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쉐프 조선을 부탁해!-190화 (190/327)

< 190. 신선들이 먹는 법. (3) >

“그냥 밥반찬으로 고기만 먹어도 되오나, 조금 더 맛있게 먹는 방법이 있사옵니다.”

원종은 풀드포크(Pulled Pork)를 먹을 때 스테이크 소스를 뿌려 먹는 것이 최고라고 생각했지만, 그것보다 더 손쉬우면서도 동양인의 입맛에 맞는 소스가 떠올랐다.

생선을 소금에 절여 만든 생선 젓갈을 가져오게 했는데, 바다와 거리가 있다 보니 민물고기를 소금에 절인 것을 가지고 왔다.

냄새를 맡아보니 쿰쿰하게 잘 숙성된 것 같았다.

국자로 젓갈 국물을 퍼내고 그 국물에 간장과 설탕, 식초, 전분 가루를 넣어서 일각 정도 짧게 끓였다.

냄비에 끓일 때는 묽었지만 전분 가루가 녹아 들어가자 걸쭉하게 변했다. 절구에 잘게 간 후춧가루를 넣자 생선 젓갈의 쿰쿰한 냄새도 사라지며 검은색의 우스타 소스와 비슷한 냄새를 풍겼다.

이렇게 만들어진 소스가 바로 케첩(ketchup)이었다.

아니, 무슨 생선 젓갈로 만든 것이 어떻게 케첩이 되느냐고 화를 낼 수도 있겠지만, 사실 이 케첩이라는 단어 자체가 중국 남부와 동남아 일대에서 쓰이는 민난어(閩南語)의 단어였다.

민난어로는 생선 액젓을 케첩이라고 불렀는데, 지역에 따라 케찹, 쿠에찹, 코에챱 등으로 발음이 되었다.

이런 케첩을 한자로는 규즙(鮭汁)이라고 썼는데, 규(鮭)는 복어나 연어를 나타내는 한자이기도 했지만, 일반적으로 사용될 때는 요리된 생선이라는 뜻으로 물고기 어(魚)자를 대신에 쓰는 글자였다.

즙(汁)은 국물이라는 뜻이니 규즙(鮭汁)은 생선으로 만든 즙, 즉 ‘생선 액젓’을 지칭하는 단어였다.

이런 생선 액젓을 말라카 왕국(지금의 말레이시아)에 온 영국인들이 맛을 보았고, 동양의 향신료에 진심이었던 영국인들은 생선 액젓도 향신료로 여겨 챙겨 갔는데 이것이 영미권에 알려진 케첩의 시작이었다.

이 생선 액젓에서 시작된 케첩은 영국과 유럽에서 호두나 버섯을 소금에 절여 호두 케첩, 버섯 케첩 같은 변형이 되었고, 이후 1800년대 중반 관상용으로나 키우던 토마토로 케첩을 만들게 되어 우리가 아는 케첩이 나오게 되는 것이었다.

토마토로 케첩을 만들기 전까지는 토마토의 열매가 붉은색이라 독이 있다 여겨 관상용으로만 키웠다는 게 재미있고, 야채로까지 여겨지는 토마토케첩이 생선 액젓에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도 재미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생선 젓갈 국물로 케첩 만드는 것을 널리 가르치게 된다면 본래 케첩의 역사가 어떻게 될지도 재미있을 것 같았다.

후추의 향과 설탕과 식초가 만들어내는 새콤달콤함이 걸쭉한 소스로 만들어지자 그릇에 흰 쌀밥부터 담았다.

그러곤 가장 묽은 흑갈색의 케첩을 쌀밥에 뿌렸고 그 위로 다시 풀드포크를 올린 후 생선 케첩을 다시 뿌려주었다.

“그릇 한 개에 이렇게 밥과 고기를 올린 것을 보니 이것도 온천에 앉아서 먹을 수 있게 만든 것이냐?”

“네. 그렇사옵니다. 고기 옆으로 단무지를 잘게 썰어 올리고, 파를 잘게 썰어 올리면 다른 반찬은 필요 없이 온천에 들어앉아서도 맛있는 음식을 드실 수 있으실 겁니다.”

“호오. 그렇구만. 흐으음.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구나. 호호호.”

한 부인은 그릇을 받아들곤 냄새부터 맡았는데, 생선 케첩이 만들어내는 향기와 풀드포크 고기의 냄새가 아주 마음에 드는 것 같았다.

한 부인은 이미 풀드포크의 고기를 맛보았기에 젓가락으로 고기부터 집어 먹지 않고, 고기와 밥을 한 번에 먹기 위해 숟가락을 들었다.

한 부인은 조선 사람이다 보니 숟가락을 쓰지 않는 중국인과는 다르게 은으로 된 숟가락을 사용했는데, 밥과 고기를 같이 먹는 데는 숟가락이 훨씬 더 편했다.

‘아, 이걸 먹기 위해 하루를 기다린 보람이 있구나. 부드럽게 씹히는 고기의 맛과 쌀밥과 어울려지는 충실감이 있어. 그리고, 은은하게 감칠맛을 더해주는 이 케첩이라는 검은 양념이 맛을 배가시켜주는구나.’

“근래에 돼지고기를 먹는 것을 두고 소나 양을 먹는 것보다 품격이나 풍모가 떨어진다는 말도 있지만, 그렇게 생각하는 이들은 이 수비도로 만든 돼지고기를 먹어보라고 하고 싶구나. 이것을 먹어보면 그 말이 나오지 않을 것이야. 아주 좋구만.”

시종으로 따라온 이들은 그런 한 부인의 입만 보고 있었는데, 원종은 그들에게도 풀드포크 덮밥을 만들어주었다.

“흰 쌀밥에 이렇게 잘 어울리는 고기라니.”

“그러고 보니 소나 말, 양은 유목민족이 키우는 고기이고, 돼지는 농사를 짓는 농경민족이 키우는 고기이니 곡식과 잘 어울리는 것은 돼지고기겠구먼.”

“그러면 돼지란 동물에게 품격이 없다고 했던 이들은 은근히 유목민족을 높게 쳐주는 것이었구만. 고기에도 의도가 있었군.”

“하지만 이렇게 온천에서 천천히 오랫동안 익힌 수비도란 방식은 정착 생활을 하는 농경민족만 해먹을 수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니 장성 넘어 녀석들에게 자랑할 수 있겠구만. 하하하.”

이야기를 듣고 있으니 음식을 만든 나란 존재 없이 음식이 퍼질 것 같아 참견했다.

“거기에 이 케첩이라는 양념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바다의 생선으로 만드는 액젓을 기본으로 하여 만드는 것으로 유목민족에는 없는 음식입니다. 이 모든 것을 고향인 조선을 떠나 명나라에 계신 마마님를 위해 조선 사람들이 만든 것이니 마마님의 덕을 칭송해 주십시오.”

“암. 그렇고말고. 마마님의 덕일세.”

사람들이 한 부인의 덕을 칭송할 때 원종도 풀드포크와 밥을 맛보았는데, 살짝 아쉬운 맛이었다.

제대로 된 수비드가 아니란 것이 첫 번째였고, 덮밥으로 해서 올릴 때 고기 위해 치즈를 올려주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

고기의 육질감에 치즈의 꾸덕함까지 있으면 좀 더 강한 맛을 줄 수 있었을 터인데 그게 아쉬웠다.

하지만 중국 애들이 지금 치즈 맛을 알게 되면 분명 치즈를 만들기 위해 요동이나 만주로 넘어오려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나자 치즈를 숨겨야 할 것 같다고 생각했다.

암. 아직은 치즈 맛을 몰라야 우리가 제대로 먹을 수 있지.

“너희는 무슨 일로 여기에 온 것이냐?”

다들 흥겹게 덮밥과 풀드포크를 즐기고 있는데, 검은 옷을 입고 검까지 패용한 태감들이 나타났다.

“마마님. 조선에서 사신으로 온 전원종을 급히 데리고 가기 위해 왔사옵니다.”

“급히? 무슨 일이 궐에서 생겼느냐?”

한 부인의 질문에 태감들은 대답해야 할지 말지 고민했는데, 결국 말로 하지 않고, 종이에 글씨를 써 한 부인에게 올렸다.

그리고 한 부인은 글을 보곤 나를 불러 종이를 보여주었다.

“어서 북경으로 가시지요.”

***

태감이 모는 마차는 미친 듯이 질주를 했는데, 그럴 만했기에 마차에서 줄을 잡고 버텼다.

태감이 써서 한 부인에게 보여준 종이에는 만 귀비가 불편하다고 쓰여 있었다.

아픈 것이 아니다, 불편하다고 하는 것을 보면 병은 아닌 것 같은데, 불편하다고 나를 부르는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궐에 들어가 만 귀비의 처소 앞에 줄지어 서 있는 신선로를 보자, 만 귀비의 불편이 나로 인해 만들어진 것인가 하는 찝찝함이 생겼다.

“어서 오게나. 귀비께서 그날 이후로 신선로를 해 드시는데 묘하게 불편하다고 하시고, 그때 그 맛이 나지 않는다고 하시네.”

서창의 우두머리인 왕직이 나를 맞이했는데, 병이 아닌 것이 다행이었다.

“묘하게 불편하시다고요?”

“그렇네. 마침 저녁으로 귀비께서 신선로를 드시니 자네가 시중을 들어주게나.”

옷을 깨끗이 갈아입고 침전으로 들어가니 일전에 왔을 때와는 분위기가 달랐다.

일단 경비를 서는 위사들이 두 배나 많아졌고, 그 위사들의 옷도 화려한 것이 계급이 높은 자들 같았다.

“오, 그래 왔구나. 네가 우리의 시중을 들어야 하겠다.”

만 귀비의 말에 들어가며 고개를 드니 그녀의 옆에 나란히 앉아 있는 자가 보였다.

선하게 생긴 얼굴이었는데, 살집이 붙어서 그런지 얼굴이 컸고, 풍채도 커서 만 귀비의 두 배에 가까운 덩치였다.

문제는 이자가 입고 있는 옷이었다.

황금색의 옷에 용과 기린, 학이 수 놓아져 있는 옷은 오직 천하에서 한 사람만이 입을 수 있는 것이었다.

명나라의 황제 성화제였다.

태감이 이끄는 대로 앞으로 나서 절을 하며 고개를 숙였다.

“네가 알려준 대로 숙수가 재료를 준비하여 신선로를 먹었었다. 처음 몇 번은 그대가 해주는 것처럼 아주 맛이 있었고, 땀을 흘릴 정도로 몸이 개운하였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자 묘하게도 신선로를 먹을 때 불편함을 느꼈다. 그래서 너를 급히 부른 것이다.”

“불편함을 끼친 것 같아 송구하옵니다. 그 원인을 찾아 개선하기 위해서는 폐하와 귀비님의 드시는 모습을 보아야 하온데, 평상시처럼 식사해주시면 소신이 그 원인을 찾아 해결하도록 하겠나이다.”

“흐음. 하긴, 그대가 계속 옆에서 시중을 들 수는 없으니 그렇게 하는 것이 맞겠어. 이것들을 치우고 신선로를 먹을 수 있게 준비하거라.”

귀비의 말 한마디에 차려지고 있던 음식들이 치워지고 내가 만든 화로보다 서너 배나 큰 신선로 화로가 들어왔다.

긴장한 듯한 숙수는 내가 처음 만 귀비에게 설명하듯이 요리한 것을 그대로 따라 했는데, 처음부터 끝까지 조리하는 양을 봐도 별다른 특이점이나 잘못된 점을 찾지 못했다.

그렇게 요리가 된 신선로를 시녀와 태감들이 그릇에 덜어 일일이 성화제와 만 귀비의 앞으로 옮겨주었는데, 그 순서도 내가 신선로를 알려주었던 그 순서 그대로였다.

그렇게 옮겨진 음식은 다시 옆에 앉아 있던 태감과 시녀들이 젓가락을 집어 먹여주었다.

본인이 젓가락질하지 않고 일일이 옆에서 떠 먹여주고 있다는 것이 과한 것 같았지만, 천하의 주인이라는 황제라면 저렇게 하는 것도 과한 것이 아니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렇게 신선로에 들어간 음식의 절반 정도가 사라지자 성화제와 만 귀비는 배가 부르다며 식사를 끝내었는데, 만 귀비는 기대하고 있다는 듯이 나를 봤다.

“귀비마마. 지금도 혹시 불편하시었습니까? 황제 폐하께 오선 어떠신지요?”

“뭔가 묘하게 불편했느니라.”

만 귀비의 말에 성화제도 고개를 끄덕였는데, 10살 넘게 연상인 만 귀비의 말이면 다 맞다고 하는 것 같은 인상이었다.

곰곰이 조금 전 식사를 다시 떠올리며 이상한 점이나 잘못된 점을 찾았지만, 특별한 문제는 없었다.

괜히 거슬리는 것이 하나 있었지만, 이것 때문에 불편함이 생겼다고 한다면 입을 잘못 놀린 죄로 경을 칠 수도 있었다.

어떻게 돌려 말하고 죄를 짓지 않을 수 있을까 고민하다 역시나 말도 안 되는 유사 과학의 틀을 빌려오기로 했다.

“소신이 황제폐하와 귀비마마의 식사법을 보고나니 그 불편함의 원인을 알 것 같습니다. 바로 도(道)를 지향하지만, 그것이 도(道)를 벗어났기에 불편함을 느끼고 계신 것입니다.”

“도를 지향하지만, 도를 벗어났다니? 그게 무슨 말인가?”

“도가의 도를 따르기 위해 도사를 늘 가까이하고 있으며, 도장께서도 신선로라는 음식을 보곤 도가의 도에 어울리는 음식이라고 하여 귀비와 같이 먹는 것인데, 그것이 도를 벗어난다고 하니 의아하구나.”

이제까지 가만히 있던 성화제도 입을 열었는데, 태감들보다는 굵었지만 얇고 가는 목소리였다.

< 190. 신선들이 먹는 법. (3)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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