니 이제 요구르트도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말라카에 오는 이슬람 상인을 통해 아프리카 동북부에서 나름 퍼지고 있을 커피를 가져오는 것도 가능할 것 같았다.

“단주님이 하시는 말씀을 못 알아듣겠습니다요. 그게 무슨 말입니까요?

”그런게 있네. 우선은 뭘 먹고 난 이후 마실 차를 준비해 보세나.“

“헌데, 차까지 제공하게 되면 일손이 부족하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차를 제공하게 되면 가패의 장사가 안될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영향이 있을 것 같은데요.”

“그럴 수도 있겠지. 허면, 가패에서 팔지 않는 차를 주도록 하세나.”

원종은 조청을 만들던 작업장에 가서 차를 끓이기 시작했다.

고급 차는 찻물을 일일이 넣고 다기를 씻고 해야 하는 것이 필요했지만, 쉽게 끓여 낼 수 있는 우엉, 민들레, 울금, 생강차는 큰 통에서 끓여서 잔에 내줄 수도 있는 차였다.

“그리고 가패의 참렬이에게 가서 오늘 만든 번 중에서 남는 번을 가져오라고 하여라. 육조 장터의 빈 판매대에서 번도 팔아보자꾸나.”

현대처럼 ‘물은 셀프’라며 차는 알아서 마시게 해둘까 했지만, 아직은 그 정도로 외국 매너를 적용할 시기가 아니었다.

“아차! 그러고 보니 좋은 수출품을 내가 모르고 있었구나.”

차를 우려내며 생각하다 보니 도자기 다음으로 많이 거래되었던 홍차도 만들어서 수출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실제 보스턴 차 사건 같은 경우를 봐도 동양 특히 인도와 중국에서 재배된 차들이 영국과 신대륙에 수출되었던 양이 엄청났다.

전남 보성이나 제주도 쪽으로 차밭을 만들어 수출품으로 만든다면 도자기에 치우친 수출품의 다변화도 가능할 것 같았다.

특히나 이건 중국과의 거래는 없고, 오로지 동남아시아와 유럽 쪽으로 나가는 수출품이었기에 앞으로의 미래가 기대되는 상품작물이었다.

“장터 덕분에 할 일이 또 떠올랐구나. 어서 끓인 차를 옮기거라.”

***

“번을 가져 왔습니다요.”

“흐음.”

오추의 연락을 받고 가패에 고용된 직원이 번을 가지고 왔는데, 그냥 번을 보자기에 싸듯이 들고 온 것이 괜히 눈에 거슬렸다.

사실 조선의 위생을 생각해 보면 빵을 가져올 때 보자기에 싸 온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하지만 나름의 현대적 관점의 위생관을 가지고 있기에 이렇게 번을 다 섞어서 들고 오는 것이 좋게 보이지 않았다.

“배달통을 만들어야 하겠구만.”

지금 당장은 가패에서 구워지는 빵을 장터에서 팔기 위해 들고 오는 상자 같은 통이 필요했지만, 배달도 염두에 두고 있던 원종은 배달통부터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중국집처럼 손에 들고 가는 사각 형태와 그런 사각형의 통을 짊어질 수 있는 지게도 따로 만들면 될 것 같았다.

거기다 혼자서 다 못 드는 경우에는 두 명이 지게 형태로 통을 지고, 손으로는 배달 가마를 들어 옮기는 형태까지 원종의 머릿속으로 아이디어가 솟구치기 시작했다.

***

“육조 거리에 가니 묘한 게 있던데. 자네 춘봉 상단의 교환권이라는 거 들어 봤나?”

“교환권? 그거 가패에서 가수저라(카스테라) 사 먹을 때 한번 써본 적이 있네. 그런데 그게 왜?”

“이게 꽤 재미있게 쓰일 것 같아서 말이야.”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인가.”

북촌의 거리를 걷고 있던 두 선비가 크게 이야기 하는 소리에 길을 지나다니는 이들이 길옆으로 몸을 피해 걸었는데, 다들 이 둘을 알아보는 것 같았다.

이 둘은 동네에서 소문난 선비들이었는데, 학문이 높거나 그 품행이 방정(方正)해서 소문이 난 게 아니라, 파락호로 소문이 난 이들이었다. 이들은 과거 준비 보다는 도당(徒黨)을 모아 투전이나 골패를 하는 것으로 시간을 보내는 이들이었다.

“그래서 오늘은 집안에서 패물 좀 들고 왔나? 저번에는 쩐이 부족해서 일찍 일어났지 않았는가.”

“그래서 이 교환권이라는 것이 꽤나 재미있게 쓰일 것 같다고 한 것이네.”

< 223. 교환권. (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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