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0. 춘봉 국수. >
“아니 도련님 이리 시류를 모르시면 어찌합니까? 지금이 때가 어느 땐데 잔치란 말을 쓰시겠다는 것입니까요?”
“때? 그야, 새로운 주상께서, 아아! 알겠다. 그렇구나. 국상 중이니 잔치라는 이름을 쓰면 안 되겠구나.”
“그렇지요. 아마, 지금 잔치국수라고 간판을 내걸고 잔치국수 달라고 주문을 받게 된다면 다음 날 바로 의금부에 끌려갈 거예요. 뭐, 도련님이야 괜찮으시겠지만, 저희는 아마도...”
채월이는 손날로 자기 목을 자르는 시늉을 했다.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라는 말이 있듯이 예종이 죽은 지 한 달이 채 되지 않았는데, 잔치국수라는 이름으로 국수를 팔게 되면 역적질이라고 해서 죽을 수도 있었다.
“가게 이름은 물론이고 음식 이름에도 이런 잔치 같은 말을 넣으면 절대 안 됩니다. 전대 대왕께서 돌아가시고 다시 채 2년이 되지 않아 주상이 돌아가셨지 않으셨습니까? 국수 이름에는 절대 잔치란 단어를 쓰면 아니 됩니다.”
채월이의 말처럼 잔치라는 단어를 쓰게 되면, 국상이나 나라에 큰일이 있을 때마다 판매를 중지해야 할지도 몰랐고 먹는 손님들도 눈치가 보여 가게로 오지 못할 것 같았다.
“흠. 그렇다면 가게 이름은 가패처럼 ‘춘봉 국수’로 하자구나. 판매되는 국수의 이름도 그냥 국수로 하는 게 좋겠지?”
“그것도 아니 될 말이에요. 한가지의 국수를 팔더라도 최소 3개의 가짓수가 있어야 해요. 올리는 고명에 따라 가격을 달리 팔아야 합니다.”
“국수 위에 올리는 고명에 따라 가격에 차등을 두자고?”
채월이가 한양 가패의 총책임자로 있으면서 프리미엄 가격에 대한 개념이 생긴 것인가 싶었다.
“가격에 차등을 둬서 수익을 더 늘릴 수도 있겠지만, 그것보다는 신분 때문입니다.”
“신분? 아, 그렇구나.”
채월이는 현대인인 내가 크게 신경 쓰지 못했던 부분을 짚어주었다.
“신분에 따른 탁자와 의자를 구분하지 않고, 주문하는 금액에 따라 앉게 만들자는 것이냐?”
“네. 신분 구별을 하지 않는 것 같지만, 돈으로 알아서 구분되게 만들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양반과 상민이 자리 때문에 얼굴 붉힐 일이 생겨 버립니다.”
“가패를 운영하면서 자리 때문에 일이 많았구나.”
“네. 상민과 중인, 양반이 같은 탁자와 자리를 쓰는 것에 거부감을 나타내는 자들이 의외로 있었습니다. 그러니, 개인 그릇을 쓰는 것이 아닌 공통 그릇에 국수를 담아 판다면 분명 상것들이 쓴 그릇으로는 못 먹는다고 투정 부리는 이가 나올 것입니다.”
채월이가 너무 오버하는거 아닌가 할 수도 있겠지만, 진상은 늘 상상을 초월하는 이유로 클레임을 걸었기에 충분히 있을 만했다.
“그래서 국수는 예를 들어 금, 은, 동으로 금국수, 은국수, 동국수로 이름을 정하고, 금국수는 여섯푼, 은국수는 세푼, 동국수는 한푼으로 정하는 겁니다. 그러면 양반은 알아서 가장 비싼 금국수를 주문해서 금국수를 먹는 자리로 가고, 각자 주문한 국수에 맞게 자리를 찾아 앉게 되니 그런 문제가 줄어들 것입니다.”
“좋다. 채월이의 말처럼 금국수, 은국수, 동국수... 아, 이건 발음을 잘못하면 똥국수가 되니 그냥 국수로 하자구나. 그리고, 은국수에는 계란을 풀어 넣어주고, 금국수에는 계란에 버섯, 고기까지 넣어 주는 것으로 가격을 올리도록 하지. 물론, 금국수와 은국수는 그릇도 달라야 하겠지.”
그렇게 가격으로 신분에 따른 좌석과 그릇까지 정리해서 오픈을 준비했다.
“금국수 자리는 5개만 있으면 될 거네. 지체 높은 양반들이 국수를 먹기 위해 동대문 입구까지 오겠나? 은국수 탁자도 9개만 만들고, 나머지는 일렬로 쭉 앉아 먹을 수 있는 긴 탁자로 만들게나. 일인 상이 기본이라고는 하지만, 이렇게 다 같이 앉아 먹는 것이 우리는 편해.”
개인 독상으로 먹는 것이 당연한 세상이기에 양반과 중인들은 비싼 것을 먹는 만큼 우대해서 개인 탁자를 준비했고, 나머지 자리에는 급식 식당처럼 20명씩 앉아 먹을 수 있는 긴 탁자를 만들었다.
***
“보통 국수에는 파와 당근, 녹색 채소가 기본 고명으로 올라가네. 겨울 초가 올라갈 수도 있고, 시금치나 다른 녹색 채소로 수급에 따라 언제든 변경할 수 있네.”
원종은 채월이와 부엌어멈들에게 고정된 레시피를 알려주고 있었다.
어멈들은 다들 30대 후반에서 40대 중반이었는데, 네다섯 번을 계속 반복해서 알려주고 있었다.
한두 번을 알려주니 며칠 지나지 않아 순서가 달라지고, 지켜야 할 것을 지키지 않는 문제가 있었기 때문에 반복 학습을 계속할 수밖에 없었다.
대표적으로 더 비싼 금국수와 은국수의 고명과 국물을 자기 마음대로 내놓는 것이 문제였다.
“보통 국수의 육수는 저 육수통에서 퍼서 바로 국수 그릇에 부으면 되지만, 은국수는 저 육수를 따로 끓여 달걀 물을 풀어야 하고, 고명으로 호박 채를 썬 것과 단무지를 채 썬 것도 올려야 하네. 나를 따라 만들어보게.”
프리미엄 국수인 은국수를 다들 만들어내자 이어서 금국수를 연습시켰는데, 은국수에 추가하여 기름에 볶은 버섯 고명과 살을 바른 닭고기가 금국수에는 올라갔다.
“닭고기는 그날 아침 닭을 삶아 일일이 살을 발라내야 하네. 다들 재료 준비부터 다시 해보게.”
춘봉 국수를 오픈하기 전에 몇 번이고 어멈들의 공통된 레시피를 점검했고, 그릇과 젓가락에 대한 사용과 씻는 것까지 공통규범을 만들어 어멈들에게 몇 번이고 강조했다.
식음료를 파는 카페와는 달리 음식점은 이런 공통된 레시피와 직원의 동선이 음식의 맛을 지탱하기 때문에 그 맛 유지를 위해 강압적이라고 할 정도로 교육을 했다.
하지만 더 큰 문제가 있었는데, 정식 오픈 전에 아는 이들을 불러 가오픈을 해 보니 역시 주문을 받을 때 재화를 주고받는 것이 제일 문제였다.
세종통보는 물론이고 종이돈인 저화도 유통이 제대로 안 되는 상황이었기에 주문할 때는 서로 곡식이나 포와 베를 들고 가치를 따져가며 주문을 받아야 했다.
주문을 받고 재화의 가치를 정하는 사람을 세 명이나 두었지만, 이건 진짜 답이 보이지 않았다.
조정에서는 중국의 패악을 두려워해 은(銀)으로 돈을 만들어내는 것 자체를 추진하지 않았기에 시중의 교역이나 유통은 제자리걸음이었다.
물론, 이런 문제를 조정이 아닌 개인이 해결하는 방법이 하나 있긴 있었다. 바로 미국의 연방준비은행처럼 사설 은행을 만들고, 돈을 찍어내는 것이었다.
미국은 나라의 특성상 영국의 금화와 프랑스의 동전들까지도 유통되었기에 이런 각 주(州)의 상황에 따라 주 은행들이 개별적으로 동전이나 지폐를 발행해서 유통시켰다. 그래서 식민지 시절에는 유통되는 동전이 수십 종이나 되었다.
이후 그런 지방 정부의 은행들을 묶어 연방준비은행이 만들어졌는데, 그 전통이 그대로 남아 연준(聯準)은 미국 정부의 간섭없이 지금도 달러를 찍어낼 수 있었다.
그래서 달러 화폐를 쥐락펴락하는 연준이 일루미나티니 프리메이슨이니 하는 비밀결사가 연준의 뒤에 있고, 그들이 미국을 지배하고 있다는 음모론이 그럴듯하게 받아들여질 정도였다.
그런 음모론이 나올 만큼 돈을 마음대로 통제할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매력적인 힘이었다.
연준처럼 사설 은행을 만들어 내가 만드는 화폐를 유통시켜 중앙은행처럼 되는 방법도 고려해볼 만했다.
문제는 열심히 화폐를 유통시켜 자리를 잡았을 때 조정에서 강제로 은행을 뺏어 가는 것이 리스크이긴 했다.
하지만 그 리스크를 뛰어넘을 정도로 규모가 커진다면 연준처럼 권력 위에 금권을 올려둘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물론, 그런 빅 브러더 같은 상상도 좋지만, 우선은 국수 한 그릇을 주문하는데도 포를 주고받고 가치가 부족하다고 포를 자르고 붙이고 하는 아무 이득 없는 삽질을 해결하고 싶었다.
우선은 전장(錢莊)을 만들고 쿠폰 형태로 종이돈을 발행해 가패나 국수집, 내가 운영하는 공랑 점포에서 돈처럼 쓰게 만드는 것을 추진해야 할 것 같았다.
“도련님. 큰일입니다. 금국수 자리가 부족합니다요.”
전장과 은행에 대해 생각하고 있는데, 삼식이가 큰일 났다며 왔다.
“그럼 은국수 자리를 임시로 금국수 자리로 돌리거라. 그러면 되지 않느냐?”
“이미 그렇게 했습니다요. 금국수를 주문하신 손님들이 은국수 자리도 다 차지하고 앉아 버렸습니다. 그래서 은국수를 시킨 자들은 보통 국수의 일렬 자리에서 먹고 있고, 보통 국수를 주문한 이들은 땅바닥에 앉아 먹는 판입니다요.”
임시로 테스트하기 위해 가오픈한 것인데, 이리 사람들이 많이 왔다는 말에 놀라 국숫집 앞으로 갔다.
보통 국수를 먹는 이들이 가게를 두르다시피 빙 둘러앉아 길에서 걸식하는 이들처럼 국수를 먹고 있었다.
“지금이 밥때도 아닌데, 이게 무슨 일이냐?”
“오전에 사옹원의 관리들과 수라간의 숙수들이 단체로 와서 먹고 가면서부터 양반 나리들이 몰리더니 이렇게 되어 버렸습니다요. 양반 나리들께 잠시 기다려 달라고 했지만, 아시잖습니까. 양반 나리들이 막무가내로 들어와 앉아 버리면 저희는 입도 뻥긋 못하는 거요.”
“그렇지. 휴우. 사람이 많을 때는 건국수를 사가서 집에서 먹는 건 어떠냐고 유도해 봤느냐?”
“건국수 판매대에서 그렇게 하고 있지만, 그냥 여기서 먹고 가겠다는 사람이 더 많습니다요.”
“허허. 경기도에서 들어오는 일꾼들과 평민을 위해서 만든 저렴한 국숫집인데, 양반들의 별미 맛집이 되어 버렸구나.”
가오픈부터 이러면 중국에서 사 온 밀가루로 저렴하게 보릿고개를 넘길 수 있는 국수를 팔아 보겠다는 내 의도가 별미 음식을 파는 맛집으로만 남게 될 터였다.
“북문과 남문, 서문에도 이런 국숫집을 만들도록 하자구나. 오늘 가게가 끝나면 채월이를 비롯해서 공랑 점포의 오추와 가패의 다희도 다 불러 모으거라.”
***
“우선 국숫집은 일렬로 앉아 먹을 수 있는 탁자를 늘리도록 하고, 삼식이는 다른 성문 근처에 국숫집을 만들 자리를 알아보거라. 그리고 오추는 공랑점포를 하며 숫자에 밝은 이가 있으면 두 명을 추천해주게나.”
“자리를 늘리고 새 국숫집의 장소를 찾는 것은 알겠는데, 숫자에 밝은 이는 왜 필요하신겁니까요?”
“전장(錢莊)이라는 것을 만들려고 하네.”
돈과 곡식이 필요한 이에게 돈과 곡식을 빌려주고 이자를 받는 업무를 하며, 돈을 가지고 있는 이가 돈을 맡기면 그 돈의 증서를 내어주고 이자를 붙여 주는 일을 하는 곳이 전장이라고 설명을 해주었다.
“고리대금(高利貸金)을 하자는 말씀이시군요.”
전장이 하는 일을 듣자 다들 고리대금업을 하는 가게와 별반 차이가 없다는 것을 알았다.
“쉽게 보면 고리대금이라고 할 수 있지만, 우리는 이자를 2할 이상은 받지 않을 걸세. 그리고 그런 고리대금업은 부가적이고, 가장 큰 역할은 교환권을 파는 것일세.”
“교환권요? 무엇을 위한 교환권입니까요?”
“내가 만든 춘봉 가패와 국숫집, 공랑점포에서 쓸 수 있는 교환권이지. 1봉(奉) 교환권에는 국수 한 그릇을 먹을 수 있는 가치를 담을 것이네. 그런 1봉 교환권 3장이 있으면 가패에서 가수저라를 먹을 수 있고, 1봉 교환권 20장이면 쌀을 한 말 살 수 있게 가치를 정할 것이네.”
“그 가치는 고정된 것입니까요? 아니면 시세에 따라 바뀌는 것입니까요?”
“당연히 쌀값이 오르면 1봉의 가치는 달라지네. 그래서 전장에는 그날의 1봉 시세를 명시하는 거지. 1봉 교환권과 쌀값의 시세에 맞추어 가치를 명시한다면 가패나 국숫집은 물론, 공랑점포에서도 그 가치로 인해 아웅다웅하는 일이 줄어들 것이네.”
“조정의 저화와 비슷하군요.”
“그렇지. 저화와의 차이점은 이 1봉 교환권은 내가 가진 업체에서만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고 그 수량을 내가 조절할 수 있다는 것이겠지. 수량을 내가 조정할 수 있으니 저화처럼 많이 만들어 가치가 급락하게 두지 않을 것이네. 이런 1봉 교환권을 준비하고 전장의 운영을 위한 사람이 필요하니 주위에 셈에 뛰어난 자가 있으면 추천해 주게나.”
“헌데, 도련님. 양반이자 관리가 고리대금을 한다고 하면 말이 나오지 않겠습니까?”
“너희들에게 전장을 설명하기 위해 그렇게 이자 놀이를 설명했지만, 춘봉 전장은 돈을 빌려주고 이자를 받는 것은 부가적이 될 것이고, 주로 하는 업무는 1봉 교환권의 유통과 중국에서 사 오는 곡물의 유통이 될 것이네.”
“미곡상과 고리대금을 합쳐서 개인이 발행한 교환권으로 쌀도 사 먹을 수 있게 하는 것이니 그리 나빠 보이지는 않습니다요. 헌데, 전에 제게 맡기신 권항필이라는 자를 전장의 준비 인원으로 보내도 되겠습니까요?”
“그 권람의 9촌 조카라고 했던 서리 말이냐?”
“네. 이 자가 참으로 골치 아픈 자라 저는 불감당이옵니다.”
< 180. 춘봉 국수.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