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쉐프 조선을 부탁해!-193화 (193/327)

< 193. 아직은 키워야 할 때. >

“아니 그놈의 새끼가 말입니다.”

“어허. 아무리 우리끼리 있다고 하지만, 말을 조심해야 하느니라.”

“예에. 그러니깐 그놈이 말입니다. 우리더러 한양 경강상인들에게 곡식을 팔지 말라고 협작질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물량을 한 번에 풀어 버리면 곡식값이 떨어지니 값을 지킬 수 있게 찔끔찔끔 팔라고 합니다.”

“가격 담합을 하자는 소리를 돌려 말하는 거구나.”

“네. 사실 우리가 이문을 더 남길 생각이었다면 애초에 송상을 이 판에 끌어들이지도 않았을 거지 않습니까요? 도련님의 애민 애족하는 그런 높은 뜻도 모르고, 이놈은 그저 자기 이익만 취하려고 하니 이런 쌍놈이 또 없습니다.”

삼식이가 쌍놈이라고 욕할만했다.

한양 시전을 잡고 있는 경강상인들과 본인들의 수익을 위해 물량을 조절해 달라는 건 결국 민중의 고통을 외면하고 돈을 벌라는 말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물량을 한 번에 확 풀어 버려서 가격으로 참교육시켜주고 싶었지만, 지금은 어떻게든 유통을 키워야 할 때였다.

“대련과 위해항의 무역로가 안정화되면 자연스레 곡식값은 떨어질 것이니 송상에서 요청한 대로 한꺼번에 풀지 말고 벽란도에서 한 선으로 한 척씩만 풀어주도록 해라.”

“네? 그 쌍놈의 말에 따르자고요?”

“말에 따르는 척을 하라는 말이다. 대신 곡물의 절반을 의주 만상에게 넘겨주거라.”

“만상에게요?”

“그래. 송상이 경강상인과 곡식 가격을 담합해서 장난질 치려는 것은 그 경쟁상대가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대련과 위해 항에서 들여오는 곡식의 절반을 형님이 계신 동항에서 만상에게 넘겨주어라. 만약 만상이 배가 없어 곤란해하면 한 선을 한 척 넘겨주어도 좋다.”

“경쟁상대를 만드는 건 좋은데, 배까지 주시면...”

“그건 삼식이 네가 판단하거라. 배를 넘겨주는 게 영 꺼림칙하면 조운선처럼 우리가 운송해주는 계약을 맺어도 좋을 것이다.”

“아하, 그러면 우리가 곡식을 그대로 한양에 내다 팔지만, 그건 만상 사람들이 파는 것이 되겠군요. 송상이 따지고 들면 우린 한양에 판 게 아니라 의주 지역 만상에게 팔았다고 하면 될 것이구요.”

“그래. 그렇게 하면 우린 그쪽의 편의를 봐준 거라고 할 수 있을 것이고 만상을 불러들여 송상과 경강상인들이 장난질하는 것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여윽시! 도련님이십니다요.”

“만상에게 곡식을 주고 도와주면 자연스레 북방의 곡물 가격이나 동항에서 물산을 모아 교역 물품을 채우는 것도 편해질 것이니 송상이 커지는 만큼 만상도 도와줘야 견제가 될 것이다.”

“이이제이(以夷制夷)로군요!”

유럽도 에스파냐, 영국, 네덜란드, 스페인이 경쟁을 했기에 대항해시대가 폭발적으로 만들어질 수 있었다.

그런 국가 간의 경쟁을 본떠 만상과 송상 그리고 경상과 내상까지 배로 무역을 하며 경쟁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들어야 했다.

“그리고 중국에서 산 백사실과 비단은 조선에 파는 것보단 왜국에 파는 것이 이득이니 이것을 동래에 있는 희재에게 보내어 이득을 볼 수 있게 하거라. 삼식이 네가 해야 할 일이 많다.”

“히히히. 맡겨만 주십시오.”

“일전에 전라 수영에서 개삭하여 나오는 누전선을 사기로 한 것도 네가 인수해서 동래와 벽란도, 동항을 잊는 국내 교역선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네 누전선이 나오면 한선을 만상에게 넘기거나 희재에게 따로 주어 조운 일을 할 수 있게 하겠습니다요.”

***

조선으로 떠나는 사신단의 누전선 세 척과 우리 상단의 한 선 다섯 척이 출항을 하려는데, 나를 따라 내려야 할 사람이 누전선에서 내리지 않고 있었다.

“응? 권항필 자네는 안 내리는가? 우리와 함께 남방으로 가야지. 이 배가 아닐세.”

“네? 저는 사옹원 서리로서...”

“그래. 사옹원 서리이니 나를 따라가야지. 배에서 자네가 해줘야 하는 일이 있네. 자네가 꼭 필요해.”

“네? 제가 꼭 필요 하신겁니까요?”

사실 권항필은 한양 공랑점포에서 호의호식(好衣好食)하다가 배에 탔기에 얼른 서울로 돌아가 편히 있고 싶었다.

특히나, 사신단에는 모두 다 고관대작밖에 없었기에 서리인 권항필은 말단 중에서도 최말단이라 눈치나 보고 있었다.

하지만 주상전하의 특사로 임명되었다는 전원종을 따르기만 하면 승승장구할 것 같다는 욕심도 있었기에 자신이 꼭 필요하다는 말에 마음이 바꿔 배에서 내렸다.

“학식이 뛰어난 자네가 있어야 하는 일이야. 여기 문관은 자네밖에 없잖은가.”

“어헙. 그건 그렇지요. 유학적인 소양을 가진 이가 없긴 없습니다요. 멀리 남방으로 가야 하는 일이라면 저 같은 문관이 있긴 있어야 하지요. 제조님을 따르겠습니다요.”

권항필은 자신이 할 수밖에 없는 문관으로서의 업무를 기대하고 참군 염호진이 선장으로 있는 누전선에 올랐다.

하지만 배가 바다로 나오고 하루가 지나자 자신의 앞에 앉아 있는 두 아이를 보곤 화를 낼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깐. 저기 쌓여 있는 책을 보고 너희 둘에게 책 내용을 번안해 주라는 말이냐?”

“네, 서리님. 제조 어르신께서 서리님께 정화 태감의 여행기를 배우고 나라말로 바꿔 쓰라는 지시를 받았습니다. 그렇게 할 수 있게 천자문부터 배우라고 하셨습니다.”

똘똘하게 이야기 하는 진기라는 소년은 권항필도 알고 있었다.

전 제조의 배다른 동생이었는데, 얼자(孽子)였음에도 전 제조가 아끼는 동생이라고 했다.

그래. 얼자까지는 이해를 할 수 있어. 한데 옆에 넌 아니다.

“넌 남장한 계집이지 않으냐? 넌 저리 가거라.”

“하지만, 저도 주인님이 한자를 배우라고 하셨는데요.”

“어딜 계집이! 감히!”

권항필은 계집아이를 남장시켜 데리고 다니는 것은 이해했지만, 이렇게 자신에게 글을 배우라고 보낸 것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단박에 일어나 전 제조에게 따지러 갔다.

***

“유학은 계집이 배우는 것이 아니기에 안된다는 말인가?”

“그렇습니다. 어찌 계집에게 글을 가르치겠습니까?”

“흠. 그렇다면 다른 남자들은 괜찮은 건가?”

“계집은 안되지만, 남자라면 됩니다.”

“신량역천(身良役賤)의 신분인 수군이라도 되는가?”

“신분을 떠나 유학의 가르침을 전하는 것이라면 괜찮습니다.”

“알겠네. 그럼, 진기와 수군 몇을 보내겠네. 그들에게 한자를 알려주게나.”

권항필은 금세 수긍하고 밖으로 나갔고 눈물을 흘리며 문밖에 서 있던 언년이를 보았지만, 애써 무시하고 멀어졌다.

언년이는 권항필이 사라지자 언제 울었냐는 듯이 눈물을 닦곤 방으로 들어왔다.

“도련님 잘되었는가요?”

“그래. 네 덕분이다. 권문세족의 후예로서 서당 선생님의 일을 어찌 맡겨야 할지 고민했는데, 네 덕분에 잘 해결되었다. 이제 나와 약속한 것이 있으니 진기와 수군들을 가르치며 정화 태감의 여행기를 번역하는 일을 맡아 줄 것이다.”

“그럼 저는 이제 뭘 하면 되는가요?”

“정화 태감이 했듯이 네가 우리의 여행기를 적어야 할 것이다. 그날의 날씨는 물론이고 바다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한글로 적어야 할 것이다.”

“네. 그럼, 제가 쓰는 여행기도 저렇게 정화 태감의 여행기처럼 남겠지요?”

“물론, 아마도 너는 조선 최초의 여성 여행가로 기록될 것이다.”

***

“염 참군. 원양 항해는 조선의 인근 내해만 움직였을 때와는 다르네. 물론, 우리 배의 선원들이 수군 출신이라 어느 정도는 훈련이 되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 하지만, 보름을 넘어 한 달씩 이어지는 망망대해에서의 항해는 그런 규율이나 훈련이 흔들릴 수도 있음이야.”

“그래서, 매일 아침 식사 후 명심보감(明心寶鑑)을 읽어주는 시간을 가지고 있습니다.”

“오호! 그거 좋은 생각이구만.”

원종은 진심으로 참군 염호진의 생각에 감탄했다.

명심보감은 고려 충렬왕때 나온 책으로 문신 추적(秋適)이 어린아이들의 행동과 교양을 정립해주기 위해서 성인들의 금언(金言), 명구(名句)를 모아 놓은 책이었다.

‘착한 일을 한 사람에게는 하늘이 복을 주고, 악한 일을 한 사람에게는 하늘이 재앙을 내린다’는 공자의 말로부터 시작되어, 윗사람을 공경하고 도덕적인 삶을 살 수 있도록 가르치는 책이었다.

유교적으로 윗사람과 아랫사람의 규율 행동을 정리한 책이었기에 오랜 항해로 인해 스트레스가 쌓이더라도 의식에 새겨진 유교적 도덕이나 성인들의 말에 선상 반란과 같은 최악의 사태가 일어나지는 않을 터였다.

유럽의 대항해시대에 선상 반란이 일어나는 이유를 보면, 가장 기본이 되는 규범을 선원들이 지키지 않게 되고, 그걸 바로 잡기 위해 상관들이 폭력으로 억압하다 보니 선상 반란이 일어났었다.

그런 사소한 행동에서 오는 시발점을 유교적 관습으로 묶어 몸에 익히게 된다면 선상 반란이 일어날 이유가 없었다.

이런 가두어진 환경에서 규율을 지키게 만드는 것에 강점을 가진 것이 유교적 소양이었다.

서로가 바른 마음, 몸가짐을 가져야 한다는 선인들의 말을 매일 주입 받으면 최악의 상황에서도 지킬 것은 지키는 이들이 될 터였다.

“배를 타고 가는 동안 할 일이 없는 이들에게는 언문과 한자도 가르쳐 볼까 하오. 유학자가 되라는 소리는 아니지만, 그래도 글을 알게 된다면 선원들이 무료해 하지는 않을 것이오.”

“저도 제조 어른의 의견에 찬성합니다. 할 일이 없으면 사고를 치기에 작업을 시킨다고 하지만, 책을 읽고, 배움을 한다면 사고를 치는 것 자체가 줄어들 것입니다.”

“그래. 망원경을 들고 살피는 견시자를 빼고는 공부를 하거나 낚시를 하거나 자유를 주게나.”

서양처럼 할당량의 술을 주어 스트레스를 풀게 하지 않고, 자유시간을 주어 그 스트레스를 풀게해야 했다.

“네. 그렇지 않아도 제조 어르신이 알려준 그물침대가 의외로 편하다고 하여 다들 호평입니다. 처음에는 천에 싸여서 공중에서 자는 게 뭐냐고 투덜거렸는데, 바닥에 이불을 깔고 자는 것보다 더 편하다고 하여 그물침대에서 다들 잠을 자고 있습니다.”

“하하하. 그렇지. 바닥에서 자면 배가 흔들릴 때마다 이리저리 밀리지만, 기둥 사이에 만들어진 그물침대는 이리저리 흔들려도 편하게 잘 수가 있지.”

내해에서만 운행했던 조선의 선원들은 그냥 바닥에서만 잠을 잤다.

다음 날이면 육지에 닿을 수 있으니 잠자리에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던 것이었다.

하지만 보름 이상, 한 달 가까이 원양 항해를 하는 처지가 되자 다들 잠자리에 불만이 많았는데, 그물침대를 만들어 주자 다들 바닥에서 자는 것보다 좋다며 만족하고 있었다.

“제조 어른! 낚시로 만새기를 잡았습니다! 얼른 오십시오!”

그리고 선원들이 또 만족스러워하는 부분이 있었는데, 바로 회를 먹을 수 있는 것이었다.

원양 항해를 나서면서 현대식 낚싯바늘과 릴, 낚싯줄을 만들게 해서 배마다 10여 개씩 비치를 시켰는데, 이렇게 배가 움직일 때 미끼를 달아 던져두니 큰 고기가 걸려 올라왔다.

바다에서 바로 잡은 싱싱한 고기였기에 바로 회를 처먹었는데, 기생충이 걱정되어 먹지 못 하게 했음에도 몰래 먹는 것을 보고는 포기를 했다.

물론 나도 회가 먹고 싶을 때는 식초에 담가 한 시진 이상 두었다가 먹었는데, 진기나 언년이도 내가 먹는 것만 먹었다.

“조선 사람들은 어찌 이리 회를 좋아하는 겁니까? 이해를 할 수가 없군요.”

분명 조선말을 하는데, 조선 사람을 이해할 수 없다고 하는 자가 있었는데, 위해 항에서 우리 배에 올라탄 신라방 사람 김일휘였다.

< 193. 아직은 키워야 할 때.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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