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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쉐프 조선을 부탁해!-185화 (185/327)

< 185. 전권특사. (3) >

“역시 자네는 멀건 매운탕이라고 해도 바로 받을 거로 생각했네.”

고주원이 건네준 생선국이라고 불러야 할지 매운탕이라고 불러야 할지 모를 그릇에는 무와 파, 생선만 들어있었는데, 소금 간만 되어 있다 보니 생선의 비린내가 꽤 심했다.

“자, 이름처럼 맵게 먹을 수 있게 이걸 넣게.”

고주원이 주머니를 건네주었는데, 향긋하고 매운 냄새가 주머니를 넘어 진동을 했다.

산초가루였다.

“그렇지 않아도 산초나 후추가 있어야 먹을 만하겠구나 싶었습니다.”

생선국을 매운탕이라고 부른 것이 언제부터인지는 몰라도, 한반도의 사람들은 생선국에 산초가루와 초피가루 혹은 천초가루를 넣어 먹었었다.

이 산초와 천초, 초피가루의 맵싸하고 알싸한 맛이 있기에 생선국을 매운탕이라고 불렀고, 고춧가루가 전해지며 고춧가루의 매운맛까지 더해져 우리가 지금도 먹는 매운탕이 된 것이었다.

이런 매운탕은 개천에서 송사리를 잡아 끓여 먹는 평민부터 수라상에 오른 쏘가리탕을 좋아했던 고종까지 신분 여하에 상관없이 모두가 좋아하는 음식이었고, 즐겨 먹는 음식이었다.

산초가루가 생선의 비린내를 느끼지 못할 정도로 톡 쏘는 매운맛을 안겨주자 원종은 생선을 뼈째 씹어가며 매운탕을 먹었다.

“고려사람답구만. 예전 원나라 세조 쿠빌라이는 왜의 원정군을 위한 만찬을 벌렸을 때, 자신들과 식성이 다른 고려 장수들에게 따로 생선국에 쌀밥을 챙겨주라고까지 했을 정도였지. 헌데, 고려의 후손이라 자처하는 송악 사람이 매운탕을 못 먹는다고 하니 이건 말이 안 되는 것 아니오? 매운탕을 못 먹는다니 고려사람이 아닌가 보오.”

대영일은 매운탕을 잘 먹는 나와 송상 김만춘의 아들 김검수를 비교한다는 듯이 비꼬며 이야길 했다.

“하하하 아들이 책상물림으로 커서 그렇소이다. 그래서 이리 사신단의 선단에 참여를 시킨 것입니다. 나이가 들면 자연스레 고려사람의 식성이 될 것이외다. 그러니 잘 좀 봐주시구랴.”

김만춘은 호탕하게 웃으며 아직 아들이 어려 철이 없다고 잘 살펴봐 달라고 발해방 사람들과 내게 부탁을 했는데, 만약 내가 김검수의 상황이었다면 아버지의 체면을 위해서라도 비린내를 참으며 매운탕을 먹었을 터였다.

하지만 먹기 싫다고 짜증을 내고 자리가 불편하다는 표정을 보니, 아직 가문의 위신이나 체면을 위해 자신을 희생시키는 것까진 생각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원종이 고개를 저으며 김검수를 평가했듯이 대영일과 고주원도 마찬가지였다.

아비는 실적을 만들어 주기 위해 이리 교역 선단에 참여를 시켰지만, 그 실적을 제대로 받아 대방이 될 수나 있을까 싶었다.

그리고 고려사람답게 산초가루를 팍팍 뿌려가며 매운탕을 시원하게 먹은 원종이 좀 더 고려 왕가의 피가 진한 것으로 생각했다.

***

“몸은 편한데 이거 뭔가 이상하구만. 사신으로 가는 것이 아닌 것 같아. 육로로 힘들게 걸어갔었는데, 이리 누워가다니.”

벽란도를 출발한 배는 서풍을 이용하여 북상하고 있었는데, 연평도와 황해도를 지나 남포항까지 6일 만에 올라갔다.

육로로 갔다면 여드레나 걸리는 거리를 이틀이나 줄인 것이었다.

더구나 사신단은 몸 편히 배에 누워갔으니 사신단에서도 배로 움직이는 것이 편하다는 이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러면 뭘 하나? 중간중간 들리며 받던 연회가 사라졌지 않은가. 더구나 우리를 통해 물산을 들여오던 자들에게 받던 것도 없어졌잖은가. 차라리 몸이 피곤한 게 난 더 좋으이.”

“하긴, 연회가 없으니 먹는 것이 달라졌지. 어제는 주먹밥을 먹었으니 오늘은 또 건번에 말린 육포가 나오려나.”

배에서 사흘을 보내자 다들 배에 적응했는지 뱃멀미를 하지 않았는데 이후로는 며칠 먹지 못했다고 다들 먹을 것에 욕심을 내기 시작했다.

하지만 배에서 전문적으로 조리를 할 수도 없었고, 비축한 식량도 멀리 항해하기 위해 만든 건번과 육포였기에 다들 먹는 문제가 있었다.

사신단을 책임지고 있던 서거정도 이 문제 때문에 고민을 하고 있었다.

“자주 육지에 올라 식사를 하게 되면 속도가 느려지고, 배 위에서만 식사를 해결하니 다들 부실한 식사에 불만이 많네. 전 제조가 뭔가를 해주게나.”

서양의 대항해시대에는 말린 비스킷과 육포가 주된 식량이었지만, 먹는 것으로 소요는 잘 일어나지 않았었다.

비스킷과 육포도 제대로 못 먹던 이들이 선원이 되었기에 먹는 것으로는 말이 나오지 않은 것이었다.

물론 배에 갇혀 받는 스트레스를 값싼 럼주에 취하게 하여 해소를 시켰고, 술로 일어나는 일은 강압적인 규율로 묶어두긴 했었다.

그래서 참군 염호진이 뽑은 수군 소속의 선원들도 스트레스의 한계치가 오를 것 같으면 먹일 수 있게 술도 어느 정도는 준비하고 있었다.

하지만 평상시에도 좋은 음식을 먹던 양반으로 이루어진 사신단이 문제였다.

배에서는 불을 쓰거나 물을 쓰는 데 한계가 있기에 제대로 된 조리를 하기 힘들었는데, 그 한계 안에서 양반들이 즐겨 먹을 것을 찾아야 하는 거라 제대로 된 요리를 하기가 힘이 들었다.

어쩔 수 없이 교역품으로 싣고 왔던 건국수를 뜯어 라면처럼 뜨거운 물에 삶아 주었지만, 찬물에 헹구는 과정 없이 삶아 주는 것이라 국수가 떡이 되어 안 먹는 것보다 못하게 되었다.

그렇다고 국수를 삶아서 다시 찬물에 헹궈 쓰려면 물을 많이 써야 하기에 쓸 수 있는 물이 한정된 배에서는 국수를 끓여 먹는 것이 불가능했다.

물을 최소한도로 쓰면서 건번과 육포, 국수로 할 수 있는 음식을 생각해야 했다. 더구나, 좋은 음식을 먹던 양반들의 입맛까지 만족시켜야 했기에 이틀이나 궁리를 했다.

“건국수를 다시 물에 담가두거라.”

“에? 그러면 국수가 다시 녹아서 반죽이 되지 않겠습니까요?”

“그래. 국수를 다시 반죽으로 돌리는 것이다.”

국수를 물에 다시 불려 반죽으로 만들었는데, 바닷물도 한 컵 넣어 소금 간을 했다. 그러곤 반죽을 치대어 가래떡처럼 길게 만들었다.

“가래떡 안 속에 가루로 부순 건번과 잘게 자른 육포를 넣는 거다. 이렇게 속에 가루를 뿌려 넣고, 내용물이 나오지 않게 둥글게 말아주면 된다.”

만들어진 가래떡을 그늘에서 해풍에 말리자 겉이 딱딱해졌는데, 그걸 나무젓가락에 하나씩 꽂았다.

육포와 바닷물로 간을 해 끓인 물에 젓가락 채 넣어두자 밀떡은 퉁퉁 부어오르기 시작했는데, 이걸 국물과 함께 떠서 사신단들에게 나눠주기 시작했다.

“오! 떡이로구먼.”

입에 밀떡을 하나씩 문 양반들은 짭짜름한 국물 맛에 좋아했고, 밀떡을 베어 물었을 때 밀떡의 쫄깃한 식감에 입을 급하게 놀려대기 시작했다.

그리고 밀떡 안에 숨어있던 육포와 건번 가루가 주는 건더기의 맛에 손을 치켜들었다.

“으뜨뜨. 이겅 의욍로 마싱는데. 베엉 물엉을 때 육포의 육증이 황 나오는 궁만.”

“자넨 다 먹고 이야기하게나. 이런 맛있는 떡이 있었는데 왜 이제까지 주지 않은 건가?”

“이거라면 내 군소리 없이 며칠은 먹을 수 있겠구만.”

부산 경남지역에서 길거리 음식으로 오뎅 어묵과 같이 파는 물에 불린 떡을 만든 것인데, 이게 의외로 사람들의 입맛에 맞는 것 같았다.

소금물 국물에 불려 먹는 것이라 짭짜름한 짠맛에 사람들이 넘어간 것이었다.

나이가 있는 노신들도 씹기 좋다고 물에 불린 떡을 좋아했는데, 바짝 말렸다가 배에서 물에 불려 먹는 밀떡도 비상식량으로는 괜찮을 것 같았다.

쌓아서 들고 다닐 수 있는 건 국수가 배의 비상식량으로도 쓸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물에 불린 밀떡을 직화로 불에 겉을 구우며 산초가루를 솔솔 뿌려주자, 산초의 자극적인 매운맛에 이것 또한 별미라고 처음 먹어 본다고 난리였다.

생선과 기름만 충분하다면 본격적으로 어묵을 만들어 떡과 함께 간장 떡볶이 같은 것을 만들 수도 있을 것 같았는데, 생선이 있다손 치더라도 어묵을 튀겨낼 기름이 문제였다.

“이 밀떡이 있으면 북경까지는 버티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바람이 좋을 때는 배를 계속 운항하는 것이 좋습니다.”

“당분간은 되겠어. 대신에 다른 것도 만들어 주게나!”

“북경에 가면 기름을 구할 수 있으니 그때 새로운 것을 해드리겠습니다.”

***

큰형이 있는 동항에 10일 만에 도착했는데, 그새 상관이 들어서 있었다.

동항에서 여진인들에게 만들어진 치즈를 받았는데, 이 치즈를 불에 살짝 녹여 건번과 육포에 발라 주자, 또 사람들은 새로운 먹거리라며 좋아했다.

밀떡에도 치즈를 발라서 먹으니 이건 또 새로운 맛이라고 놀라워했고, 매 끼니 이렇게 주냐고 물어왔다.

“방금 먹은 것은 소의 젖으로 만든 것이라 이 한 조각만 해도 은자 두 냥입니다.”

“헐, 너무 비싼 것이구만.”

“그래도 한번 맛을 보면 잊지 못하실 겁니다. 한양의 춘봉 상단에서 판매할 예정이니 나중에 맛이 생각나시면 들려주십시오.”

“그럼 지금 배에 실은 것은 어디에 쓰려고 하는 거요?”

“이것은 북경에서 명의 관리들에게 맛을 보여주기 위한 것입니다. 아마도 연회가 있지 않겠습니까? 거기에 쓰기 위한 것입니다.”

북경에서 접대용으로 치즈를 쓴다고 하자 다들 더는 치즈를 달라고 말하지 않았다.

그리고 보름 만에 대련에 도착하였는데, 육로로 왔다면 30일이나 걸리는 길이었다.

***

“일전에 이야기했던 유산에 대한 것은 알아보고 연락을 주겠네.”

“정기적으로 대련으로 오는 삼식이에게 연락을 주셔도 제가 늦게 받을 수도 있사오니, 두만강 위쪽으로 먼저 나아가셔도 뭐라고 하지 않겠습니다.”

“하하하. 아직 확인 전인데도 확실하게 여기는구만.”

“네. 그것은 확실한 진실이니깐요. 어르신들도 긴가민가 하신다면 삼봉도(三峯島)라고 말을 하면 아실 겁니다.”

“삼봉도?”

“네. 그 이상은 제가 남방을 다녀온 이후 뵙지요.”

원종은 발해방 사람들을 미대륙으로 제대로 낚을 수 있도록 삼봉도라는 지명을 흘려주었다.

삼봉도는 예전부터 내려오던 이야기로 실록에도 나와 있는데, 성종 시절 죄인들이나 역을 피해 사람들이 삼봉도로 도망을 쳤다는 이야기가 나왔었다.

섬의 길이가 거의 천 리에 이르고 천 명이 살 수 있을 정도로 큰 섬이라고 했는데, 이 삼봉도가 울릉도라는 말도 있고, 독도 혹은 홋카이도라는 말도 있으며, 러시아 연해주에 있는 다른 섬이라는 말도 있었다.

한마디로 논란과 환상 속의 섬인데, 이런 섬이 있다는 말이 뱃사람들에게 공공연히 나돌았기에 미대륙으로 가는 항로를 개척하는 떡밥이 충분히 될 수 있을 터였다.

삼식이가 맡은 한선 다섯 척은 형님이 있던 동항에서 싣고 온 가죽과 조선에서 싣고 온 종이와 베, 호랑이 가죽, 표범 가죽을 내려놓았고, 대련에서는 밀과 곡식을 가득 실었다.

대련에서 더 실을 곡식이 없다면 산동의 위해항으로 가겠지만, 아직은 대련의 곡물값이 나쁘지 않아 삼식이는 곡물만 싣고 바로 조선으로 돌아갔다.

참군 염호진이 이끄는 누전선 다섯 척은 묘도열도에서 우리 배와 헤어진 이후 위해 항에서 곡식을 싣고, 조선으로 돌아갔다가 다시 위해 항으로 돌아올 예정이었다.

그리고 원종이 타고 있는 누전선 세척은 북경으로 가는 관문인 천진에 도착했다.

“아니, 분명히 조선의 사신단이 바닷길로 배를 타고 온다고 통보하였는데, 그런 전달이 없었다는 건 말이 안 되오!”

< 185. 전권특사. (3)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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