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2. 표준의 맛. >
“저희 송상이 국숫집을 열어볼까 하는데, 괜찮겠는지요?”
“저도 춘봉 국수와 같은 국숫집을 열어도 되겠습니까?”
김만춘과 최권영이 찾아온 것은 국숫집 때문이었다.
그러고 보니 송상과 최부자라 불리는 최권영은 육조거리에서 춘봉 가패를 참고해 노송 가패와 한양 가패를 열어 운영하는 이들이었다.
“국숫집을 하고 싶으면 그냥 하면 되지 뭐가 문제인가? 가패도 그렇게 하지 않았나?”
“아, 그것이... 가패를 열기 전에 제조 영감께 찾아와 허락을 구했어야 했는데, 영감께서 그때 안 계시다 보니 허락을 구하지 못하고 가패를 열 수밖에 없었습니다.”
중인인 최권영은 소매에서 주섬주섬 비단 주머니를 꺼내어 내게 건네었는데, 열어보니 엄지손톱보다 조금 더 큰 금으로 된 거북이였다.
이에 질세라 김만춘도 품에서 흰 종이에 산 것을 내놓으며 풀어헤쳐 내게 보여주었다.
“그건, 홍삼이구만.”
“네. 상등품 중에서도 상등품입니다. 영감께선 필요 없으시겠지만, 고향에 계신 아버님께서는 필요하지 않으시겠습니까?”
이 시대에는 아직 인삼재배가 널리 퍼지지 않았으니 아마도 이 홍삼은 진짜 산삼으로 만든 진짜 홍삼일 터였다.
“크흠. 선물을 이리 주니 내 고맙게 받겠네. 그래. 국숫집을 열고 싶으면 열어도 되네.”
원종은 장사를 독점해서 이득을 얻기보다는 파이를 키울 수 있는 전체적인 상업의 발전을 원했기에 가패나 국숫집을 하겠다는 이 둘을 막을 이유가 없었다.
그냥 자기들 마음대로 차렸어도 사실 그냥 넘어가 줄 일이었다.
오히려 내가 짊어지고 가야 하는 상업 발전을 나눠서 짊어지겠다는 제안이었기에 두 손 들어 고맙다고 해야 할 판이었다.
“그런데... 그것이 가패는 가수저라를 어깨너머로 배운 이를 데리고 와서 가패를 열 수 있었지만, 이 건 국수라는 것은 어떻게 만드는 것인지 알 수가 없어 이리 찾아온 것입니다요.”
“거기다 건 국수를 만드는데 밀가루만 쓰셨지 않습니까요? 그런데 저희는 밀가루를 구하는 것도 힘들었고, 구하더라도 춘봉 국수의 가격을 도저히 맞힐 수가 없어 난감하여 제조 어른께 이리 온 것입니다.”
둘의 이야길 들으니 가패를 할 때와 달리 금붙이와 홍삼을 들고 찾아온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우리야 대련항과 위해항에서 요동과 산동에서 생산된 저렴한 밀을 배로 싣고 올 수 있었지만, 송상과 최권영은 아니었다.
곡식 업자들에게 밀가루를 구하더라도 조선에서 난 밀이다 보니 그 가격이 만만치 않았을 것이고, 내가 파는 국수의 가격을 맞히기가 힘들었을 터였다.
국수를 위해 밀가루를 이 둘에게도 넘겨주고 국수 작업장까지 알려줄까 싶었지만, 더 좋은 생각이 났다.
“그래서 우리 건 국수를 받아서 장사해보고 싶다는 말인가?”
“네네. 밀을 저렴하게 살 수 있으면 좋겠지만, 건 국수를 넘겨주셔도 좋습니다.”
“그것은 그리 어렵지 않아. 하지만 조건이 있네. 국수는 가패와는 달라서 한곳에 모여 있으면 오히려 손해가 나는 가게야. 그래서 우리도 사대문마다 한곳씩만 만들려고 했네. 자네들은 어디서 국숫집을 개업하려고 했나?”
“그것이...”
둘은 서로 눈치를 봤는데, 아무래도 우리 국숫집 근처에 가게를 열려고 한 것 같았다.
이름난 맛집 근처에서 묻어가기 전략이 나름 괜찮은 방법이긴 했지만 너무 쏠리면 안 되었다.
“다른 대문 근처에 우리가 국숫집을 차리기 위해 봐둔 장소가 있는데 거기서 해보는 건 어떻겠나? 그렇게 한다면 우리 건 국수를 도매가격에 넘겨주겠네. 어떤가?”
두 사람은 잠시 고민하더니 내 제안에 동의했다.
밀가루 국수를 받을 수만 있다면 어디서든 장사가 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었다.
둘이 동의하자 남대문과 서대문 근처의 가게 터를 보여주고 가게 영업에 대해 이야길 하였고, 아예 국숫집에서 일할 어멈들을 데리고 오라고 했다.
“국수 끓이는 것을 다 알려주시겠다는 것입니까?”
“그래야지. 안 알려주면 자네들이 또 우리 가게 어멈들을 뒤로 빼갈 것 아닌가? 애써 교육해둔 어멈을 빼앗기기보다는 그냥 그쪽 어멈들에게 가르쳐주는 게 서로 편할 거야.”
“하하 이거. 이미 저희 머리 위에 앉아 계시는군요. 이거 부끄러워서 원.”
김만춘은 부끄럽다며 말은 하지만,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는 것 같은 행색이었다.
“장사꾼이 다 그렇지 않은가 뭐. 모레까지 어멈들을 우리 가게에 보내게. 그럼 내가 직접 알려주겠네.”
사실, 그냥 건 국수만 팔면 되는 것이었지만, 국수를 끓이는 레시피의 표준을 위해서 교육을 해주기로 한 것이었다.
어느 국숫집에서 먹든지 상상하는 그 표준의 맛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아야 사람들이 그 평균 표준의 맛을 기억하고 전국 어디서든 국수를 쉽게 사 먹을 수 있을 터였다.
이런 표준의 맛을 가진 대표적 음식이 짜장면, 짬뽕, 탕수육인데, 그 이유는 이 음식들이 만들어진 역사를 보면 알 수 있었다.
인천 차이나타운에서 시작된 중식은 중식 4대 문파라는 4곳의 중국집에서부터 시작이 되었다.
북경 스타일의 ‘아서원’, 사천 스타일의 ‘홍보석’, 산동 스타일의 ‘호화대반점’, 상해 스타일의 ‘팔선’ 이란 가게에서 짜장면, 짬뽕, 탕수육의 맛 표준을 잡아 주었기에 전국 어디서 먹던 그 비슷한 맛이 가능한 것이었다.
4대 문파라 불리는 4곳에서 1960년대 요리사들이 요리를 배워 전국에 퍼져 갔는데, 그들이 만들어내는 짜장면의 맛은 평균적인 맛을 보장했고, 그 평균적인 맛을 기억하는 이들은 전국 어느 중국집이든 걱정 없이 짜장과 짬뽕, 탕수육을 시켜 먹을 수 있었다.
어느 중국집에서 먹든 평균적인 기억하는 그 맛을 먹을 수 있기에 부담 없이 사 먹을 수 있는 것이었다.
국수도 그렇게 표준의 맛을 만들어야 했다.
현대 한국의 잔치국수는 6.25 전쟁 후 보급된 밀가루로 만들어졌고, 부산이란 지역에서 그 표준화된 맛이 일구어졌기에 전국 어느 국숫집의 국수든 잔치국수는 비슷한 맛을 줄 수 있었다.
이런 표준화를 내가 해줘야 국수의 맛도 짜장면처럼 평균 표준이 만들어지는 것이었다.
단순하게 보면 맛의 한계를 잡아 두는 것이라 안 좋아 보이기도 했지만, 우선은 표준적인 맛으로 대중적인 입맛을 잡아야 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그것이 표준화된 레시피가 존재하는 이유였다.
독창적인 맛의 퓨전이나 발전은 보급이 된 이후 후대의 요리사들이 만들어 갈 일이었다.
그저 내가 해줄 일은 어릴 때 먹었던 국수의 맛이 몇 년이 지나 다른 지역에서 먹어도 같은 잔치국수의 맛이 날 수 있게 그런 표준화된 맛을 정립하고, 어멈들에게 알려주는 것이었다.
마치 어릴 때 운동회나 졸업식 후 정해진 행사처럼 중국집에서 가족들이 같이 먹었던 짜장면과 탕수육처럼, 나이가 들어 자식들과 같이 국숫집에서 먹을 때도 같은 맛의 국수이길 원했다.
예전의 추억을 되살려 줄 수 있을 정도로 표준화되고 평균화된 그런 음식이 국수가 되어 주었으면 했다.
어릴 때 가족들과 같이 좁은 방에서 금기와 같았던 겸상을 하며 먹었던 국수의 추억이 훗날 가족들과 같이 먹으며 그땐 그랬지 하며 회상할 수 있는 서민적이고 친근한 음식이 국수가 되길 원했다.
***
“국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육수를 내는 것이네. 마포나루에서 거래되는 잡어로 국물을 우려내어도 되고, 정 없을 때는 민물의 송사리라도 잡아서 배를 따고 국물을 내어도 되네. 물론, 말린 어포와 다시마로 내는 것이 최고이네.”
송상과 최권영이 데리고 온 어멈들에게 국수 끓이는 법을 알려주기로 한 것을 거의 매일 마누라와 같이 오는 애처가 나안정에게도 알려주었는데, 그것이 어디서 소문이 났는지 미식 꽤나 밝히는 양반들의 부엌어멈이 10여 명이나 몰려들었다.
양반가의 마님들도 몇 왔는지 앞으로 나오지는 못했지만, 멀리서 장옷을 뒤집어서 쓴 채 내가 하는 양을 지켜보고 있었다.
애초에 표준화 된 국수의 맛을 알리는 게 목표였기에 그런 이들까지도 모두 앉혀서 육수 물을 만드는 것부터 가르치기 시작했다.
금국수, 은국수가 아닌 기본 국수만 알려주었고, 그 위의 재주가 더 들어간 국수는 자체적으로 만들라고 알려줬으니, 각 집안마다 프리미엄 국수가 만들어질지도 몰랐다.
“그리고 집안에 미리 담아둔 동치미가 있다면 동치미 국물에 이 씻은 국수만 말아서 먹어도 좋네. 이것도 한번 다들 먹어보게나.”
“아! 시원한 동치미 국물에 차갑게 먹는 것은 또 다른 흥취가 있군요.”
“단무지 대신에 이리 동치미 무를 썰어 먹는 것도 별미이고, 정말 국수는 먹는 방법이 다양하군요.”
“동치미뿐만이 아니네. 이렇게 동치미 국수로도 할 수 있고, 추어탕에 말아 먹으면 어탕국수도 될 수 있네. 국수를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은 무궁무진 할거네. 그러니 이 기본 국수를 바탕으로 자신의 실력을 가족들에게 뽐내어 보시게나.”
센스가 있는 아낙이라면 내가 이야기한 동치미나 어탕국수 외에도 다른 국물에 국수를 넣어 말아 먹는 새로운 조리법도 만들어 낼 수 있을 터였다.
그리고 그런 본인만의 국수 레시피를 만들게 된다면 훗날 그 어멈들이 국숫집을 창업하게 될지도 몰랐다.
그렇게 하나둘, 개인이 먹는장사를 하게 된다면 자연스레 화폐에 대한 수요가 생길 것이고, 돈이 만들어져 돌게 될 것이니 경제 규모의 성장과 유통에 힘이 생길 것이었다.
“제조 어른 좋지 않습니다. 좋지 않아요. 이건 마치 저잣거리 약장수와 같지 않습니까요? 양반의 체면에는 어울리지 않습니다. 이런 요리는 이제 다른 이에게 넘기도록 하십시오.”
권항필은 양반이 이리 직접 음식을 하고, 아낙들에게 가르치는 것을 못 마땅해했는데, 그러면서도 만들어 주는 국수는 날름날름 잘 받아먹었다.
매운 고추장을 넣은 비빔국수로 눈물, 콧물 흘리게 만들어 주고 싶었지만, 고추장은 아직도 머나먼 일이었다.
그래도 국수 요리 교육이 제대로 먹혀들었는지 기방에서 건 국수를 사 가기 시작했고, 전국의 장마당을 도는 봇짐장수들도 건 국수를 몇 다발씩 사서 갈 정도가 되었다.
사 온 밀가루가 다 떨어지기 전에 중국에 갔다 와야 하는데, 조정에서는 아직까지 출발 일정이 나오지 않고 있어 답답했다.
빨리 발해방 사람들이 대련으로 돌아가 아메리카 대륙 탐사에 나서줘야 고추든 감자든 얻을 수 있는데, 아직 명나라로 가는 사신단도 꾸려지지 않았기에 그들도 대련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었다.
일단은 거제도에 있는 참군 염호진과 금산이에게 경남의 물산을 싣고 한양으로 올라오게 시켰는데, 사신단의 일정이 나오지 않으면 전처럼 태풍을 핑계로 대련으로 배를 보낼 참이었다.
***
“전하께서 속히 입궐하라고 하십니다. 장안의 화제라는 국수라는 것을 전 제조가 만들어 주는 것으로 드시고 싶다고 하십니다.”
국수에 대한 소문이 궐에까지 들어갔는지, 아침 일찍 건 국수를 챙겨 궐로 움직였다. 헌데, 수라간이 아닌 중전이 사는 침전(寢殿)으로 안내가 되었다.
“딱 맞춰 왔구만. 어서 앉게나.”
침전에 들어서니 내시들이 상을 올리고 있었는데, 성종과 공혜왕후의 상 외에도 내 상이 따로 차려졌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왕과 같은 공간에서 상을 받아 같이 먹는다는 것만으로도 영광이었기에 절을 하며 상을 받았다.
상에는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국수가 단무지와 함께 올려져 있었다.
“하하하. 자네가 알려준 요리법으로 숙수들이 만든 국수이니 자네가 만든 것이나 마찬가지 아니겠는가? 어서 들지.”
국수를 먹으며 생각하다 보니 요리가 아닌 내게 따로 할 말이 있어 불러들인 것 같았기에 국수를 씹는 둥 마는 둥 급하게 먹고 대기했다.
공혜왕후까지 국수를 다 먹자 성종은 주위를 물리곤 은근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번 중국으로 가는 사신단에 자네가 같이 가줘야겠어.”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이야기 듣기로는 전 제조에게 누전선 세척이 있고, 한선이 다섯 척이 있다고 들었는데, 언제 이렇게 배를 늘린 것인가? 분명 누전선 한 척만을 내린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 그것이...”
이미 성종이 조사를 해서 다 알고 있을 것 같았기에 수영에서 누전선과 조용선이 교체되면서 오래된 배들을 분해하고 조립하여 새롭게 배를 만들게 된 것을 아뢰었다.
그리고 한선 다섯 척은 왜구에게서 빼앗았다고 했는데, 공혜왕후는 그 이야기도 궁금하다고 하여 쉽게 왜구들을 물리친 이야기를 모험 활극으로 구성하여 MSG도 팍팍 쳐가며 이야기를 해줬다.
“하하하. 역시 수영의 수군들은 다르구나. 이렇게 왜구들과 싸운 경험도 있고, 하니 내 마음이 놓이는구나. 그래. 예전에 네가 했던 말을 기억하느냐?”
< 182. 표준의 맛. > 끝
작가의말
사실 중국집 표준의 맛은 MSG의 맛입니다. 그것이 요리의 비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