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쉐프 조선을 부탁해!-192화 (192/327)

< 192. 정답이 아닌, 최선의 답. >

“전 제조. 농업이 아닌 상업이 최선의 답인가?”

“네? 답은 아닙니다.”

사실 답이 없는 질문이었다.

“상업이 최선의 답이 아니며, 농업도 최선의 답은 아닙니다. 서로 간의 균형이 맞아야 가장 정답에 가까운 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허허허. 이것도 중용(中庸)의 도(道)가 스며들어 있는 것인가?”

“네. 그것이 세상의 이치이지 않겠습니까? 농사를 강조하여 쌀을 쌓아두고 있더라도 재화를 옮겨주고 팔아줄 상인이 없으면 쌀을 썩히게 될 뿐입니다. 물론, 그 반대로 상인만 많고 농사를 짓는 이들이 없으면 굶어 죽게 되는 것이지요.”

“무엇이든 과하고 부족한 것보다는 적당한 중간이 알맞은 법이로군. 그렇다면 자네가 보기에 조선은 상업과 농업의 중용을 지키고 있는 것 같나?”

“지키지 못하고 있습니다. 농업에 심하게 치우쳐져 있습니다. 그리고 이 치우침도 자연스러운 치우침이 아니라 인위적인 치우침이기에 답이 되지 못하고 문제만 생기고 있다고 보옵니다.”

“인위적인 치우침? 농사를 강조하고 중히 여기는 것이 인위적이라고 보는 것인가? 일이 힘들더라도 농사를 지어야 사람들이 먹고사니 그런 생존을 위해 위정자들이 농사를 강조하는 것인데. 그것이 인위적이고 문제가 된다고 생각하는 겐가?”

“농사가 힘이 들지만, 그렇게 농사를 지은 농민들이 수확물을 다 가질 수 있다면 농사를 권하는 위정자의 강요도 자연스러울 것입니다. 하지만 실제 논밭에서 나는 곡식 대부분은 농민이 가지지 못합니다.”

“그거야 당연하지 않은가 자영농이 아닌 소작농이라면 그들이 땅을 빌려 짓는 것이니 빌린값을 주어야 하겠지.”

“네 맞습니다. 빌린 땅이라면 값을 치러야지요. 하지만 문제는 그런 위정자들이 농민을 땅에 예속시켜 땅을 벗어나지 못 하게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농사가 힘이 들고 목구멍에 풀칠하기 힘들면 공인이 되거나 상인이 될 수 있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게 농민을 땅에 묶어 두는 것이 바로 위정자들입니다.”

“그것은 먼저 먹고사는 것이 해결된 이후에나 풀어줄 수 있는 문제가 아닌가? 공인이 만든 물건이나 그런 물건을 사고, 파는 상인도 우선은 먹을 게 있어야 필요한 거 아니겠나? 그래서 선인들은 농사를 가장 중히 여기는 것이야.”

“그 먹고사는 것이 과연 해결되겠습니까? 태고 이래로 농민들은 자나 깨나 농사를 지어오고 있는데,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되었습니까? 아마 지금쯤 조선에서는 보릿고개가 시작되고 있을 것입니다. 아주 오랫동안 매년 보릿고개를 겪고 있는데, 그것이 해결된 적이 있었사옵니까?”

“흐흠흠.”

“조선이 개국한 이래 보릿고개가 짧을 때는 있었을지언정 없었던 적은 없습니다. 오랫동안 농사를 중히 여기며 농본주의를 펼쳤음에도 보릿고개 하나 해결하지 못했습니다. 풍년이 왔음에도 그 곡식은 위정자들의 창고로 다 들어가지, 농민들의 집으로 들어가는 것은 일부분일 뿐입니다.”

“그래서 조정에서는 환곡제도 같은 것을 만들어 보릿고개를 넘을 수 있게 돕고 있지 않나.”

“환곡제도 보다는 교역이 더 보릿고개를 넘기 수월하게 해줍니다. 명에 온 사신단이 1,500석의 곡식을 가져가고, 저의 춘봉 상단이 2천석, 송상이 천석의 곡식을 가지고 조선으로 갔습니다. 여기에는 쌀도 있지만 평민이 구할 수 있는 값싼 잡곡도 포함되어 있기에 이 4,500석의 곡식이 조선의 보릿고개를 없애 버릴 수도 있습니다.”

사실 이미 1,500석 이상을 더 들고 갔으니 물경 6천 석에 달하는 곡식이 조선에 들어간 것이었다.

“조선이란 좁은 땅에서 농업을 강조했던 위정자들이 수십 년, 수백 년 동안 없애지 못했던 보릿고개를 공인들이 만든 배를 타고 교역하는 상인들이 없애 버릴 수도 있다는 것이옵니다.”

“흠. 방금 한 말은 위험한 말이네. 위정자를 부정하는 말로도 들릴 수 있음이야.”

위정자들이 농본을 강조해도 안 되던 보릿고개를 교역으로 해결했다는 단순한 말이었지만, 그 정치의 주체인 위정자에는 왕도 들어가 있었기에 서거정이 급히 말을 막았다.

“...그 부분은 제가 실언을 했습니다.”

역모로 엮일 수도 있는 발언이라 원종은 급히 사과했다.

그러면서 정신을 차렸다.

아무리 양반들이 농민들을 수탈하고 하더라도 농민들이 직접 나서지 않는 이상은 결국 윗사람들만 바뀌게 되는 것이다.

여기서 서거정에게 조선의 위정자들이 일을 잘못했다고 핏대를 세워봐야 바뀌는 건 없었다.

“조선으로 가져간 곡식 4,500석은 요동과 산동의 곡식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리고 남경이 있는 강남땅의 곡식들을 가지고 간다면 몇천 석은 더 조선으로 가져갈 수 있을 것입니다. 이렇듯 교역으로 곡물에 여유가 있을 때 농업의 체질을 개선해야 하옵니다.”

“농업의 체질을?”

“네. 아직 조선에선 직파법(直播法)으로 농사를 짓고 있습니다. 하지만, 곡식이 많이 나는 중국 강남땅에서는 씨를 싹틔워 심는 이앙법(移秧法)을 쓴다고 합니다. 강남땅인 소주와 항주에서는 이앙법으로 농법을 변경하였는데, 그 이후 수확량이 3배로 뛰었다고 합니다.”

“3배로 수확량이 늘었다고? 전라도에서 이앙법을 하는 이들이 몇 있다고 들었는데, 그 정도로 수확량이 늘거나 했다는 말은 듣지 못했네.”

“이앙법으로 수확량에 유의미한 변화가 있었기에 그들이 계속 이앙법으로 농사를 짓는 것 아니겠습니까?”

“하긴, 수확량이 배로 늘었다고 하면 세금을 더 징수할지도 모르니 입을 다물고 있을 수도 있겠군.”

“수확량을 늘릴 수 있는 이앙법을 물이 흔한 하삼도에 보급하기 위해서는 안정적으로 물을 쓸 수 있는 호수와 보를 만드는 것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그런 농업의 체질을 개선해서 수확량을 늘려야 굶어 죽는 이들이 줄어들 것입니다.”

“흠. 호수와 보를 만드는 건 한두 해로는 안 될 터인데.”

“맞습니다. 거기에 처음 몇 해 동안은 이앙법에 익숙하지 못해 흉년이 올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배를 늘려 멀리 남경에서 곡식을 사 오고, 여차하면 왜에서도 곡식을 사 온다면 초반에 생기는 실수나 오류로 생기는 흉년도 대비할 수 있을 것입니다.”

“흐음. 조선 안에서는 농법을 바꾸어 생산량을 늘리고, 조선의 밖에서는 배를 늘려 곡식을 나른다라... 아마도 이 말을 궐에서 들었다면 나는 무조건 반대했을 것이네. 내외우환(內外憂患)이 한 번에 올 경우를 생각해야 한다고 반대했겠지. 하지만 선창에 가득 들어찬 곡식을 보니 생각이 달라지는군.”

서거정은 괜히 쌓여 있는 쌀 포대를 두들겼다.

“요동과 산동에서 산 곡식이 이 정도이니 중원 전체로 따지면 어느 정도나 곡식이 쌓여 있을지 감도 안 잡힐 지경이야. 이렇게 많은 곡식이 있는 것을 아는데도 조선에서 농사를 중히 여기며 농본(農本)을 최우선으로 할 이유는 없겠지. 중용의 도처럼 농업과 상업의 균형을 잡아야겠어.”

서거정의 균형을 잡겠다는 말에 원종은 놀랐다.

본래 양반이 정치를 할 수 있게 그 밑을 받쳐주는 이들이 농업이라고 생각했기에 양반들이 자진해서 농본주의를 놓을 수 없을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이번 사신단에서 많은 것을 보고 깨달았는지 서거정의 인식이 바뀌어 버린 것이었다.

같은 훈구파라도 한명회와 신숙주가 주도하는 파벌은 개혁적인 면이 있었고, 서거정과 같은 이들은 훈구파 중에서도 가장 보수적인 인물이었는데, 그런 서거정이 바뀐 것이었다.

“허나, 중국의 곡식을 사 오려면 그 값을 치르는 물건이나 은이 있어야 하는 것 아니겠나? 지금은 본자기가 큰돈이 되지만, 추후에 본자기의 가격이 내려가게 되면 그 이후에는 어찌하려는가?”

“본자기 외에도 교역을 위한 물건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송상도 따로 준비하고 있지만 인삼을 밭에서 재배하는 것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인삼? 흠. 하긴, 밭에서 인삼이 재배되어 수량을 맞출 수만 있다면 그보다 좋은 교역 물품은 없겠지.”

“네. 이러한 것도 농업의 체질을 변경하는 것에 들어가옵니다. 좌참찬께서 이런 부분에 신경을 써주십시오.”

사실 목화나 인삼 같은 작물은 상품작물이라 재배 면적이 커지게 되면 일반 농산물의 재배 면적이 줄어들어 식량난이 올지도 몰랐다.

하지만 닭과 오리털로 인해 목화 재배 면적이 줄어들 것이기에 이런 상품작물 재배로 인한 곡물 부족 사태는 일어나지 않을 터였다.

서거정은 중국의 문인들과 교분이 깊고, 동국여지승람(東國與地勝覽)을 비롯해 수십 종의 저서를 남길 만큼 열정도 있는 사람이라 서거정이 농지 정리나 이앙법 보급을 맡아 주면 좋을 것 같았다.

사람은 해외에 나와서 넓은 세상을 봐야 배우고 변화한다고 했는데, 나이가 들어도 그런 변화를 받아들인 서거정이 대단했다.

***

배를 타고 위해항으로 오며 서거정에게 이앙법에 대한 이야기와 농번기 때 전국 각지에 호수와 보를 쌓는 일이 가장 먼저라고 이야기했고, 필요하다면 자신의 집안 논에서 그런 실험을 해도 된다고 이야길 했다.

“우선은 전라도에서 이앙법으로 농사를 짓는다는 이들을 만나보도록 하지. 자네 말처럼 이앙법으로 농법을 변경함으로 해서 그렇게 수확량이 늘어나는지부터 살펴보겠네. 그런데 저 배를 타고 후추를 구하러 가는 것인가? 배가 왜 검은 것인가?”

위해항에 도착하자 누전선 세척과 한선 여덟 척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서거정이 말한 검은 배는 참군 염호진의 누전선이었다.

“배에 물이 스며들지 않게 바르는 타르라는 물질이 있는데, 그 색이 검습니다. 방수 효과를 주기 위해 저리 덕지덕지 바른 거 같습니다.”

“방수 효과를 주기 위해서라고는 하지만, 배와 돛이 모두 다 검은색이니 뭔가 이상하구만. 그럼 누전선 세척은 남쪽으로 가고, 나머지 한선들은 우리와 함께 조선으로 가는 것인가?”

“네. 우리가 북경으로 가 있는 동안 조선에 한 번 왕복을 했을 것이옵니다. 이번에도 선창 가득 곡식을 가져간다면 보릿고개를 그냥 넘어갈 수 있을 것이옵니다.”

“이렇게 많은 곡식을 사 가도록 놔두는 명나라 조정이 대단하군.”

“이 모든 것이 발해방과 신라방 사람들의 도움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오늘 신라방에서 연회를 준비했다고 하니 교분을 만드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

“그래, 우리가 북경에 있는 동안 문제는 없었는가?”

“저야 정신없이 바빴습니다요. 도련님이, 아고. 상단주님이 명하신 대로 벽란도에 창고를 만들고, 거기에 쌀을 쌓아두었습니다. 이번에 가져가는 것은 대부분이 밀가루라서 파주 문발에 있는 국수 작업장에 놔둘 것입니다.”

“그래. 삼식이 너는 교역에 집중하고, 곡식을 파는 것은 공랑 점포의 오추에게 맡기거라. 형님이 계신 동항과 대련, 위해 항을 오가는 무역로를 굳건하게 만들거라. 그리고 한선을 더 추가하여 동래와 오가는 정기적인 조운선을 놓도록 하거라.”

“네. 그렇지 않아도 동래의 희재가 왜놈들에게 유황을 사며 줄 곡식이 필요하다고 빨리 배를 놔달라고 난리입니다요.”

“유황은 꼭 필요한 것이니 신경을 써주도록 하거라.”

“네. 그런데 또 신경 쓰실 것이 있습니다요.”

“또 뭐냐? 신숙주 대감님께서 사주단자를 보낸 지 오래이니 날을 빨리 잡자고 하십니다요.”

“끄응. 그건 후추를 구해 온 이후로나 될 것 같구나.”

혼사 문제는 어쩔 수가 없었다.

“송상의 배를 끄는 김검수라는 이도 신경을 쓰셔야 할 것 같습니다.”

“맞습니다요. 햐 그놈이 진짜...”

삼식이와 이야기하는 가만히 있던 참군 염호진이 말을 하자 삼식이도 동의한다며 뒷목을 잡았다.

“그자가 왜?”

“아니, 그 쌍놈의 새끼가 말입니다...”

< 192. 정답이 아닌, 최선의 답.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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