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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쉐프 조선을 부탁해!-202화 (202/327)

< 202. 그의 선택. >

“자네의 선택에 따라 이번 무역으로 얻은 수익이 조정의 것이 되거나 아니면 춘봉 상단의 자본이 될 것이네.”

원종의 말에도 염호진은 이게 무엇을 말하는지 이해하기 힘들었다.

“그러면, 착복을 하시겠다는 말씀이십니까?”

“착복? 착복이라... 원래 조정의 돈을 훔치는 것을 착복이라고 하는 것인데, 지금 우리 선단에서 조정의 것이 있는가? 조정의 것을 훔치는 것이 아닌데 착복이라 할 수 있는가?”

염호진은 원종의 말을 듣고 생각해보니 조정 소유의 배도 없었고, 교역할 때 조정에서 받아온 물건도 없었다.

조정에서 상으로 누전선을 받긴 했지만, 그 또한 개인의 능력으로 수여 받은 것이었으니 원종의 말처럼 조정에서 받은 게 없었고 조정의 재산은 없었다.

“하지만, 저나 수군들이나 모두 적을 조정에 두고 있지 않습니까? 그리고 제조 어른도 조정의 녹을 먹고 있지 않습니까? 지금 이 곳에 온 것도 주상전하께 마패를 받아 온 것이구요. 아닙니까?”

본래부터 후추를 좋아하는 성종에게 알랑방귀를 뀌어 후추를 찾으러 가겠다고 하면서 교역의 밑밥을 깐 것은 원종 본인이었지만, 결과론적으로는 마패를 받고 후추를 사러 온 것이니 염호진의 말도 맞았다.

“자네 말이 맞아. 하지만, 교역 수익은 내가 만들어 온 도자기네. 내 개인 재산이라는 말이지.”

“제조께선 관인이지 않으십니까? 공적인 일을 하면서 사사로이 수익을 얻을 수도 있겠지만, 그것을 속이면 안 되지 않습니까?”

문과에 비해 유교 경전을 보는 것이 작긴 하겠지만, 어렸을 때부터 유교 경전을 보고 무과를 통해 벼슬을 받은 사람이다 보니 이런 중앙집권적 충효의 도리에 충실했다.

“그렇지. 헌데 모든 관원들이 그렇게 하던가? 자네의 상관이던 원철이 그렇게 하던가? 자신의 상관이던 사람은 사적인 이익을 보고 있지 않았나. 그리고 그것을 조정에 보고 하던가?”

“원철 대감은 탐관오리이지만, 제조 어른은 다르지 않습니까?”

“암. 다르지. 원철이나 다른 탐관오리들은 사적 이익을 모두 자신의 배를 불리는데 사용하지만, 나는 사적 이익으로 교역하는 배를 늘리고, 섬에서 고생하고 있는 뱃사람들을 고용해서 힘든 삶에서 구해주려고 하니 다르지. 하지만, 결국 사적 이익을 조정 몰래 챙기는 것은 같네.”

결국, 사적 이익으로 무엇을 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는 말에 염호진은 할 말을 잃었다.

“그리고 내가 교역 수익을 속이지 않고, 조정에 세수로 수익금 모두를 납부하게 되면 그 돈이 다시 뱃사람들에게 돌아올 것 같은가?”

“...아마도 돌아오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큰 수익을 보았으니 이런 상행을 더 할 수 있게 조정에서 지원해 주지 않겠습니까?”

“그래. 지원해 줄 수도 있겠지. 큰 이익을 보았으니 다시 이런 이익을 보기 위해 배를 띄우려고 하는 관료들이 있을 게야. 하지만, 큰 재화로 인해 화가 미칠 수 있다고 여기는 사람이 없을 것 같은가?”

염호진은 돈을 벌어 오는데 화가 미칠 수 있다는 말에 어리둥절했다.

“은으로 동전을 만들어 유통하면 그 은을 탐내 중국이 침입할 수도 있다고 여기는 관인들이 있네. 그런 관인들이 보기에는 몇만 냥의 수익이 나는 교역을 하게 되면 그것으로 인해 중국에서 화가 올 수도 있다고 여길 것이야.”

“말도 안 됩니다. 어찌 그런...”

“말이 안 된다고 보나? 충분히 그렇게 하고도 남을 작자들이네. 거기다 몇만 냥씩 벌어 오는 상인으로 인해 사농공상의 신분제가 흔들릴 수 있다고 겁을 낼 것이야. 그러면 어찌 될 것 같나?”

“...설마 그것 때문에 교역을 막으려고 하겠습니까? 이익을 이렇게나 많이 보는데요.”

“그 이익이 다 자신의 이득이 아니니깐. 오히려 그 이익으로 상인들이 크게 일어나게 되면 자신의 기득권이 무너질 수 있다고 여길 자들이네. 양반으로서 계급을 지키기 위해 교역을 막으려고 할거네. 그렇게 되면 우리 춘봉 상단이나 태극 선단은 어찌 될 것 같은가?”

“...다시 예전처럼 근해 바다의 조운선이 되겠지요.”

“잘 아는구만. 내가 왜 이번에 얻은 이익을 숨기려고 하는지 알겠나? 자네는 어찌할 것인가?”

“제 선택에 따라 제가 계속 배를 탈 수 있는 것입니까?”

“자네의 선택에 따라 다르겠지. 앞으로 더 커질 태극 선단의 선단장이 되던지, 아니면 다시 수영의 참군으로 돌아가던지. 어떻게 하겠나?”

염호진은 분명 이것은 착복이고 돈을 숨겨 개인이 축재하려는 것이라는 생각이 머릿속에 남아 있었지만, 마음은 다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이제까지 그가 봐온 전원종이란 자는 돈이 있고 권세가 있어도 그것으로 사람들을 억압하지 않았고, 오히려 돈을 풀어 섬마을 사람들의 사정을 봐주며 그들을 돕는 사람이었다.

분명 몇만 냥의 이익을 챙기더라도 그 돈의 대부분은 다시 배를 사고 선원들을 고용하는 데 쓰일 것이란 것을 알았다.

하지만, 처음 한 번이 어려운 법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그가 혐오스럽게 보는 원철 대감도 처음 관직에 올랐을 때는 자신처럼 청렴했을 터였다.

하지만, 한번 사사로운 이익의 맛을 보곤 탐관오리가 되는 것은 금방이었다.

사람은 돈이 있으면 변하기 마련이었고, 지금의 전원종이란 사람이 나중에도 지금과 같으리라는 판단을 할 수가 없었다.

똑. 똑. 똑.

“저기, 상단주님 정크선에 저녁 준비가 되었습니다요.”

“흠. 그럼 참군의 결정은 식후에 듣도록 하지. 가세나. 오늘은 좀 특별한 저녁일 것이야.”

염호진의 선택이 길어질 것 같자 저녁을 먹고 이야길 하기로 했다.

가장 큰 정크선 갑판에 여기저기 화로가 놓이고 그 위에 불판과 고기 석쇠가 놓여 있었다.

“우리가 물소 뿔을 구매했지 않았나? 말라카의 상인들이 그 물소 뿔을 구하기 위해 소를 잡다 보니 소고기가 많이 남아돈다고 소고기도 이리 가져다주었네.”

물소 뿔 6천 개를 구매하며 잡은 소가 몇천 마리였기에 말라카 반도와 해협 건너 인도네시아에서도 물소를 구한다고 난리가 났었다.

덕분에 이렇게 수십 마리의 소고기도 저렴하게 받을 수 있었고, 출항 전 소고기 회식을 할 수 있는 것이었다.

“단주님, 선장님 어서 오십시오. 지금 바로 굽겠습니다요.”

선원들은 조선에서는 언감생심 꿈도 꾸지 못하던 소고기를 마음껏 먹게 되었다고 좋아했다.

상단주가 도착하자 화로에 고기를 올리기 시작했고, 이내 구워지며 나오는 연기가 갑판을 가득 채우기 시작했다.

선원들은 더운 열대 기후에 땀을 뻘뻘 흘려가면서도 화로에 붙어 소고기를 구웠는데, 조선에서는 1년에 한 번도 먹기 힘든 소고기다 보니 입이 터지라고 씹어 먹었다.

“우리 선장들을 위해 내 특별히 후추구이로 먹여주지.”

여덟 명의 선장들을 위해 원종이 조리를 했는데 미리 안심 부위를 준비해 뒀었다.

손바닥 모양처럼 두툼한 소고기 안심의 위아래에 통후추를 직접 빻아 듬뿍듬뿍 올렸고, 간을 위해 소금도 쳤다.

“어구구, 저 귀한 후추를 그렇게 하셔도 되는 겁니까요?”

“하하하. 말라카에서나 먹어 볼 수 있는 요리인 것이야. 아마, 여길 벗어나서 후추가 특산품이 아닌 지역에서는 평생 먹어 보지 못할 요리일 테니 걱정 말고 먹게나.”

고기의 위아래에 발린 후춧가루가 조선이었다면 수십 냥이나 될 터였지만, 말라카에서는 후추를 직접 재배해 생산했기에 가격이 그리 비싸지 않았다.

유럽에서도 후추가 비싸다고 했던 이유는 가져가기 힘들어서 비싼 것이었지 그 물량이 적어서 비싼 것이 아니었다.

후추가격이 가장 비쌌던 15세기에도 후추를 직접 재배하는 인도 남부와 동남아시아의 재배지에서는 그리 비싸지 않았다.

그래서 후추로 고기를 뒤덮듯이 발라 굽는 프렌치 페퍼 스테이크(French Pepper Steak)를 할 수 있는 것이었다.

이름 그대로 프랑스인들이 만든 후추를 발라 굽는 스테이크 요리였는데, 대항해시대로 후추가격이 싸지면서 프랑스에서 보급되기 시작한 요리였다.

이름 그대로 고기 위에 후추를 듬뿍 올려 굽는 요리였기에 특별한 레시피도 없었다. 그저 후추만 듬뿍 발라 구우면 되는 것이었다.

고기가 익는 동안 대파와 양파를 잘게 썰었고, 라임도 즙을 짜 섞었다.

라임이나 레몬 또한 그 원산지가 인도와 히말라야 인근이었기에 이미 인도 상인을 통해 말라카에 들어와 있었다.

채소와 라임을 버무린 것에 우유를 넣고, 소금과 설탕을 넣어 간을 맞춰 찍어 먹을 수 있는 소스를 만들었다.

정찬 요리처럼 스테이크에 소스를 뿌려 먹으면 좋았겠지만, 포크와 나이프로 먹는 방식이 아직 없었기에 후추를 발라 구운 안심을 먹기 좋게 잘라서 내주어야 했다.

젓가락으로 고기를 들어 먹을 수 있게 얇게 잘라 선장들에게 주었고, 선장들은 시킨 대로 라임 소스에 고기를 찍어 먹더니 감탄을 자아냈다.

“으음. 향이 엄청납니다. 이것이 후추의 맛이었군요. 이런 맛일 줄이야.”

다들 후추를 처음 먹어 보는 것이었기에 이것이 후추의 맛이구나 하며 음미를 했다.

그러다 몇 번 씹으면서 후추의 향이 터지기 시작하자 다들 눈과 입이 자기도 모르게 커지기 시작했다.

“단주님. 부서지지 않은 통 후추를 씹으니 거기서 엄청난 향이 나옵니다. 이거 원, 향이 너무 강해서 고기의 육향이 무엇이었는지도 모를 판입니다. 이렇게 후추의 향이 강하다니.”

“또 찍어 먹는 장이 특이해서 그런지 고기를 씹는 것조차 모를 정도로 씹혀 꿀떡꿀떡 넘어 갑니다요. 하... 하나만, 한점만 더 주시면 아니 되겠습니까요?”

“왜 안 되겠는가? 더 먹게나.”

뜨겁게 구워진 고기를 바로 잘라 더 주었고, 이번엔 아예 소스를 고기에 뿌려서 주었다.

“이야 이거 맛이 특별합니다. 특별해요! 이런 맛이 후추의 맛이었다니 고기를 그냥 마구 먹게 만드는 맛입니다요.”

“왜 후추란 물건이 비싼 것인지 알 것 같습니다요.”

현재의 지구에서는 후추 한 통을 몇천 원이면 살 수 있었지만, 지금은 재배지에서나 평민들이 겨우 먹을 수 있는 비싼 향신료였으니 현대인이었던 원종에게는 이들의 이런 반응이 참으로 재미가 있었다.

그리고 반응이 재미있다 보니 후춧가루를 더 팍팍 쳤다.

선장들이 떠드는 소리에 주위의 선원들도 도대체 무슨 맛인지 궁금해했고, 은근슬쩍 곁눈질을 하는 게 보였다.

“그래. 후추를 아껴서 뭐하겠는가? 청남아 창고에서 후추 한 포대를 가져오거라. 후추알을 절구에 빻아서 선원들에게 돌리거라. 고기에 후추를 제대로 뿌려서 먹어 보라고 하거라.”

“후추 한 포대면 쌀 4섬이나 살 수 있는 돈입니다요.”

“조선에서야 그렇지. 지금은 말라카지 않느냐. 여길 떠나면 비싸서 못 먹게 되니 여기에서라도 먹어야지 안 그렇느냐? 그러니 어서 가져오거라.”

“네 맞습니다요. 상단주님의 말이 맞습니다요.”

“먹고 죽은 귀신이 때깔도 좋다고 하니 후추 먹고 맴맴 하더라도 후추를 뿌려서 먹어 보고 싶습니다요.”

사실 청남이도 선장들이 저리 좋아하는 모습을 보곤 후추 맛이 궁금하긴 했다.

그래서 얼른 한 포대를 가져와선 선원들에게 나눠주기 시작했다.

선원들은 절구에 통후추를 빻는 것만으로도 후끈한 후추의 향이 올라오자 신기해했고, 코가 아리더니 간지러워 기침을 하기 시작했다.

“딸꾹질이 계속 나오는 병에 걸리면 이렇게 후추 향을 맡게 해서 기침을 시키기도 한다. 기침이 나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니니 걱정하지 말아라.”

“크흥. 후추가 약이기도 하다더니 역시 뭔가 다른 것이군요. 헤헤.”

선원들은 고기에 소금과 후추를 뿌려 소고기를 굽기 시작했는데, 다들 알싸한 후추 향이 입혀진 물소 고기에 감탄을 했다.

“고기 육향의 비릿한 맛으로 고기를 먹었는데, 이 후추란 귀물은 그 비릿한 맛과 향을 덮어 고기를 더 먹게 하는 것 같습니다요!”

“맞아. 이렇게 냄새 안 나는 고기라면 내일 아침까지도 먹을 수 있어!”

“나도! 여기 고기 좀 더 줘!”

선원들은 후추와 소금을 친 고기의 맛에 즐거워 하며 고기를 굽기 시작했고, 두 명당 한 병으로 제한을 한 술도 돌기 시작하자 흥겨운 노랫소리도 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런 선원들의 즐거워 하는 모습에 참군 염호진은 마음을 굳혔다.

분명 조정의 명으로 후추를 구해오기 위해 이곳으로 왔으나 여기에서 얻는 이익을 아무리 조정에 바쳐도 지금처럼 선원들이 소고기를 마음대로 먹을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리고 양반들이나 먹는다는 후추도 선원들은 평생 먹어 볼 수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이익을 숨기고 춘봉 상단의 교역이 지켜진다면 뱃사람들 특히 섬에서 고통받는 이들의 고통을 없앨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조 어른의 말처럼 수익을 숨기는 게 맞는 것 같습니다.”

“선택을 한 것인가?”

원종은 선장들에게 고기를 다 구워주고 이제야 먹기 시작했는데, 염호진의 말에 기분이 좋아졌다.

“좋은 선택을 했네. 지금은 이 수익을 숨겨 교역 선단을 만드는 일에 쓸 것이야. 그리고, 더 큰 돈을 벌어들일 것이네. 그럼 그 돈이 어디로 가겠는가?”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그 돈은 다시 조선에 쓰이게 될 것이네, 조선이 중국만큼, 이곳 말라카만큼 부유해질 수 있게 쓰일 것이야.”

< 202. 그의 선택.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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