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1. 정도(定道)이자 매너(manner). >
“폐하께서 도(道)를 지향하시어 도장을 가까이하시며, 도가의 도에 맞는 신선로를 드시는 것은 실로 득도하기 위한 구도자의 길과 같으실 것이옵니다.”
“그렇지. 대도(大道)를 이루기 위함이지. 그래야 선열들의 후예로서 부끄럽지 않지. 허허허.”
성화제는 푸근한 살집만큼 사람 좋은 웃음을 지었는데, 어떻게 보면 약간 모자란 것 같다는 느낌도 들었다.
“하오나 폐하. 그 대도를 이루기 위한 길을 걸으시며 다른 이들에게 그 도를 나눠주시기만 하시옵니까?”
“도를 닦아 다른 이들에게 나눠주고 있다고? 그게 무슨 말이냐?”
성화제는 자신의 득도를 위해 살뿐인데, 그 도를 닦아 다른 이들에게 나눠주고 있다는 말에 얼굴이 달라졌다.
“내 도(道)를 누가 나눠 가졌다니?! 나는 내 도를 나눠 준 적이 없는데, 어떤 놈이 내 도를 몰래 나눠 가졌다는 말이냐?”
“바로 폐하의 옆에 있는 시녀와 태감들이 나눠 가졌습니다.”
“뭣? 네 이놈들을!!”
자신이 가져야 하는 도를 나눠 가졌다는 말에 이제까지 입속의 혀처럼 부리던 시녀와 태감들을 죽일 듯이 쳐다보았고, 위사들에게 데려가 죽이라고 할 것 같아 원종이 나섰다.
“폐하. 폐하께서 그들에게 도를 나누어 주신 것이지 저들이 나쁜 마음을 품고 도를 나눠 가진 것이 아니옵니다.”
“내가 나눠주었다고?”
성화제는 자신의 도를 나눠준 적이 없는데 자신더러 도를 나눠 가졌다고 하니 이게 무슨 일인지 알지 못했다.
“네. 폐하. 숙수가 신선로를 조리하며 이야기하는 말에는 자연의 섭리가 들어가 있사옵니다. 땅에서 열이 올라와 섬이 생기고, 그 섬에 초목이 자라나며 동식물이 모여드는 것이 바로 자연의 섭리. 자연의 도(道)이지요.”
“그렇지. 청수 도장도 신선로에 도가 들어있다고 했다.”
“네. 하지만, 그 자연의 도가 녹아있는 음식을 폐하와 귀비께서 드실 때 그 자연의 도를 바로 드시지 않고, 다른 이들에게 나눠주신 것입니다. 자연의 도가 바로 폐하와 귀비님께 오지 않고 옆으로 새고 있으니 묘하게 불편함을 느끼신 것이옵니다.”
“그렇다면, 시중을 드는 시녀나 태감들이 있기 때문에 불편함을 느끼고, 도(道)를 다 받지 못한다는 것이냐?”
“그렇사옵니다.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생각해 보십시오. 평원을 뛰어다니는 말이나 양이 풀을 먹을 때 다른 이의 손을 거쳐서 풀을 뜯습니까?”
“그렇다면 우리가 직접 젓가락질을 하지 않아 불편함을 느낀다는 것이냐? 이제까지는 그런 불편함을 느껴본 적이 없는데도?”
“그것은 음식에 따라 다르옵니다. 자연의 도가 담긴 재료를 사람이 조리하면 그 도가 헝클어지고, 다른 도와 섞여 맛을 내게 됩니다. 그런 음식은 자연의 도가 흐트러져 있기에 불편함을 느끼지 못합니다. 하오나. 신선로는 그런 음식들과는 다르옵니다.”
“흐음. 그냥 직접 음식을 집어 먹으면 불편함이 해결된다는 말인가? 신선들의 음식을 먹는다는 것이 참으로 힘드는군.”
성화제는 자연의 도가 어떻고 저떻고 하는 말이 나오자 귀찮은지 그냥 포기한 얼굴이 되어 버렸다.
“거기다. 너무 격의(隔意)를 차렸사옵니다. 소신이 조리한 것을 그대로 따르려고만 하다 보니 폐하와 귀비께서 그 흐름에 휩쓸려 버린 것이옵니다.”
“흐름에 휩쓸려 버렸다고?”
“네. 숙수는 제가 했던 것을 그대로 하는데, 그 조리하는 순서는 같아도 시간이 다르옵니다. 본래 먹는 이의 속도에 따라 거기에 맞추어 조리를 해야 하는데, 지금은 그 반대가 되어 버렸습니다.”
“아하, 그러고 보니 우리가 먹는 속도를 숙수가 만들어 올리는 속도에 맞춘 것이로구나. 도가의 도(道)니 뭐니 하는 것보다 이 속도가 불편하게 만드는 것이었어. 하하하.”
성화제는 물론이고 만 귀비도 그제야 불편했던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보통의 음식은 다 만들어져 오기에 내가 먹고 싶다는 것을 이야기하면 시녀가 옮겨주는 것이니 음식이 나를 따라왔지만, 신선로는 바로 조리를 하는 것이라 숙수가 만들어내는 속도에 우리가 맞추어졌었구나.”
“네 맞습니다. 숙수께선 아마도 폐하와 귀비마마의 눈앞에서 조리를 하다 보니 긴장을 했을 터이고, 이제까지와는 다른 처음 보는 음식을 하는 것이었기에 먹으시는 두 분의 속도를 확인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음식을 하며 먹는 이의 속도에 맞추지 못했다는 말에 신선로를 조리했던 숙수의 얼굴이 검게 변했다.
죄를 지었으니 벌을 받게 될 것이라 여긴 것이었다.
“하오나, 드시는 속도를 확인하려고 했더라도 두 분께 바로 드리는 것이 아니라 중간에 시녀와 태감을 거치게 되니 그 속도의 확인이 어려웠을 것입니다. 그러니 이러한 불편함을 없앨 겸, 자연의 도를 오롯이 혼자 쌓을 수 있도록 두 분께서는 식사 시중을 받으실 때 직접 젓가락으로 드시는 것을 추천해 드리옵니다.”
“흐음. 그렇게 하면 귀찮을 것 같은데.”
“폐하. 귀찮음을 이겨내어야 도를 쌓을 수 있다지 않습니까? 신선이 되어 천년만년 소첩과 같이 살자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으하하하. 그렇지. 그래. 귀찮음을 물리치고, 도를 쌓아야지.”
“소신은 숙수에게 폐하와 귀비마마의 속도에 맞추는 방법을 다시 한번 알려주도록 하겠으며, 이런 드시는 속도에 맞춰 시중 드릴 수 있게 시녀와 태감들에게 신선로를 직접 먹이며 가르치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그렇게 하라.”
만 귀비의 불편하다는 것을 아무도 다치지 않게 잘 해결한 것 같았다.
“대협 은혜를 입었소이다. 어찌 이 은혜를 갚아야 할지 모르겠소이다.”
속도를 맞추지 못해 죽을 뻔했던 숙수는 침전을 나오자마자 내게 고맙다며 인사를 했고, 시녀들과 태감들도 고맙다고 했다.
“폐하께 이야기 올렸듯이 다들 신선로를 먹으면서 이야기를 합시다.”
그렇게 그들에게 신선로를 직접 해주며, 폐하와 만 귀비가 편하게 먹을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사실 조리하는 요리사와 서빙하는 서버와는 어느 정도 교감이 필요한 일이었다.
한국에서는 서빙하는 서버를 그저 알바생 취급하지만, 서양의 레스토랑에서는 조리부와 서버부가 따로 나뉘어 있고, 각각 매니저가 있을 정도로 전문성을 인정해 주는 일이었다.
그런 두 파트 간의 조율이 안 되어 있다 보니 먹는 속도를 조절하지 못했고, 그런 속도에서 오는 불편함을 만 귀비는 바로 느낀 것이었다.
그래서 직접 신선로를 만들어 숙수와 시녀 태감에게 먹이며 어떻게 신호를 하고, 조절해 달라고 눈과 손으로 이야길 하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참으로 귀인이오. 어찌 이러한 방법을 다 알고 있는 것이오? 그리고 이것을 다른 이들에게 알려주어도 되겠소?”
“물론입니다. 주방에서 일하는 숙수라면 당연히 알고 있어야 하는 방법입니다. 제가 알려드리는 방법을 책으로 만들어 궁에서 일하는 이들에게 알려주도록 하십시오. 주방비법(廚房秘法) 정도의 이름이면 되겠군요.”
“주방비법! 내 문인들에게 부탁하여 오늘 배운 것을 길이길이 전할 수 있도록 책을 만들겠네.”
“물론, 그 책에는 저의 이름과 폐하와 귀비마마와의 일화도 들어가게 되겠지요?”
“물론이네. 주방비법을 알려준 이로 맨 앞에 이름을 남길 것이고, 폐하와 마마들에게 어떻게 음식을 올리고, 어떻게 시중을 들어야 하는지를 남기겠네.”
“그 주방 비법을 만드는 것에 우리 태감부도 돕겠네.”
“우리 궁녀들도 돕겠습니다. 이제까지는 이런 부분을 모르고 그저 귀인들의 입 안 혀처럼 움직이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이런 체계적인 시중의 방법이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이렇게 모든 이들이 유기적으로 움직여야 한다니.”
“하하하. 궁내 주방에 체계가 잡히고 서로 싸우지 않고 유기적으로 같이 움직이게 된다면, 모두에게 이익이 생길 것입니다.”
신선로를 먹으며 숙수와 시녀, 태감들을 뭉치게 만들었는데, 처음 레스토랑을 만들 때 쉐프들과 주방이모들 서버들이 다 따로 자기 입장만 내세울 때 가 기억이 났다.
서로의 입장을 바꿔 서로를 이해하게 만드는 데는 이런 한국 특유의 문화인 회식이 꼭 필요했다.
근래 들어 회식이 꼰대들의 직장문화 취급받는 일도 있었지만, 이런 유기적인 공동체 의식 함양에는 최고의 방법이었다.
이거 일 끝나고 부서끼리 뭉쳐서 한잔하는 회식도 미리 기록에 남겨야 하는 거 아냐.
***
“장서고를 뒤져보니 이 책도 있더군. 그리고 이 소개장을 가져가게나.”
서창의 우두머리인 왕직이 조선의 상관까지 찾아와 책 다섯 권을 더 주었는데, 정화의 항해에 참여했던 부관이 남긴 기록이었다.
“내가 아는 이들 중에선 정화 님의 항해에 참여했던 유일한 자네. 지금은 관직에서 물러나 항주에서 살고 있으니 도움이 될 것이야.”
대항해에 참여했던 자가 아직 살아 있다고 하니 글로 보는 것보다 더 와 닿을 것 같았다.
“그리고, 이것은 지원금이네. 다음에 올 때 새로 만든 책으로 가져와 달라는 지원금일세.”
왕직은 한자 크기의 상자를 건네주었는데, 100냥짜리 은전 10개가 들어가 있었다.
“이렇게 많이 주셔도 되는 것입니까?”
“하하하. 서창의 대태감이 바로 나네. 그리고, 이 패를 가져가게 명나라의 어디에서든 통할 것이야.”
왕직은 녹색 옥으로 만든 신분패 비슷한 것을 건네주었는데, 관패(官牌)였다.
“정화 님처럼 저도 항해일지를 쓰게 되면 바로 오늘부터 쓰도록 하겠습니다. 저의 대 항해에 아주 큰 도움을 준 사람으로 왕직 님의 이름을 가장 위에 올리겠습니다.”
“하하하하. 내 그것까지는 원한 것이 아닌데, 고맙구만. 그럼 다음에 또 북경으로 오게나. 그때는 진짜 술 한잔하지.”
돈은 물론이고 명나라에서 행세할 수 있게 관패까지 줘 여준 왕직은 할 일은 다 했다는 듯이 갔는데, 역사에 기록된 서창의 우두머리로 피도 눈물도 없는 내시로만 여겼던 것이 미안할 정도였다.
그래. 어쩌면 왕직이든 양방이든 내시였기에 기록을 남긴 문인들에게는 밉보였을 테지.
나라도 사람이 의리가 있으며 일 처리가 깔끔하고 웃대 선인들을 공경할 줄 아는 위인이라고 기록을 남겨주기로 했다.
***
조선에서 싣고 온 본자기와 인삼은 물론이고 팔 수 있는 것은 다 팔았기에 그 돈으로 돌아가는 누전선 세척에는 곡식을 가득 실었다.
서거정이 명나라 조정에 아는 관리들이 많았기에 운하를 통해 올라온 곡식들을 저렴하게 구할 수 있었는데, 누전선 3척 1,500석을 곡식만으로 다 채웠음에도 돈이 남았다.
그리고 선창에 가득 들어찬 곡식을 보며 사신단의 양반들은 감탄을 했다.
“뭔가 앞뒤가 안 맞는 상황인데, 뭔가 맞는 듯한 괴리감이 있으니 이것 또한 배를 씀으로 해서 생긴 일이로구나.”
서거정은 이제까지 자신이 가지고 있던 고정관념이 이번 사신단으로 오며 많이 흔들리고 깨졌다는 것을 느꼈다.
성장하며 배우고 익혔던 것이 농본사회가 아래를 받쳐주는 성리학적 사회구조였다. 그리고 그런 성리학적 사회는 굳건한 농민들과 곡식이 지켜준다 생각했었다.
해서 처음 사신단이 배로 간다고 했을 때도 교역으로 이익을 낼 수 있다는 신숙주의 말이 마음에 들지 않았었다.
하지만 1,500석의 곡식을 구해 조선으로 돌아가게 되자 그러한 농본사회에 대한 믿음이 깨어지려 하고 있었다.
그리고 조선이 얼마나 작은 나라인지를 이번에 느끼고 있었다.
“전 제조. 농업이 아닌 상업이 최선의 답인가?”
< 191. 정도(定道)이자 매너(manner).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