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9. 남만이라 불리는 곳. (3) >
“땅의 주인이 바뀐다니? 그게 무슨 말이오?”
“옆 나라인 크메르와 전쟁이 벌어질 것처럼 분위기가 안 좋습니다.”
통역해주는 화교의 어조를 보면 단순히 분위기만 안 좋은 게 아닌 것 같았다.
어쩌면 우리에게 보여주기 위해 데려온 건가 싶은 창병 100여 명이 보여주기용이 아닐지도 몰랐다.
크메르 라면 앙코르 왕조 즉, 캄보디아를 이야기하는 것인데.
말레이계열의 참파 왕국은 베트남인 대월과만 싸운 것이 아니라 캄보디아의 크메르왕조와도 치열하게 전쟁을 벌였었다.
캄보디아의 앙코르 와트에 참파 왕국 병사들과의 전쟁이 암각화로 새겨질 정도로 치열하게 전쟁을 벌였던 사이였다.
그렇게 대월과 크메르와 양쪽에서 싸우던 참파 왕국은 차츰차츰 땅을 빼앗기어 베트남의 속국화 되는 것이 원 역사였다.
그리고 지금 있는 붕따우 또한 크메르의 땅이 되었다가 다시 대월의 땅이 되는 곳이었다.
특산물로 후추가 있지만, 앞으로 전장이 될 이곳에 상관을 세우는 것은 안전상의 문제가 있을 것 같았다.
“그럼 화교들의 상관은 어디로 철수하오?”
“후후후. 철수를 왜 합니까? 전쟁이 일어나면 그때가 돈을 벌기 쉬운 때인데.”
화교 상인은 전쟁이야말로 상인이 한몫 잡기 좋은 때라며 우리에게도 향신료보다는 전쟁물자를 준비하라고 충고해 줬다.
“여기서부터 후추나무 군락지입니다. 저기 검은색의 열매가 바로 잘 익은 후추입니다.”
후추나무는 아직 관리 농업이 아니라 자연 상태 그대로 놔둬 군락지를 이루게 만드는 방법으로 수확을 하는 것 같았는데, 숲이 우거질 정도로 번성해 있었다.
“후추 열매는 초록색의 열매로 맺혔다가 붉은색으로 색이 변하고, 검어지면 익은 것이라 보고 수확하오.”
검게 익어가는 후추를 따서 냄새를 맡아보니 후추의 알싸한 향이 훅하고 치고 들어 왔다.
한쪽에 만들어진 후추 작업장에서는 뜨거운 물을 끓여 그 증기에 후추를 쪄내고 있었다.
이런 증기 작업을 해서 후추를 출하하는 것을 두고, 후추알을 종자 삼아 후추나무를 키워내지 못 하게 하는 것이라고 알려졌지만, 틀린 말이었다.
후추는 독특하고 강한 향이 있기에 곤충이나 동물들에게 그렇게 인기 있는 먹이 종류가 아니었지만, 곰팡이균에게는 인기가 있는 식물이었다.
후추알을 말리게 되면 후추 씨와 껍질 사이에 빈 공간이 생기는데 거기에 곰팡이균이 퍼져 후추 자체를 쓰지 못하게 돼 버리는 것이었다.
그래서 후추를 증기에 쪄서 곰팡이균을 처리해서 출하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비싸게 후추를 사 먹는 유럽인들은 자신들이 후추알로 후추나무를 키우지 못하게 증기로 익혀서 보내는 것이라고 여겼다.
그런 유럽인들의 상상과는 달리 실제 후추나무는 후추알로 싹을 틔워 키우기보다 ‘줄기 꺾꽂이’로 번식을 시켰다.
후추나무의 줄기, 가지를 잘라 끓여 살균한 물에 넣어두면 뿌리가 나오는데, 그 줄기를 흙에 심어서 묘종을 만드는 것이었다.
물론 끓여 살균한 물은 현대에 쓰이는 방법이었고, 과거에는 살균되지 못한 물에 가지를 넣었기에 곰팡이가 생겨 생존율은 낮았다.
이런 줄기 꺾꽂이법으로 후추나무 번식법을 알고 있었기에 참파인들 모르게 후추나무 가지를 10여 개나 잘라 챙겼다.
참군 염호진과 따라온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로 가지를 챙겼다.
하지만 아무리 은밀하게 후추의 줄기를 챙긴다고 해도 참파인들의 눈을 피할 순 없었다.
우릴 여기로 데리고 온 시쭈구도 우리가 하는 짓을 보았지만, 말리지 않았다.
“후추나무의 줄기가 필요한 것이라면 눈치 보지 말고 가져가시오. 다만, 알아야 하는 것이 최대한 빨리 흙에 심어야 한다는 것이오. 안 그러면 뿌리가 자라지 않소. 그러니 심을 수 있을 만큼만 가져가시오.”
후추나무 구경을 넘어 후추나무 서리를 하는 것과 마찬가지였기에 괜히 부끄러워졌다.
“흠흠. 이거 부끄러운 모습을 보이는 것 같아 미안하구랴. 헌데, 후추나무가 퍼지는 것을 막아야 하는 것이 아니오?”
“하하하. 저 멀리 중원에서 여기까지 와서 후추나무 줄기를 베어가는 이들이라면 내가 막는다고 해도 후추나무를 가져갔을 거 아니겠소? 뭐, 철통같이 막는다면 막아는 지겠지만, 그런들 무슨 소용이 있겠소?”
“막아도 소용이 없다니. 그건, 무슨 말입니까?”
“우리 참파에서 아무리 막아도 바다 건너 믈라카(Melaka) 왕국에 가면 쉽게 후추나무를 구할 수 있으니 우리가 막아도 소용이 없다는 말이오. 그러니 살릴 수 있는 만큼 마음대로 후추나무 가지를 베어 가시오.”
시쭈구의 호탕하고 시원한 말에 감탄했다.
그리고 말라카 해협의 믈라카 왕국에는 얼마나 후추나 향신료가 많을지 기대가 되었다.
후추를 마음대로 쓸 수 있는 환경이다 보니 여기에 온 기념으로 뭔가를 만들어 줄까 싶었는데, 오히려 시쭈구가 우릴 먹일 식사까지 준비해 왔다며 바나나 잎으로 싼 삼각형의 밥을 꺼내기 시작했다.
두툼한 바나나 잎으로 피라미드 비슷한 모양으로 밥을 싼 모습을 보니 예전 기억에 반가웠다.
“나시르막이군요!”
“오! 이걸 알다니 이미 다른 곳에서 먹어 본 것이오?”
화교 상인이나 참파인들은 내가 나시르막을 안다고 하자 놀라워했는데, 북경에 온 참파인에게 초대받아 먹어봤다고 둘러대었다.
이 나시르막은 쌀을 뜻하는 나시와 기름을 뜻하는 르막을 합한 이름으로 기름진 밥이라는 뜻이었다.
기름진 밥이라고 해서 돼지나 소의 지방으로 밥을 하는 게 아니라, 식물성인 코코넛 기름으로 밥을 하는 것이었다.
코코넛 기름으로 윤기가 흐르는 밥을 바나나 잎 위에 올리고, 그 위로 삼발소스(Sambal Sauce)로 조리한 해산물을 올려 먹는 음식인데, 과연 고추가 없는 이 시기에 어떤 소스로 나시르막을 했을지 궁금했다.
바나나 잎을 펼쳐보자 고봉밥처럼 둥글게 된 밥 위에 주황색의 퍽퍽한 소스가 올려져 있었다.
그 소스에서 훅~하고 치고 올라오는 강렬한 추억의 냄새에 머리가 어지러울 뻔했다.
삼바르 마살라(sambar masala)!
주로 인도 남부에서 먹는 마살라 소스인데, 샐러드나 채소를 조리할 때 주로 쓰는 마살라였다.
한데 지금 밥 위에 올려진 삼바르 마살라에는 해산물이 들어가 있었기에 푸짐하기도 했다.
보통 후추와 커민, 겨자, 페누그릭(fenugreek), 고수, 고추, 아사퍼티다, 강황, 커리 잎이 들어가는데, 고추가 없다 보니 남아도는 후추를 더 많이 넣었는지 후추 향이 강렬했다.
예전에 먹었던 추억의 맛이라 품에서 숟가락을 꺼내어 먹었다.
입안에 들어온 나시르막은 코코넛 기름의 느글거림이 느껴졌지만, 금세 강렬한 향이 느글거림을 없애며 입안을 가득 채웠다.
후추향과 커리 향, 커민과 알싸한 겨자의 맛!
거기에 적응되지 못하면 쿰쿰한 맛밖에 느껴지지 않는 고수의 맛까지.
혼합양념이라는 뜻의 마살라(masala)란 이름처럼 다채로운 향과 맛이 입안을 휘젓고 다녔다.
담백한 맛의 음식만을 먹다가 갑자기 향신료 폭탄의 맛이 혀로 느껴지니 온몸이 짜릿할 정도였다.
그리고 이런 나와는 반대로 조선에서 온 사람들도 충격을 받고 있었다.
“이런 괴상한 냄새가 나는 걸 먹을 수는 있는 겁니까?”
“고약한 냄새 때문에 먹기 힘들 것 같은데.”
“으윽, 마치 이건 걸레 빤 물에 후춧가루를 뿌린 것 같은 맛인데.”
“제조 어른도 눈을 감고 삼키기 힘들어하시는 거 같은데.”
“아닙니다. 저는 그 반대로 다양한 향신료의 맛에 감탄하고 있는 겁니다.”
입안에 남아있는 향신료의 강한 맛이 다시 생각나 바나나 잎에 올려진 나시르막을 퍼먹으며 향신료를 다시 음미했다.
‘고수 잎은 호불호가 강하니 젖혀두더라도 커리 잎과 커민은 챙겨가자. 조선 사람 입맛에 맞는 마살라를 조합하면 된다.’
마살라라고 하면 한국 사람들은 인도의 기괴한 맛이 나는 향신료라고만 알고 있고, 거기에 뭐가 들어가는지 정확히 모르는데, 쉽게 다른 이름으로 불리는 이름을 듣고 나면 아하! 하고 그 맛을 기억할 수 있었다.
그 다른 이름이 바로 카레였기 때문이다.
한국의 마트에서 오뚜*, 청정* 등에서 나오는 카레가루 자체가 바로 마살라인 것이었다.
인도가 영국 식민지가 되면서 1780년대 인도의 향신료로 영국으로 많이 가져갔다.
그런 향신료를 섞어 영국인들이 먹기 좋게 상품화시킨 마살라 가루의 이름이 바로 커리 파우더 즉, 카레 가루였다.
그 카레 가루가 영국에서 만들어져 일본으로 건너갔고, 일본을 통해 다시 한국으로 전해져 카레라는 이름으로 현대인의 밥상에 오르게 된 것이 카레의 역사였다.
즉, 한국인, 일본인, 영국인의 입맛에 맞게 혼합된 마살라 향신료가 카레라는 말이었다.
물론 한국인들이 흔히 아는 그 카레의 맛을 만들기 위해서는 수십 종류의 향신료를 배합하는 과정이 필요하겠지만, 그런 배합 과정에서 카레는 물론이고 고기나 채소를 먹을 때 같이 먹을 수 있는 소스들도 만들어질 것이었다.
그런 소스들이 조선의 식탁과 미식을 풍요롭게 해줄 터였다.
“이런 마살라 향신료를 구매하고 싶은데, 시쭈구 님도 교역을 하십니까?”
후추나무도 가져갈 수 있게 해주었고, 오랜만의 향신료 폭탄 맛을 보여준 사람이었기에 어떻게든 서로 이익을 나누고 싶었다.
물론, 시원한 그의 언행이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었다.
“전사 계급은 교역을 하지 않네. 그리고, 이런 향신료는 믈라카에 가면 인도에서 바로 가져오는 것들이 많으니 거기서 사는 걸 추천하지. 여긴 믈라카에 비해서 비싸네.”
‘아니, 그러니깐 이런 쿨함이 마음에 들어서 그쪽이랑 거래하고 싶다고!’
인간적으로 마음에 드는 시쭈구보다 통역으로 온 화교 상인이 더 눈에 불을 켜는 아쉬운 상황이었다.
“그럼, 선물로 책을 주고 싶은데, 그건 좋아합니까? 대월에서는 중원에서 만들어진 책을 중히 여기고 받아들이는데, 참파도 마찬가지입니까?”
“중국인들이 천축이라고 말하는 인도의 책이라면 몰라도 중원에서 나온 책은 그다지 중요히 여기지 않네. 물론, 선물로 준다면야 받도록 하지.”
시쭈구는 대월 사람들이면 다들 좋아하는 한자 책도 그리 좋아하지 않았는데, 어쩔 수 없이 아껴두었던 본자기 한 세트를 선물로 챙겨주었다.
전사 계급인 시쭈구를 통해 참파 왕국의 모습을 더 볼 수 있었는데, 중국의 한자책을 좋아하지 않는 모습에서 유교 경전 자체를 보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러다 보니 참파 왕국은 유교적 충효와 중앙집권제가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즉, 참파 왕국은 여러 이슬람이나 힌두교의 왕국들이 그러하듯이 봉건제와 비슷한 지배체제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유학을 받아들여 중앙집권화가 된 베트남이나 왕권이 강했던 크메르 왕조에게 밀릴 수밖에 없었을 테고, 결국 베트남의 속국으로 사라질 수밖에 없었던 것 같았다.
시쭈구란 개인이 마음에 들었지만, 참파 왕국의 멸망은 내가 어떻게 해줄 수가 없었다.
이후, 인도에서 바로 넘어온다는 향신료를 구하기 위해 믈라카로 갈 준비를 했다.
베트남에서 믈라카해협으로 가는 길은 보통은 타이만 안쪽의 태국 아유타야를 거쳐 안전하게 내해로 가는 것이 기본이었지만, 무역풍 시기를 잘 만나면 무역풍을 타고 말라카반도로 바로 갈 수 있었다.
그렇게 무역풍을 타고 대양을 건너가 말라카 왕국에 닿았는데, 이제까지 중국과 베트남 반도에서 느꼈던 것과는 다른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단순히 말레이계열의 민족이 모여있는 동남아시아라고 생각했는데, 말라카 왕국은 아시아가 아닌 인도와 중동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 199. 남만이라 불리는 곳. (3)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