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쉐프 조선을 부탁해!-175화 (175/327)

175. 스폰서. (2)

“그대로 결정하기에는 문제가 있소이다. 사행사를 배로 간다는 것을 명나라에 알리지 않았다는 것이오. 조선이 갑자기 20척의 배로 사행사를 보내게 된다면 명에 괜한 분란 거리를 만들어 줄 수도 있소이다.”

노신(老臣) 창녕군 조석문이 나섰는데, 아무도 생각지 못한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세조 대왕 시절, 우리가 여진 야인들에게 관직을 내렸다고 명에서 사신이 와서 항의했던 때를 기억하오?”

“기억하외다. 그때 항의를 듣고 창녕군이 주문사(奏問使)로 직접 명으로 가서 그 이유를 설명하고 돌아왔지 않았습니까?”

“맞소이다. 그때 명은 우리가 여진 야인들과 힘을 합쳐 뭔가를 획책하는 것이 아닌가 의심을 했었소이다. 변경의 안정을 위해 관직을 내려 포용하려는 것도 의심의 눈초리로 살피는 곳이 명이오. 그런 이들에게 갑자기 누전선 20척이 나타난다면 우리를 의심부터 할 것이오. 그리고, 미리 알리지 않았다고 괘씸죄를 물어 사신단이 배를 타고 오는 것을 막을지도 모르오.”

늙은 생강이 맵다는 말처럼 조석문은 생각지도 못한 것을 우리에게 깨우쳐 주고 있었다.

“군선으로 쓰는 누전선이나 새로 나오는 조용선의 경우 한 척에 300명 넘게 병사를 태울 수 있소이다. 20척이면 6천 명의 군사를 태울 수가 있으니 창녕군의 말처럼 명에서 충분히 의심을 가질 수 있습니다.”

명나라에 여러 번 다녀온 신숙주도 대규모 선단이 의심을 받을 수 있다고 동의했다.

“큰 배를 20척씩 몰고 온다는 유구는 오천리 밖의 섬나라이고, 조선은 천 리 밖에 붙어 있는 땅이니 명에서 우리와 유구를 달리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첫술에 배불러지려다 우(愚)를 범하게 될지도 모르니 이번 사행사는 3척 정도로 가는 것이 맞겠소이다.”

20척에서 3척으로 대폭 줄인 선박의 숫자에 원종은 속이 쓰렸지만, 어쩔 수 없었다.

당장 한양과 가까운 강화도 앞바다로 처음 보는 큰 군선 20척이 나타난다면 한양도 발칵 뒤집힐 것이었기 때문에 창녕군 조석문의 말처럼 척수를 줄이는 것이 맞을 것 같았다.

“창녕군의 말이 지당하오이다. 처음은 3척으로 가고, 다음 사신사는 여러 척으로 올 것이라고 명에 알린 후, 천천히 한 척씩 배를 늘려가도록 합시다.”

대규모 교역을 하지 못하는 것이 아쉬웠지만, 안전을 위해 천천히 한 척씩 늘려가는 것도 나름 재미가 있을 것 같았다.

빈청의 대관들은 얼음죽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휴식을 취했기에 다시 일을 시작했다.

신숙주가 정리한 종이를 대신들에게 돌리며 원종에게 손짓해 빈청을 나가라고 신호했다.

“그럼, 예종께선 세조의 대상(大喪) 이후로 여차(廬次 부모가 죽으면 그 앞에 만드는 움막)에서 지내며 지나치게 슬퍼하셨고 그러다 병을 얻어 경복궁 정침(正寢 업무공간)에서 승하하신 것으로 정리를 하겠소이다. 유교(遺敎 유언)는 이렇게 남긴 것으로 하겠소이다.”

사신단이 명나라에 성종이 보위에 오른 것을 알리고, 예종의 죽음을 알리기 위해 예종의 죽음을 꾸미고 정리하는 회의에 다시 들어갔다.

그리고 다음 날.

명나라 예부에 보내는 예종의 유교(遺敎)가 공개되었는데, 자신의 몸이 다해 병이 있으며 아들도 병이 있어 조카 중 가장 튼튼한 잘산군에게 후사를 맡긴다는 내용의 유교였다.

이렇게 아버지가 남긴 훈구파 신하들과 분경(奔競)과 경저인으로 다투던 예종은 역사에 몇 줄로 남겨지며 그 뒤안길로 사라졌다.

***

원종이 궁궐에서 생유죽을 만들어 주며 명나라로 가는 사행단의 준비에 시달리고 있을 때 대련에서 같이 온 발해방 사람들은 한양을 벗어나 송악에 다다르고 있었다.

그들의 발걸음이 향한 곳은 송악을 근거지로 하는 송상의 건물로 송상 총대방 김만춘과 만나 협의할 것이 있었다.

“총대방은 언제 오시는가? 요동에서 대씨 일족이 찾아왔다고 전한 것이 맞는가?”

대영일과 고주원 일행은 송상 건물의 대기방에서 두 시진 가까이 기다리고 있었다.

“명으로 떠나는 사신단의 물량에 대해 대방들과 논의하는 시간이 길어지고 있소이다. 조금만 더 기다려 주시오.”

대영일과 고주원은 송상이 중국과 교역해서 얻는 수익이 총 매출의 절반을 차지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두 시진이나 기다리게 했다는 게 기분이 좋지 못했다.

“어이쿠! 형제들 어서 오시게나. 서찰로만 보고 이리 직접 보는 것은 처음인 듯하구려. 멀리서 왔다는 걸 알지만, 지금 조선의 국왕이 죽어 사신단이 꾸려질 것이기에 미리 준비한다고 정신이 없었소이다. 그래. 형제들은 무슨 일로 대련을 떠나 송악까지 온 것이오?”

“송상과 이어져 있던 거래를 조정해야 할 것 같아 직접 왔소이다.”

“거래의 조정이라 하면, 매달 초 대련에서 이루어졌던 그 거래 말이오?”

김만춘은 몇십 년 넘게 이어져 오던 밀무역을 조정하러 왔다는 말에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왜 갑자기 이렇게 조정하러 온 것인지 물어도 되겠소?”

“한양의 춘봉 상단도 그대들과 마찬가지로 태풍을 핑계로 대련으로 왔었소이다.”

“춘봉 상단이면... 그럼 아예 우리와 거래를 끊고, 춘봉 상단과 교역을 하겠다는 것이오?”

“그건 아니오. 우리는 공동의 목적을 가진 동지들이지 않소. 그 목적을 이루기 전까진 우리는 함께 할 것이오. 다만, 춘봉 상단의 제조 전원종에게 듣기로 조선의 사신단이 이제 의주를 통하지 않고 바닷길로 움직일 것이라고 하오. 그래서...”

“바, 방금 뭐라고 그랬소? 이제 사신단은 육지인 의주를 통하지 않고 바닷길로 북경으로 간다고 했소?”

김만춘은 갑자기 나온 배를 타고 북경으로 가게 될 거라는 말에 깜짝 놀랐다.

방금까지 있었던 회의에서 한양을 맡은 대방에게서 그런 이야기는 전혀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말이 신숙주의 손녀사위로 내정되어 있고 궐에 끈이 많은 전원종의 입에서 나왔다고 했으니 이게 거짓으로 들리지 않았다.

“맞소. 전 제조에게 직접 들었소이다. 원래는 춘봉 상단도 송상처럼 태풍을 핑계로 밀무역을 하기로 했는데, 조선의 왕이 바뀌면서 이제 사신단이 배로 가게 되었다고 했소. 이젠 춘봉 상단의 배가 밀무역처럼 움직이지 않아도 된다고 했소이다. 그래서 우리의 밀무역을 조정하기 위해 이리 온 것이오.”

김만춘은 미치고 팔짝 뛸 거 같았다.

어제와 오늘 내내 새로운 왕이 보위에 올랐다고 가는 사행단의 물품에 대해 이야길 했는데, 의주를 통하지 않고 바닷길로 간다고 하니 사행단 물품을 전부 다 새로 짜야 할 판이었다.

“바닷길로 가게 되었다는 것이 참이면 이건 엄청난 일이오. 송상과 만상은 물론이고 조선의 상인들은 중국과의 교역에 목을 매고 있고, 봇짐으로 북경으로 가 장사를 해도 엄청난 이익을 보아왔소. 헌데, 배로 가게 된다면 이건 판을 다시 짜야 할 만큼 큰일이 일어난 것이오.”

고주원은 의주를 통한 육로가 아닌 뱃길로 배를 타고 간다는 사실만으로 깜짝 놀라는 김만춘의 반응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리고 김만춘도 덤덤하게 이야길 하는 고주원의 태도를 이해할 수 없었다.

서로 환경이 다르기 때문이었다.

“북경으로 가는 사행사에 가져갈 수 있는 봇짐 물량을 다 합쳐도 조용선 한 척에 실을 수 있는 화물보다 작을 것이오. 그리고 사람들이 걸어가며 먹고 마시고 하는 비용과 그 기간도 더 기오. 하지만, 배로 가게 된다면... 그 모든 것이 달라지게 되는 것이오.”

김만춘은 이게 얼마나 큰일인지 고주원에게 알려주고자 못에 핏대를 세웠다.

“그 배가 또 여러 척이라면 한 번의 교역이 수십 번의 육로 교역과 같아 이제까지의 상교역이 다 망하거나 쇠퇴하게 될 것이오. 특히나 의주는 타격이 클 것이오.”

김만춘은 늘 의주를 지날 때 걸리적거리던 의주 만상의 박살 나는 모습이 눈에 보이는 듯했다.

“길똥아! 회의를 끝내고 돌아가려는 대방들을 떠나지 못 하게 하고 창고 방으로 다 모이도록 하거라! 급한 일이다.”

김만춘은 회의 후 떠나려는 대방들을 다 붙잡아서 모이게 했고, 이런 정보를 알려준 고주원의 손을 잡고 고마워했다.

“우리 같은 상인에겐 이 소식이 엄청난 일이오. 발해방 친구들이 조정하겠다는 밀무역은 그쪽이 원하는 대로 조정을 하겠으니 걱정하지 마시오.”

고주원은 이제까지 곡식을 모아 송상과 중국 화북에 팔던 것의 반절 이상을 춘봉 상단에게 넘겨야 한다고 했고, 거래 규모가 절반 이하로 줄어드는데도 송상 김만춘은 좋다고 했다.

애초에 고주원은 거래 규모가 반 이상 줄어드니 그에 대한 보상까지도 생각을 해왔었다. 하지만, 그 보상안을 꺼낼 필요도 없었다.

송상 총대방 김만춘은 고주원과 밀무역에 대한 이야길 하고 있었지만, 그의 생각은 이미 다른 곳에 가 있었기 때문에 무슨 말을 해도 다 들어준다고 했다.

대영일도 할 말이 있었지만 이런 모습을 보고 입을 열지 않았고, 고주원도 앞으로의 일에 대해 상의하려던 것을 그만두었다.

그저 밀무역의 거래를 줄이는 것만 이야기하고 송상의 건물을 나왔다.

분명 자신들의 생각대로 거래를 조정하고 송상을 나왔지만, 둘은 뒤끝이 찝찝했다.

“몇 해 전 바뀌었다는 송상의 총대방은 우리를 형제로 여기지 않는 거 같군요.”

“네. 공자가 느끼신 대로 그는 우리를 같은 일을 하는 형제로 보지 않고, 사업상 거래를 하는 거래자로 보는 것 같습니다.”

고주원도 김만춘의 아비이자 전대 총대방이었던 김행집과 다른 응대에 적잖이 실망했다.

5대 전 선조들이 요동에 발해를 세우기 위해 조선에서 조력자를 구할 때 송상 김도욱을 만났었다.

그리고 김도욱은 자신의 성이 본래 왕씨이며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 후 성을 바꾸었다고 했었다.

김도욱은 송악의 상인들을 규합해 송상을 만들었고, 김도욱은 우리에게 요동에서 발해를 재 건국하는 일을 함께하기로 했었다.

물론, 요동에 새로운 발해가 만들어지면, 발해방은 김도욱을 도와 후 고려를 조선에 세우는 일을 돕기로 했었다.

세월이 흘렀음에도 발해방은 그대로 그 목적을 기억하고 있었지만, 오늘 본 송상의 김씨들은 이미 그 목적을 잃어버렸는지 완전한 상인으로서의 사상을 내비쳐주었다.

“의주를 통한 육로 교역이 쇠퇴하여 없어지면 요동 땅의 안정을 위해 나와 있던 조선의 기마병이나 밀무역을 단속하는 병사들이 없어질 것이기에 우리 일족이 요동에 돌아가는 것이 쉬울 거로 생각했습니다.”

대영일은 발해의 주축이었던 고구려 유민들과 여진인들을 묶어 조선의 군사들이 없어진 요동에서 발해를 다시 건국할 구상이 있었다.

“네. 군대가 빠진 힘의 공백지를 우리가 가지게 되면 일이 수월해질 것이라 저도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요동을 장악할 수 있게 송상에 도와 달라고 할 생각이었습니다. 헌데 오늘 보니 그 이야기를 하지 않은 것이 잘한 것 같습니다.”

“네. 세월이 흐르니 송상이 가졌던 예전의 결의는 없어진 것 같습니다. 고려의 왕족이 아니라 이제는 성씨처럼 금(金)을 좋아하는 김(金)씨가 되어 버린 것 같습니다. 우리를 도와줄 다른 단체를 찾아보아야겠습니다.”

“그럼, 의주로 가는 게 어떻겠습니까? 고 사형은 만상을 끌어들이는 것을 어찌 보십니까?”

“이제 의주가 쇠퇴할 것이 뻔하니 만상을 끌어들이기는 좋을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닙니다. 지금 당장은 그저 만상을 보기만 해야 합니다. 나중에 만상이 쇠퇴하여 힘들어졌을 때 그때 손을 내밀어야 합니다.”

“그렇군요. 지금 또 바닷길이 열린다고 알려주면 대비할 시간만 주게 되겠군요. 그럼, 한양으로 돌아갑시다.”

한양으로 돌아가는 대영일과 고주원의 발걸음은 왠지 무거워 보였다.

***

대영일은 중국 대련에서 태어나 성장했지만, 북경과 남경을 가보았기에 상대적으로 작은 나라인 조선을 작고 약하게만 생각했다.

그래서 자신들이 요동에 발해를 만들고, 여세를 몰아 조선 반도를 점령하거나 아니면 왕씨들을 도와 후 고려를 만들어 주려고 했다.

이성계가 위화도 회군으로 판을 뒤집었듯이 자신들도 준비해서 그렇게 우루루 내려와 조선 왕궁을 뒤엎기만 하면 일이 쉽게 될 것이라 여겼다.

하지만, 대영일이 실제로 본 한양은 수십만의 사람들이 모여 살고 있고, 그 수준도 생각보다 높아 처음 생각한 것처럼 요동에 발해를 세우고 손쉽게 조선을 점령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하게 만들었다.

“의외로 백성들이 이씨 왕족들을 좋아하는 듯합니다.”

“고려 말기 왕 씨들과 권문세족들의 행패에서 벗어나게 해주었으니 백성들이 이 씨들을 좋아할 만합니다. 특히 이런 옷가지와 석탄이라는 것을 쓰는 것에 차이가 나는 것 같습니다.”

닭과 오리털이 들어간 나이기온 옷이 나온 지 벌써 세 번째 겨울이기에 웬만한 양민들도 닭과 오리털을 모아 패딩 옷을 만들어 입었기에 추위에 떠는 자들이 확실히 적었다.

그리고, 돈 좀 있다는 자들은 가패라는 곳에 앉아 숭늉과 가수저라(카스테라)라는 부드러운 빵을 먹고 있는 모습을 보니, 문화가 꽃피어있다는 북경에 못지않았다.

“그래 두 분은 송상을 만나고 왔다고 하던데, 일은 잘되어 가고 있습니까?”

퇴청하고 바로 온 것인지 관복을 입은 원종이 자신들의 앞자리에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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