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 최고의 고객. (1) >
[아나무아~ 캬무아~~ 아무카아~~~캬무아~~~~]
“어휴, 도대체 저 기괴한 소리는 뭐야!”
“왜 새벽부터 저렇게 큰 소릴 내는 거야?”
“해도 뜨지 않았는데, 저렇게 귀곡성 같은 소리를 질러대니 이거 원 환장하겠구만.”
말라카 왕국에 도착한 일행은 배에서 숙식을 했는데, 항구와 맞닿아 있는 시장 너머에서 괴상하게 울려 퍼지는 소리에 다들 잠을 설쳤다.
이슬람 교인들의 기도 시간을 알려주는 소리 Azan, Adhan였다.
두바이에서 일을 했을 때는 쇼핑몰 안에서도 저 소릴 들을 수 있게 메인 스피커로 쩡쩡 틀어주던 소리였는데, 이렇게 라이브로 오랜만에 들으니 감회가 새로웠다.
물론, 이 소리를 처음 듣는 선원들은 기괴한 소리에 잠을 설칠 수밖에 없었다.
“이 소리가 하루에 5번 들릴 거야.”
“아니, 절간에 스님도 하루 5번 독경을 안 하는데, 이 놈의 나라는 뭡니까요?”
권항필은 이런 괴상한 나라에 공자의 도가 전해지지 않아 혹세무민(惑世誣民)하는 것이라고, 공맹의 도를 펴야 한다고 난리를 부렸다.
하긴, 새벽에서 해뜨기 전에 기도하는 FAJR.
정오에서 오후 중반 사이에 기도하는 ZUHR.
오후 중반에서 해지기 사이에 기도하는 ASR.
해가 진 이후 기도하는 MAGHRIB.
밤과 새벽 사이에 기도하는 ISHA. 까지 딱 정해진 시간은 없고, 해와 별이 뜨고 지는 것을 보고 기도하라며 알림을 주는 것이었으니 이슬람교 신자가 아니더라도 정신적인 압박이 심할 수밖에 없었다.
“저건 또 뭐입니까요? 얼굴에 연지곤지를 찍고 다니는데. 남녀 구분 없이 얼굴에 저렇게 뭔가를 바르고 다니는 것이 사당패 아닙니까?”
“저건 힌두교의 사람들이네. 힌두교의 여러 신들 중에서 석가모니도 있으니, 불교와 비슷한데, 천축의 여러 신을 모시는 종교라고 생각하게나.”
“허허허. 참으로 요지경입니다. 요지경이에요!”
대륙을 잇는 실크로드의 끝이 중국의 장안성 이었듯이 인도양을 종횡하는 상인들의 종점은 말라카였기에 늘 보던 동양인보다 인도계와 중동계, 말레이계 사람이 더 많을 수밖에 없었다.
유교보이를 넘어 유교꼰대에 가까웠던 권항필은 중국의 영향력이 거의 없는 말라카의 모습이 서유기에 나오는 요괴들의 세상인 것 같다고 이상한 세상이라고 표현했다.
중원 중심의 세계관이 아닌 다른 세계도 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은 것이었다.
“이 나라의 세력가이자 재상인 ‘뚠뻬락’이란 이를 소개받기로 했습니다. 여기서 사는 화교의 말로는 이 나라의 왕인 술탄을 두 명이나 모신 명재상이라고 합니다.”
취엉청은 대월의 고향이나 참파왕국에 비교해서 훨씬 더 번화한 말라카에 만족했는데, 여기에 상관을 차린다고 하자 먼저 와 있던 화교들이 두 팔 벌려 환영해 주며 도와주고 있다고 했다.
정화의 대항해 시절 동남아시아 여기저기에 중국인들이 뿌리를 내리며 인적 네트워크화가 완료된 화교들의 인프라가 그저 부러울 따름이었다.
정화가 말라카 해협을 지나 버마(미얀마)로 가기 위한 준비를 말라카 왕국에서 했는데, 이때 정화와 대 선단이 머물던 언덕을 아예 중국인 언덕이라는 부킷 차이나(Bukit China)라고 부르며 중국인 화교들의 거주 구역을 만들어 줄 정도였다.
“그리고, 이건 제조님도 알고 있으셔야 하는데, 화교들이 신신당부를 했습니다.”
“무엇이길래 신신당부를 한 것인가?”
“그게, 듣기로는 정화 태감이 여기에 머물며 말라카의 왕에게 많은 혜택과 도움을 받았는데, 그때 정화 태감이 말라카 왕국과의 우호를 위해 황제 폐하의 따님 중 한 분을 시집보내기로 했다고 합니다.”
“시집? 그때라면 영락 황제 때인가?”
“그렇지요. 그 약속이 정화 태감이 죽고 나서 지켜 졌는데, 문제는 이겁니다.”
취엉청은 주위 사람을 다 물러나게 한 후 내게만 귓속말로 이야길 했다.
“지금 술탄의 어머니가 영락 폐하의 공주님으로 시집을 오셨는데, 그것이 진짜 공주님이 아니라고 합니다.”
“응? 그럼 시집오신 분은 누구란 말인가?”
“시녀 중에서 미모가 괜찮은 이를 뽑아 다른 왕의 양녀로 삼아 보냈다고 합니다.”
“양녀로 삼아 보냈다고 하면... 뭐 그래도 공주가 맞긴 하군.”
“네. 그래도 진짜 피가 이어진 공주님이 아니니, 혹시라도 접견하시거나 하실 때 어느 분의 후손인지 알아보고 하는 행동은 절대 하지 마셔야 할 겁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네.”
이렇게 혼인으로 나라를 묶는 작업은 정화가 대선단을 이끌고 동남아시아를 지나갈 때 했던 정치적 작업의 하나였다.
말라카 해협처럼 중요한 길목의 왕에게 명나라 왕의 혈육을 시집 보내어 사위 국으로 삼는 작업인데, 옛날 한족의 나라들이 오랑캐들을 달랠 때 쓰던 수법을 그대로 쓴 것이었다.
그리고 그 수법에 인질처럼 쓰이던 공주는 진짜 황제의 딸이 아니라 방계 중의 방계나 그것도 없을 때는 시녀 중에서 한 명을 양녀로 삼아 시집 보내는 방법을 쓴 것이었다.
외교상으로는 분명 왕의 딸이기도 하니 맞는 것 같지만, 이런 신분을 세탁해서 만들어진 공주를 보내는 것은 어떻게 보면 사위 국을 우롱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공주를 맞아들이는 쪽에서도 중국 명나라의 사위가 될 만큼 인정을 받았다는 대외적 명분 쌓기가 되기에, 공주의 신분을 알면서도 받아들이기도 했다.
이런 부분을 공식적인 자리에서 이야기하면 서로 곤란하니 애초에 거론 말라고 화교들이 언질을 주는 것이었다.
조선도 이런 명나라의 전략적인 방법을 받아들여 왜국이나 유구 같은 곳의 왕들과 통교하고 혼인으로 피를 섞는 작업을 했다면, 조선의 확장성이 좋아졌을 터인데, 이런 정치적 확장의 방법에서도 중국에게 밀렸다.
***
중국인 언덕이라는 부킷 차이나의 전각에 도착하니 말라카의 관리와 화교는 물론이고 이슬람 상인과 인도 상인들까지 말라카에서 이름이 알려진 자들은 모두가 와 있었다.
“조선에서 특이한 자기를 가져왔다고 하던데, 기대가 큽니다.”
명나라의 공주인 한리포(漢麗寶) 공주가 머나먼 길을 왔다며 치하해 주었는데, 그녀에서 본자기 한 세트를 받쳤다.
이제까지 보아왔던 청화백자와는 다른 따뜻한 흰색의 그릇에 다들 놀라워했다.
특히나 한리포 공주는 도자기가 너무 가볍고 얇아 보이자 등불에 그릇을 비춰 보며 그릇을 통해 불빛이 보인다고 신기해했다.
그리고 재상이자 세력가인 뚠빼락에게도 한 세트를 받쳤는데, 도자기 세일즈를 위해 건네는 척하며 일부러 넘어져 상자를 바닥에 떨어트렸다.
[우당탕탕!]
“저런, 저 귀한 것이 저리 깨지다니.”
“허허 이런 안타까운 일이 있나.”
주위에 둘러앉아 있던 많은 이들이 혀를 차며 안타까워했다.
하지만 원종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일어나 세트 상자에서 본자기를 하나씩 꺼내기 시작했다.
“오오! 하나도 깨지지 않았어. 어떻게 저런 것이지?”
“저 상자가 좋은 것인가?”
“엄청나게 얇아 보이는데, 깨지지 않다니. 신기한걸.”
원종은 도자기 세트에 들어 있는 그릇과 접시, 주전자 그 어느 것도 깨지지 않았다고 보여주었고, 일부러 한 번 더 떨어트려 주며 잘 깨지지 않는 도자기라는 것을 보여주었다.
“이 정도로는 흠집도 나지 않습니다. 우리 조선에서 심혈을 기울여 만들어 낸 작품입니다. 보물이라고 부르기에 부족함이 없습니다.”
그릇이나 접시 전체에 빽빽하게 문양과 그림이 들어가는 청화백자에 비해 흰색의 여백이 많아 뭔가 비어 있는 듯한 느낌을 주는 도자기였지만, 이렇게 잘 깨지지 않고 가벼운 도자기라면 그 가치가 있을 것 같았다.
“단순한 도자기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드리고자 일부러 떨어트렸사옵니다. 떨어진 것이 문제라면 새것으로 드리겠습니다.”
“하하하. 기분 나쁘지 않아 이걸 그냥 받도록 하지.”
재상 뚠빼락은 떨어진것에 대한 것은 대수롭지 않다며 본자기를 받아 들었다. 그러곤 직접 만져 보며 그 얇고 튼튼함에 감탄을 했다.
“이걸 주문하고 싶구만. 조선고려에서 이런 도자기를 만들어 낸다는 것을 몰랐구만.”
뚠빼락이 도자기를 주문하고 싶다고 하자 이슬람 상인들도 주문하고 싶다고 나서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 본자기 외에도 또 준비한 것이 있었기에 상인들의 말을 무시하곤 손짓을 했다.
손짓을 보고 청남이와 두 명이 큰 상자를 들고 회랑으로 들어왔는데, 그 상자에서 1m에 가까운 크기의 크고 넓은 쟁반 같은 그릇이 나오자 이슬람 상인들이 앞을 막아 버릴 정도로 달려 나왔다.
“이 접시를 사겠네!”
“나도 사겠네!”
이슬람 상인들은 가격도 묻지 않고 무조건 산다고만 이야기를 했는데, 아직 제대로 물건을 보지 못한 재상 뚠빼락은 도대체 무슨 그릇이길래 이러는지 궁금했다.
그래서 가까이 다가간 뚠빼락은 그릇을 보자 바로 말이 튀어나왔다.
“알라흐 아크바르!”
1m에 가까운 큰 접시 중앙에는 ‘ الله أكبر ’ 라는 아랍어가 쓰여져 있었는데, ‘알라신은 위대하다’란 뜻이었다.
이 글자 주위로는 선지자 마호메트가 경전을 강의 하는 듯한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오! 알라시어!”
원종은 뚠빼락의 입에서 터져 나온 알라를 찾는 말을 듣고는 잭팟이 터졌다는 생각에 상자에 있던 8개의 접시를 모두 꺼내어 보여주었다.
그릇의 중앙에는 모두 다 ‘알라흐 아크바르’가 새겨져 있었고, 선지자 마호메트의 그림과 야자수와 오아시스의 그림이 새겨져 있었다.
“천국이 그려져 있는 접시구나.”
두 명의 술탄을 모셨으며 말라카 왕국을 지금의 최 전성기로 이끌었던 명재상 뚠빼락에겐 매일 같이 찾아오는 중국 상인과 인도상인 가끔 오는 유대 상인까지도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뚠빼락에게 잘 보이기 위해 세상에서 희귀한 보물을 많이 가져왔었다.
하지만, 오늘 본 이런 접시는 없었다.
신의 말씀이 써진 그릇이라니.
그리고 선지자 마호메트가 책을 들고 제자들에게 가르침을 주는 그림이 그려진 모습에 감탄을 할 수밖에 없었다.
이제까지 중국의 경덕진에서 만들어진 도자기 들은 모두 다 중국의 글자와 중국의 그림이 그려져 있었지, 알라신의 위대함은 물론, 아랍어 글씨가 쓰여 있던 적도 없었다.
한데, 위대한 알라신을 찬양하며 선지자의 그림이 그려져 있는 접시가 있으니 이것은 무조건 자신이 가지거나 술탄이 가져야 한다고 생각을 했다.
“이 접시들은 내가 다 사겠네.”
뚠빼락의 말에 다른 이슬람 상인들은 얼굴을 떨굴 수밖에 없었다.
뚠빼락은 바로 접시를 꺼내어 닦게 했고, 그 접시를 한리포 공주의 자리 뒷벽에 걸게 했다.
뭔가 접시가 벽에 걸린다는 것 자체가 언발란스 했지만 1m 짜리 그릇이 벽에 걸리니 장식품으로서도 충분했고, 이슬람 상인들은 그저 감탄을 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모습을 보는 화교 상인들이나 힌두교의 상인들은 1m 크기로 만들어진 접시가 특이하구나 하는 생각이 전부였기에 이슬람인들이 저리 좋아하는 것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버즈 알 아랍 호텔에서 근무를 했었던 원종이었기에 이슬람인들의 이런 모습을 당연하다는 듯이 보고 있었다.
유럽이 청자와 청화백자를 받아들일 때 그 전파 루트는 지중해를 잡고 있는 베네치아 상인이 이스탄불이나 알렉산드리아에서 이슬람 상인을 만나 교역을 하는 루트였다.
이때 가장 우선시 되었던 교역 물품은 향신료와 비단이었고, 이후 도자기였다.
유럽인들은 실생활에 쓰이는 향신료와 비단을 원했지만, 이슬람 상인들은 깨지지 않게 부드러운 진흙을 잔뜩 발라 가져온 도자기를 비싼 값에 소중하게 베네치아 상인들에게 내놓았다.
그런 이슬람 상인들의 모습에서 베네치아 상인들도 도자기를 비싸게 사서 유럽에 판매를 했었다.
이러한 도자기들은 유럽에서는 실생활 물품이라기 보다는 장식품이자 사치품일 뿐이었다.
하지만, 이슬람에서는 도자기가 장식품이자 사치품이 아닌 실생활에 바로 쓰이는 물품이었다.
이는 선지자 마호메트로 인해 생긴 식습관의 변화 때문이었다.
< 200. 최고의 고객. (1) > 끝
작가의말
한리포(항리포Hang Li Po 한여보 漢麗寶) 로 불리는 명나라의 공주는 실제 명나라 주씨 족보나 실록에 등장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말라카의 역사서에는 기록이 되어 있고, 500여명의 중국인을 데리고 말카라의 술탄에게 시집왔다고 되어 있습니다.
오랑캐들에게 공주를 시집 보내기 싫을때 쓰는 시녀나 방계 혈족을 양녀로 삼아 보낸 것이지 않을까 하는 것이 요즘의 추측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