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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쉐프 조선을 부탁해!-189화 (189/327)

< 189. 신선들이 먹는 법. (2) >

189. 신선들이 먹는 법. (2)

“뭣이? 신선로가 위험한 음식이라고?”

“신선로가 어떻게 위험한 음식이라는 것인가? 독이라도 있는 건가?”

“그렇다면 자네는 위험한 음식을 만 귀비에게 접대했다는 것인가? 이 사람 이거 큰일 낼 사람이구먼!”

“진정하십시오. 음식에 독이 들었다거나 하는 그런 위험이 아닙니다. 신선로의 이면을 보시라는 것입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신선들이 사는 섬을 형상화하여 숲이 있고, 새와 짐승들이 뛰어노는 평화로운 섬으로 보이지만, 그 이면은 어떻겠습니까?”

서거정과 세 명은 독이 들거나 한 것이 아니라는 말에 한숨을 돌렸지만, 그 이면을 보라는 말이 어떤 의미인지 몰라 인상을 찌푸렸다.

“신선로의 섬은 화로 속에 들어 있는 이 숯불로 조리를 하게 됩니다. 만약 이 숯불이 좀 더 많이 들어가면 어찌 되겠습니까?”

“음식을 태우게 되겠지.”

“네. 당연하게 음식을 태우게 되지만, 실제 숯을 더 넣게 되면 이리됩니다.”

원종은 쇠집게로 숯을 들어 중앙의 구멍에 욱여넣기 시작했다. 그렇게 숯을 여러 개 더 집어넣자, 봉우리 면에 붙어 있던 김은 열을 참지 못하고 녹색이 노란색으로 변하더니 타고 난 재처럼 부스러져 내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숯불로 가열된 화로의 구멍에서 검은 숯가루가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숯불을 많이 넣어 좁아진 화로 안의 온도가 올라가자 공기가 역류하듯이 들락거리며 화로 안의 숯가루를 토해내는 것이었다.

“어허! 이런 일이.”

“정말 위험한 음식이구만!”

마치 화산처럼 재를 뿜어내는 신선로에서 멀어지기 위해 모두 다 탁자에서 벌떡 일어나 버렸고, 뿜어져 나온 숯가루는 음식에 내려앉아 버렸다.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는 말이 있듯이 숯불이 많아져서 생긴 일입니다. 숯불을 어떻게 조절하느냐에 따라 신선로를 맛있게 먹을 수 있던지, 그게 아니면 이렇게 뜨거운 불이 타올라 재가 뿌려져 음식을 먹지 못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그거야 부엌어멈들이 숯 조절하는 것을 배우면 되는 것이지 않나.”

“그 말이 아니네. 전 제조는 음식으로 경고를 하는 것이야. 백성들의 불꽃은 신선들이 산다는 곳도 태워버릴 수 있음을 말하는 것이네.”

서거정은 내가 의도한 것을 바로 알아챘다.

역시 23살에 문과 급제하고, 각촉부시(刻燭賦詩 초에 금을 그어 놓고 촛불이 금에 닿기 전에 시를 먼저 쓰는 사람이 이기는 게임)를 장기로 여기는 사람이었기에 불꽃이 상징하는 바를 알아챈 것이었다.

“좌참찬 어른의 말이 맞습니다. 위정자들이 신선로란 음식을 즐기며 향락에 빠져 살게 되면 방금처럼 숯불이 많아질 것입니다. 이 숯불은 백성들의 속에서 타오르는 뜨거운 마음과 같습니다. 숯을 너무 많이 넣게 되면 이렇게 재를 뿌릴 정도로 난리가 나는 것입니다.”

민심을 그르치면 신선이고 뭐고 없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옛날 은나라 시절부터 신선이 되고자 산으로 들어가 연단을 했던 이들이 다 어찌 되었습니까? 진실로 도를 구한 극소수의 이들을 제외하고는 모두 다 굶어 죽거나 병을 얻어 죽었습니다.”

“그렇다면...”

“네. 이 신선로도 마찬가지입니다. 신선의 마음으로 과유불급하지 않고 중용하듯 음식을 먹는다면 신선들처럼 건강해질 것이고, 반대로 사리사욕에 눈이 멀어 욕심으로 이 신선로를 자주 먹는다면 병을 얻을 것이옵니다.”

현대인이라면 이게 무슨 근거도 없는 허튼소리야 할 테지만, 아직은 도교의 영향이 남아있어 깊은 산에서 연단을 하는 사람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는 시대였기에 서거정도 어느 정도는 수긍하는 눈치였다.

그리고 사실 신선로를 자주 먹을 정도의 사대부 양반이라면 당연히 채소보다는 고기를 많이 먹는 사람일 것이고, 원래부터 운동량이 작은 양반이니 신선로에 든 고기로 인해 살이 찌고 고혈압, 당뇨와 같은 병이 찾아올 터였다.

신선로를 자주 해 먹으면 병을 얻는다는 것이 무조건 거짓말은 또 아닌것이었다.

“신선이 먹는 방법이 있으니 그 방법을 어기고 사대부 양반들이 욕심을 부려 더 먹게 되면 큰일이 난다는 말이로군.”

“네. 그렇습니다.”

“허허 참으로 신묘하구만. 내 생각이 짧았음이야. 신선로를 먹다 보면 그저 향락에 빠져 사치할까 걱정을 했는데, 이러한 이야기가 있는 음식이라면 오히려 다른 음식보다 더 조심해서 먹게 될 것이야. 내 번잡한 걱정을 덜었네.”

이런 서거정의 태도에 원종 또한 마음을 놓았다.

수재로 소문난 서거정이 이렇게 넘어갈 정도라면 다른 이들도 뭐라고 하지 않을 것이었고, 보급에 문제는 없을 터였다.

“좌참찬 어른! 한 부인께서 사람을 보내오셨습니다.”

“한 부인께서?”

***

“어제 연회를 마치고 궐을 나서는데, 조선 사신단의 사람들이 하는 소리를 마마께서 들으셨답니다.”

“어떤 이야기를 들으셨는지요?”

“온천에 누워 먹는 밀떡을 먹고 싶다는 소리였는데, 마마께서 온천으로 갈 예정이시기에 그 음식을 알아 오라고 저를 보내셨습니다.”

“아! 물 밀떡을 말하는 것이군요.”

서거정은 자신도 알고 있다고 온천에 들어가 먹으면 쫄깃쫄깃한 것이 여간 맛있지 않다고 물 밀떡의 칭찬을 한참이나 했다.

그리고 북경에서 하루 거리인 순천에 온천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거리가 가까우니 전 제조가 직접 가는 것이 어떻겠나? 본자기와 배에 싣고 온 물건들을 판매하고 필요한 물건을 사고하다 보면 사나흘 걸릴 것이니 직접가서 요리를 해주고 숙수에게 물 밀떡을 알려주고 오게나.”

원종도 그간 조선을 음으로 양으로 많이 도와준 한 부인이었기에 기꺼이 그녀를 위해 요리를 해주고 싶었다.

***

“정말 사신단의 사람들이 온천에 들어오면 생각난다고 했던 이유를 알 것 같구나.”

한 부인은 시녀들과 함께 뜨거운 온천물에 들어가 밀떡을 먹으며 감탄했다. 쫄깃하게 입에 달라붙는 식감도 좋았지만, 그것보단 육수에 퉁퉁 불어 부드럽게 씹히는 것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전 목사가 이야길 했듯이 전 제조가 참으로 뛰어 나구나. 이런 물에 불린 떡을 생각해 내다니. 저기 구운 밀떡을 꿀에 찍어 먹는 것도 괜찮구나.”

이미 중년을 넘어 노년이 된 그녀였기에 치아가 좋지 못했는데, 이 물에 불은 밀떡은 제대로 씹지 않아도 물컹해서 먹기 좋았고, 간식으로 꿀 발린 건번보다 꿀을 찍어 먹을 수 있는 구운 밀떡이 좋았다.

“이렇게 부드러운 떡처럼 연한 고기가 있었으면 좋을 텐데.”

“마마님. 잘게 다져 경단이나 오랫동안 삶아 부드러운 고기를 준비시킬까요?”

“아니, 다진 후 뭉쳐 만드는 고기는 부드럽긴 하나, 왠지 그렇게 먹는 것은 고기가 아닌 듯한 느낌이 들어 별로이구나. 그리고 오랫동안 삶은 고기도 부드럽긴 하지만, 고기 특유의 그 씹히는 맛이 없어.”

“하지만 그런 씹히는 맛이 있으면 또 질기지 않을까요?”

“그렇지. 그러니 그런 고기 요리가 있으면 좋겠다고 하는 것 아니겠느냐. 호호호.”

한 부인의 이룰 수 없을 것만 같은 고기 이야기를 벽 뒤에서 듣고 있으니 씹는 맛이 살아 있으면서도 부드러운 고기 요리가 하나 떠올랐다.

하지만 현실적인 문제로 이게 되는지 한참이나 고민했는데, 이게 온천에 있다 보니 또 가능할 것도 같았다.

“마마 그러한 씹는 식감이 살아 있으면서도 부드러운 고기 요리가 하나 있사온데, 해드리오이까?”

“으응? 그런 고기 요리가 있다는 말이냐?”

한 부인은 벽 너머에서 대기하고 있던 원종의 말을 듣고는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네. 이곳 온천에서만 가능한 고기 요리이옵니다.”

“오! 그런 요리가 있다면 어서 해 다오.”

원종은 한 부인의 허락이 떨어지자, 바로 돼지를 한 마리 잡았다.

그러곤 목살과 앞다릿살, 안심 부위를 따로 챙기고는 다른 부위는 시녀들이나 일꾼들이 나눠 먹게 주었다.

“깨끗한 면포를 가져오고, 온천물 바닥에 만들어져 있는 진흙을 가져오거라. 그리고 너는 순천에 있는 온천 중에서 가장 뜨거운 물이 나오는 온천이 어디인지 알아 오거라.”

돼지고기에는 꿀을 먼저 바르고, 설탕을 끓여 만든 흑설탕 물을 다시 고기에 발랐다. 흑설탕이 고기에 스며들어 색이 변하자 거기에 후춧가루와 소금을 골고루 발라 양념을 했다.

양념이 고기에 어느 정도 스며들자 면포로 고기를 꼼꼼하게 둘러싼 이후 그 위에 온천물 바닥에서 긁어 온 부드러운 진흙을 발라 공기가 고기에 닿지 않게 만들었다.

고기에 바른 진흙이 말라 갈 때쯤 가장 뜨거운 온천물이 나오는 온천을 알아 왔는데, 직접 가서 손으로 만져보고 물 온도를 짐작해보니 60도에서 70도 내외의 온도였다.

이 정도의 온도면 수비드(sous vide)가 이론상 가능했다.

물론 고기를 비닐로 밀폐하여 조리한다는 수비드의 정의에는 벗어나는 방식이었지만, 비닐을 대신해 면포로 싸고 진흙을 발라 공기가 닿지 않게 하는 것은 같은 원리의 조리법이었다.

토기로 만든 옹기에 진흙을 바른 고기들을 넣고, 입구에 종이와 밀랍을 발라 밀봉을 했다.

그러곤 온천물에 옹기를 넣어두자 한 부인과 사람들이 신기해 하며 몰려들었다.

“그럼 저건 언제 먹을 수 있는 겐가?”

“지금이 미(未)시 (오후 1시~3시)이니 내일 신(申)시 (오후 3시~5시)에 잡수실 수 있습니다.”

“응? 종일 온천물로 조리를 한다는 말이더냐?”

“네. 그렇사옵니다. 고기의 억셈을 뜨거운 온천물로 달래주어 부드럽게 만들어주는 데 그러한 시간이 걸리옵니다.”

“흠. 먹고 싶다고 바로 먹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구나. 귀한 이를 위한 음식이겠지? ”

“그렇사옵니다. 빨리 먹기 위해 끓는 물에 하게 되면 요리가 실패할 수도 있기에, 충분한 시간을 두고 정성을 들여야 하는 음식입니다.”

“호호호. 그렇다면 내일이 기대되는구나.”

내일 먹어야 한다는 말에 한 부인과 사람들은 물러갔지만, 한 부인이 먹을 음식이었기에 병사 4명을 세워 옹기가 뒤집히거나 온천물에 떠내려가지 않게 지키고 있어야 했다.

그리고 다음 날 신시가 되어 온천물에서 옹이가 꺼내지자 한 부인을 시중드는 이들도 몰려들었다.

다들 온천물로 고기를 익히는 방법이 기상천외했기에 어떤 고기가 나오는지 궁금해했다.

밀봉했던 옹기의 입구를 떼어내자 옹기 안에서 뜨거운 기운이 얼굴을 덮쳐왔다.

온도계가 없어 어림짐작으로 온도를 체크했기에 너무 익어 질겨지지 않았을까 걱정했다.

제대로 된 온도계나 장비 없이 수비드를 한 것이 괜한 욕심이었나 싶었지만, 밀봉 비닐 대신 면포와 진흙을 발랐기에 괜찮지 않을까 하는 요행도 바랬다.

그리고 옹기에서 고기들을 꺼내는데, 옹기 속에서 고기가 익으며 흘러나온 육즙으로 인해 진흙이 흘러내리듯 바닥에 떨어졌다.

급하게 고기를 싼 면포를 열었는데, 겉면에 바른 흑설탕 물 때문인지 검은색 윤기가 잘잘 흐르는 고기가 김을 뿜어내고 있었다.

손가락으로 고기를 눌러보자 마치 두부처럼 손가락이 쑥 들어갔다.

수비드 풀드포크(Pulled Pork Sous vide)를 비닐 없이 성공한 것이었다.

본래는 먹음직스레 보이기 위해 겉면을 불로 익히는 과정이 필요했지만, 한 부인은 그런 것을 원하는 것이 아니었다.

꺼낸 고기를 그릇에 담아 한 부인의 앞으로 옮겼고, 숟가락 두 개로 고기를 누르자 탱글탱글하던 고깃덩이들이 갈가리 부서지기 시작했다.

“어머나! 어쩜 저리 고기가 부드러울 수 있지?”

수비드 풀드포크의 부드러움을 느껴 볼 수 있게 한 부인의 손에 작은 고깃덩이를 올려주자 손으로 움켜쥐었는데, 손에 큰 힘을 주지 않았음에도 고기가 뭉개지며 손가락 사이로 뿜어져 나왔다.

한 부인은 그런 손가락 사이로 삐져나온 고기가 신기한 듯이 그대로 입으로 가져갔다.

시녀들은 야인들처럼 손으로 고기를 먹는 모습에 급히 수저를 준비했지만, 한 부인은 그런 것을 기다리지 않고 손에 있는 풀드포크를 씹어 먹었다.

“오! 이렇게 부드럽다니. 그러면서, 고기의 결이 살아 있어 육질감까지 느껴지는구나. 돼지고기 말고 소나 양, 닭으로도 이 방법이 가능한 것이냐? 그리고, 이 조리법의 이름이 따로 있느냐?”

“네. 모든 고기는 이 방법으로 부드럽게 할 수가 있습니다. 온천물에 천천히 익히는 요리법의 이름은 수비도(水泌陶) 조리법이라고 하옵니다.”

낮은 온도에서 밀봉해 만든다는 뜻의 수비드(SOUS VIDE)가 연못 물과 도기로 조리한다는 뜻의 한자 이름 수비도가 되어 버렸다.

“그럼, 이 수비도로 만든 고기는 어떻게 먹는 것이냐?”

< 189. 신선들이 먹는 법. (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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