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4. 전권특사. (2) >
“상행에 지분을 투자하면 그 상행 수익을 나누어 가진다는 말이더냐?”
“네. 맞습니다요. 동래부사께서도 동래에 내려와 있는 송상 지부에 돈을 빌려주거나 광흥창으로 곡식을 옮기는 조운선 일에 돈을 태워 꽤 짭짤하게 수익을 얻는다고 합니다. 물론 그 외에도 바다 위에서 개별적으로... 헤헤헤 대감께서도 그건 아시겠지요?”
원철은 동래부사 이야기가 나오자 흘려들었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동래부사가 왜관의 왜국 상인들과 거래하는 조선 상인들에게 돈을 빌려준다는 이야기였다.
왜의 상인들이 들고 오는 물품을 구매할 때 상인들의 대금이 부족할 경우 동래부사가 융통해주고, 이자를 받았는데, 그 물품에 유황이나 물소 뿔 같은 것이 있을 때는 돈놀이를 해도 감사나 관찰사가 뭐라고 하지 않는다고 했다.
물론 대금을 융통해주는 것뿐만 아니라 음으로 양으로 다른 것이 더 오갈 것은 뻔했다.
더구나 알음알음 법이 미치지 않는 바다 위에서 밀무역하는 것으로도 목돈을 만진다고 했는데, 자신도 그 단물을 빨아 먹고 싶었다.
“그럼, 너희 춘봉 상단에 투자를 할 수 있는 것이냐?”
“그것이 안타깝게도 저희 주인님이 누구의 손녀사위인지 아시지 않습니까요?”
“아, 고령부원군(신숙주)이지. 투자가 필요 없겠구만. 흐음. 그럼 상단에 투자해서 돈을 버는 방법을 안다고 해도 말짱 황이 아니더냐!”
“대감마님. 상단이 저희만 있는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제가 여기로 오며 듣기로는 동래 내상 중에서 풍랑에 배를 잃은 상인이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다시 배를 마련하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더군요.”
“오! 풍랑에 배를 잃었다고? 그럼 이번에 개삭하여 나온 누전선을... 흠. 하지만, 그 상인은 네 주인처럼 누전선을 가질 수 있는 자격이 안 되지 않느냐? 개삭되어 나오는 누전선이 있다손 치더라도 그에게는 팔 수가 없다.”
원철은 배를 팔고 은자를 만질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누전선은 전선이라 일반 상인에게 팔 수가 없었다.
“누전선을 팔지 못하더라도 배를 마련할 수 있게 투자는 하실 수 있지 않겠습니까?”
“흠. 투자라. 그러고 보니 네 주인은 저 수리한다는 한선 다섯 척을 모두 다 쓴다고 하더냐?”
원철은 투자라고는 하지만 자기 돈을 내놓기가 아까웠다. 그래서 수리하고 있는 한선 한 척을 융통해 동래 상인에게 넘길까 생각을 했다.
“본격적으로 조운 운송에 뛰어들기 위해 배를 준비하는 것이라 다 쓸 것 같습니다. 그러고 보니 저 배를 움직일 선원을 미리 준비해야 하는군요.”
“선원? 오 그렇다면 이렇게 하자구나. 내 참군 염호진에게 병부(兵簿)를 줄 터이니 도서를 돌아 선원을 모집하거라. 그리고, 그 선원 값을 내게 주거라.”
원철은 수영의 수군을 원종에게 선원으로 내어줬던 계약을 들먹이며 인근 도서의 장한들을 데려갈 수 있게 해주겠다고 했다.
물론, 그 대가는 돈이었다.
원철의 이야길 들은 희재가 생각하기로는 이게 또 나쁘지만은 않은 이야기였다.
한선 다섯 척을 정상적으로 움직이려면 선원이 있어야 했고, 내륙에서 물질 경험이 있는 이들을 모으기보다는 섬에 갇혀 살며 수영의 수군으로 등록된 이들을 고용하는 것이 시간상이든 뭐든 이득이었다.
“서로에게 이득이니 좋습니다요.”
그렇게 참군 염호진이 수영의 병부를 가지고, 상선에 탈 선원을 모았는데, 선원 대우가 좋다는 말에 수군으로 있던 자들이 수백 명이 몰려들게 되었다.
“저 한선 다섯 척을 움직이는 데는 80명이면 충분한데 더 모아야 한다고 했습니까?”
“네. 참군 나리. 우수사 나리께서 저희에게 160명을 데리고 가라고 하더군요.”
“허허 배나 선원이 아니라, 머릿수에 따른 은자가 중요한 것이겠지. 휴우.”
염호진은 우수사 원철에게 화가 났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그리고, 섬에 묶여있기보다는 이렇게 선원이 되어 섬을 떠나는 것이 섬사람들에게는 더 이득인 것을 알았기에 가정이 있는 자나 책임져야 할 사람이 많은 자를 우선으로 뽑아 선원으로 배에 태웠다.
***
“해서 인원이 많아 몇몇을 잘라야 한다면 서로 삯을 줄여서라도 배에 남고 싶어 합니다. 제조님께서 모쪼록 사정이 딱한 섬사람들을 가엽게 봐주십시오.”
“하하하. 염참군 그런 걱정은 말게나. 그렇지 않아도 새로운 배를 추가할 때 선원들을 어찌 구해야 하나 걱정했었는데, 이것이 전화위복(轉禍爲福)이 되었어.”
원종은 품에서 마패를 꺼내어 염호진에게 보여주었다.
“다행스럽게도 전하의 명을 받았네. 충청수영에서 누전선 두 척을 더 추가하여 다섯 척의 누전선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네. 새 배에 새 선원까지 태우게 되면 손발을 맞춰 볼 시간이 있어야 했는데, 이렇게 미리 선원을 뽑아 손발을 맞춰가며 올라왔으니 그 시간을 벌었어.”
“아아, 참으로 다행입니다.”
염호진은 사정이 딱한 이들을 선원으로 뽑으며 크게 경을 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그것이 전화위복이 되자 졸이던 마음이 펴졌고, 뭔가 이 사람을 따르면 일이 잘 풀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배를 인수하라는 인수장을 가지고, 속히 충청수영으로 가서 배를 가져오게나. 그리고...”
원종은 염호진에게 누전선은 저 멀리 안남국(安南國 베트남 북부)까지 가야 하니, 정신력이 좋은 선원들로 채우라고 명을 내렸고, 총통을 설치하는 화통군 병사들과 포를 쏘는 연습도 한번 해보라고 시켰다.
***
“그래. 준비된 송상의 배들은 어디서 합류한다고 하던가? 자네가 준비한 배들은 따라오는 것이 확실하고?”
중추부 동지사인 이철견은 뱃머리에 서서 멀어지는 강화도를 보고 물었다.
이철견은 정희대왕대비의 사촌 동생으로 세조 때 무과에 급제한 무인이었기에 사신단의 경호를 맡은 무장이었다.
“네 전하께서 허락해 주신 배는 한 식경 뒤를 따라오고 있고, 송상의 배들은 벽란도(碧瀾渡)에서 뒤에 오는 배에 합류한다고 합니다.”
내 상단의 한선 다섯 척은 일부러 이야기하지 않고, 누전선과 송상의 배만 있다고 이야길 했다.
“왜구 놈들이나 명나라 해적들이 들이닥쳐도 한 식경만 버티면 되겠구만. 한 식경은 충분하지. 그리고, 누전선 다섯 척이 따라온다고 하니 든든해.”
“다만, 따르는 배들은 북경에 들어가는 천진항에 같이 들어갈 수 없어, 묘도열도(廟島列島)까지만 뒤를 따라올 것입니다.”
“묘도열도를 지난 발해만 안쪽은 안전하니 충분할걸세. 그런데 뭔가 허전하구만. 허전해.”
이철견은 뱃멀미도 안 하는지 계속 뭔가 허전하다며 온종일 배 위를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며 움직여 대었는데, 원종은 그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저게 다 접대 때문입니다.”
비상식인 건번 관리와 사신단의 식사를 위해 배에 탄 숙수가 짜증이 난다며 이야기를 했다.
“접대?”
“네. 보통 사신단은 한양을 출발해 개성, 평산, 서흥 등등을 거쳐 의주에 당도하는데, 이게 보통 20여 일이 걸리지 않습니까?”
“그렇지.”
“본래라면 그 20여 일 동안 지나가는 고을에서 온갖 접대를 받게 됩니다. 지역의 현감이나 양반네가 북경에 다녀오며 뭐 좀 구해달라고 하는 청탁도 받게 되고요. 그래서 사신단에 끼면 조선에서 살이 찌고, 만주에서 살이 빠진다고 합니다.”
“그렇구만. 그런 접대가 없으니 저리 몸이 달아서 난리를 치는거였구만.”
“네 그래서 괜히 이리저리 다니며 참견을 하고 난리입니다. 저에게도 왜 준비하는 식사가 맛이 없냐면서 구박을 주는데. 어휴...”
숙수의 한탄 서린 이야길 듣고 보니 이제까지 사신단이 지나가는 고을에서 접대를 위해 얼마나 백성들을 쥐어짰을지 알 것 같았다.
“지금은 다들 뱃멀미 때문에 누워있지만, 배에 적응하고 나면 다른 이들도 동지사와 같을 겁니다. 배를 움직이고 있는 이 참군이나 수군들이 힘들 것입니다.”
“그렇구만. 그래서 송상이 언제 합류하는지 이야길 한 것이구만.”
“아마도, 송상의 배들이 합류하는 곳이니 접대나 연회를 은근히 기대하고 있을 겁니다요.”
하지만, 송상의 배들은 우리가 아닌 뒤를 따르는 누전선 쪽에 붙기로 했으니, 사신단의 기대는 실망으로 바뀔 터였다.
하지만 원종은 벽란도에 정박한다는 이야길 듣곤 살짝 기대를 하고 있었다.
고려 시대 최대 무역항이자 교류 거점이었던 곳이 벽란도였기에 과연 어떤 곳일지 하는 궁금증도 기대감을 만들고 있었다.
통일신라 시절 장보고의 청해진(淸海鎭)은 배를 타고 오며 들러보았는데, 청해진은 군사적, 전략적인 구축을 했었기에 지금은 그 번성함이 남아있지 않았다.
서남해의 무역을 주름잡았던 청해진은 돌로 지은 성만 덩그러니 남은 곳이 되었다면, 벽란도는 청해진과 다른 입지였기에 살짝 기대해 보는 것이었다.
왜냐면, 청해진은 완도라는 섬이라면 벽란도는 섬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다들 벽란도라고 하면 당연히 섬 도(島)로 짐작하여 섬이라고 생각하지만, 벽란도는 건널 도(渡)를 쓰는 육지와 붙어있는 지형이었다.
예성강 하구에 있는 벽란도 자리에 외국의 사신이나 귀빈들을 접대하던 벽란정이란 정자가 있었는데, 이 정자의 이름을 따서 벽란도가 되었던 것이었지 ‘도’란 글자처럼 섬은 아니었다.
즉 ‘푸른 물을 건너와 닿은 곳’이란 뜻으로 황해를 건너온 자들이 닿는 땅이라는 의미를 지닌 것이었다.
그래서 청해진과 다르기에 은근히 기대했는데, 오후 늦게 도착한 실제 벽란도는 푸른 물도 없었고, 이름의 유래가 되었다는 벽란정도 없었다.
나름 큰 건물들과 마을은 있었지만, 단청의 색이 바래도 고치지 않을 만큼 퇴색된 곳이 되어 있었다.
고려 시대 국제적인 무역항이었다고 했지만, 조선 시대와 명나라가 들어서며 교역이 끊기자 번성하던 벽란도도 흔한 바닷가 마을이 되어 버린 것이었다.
입지가 청해진과 달라도 정책상 쇠퇴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었다.
“에잉. 그냥 배에서 잠이나 자야겠어. 송상의 배가 우리에게 바로 합류했으면 뭔가 연회라도 열렸을 것인데, 배가 편하게 가긴 해도 이게 안 좋구만.”
사신들을 접대할 양반이 없다 보니 사신단이 아예 배에서 내리지를 않았다.
하지만 원종의 눈에는 이 벽란도가 노다지로 보였다.
한 식경 후 한선에 탄 삼식이가 오자 배가 닿는 곳 인근으로 땅을 사라고 구역을 정해주었다.
“사신단의 양반들은 선비들이니 모르겠지만, 지금 사신단이 배로 왕복하게 되고 교역이 살아난다면 이곳 벽란도가 다시 번성할 것이다.”
“한양이 아니고, 여기입니까요?”
“그래, 한양은 강화도에 막혀있고, 한강의 물줄기로 인해 배가 거슬러 올라가기 힘이 든다. 중국에서 온 배는 예전 고려 시대처럼 이곳으로 오게 될 것이다. 그리고, 큰 교역 선단이 십여 척씩 온다면, 한양에서 그 선단을 한양 가까이 오게 놔두겠느냐?”
“대형 선단이라면 혹시 모를 일이 생길 수도 있으니 한양 근처에 배를 못 대게 할 수도 있겠군요.”
“그래. 한강의 폭도 좁기에 큰 배들이 마냥 드나들기도 어려울 것이다. 그리고 벽란도는 송상이 있는 개경과 가까워 물건을 사고팔기도 수월할 것이다. 거기에 우리 춘봉 상단도 여기에 상관을 열게 되면, 큰 배들은 굳이 한강을 거슬러 올라가기보다는 여기로 오게 될 것이다.”
삼식이도 원종의 말을 듣고 보니 사신단이 출발할 때 한양에서 모두 출발하지 못하고 마포와 이산포에서 나눠서 배에 탄 것을 생각해 냈다.
“확실히 도련님 말처럼 한양까지 배는 들어가지 못할 것 같습니다. 강화만에 배들이 들어오는 것이 전부겠지요. 그렇다면 여기 벽란도가 맞는 것 같습니다. 벽란도에서 큰 배들이 물건을 내리면 개성이나 한양으로 작은 배로 옮기면 될 겁니다.”
“그래. 한양은 공랑점포의 오추에게 맞기고, 너는 돌아오는 즉시 이 근방에 땅을 사서 창고부터 짓거라. 나와 염 참군이 남경으로 갈 때 너는 이 벽란도와 대련, 위하항을 돌며 교역로를 구축하도록 하거라. 송상과는 싸우지 말고 최대한 서로 양보하면서 해야 할 것이다.”
“네네. 아직은 싸울 때가 아니라 힘을 합칠 때라는 건 소인도 잘 알고 있습니다요.”
“그래. 벽란도는 삼식이 네가. 동래는 희재가 맡아 교역선을 운영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형님이 동항에 자리를 잡으실 터이니 동항에서 벽란도, 동래에 걸쳐지는 내륙 항로도 틈틈이 준비하거라.”
“믿고 맡겨 주십시오. 그럼 저녁은 발해방 사람들과 하시겠습니까요?”
“그래. 사신단에 있어봤자 부림만 당할 뿐이니 배에서 내리자꾸나.”
***
“그렇지 않아도 언제 오나 기다렸네.”
발해방의 고주원과 대영일이 묵는 곳으로 가니 송상의 총대방 김만춘도 있었다.
김만춘은 이번 사신단에 따라가지 않고, 아들인 김검수를 보낸다고 했는데, 이제 18살로 곱게 자란 티가 났다.
“예성강에서 잡은 고기로 매운탕을 끓이는데, 한 그릇 할 텐가?”
고주원이 뿌옇게 맑은 생선탕을 매운탕이라고 하니 뭔가 재미가 있었다.
“네. 한 그릇 주십시오.”
김검수의 앞에 매운탕 그릇이 없다는 것을 보았기에 원종은 고주원이 건네주는 매운탕을 흔쾌히 받아 들었다.
< 184. 전권특사. (2)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