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4. 스폰서. (1)
나이가 들며 부쩍 단 음식이 당기던 대왕대비 정희왕후는 기미 상궁이 기미를 끝내기도 전에 숟가락을 들었다. 탱글거리던 생유죽의 출렁임이 다르다는 걸 느꼈기 때문이었다.
“김이 나던 생유죽은 마치 연두부와 같더니 식은 생유죽은 사가에서 먹던 묵과 같구나.”
정희왕후는 파평 부원군 윤번의 딸로 세조에게 시집오기 전 충청남도 홍주에서 10살까지 살았기에 도토리로 만들어 먹는 묵을 알고 있었다.
어릴 때의 추억을 더듬으며 정희왕후가 숟가락을 떴는데, 숟가락 위에서 무너질 것처럼 흔들흔들하면서도 자세를 유지하는 생유죽의 모습이 너무나도 재미가 있었다.
이런 탄력 있는 모습을 한참을 들여다보다 입에 넣었다.
“으음...”
정희왕후는 식다 못해 차가운 생유죽의 촉감에 잠시 멈칫했지만, 이내 눈 녹듯이 사라지는 부드러운 맛에 웃음을 지었다.
“주상 어서 드셔보시오. 맛이, 아니 느낌이 다른 것 같소이다.”
성종도 차가운 생유죽을 먹어보자, 왜 대왕대비가 저리 웃음을 지으며 먹는 것인지 알 것 같았다.
차가워진 생유죽은 따뜻한 것과는 달리 생강의 향이 거의 느껴지지 않았는데, 대신에 우유의 고소한 맛과 설탕의 단맛이 더 크게 느껴졌다.
그리고, 차가운 생유죽이 따뜻한 입안의 혀와 만나자 살얼음이 녹아내리는 것처럼 흐물거리며 사라졌는데, 이런 부드러운 맛에 자신도 모르게 감탄을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아, 정말 부드럽고 맛있습니다. 이리 맛있는 죽이 있다는 것을 진즉에 알았다면 배고픔을 참지 않았을 터인데.”
성종은 며칠 동안 흰죽에 질려 배를 곯은 것이 억울하다는 듯 차가운 생유죽을 먹었고 금세 바닥을 드러내고 말았다. 성종은 깨끗하게 비워진 그릇을 보며 맛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따뜻한 생유죽은 추운 겨울날 안길 수 있는 어머니의 품과 같은 그런 포근한 부드러운 맛이 났는데, 차가워진 생유죽은 마치 한겨울 새침데기 처녀가 신경 쓰지 않는 듯이 따뜻한 자리를 내어주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그런지 생유죽이란 죽은 방금 먹었음에도 감(感)을 잡을 수 없는 음식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한번 더 먹고 싶으니 생유죽을 다시 만들어 올리게 하라.”
***
이후 성종의 식단에 변화가 생겼는데, 매일 세끼 중 한 끼는 반드시 생유죽으로 먹는 것이었다.
이제까지 성종은 상중에 먹는 것을 탐한다고 사관들이 기록을 나쁘게 남길 것을 염려했는데, 마음에 드는 생유죽은 죽이었으니 사관들의 기록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었다.
그래서 성종은 먹고 싶은 만큼 생유죽을 먹었다.
하지만, 아무리 우유가 완전식품이라고 해도, 설탕과 생강즙 말고는 다른 것이 들어가는 게 없었기에 영양학적으로 좋지 않다는 것이었다.
다른 영양분을 위해 생유죽 푸딩 안에 삶아서 꿀에 절인 밤과 콩, 팥, 잣을 넣었고, 호박, 감, 사과, 배도 잘게 썰어 넣어 생유죽에 넣어 부족한 영양분을 보강했다.
수라간의 숙수들은 원종을 어린 나이에 가수저라를 만들어 벼락출세한 운 좋은 자로 생각했는데, 수라를 준비하며 보여지는 칼질이나 여러 가지 조리법을 보곤 절로 고개가 숙여질 수밖에 없었다.
몸은 어리지만, 이미 자신들을 넘어선 실력자로 인정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고개를 숙여 인정하게 되니, 그제야 왜 우유가 굳어 묵처럼 생유죽이 되는지를 물어봤다.
“잘게 빻은 생강의 즙에는 전분 성분이 있는데, 그 전분이 우유와 열을 만나 굳어지는 것이네. 자네들도 곡식에 들어 있는 전분 성분으로 국물을 조렸던 적이 있을 것이네.”
“네. 하지만, 생강은 곡식이 아니라, 전분이 있는지를 몰랐습니다.”
“생강뿐만 아니네. 고사리에도 있고, 칡에도 있네. 곡식이 아닌 것에서도 전분을 뽑아내어 생유죽을 만들어 먹을 수 있네. 풍년이 든 시기에는 곡식에서 전분을 뽑아내어 써도 되지만, 흉년이 들었을 때는 이렇게 생강이나 고사리에서 전분을 뽑아 써야 할 것이네.”
원종은 탄력 있는 푸딩 스타일의 음식에 다들 관심을 가지자, 우뭇가사리를 말려 만드는 한천으로 젤리를 만드는 것도 알려줘야겠다고 생각했다.
투명한 한천으로 젤리를 만들고 그 안에 과일을 넣어 만든다면, 생유죽 이상으로 사람들이 신기해하며 좋아할 것 같았다.
부산의 춘봉 상단 지점에 남해에서 우뭇가사리를 채취하여 흰색이 될 때까지 햇빛에 말려 모으라고 편지를 보냈다.
***
“교대 시간이네. 주상께서는 오늘도 흰죽을 드셨는가?”
“그렇네. 참으로 신기하이. 이제까진 흰죽을 질려 하시며 잘 드시지 않으셨는데, 이제는 무조건 생유죽을 올리라고 하시니 특이하네.”
“그런 특이한 식성의 변화까지도 기록하는 것이 우리 사관의 할 일이네. 어서 들어가게나. 수고했네.”
사관으로 임금의 일거수일투족을 기록하게 되어 있는 예문관 대교(待敎) 김성수는 비슷해 보이는 죽인데, 제조 전원종이 만들어 올린 죽을 특별하게 맛있다며 깨끗하게 그릇을 비워 내는 것을 보곤 오늘도 글로 남겼다.
『....선왕의 장례 중 노란빛의 죽이 맛있어 주상전하는 물론, 대비마마와 여러 종친이 그 맛에 감탄했는데, 겉으로 보기에는 그냥 죽이었음에도 다들 감탄을 하며 죽 먹는 것을 즐거워하였다.
고기나 자극적인 조미료를 넣을 수 없는데도 다들 흰죽을 맛있다고 하니 소관은 모든 것을 지켜보면서도 그것을 이해할 수가 없다.
춘봉 가패를 만들어 이름 높은 제조 전원종이 직접 만들었기에 더 맛이 있다고 하는데, 사관들도 그 맛이 궁금하지만, 먹어볼 수 없는 것이 아쉬울 따름이다...』
주상과 종친들의 입과 그걸 지켜본 사관과 나인들에 의해 생유죽에 대한 소문이 알게 모르게 퍼지기 시작했다.
***
“그대들은 여기서 뭘 하는 것이요?”
수라간에서 일을 마치고 퇴청하기 전에 신숙주에게 인사를 하기 위해 빈청(賓廳 고관들의 회의실)에 가니 그 앞에 내관들이 상을 들고 서서 대기하고 있었다.
“생유죽이 맛있다고 하여 만들어 올리라 하셨는데, 회의가 길어져 대기를 하고 있나이다.”
귀 기울여 빈청 안에서 들리는 소리를 들어보니 사행사에 관련된 이야기라 금방 끝날 것 같지 않았다.
내관들은 눈 내린 겨울 날씨에 부들부들 떨면서 상을 들고 있었고, 생유죽은 식다 못해 얼 것 같았는데, 생유죽이 얼 것 같으면 빈청에 딸린 소주방으로 가서 다시 중탕으로 데우고 있었다.
이게 무슨 비효율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고 추운데 내관들을 계속 세워 두는 것도 문제인 듯하여, 고민하다 좋은 방법을 떠올렸다.
“상을 내리고, 생유죽 종발을 그대로 처마 위 쌓인 눈 사이에 넣어 두시게.”
“네? 그렇게 하게 되면 생유죽이 식는 것을 지나 얼게 될 터인데요.”
“맞네. 얼려서 먹는 얼음죽을 하려고 하는 거네. 책임은 내가 질 터이니 상을 내리고 생유죽을 처마 위 눈 위로 올리게나.”
내관들은 얼음죽이라는 소리에 죽을 얼려서도 먹는지 의아해했지만, 이 생유죽을 만든 것이 나라는 것을 알기에 두말없이 생유죽을 처마 위로 올렸다.
추위에 떨던 내관들도 돌아가며 두 명씩만 나와서 얼어가는 생유죽을 보고 있고, 나머지는 소주방의 아궁이에서 불을 쬐게 했다.
그렇게 이 각(30분)이나 지나서 빈청 회의가 끝이 났고, 추위에 얼어버린 생유죽을 들고 빈청 안으로 들어갔다.
“특별히, 얼음죽을 해왔사옵니다.”
빈청 안은 내가 만들어 보급한 난로가 있었기에 따뜻한 훈기가 감돌고 있었는데, 딱 아이스크림을 먹기 좋은 실내 온도였다.
푸딩을 얼리면 퍼먹는 아이스크림과 비슷하게 되는데, 딱딱하게 얼더라도 우유 특유의 점성으로 인해 퍼석거리며 숟가락으로 떠먹을 수 있을 정도로만 얼었다.
“식혀서 차가워진 생유죽과는 또 다른 맛이 날 것입니다.”
추운 겨울에 얼음을 먹으라는 말에 다들 망설였지만, 신숙주가 먼저 숟가락을 들어 얼음죽을 퍼먹자 다들 따라 숟가락을 들었다.
“오! 이런 맛이라니.”
“단맛의 얼음죽이라 입 안에 넣으니 사르르 녹는구먼.”
“한겨울에 얼음을 먹게 될 줄이야. 허허.”
대신들은 생유죽이라는것도 처음 먹어보았지만, 이렇게 얼어있는 것을 먹는 것도 처음이다 보니 대신들은 신기해하며 우유아이스크림이 된 생유죽을 퍼먹었다.
사실 바닐라 향만 첨가했다면 현대에서 먹는 바닐라 아이스크림과 같은 재료였고, 같은 맛이었다.
그리고, 한겨울에 먹는 아이스크림은 또 별미 중의 별미였으니 대관들이 좋아할 만 했다.
“주상전하와 종친들이 좋아할 만하오. 이런 단맛이라니. 그럼 이 생유죽은 춘봉 가패에서도 먹을 수 있는 것이오?”
“안타깝게도 춘봉 가패에서는 판매할 수가 없습니다. 이 생유죽에는 우유와 곡식에서 나오는 전분, 그리고 사탕(설탕)이 들어가야 하는데, 사탕의 가격이 비싸옵고, 우유와 곡식의 전분 또한 귀하여 판매를 할 수 있을 정도의 양을 구할 수가 없습니다.”
“허허. 이거 너무 안타깝구만. 따뜻한 어머니의 품과 같다는 뜨거운 생유죽을 먹어보고 싶었는데.”
사실, 빈청에 들어 회의할 정도의 대관이라면 설탕이나 우유, 전분의 귀함과 비쌈에는 영향이 별로 없었다.
하지만, 그 귀함이 유별나다면 마음 놓고 만들어 먹을 수가 없는 것이 대관들이었다.
왕이 사관들의 눈치를 보듯이 대관들도 같은 대관들과 왕의 눈치를 봐야 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방법이 있습니다. 밖에서 듣기로는 명나라에 사행사를 보내는 일로 회의를 하는 것 같았는데, 맞사옵니까?”
“맞네. 그렇지 않아도 고령 부원군(신숙주)께서 사행사를 배로 보내야 한다고 하셔서 이야기가 길어졌네. 듣기로는 의주로 배를 타고 가다 태풍을 피해 요동의 대련이라는 곳까지 갔다고 들었는데, 정말 거기에는 밀의 가격이 조선의 반밖에 되지 않았는가?”
나의 영원한 스폰서 신숙주가 배로 사행사를 보내야 한다고 주장했던 것 같았다.
그러면서 밀 가격을 이야기했는데, 우참찬(右參贊) 노사신은 밀 가격이 조선의 절반이라는 말을 믿을 수 없는 것 같았다.
“물론입니다. 대련이라는 곳은 요동 반도에서 생산된 밀과 곡식들이 몰리는 항구로 조선보다 곡식값이 반밖에 되지 않습니다. 북경으로 가는 사행사의 행렬을 배로 바꾸어 10척의 누전선이 가게 된다면 대련에서 곡식만 4~5천 석을 실어 올 수 있을 것입니다.”
“4~5천석?”
“그 정도로 곡식을 우리가 사 올 은이 있소? 그 정도의 은이 있다고 하면 명에서 뭐라고 할 것 같은데.”
“그리고, 그 정도의 식량을 우리가 가져오게 된다면 명나라 조정에서 놔두겠는가? 그들도 여름 곡식이 익을 때까지 보릿고개가 있을 것인데. 그렇게 우리가 곡식을 사갈 수 있게 놔두겠나?”
대관들의 이야길 듣고 있으면 확실히 외국에 나가본 대관들과 나가보지 못한 대관들의 식견에 차이가 보였다.
중국 명나라의 곡식 생산력을 조선과 비교하여 4~5천 석을 가져오는 게 가능한지부터 걱정을 했다.
“제가 직접 가서 본 바로는 요동 반도의 대련과 산동 반도의 위해 만 해도 능히 4~5천 석의 곡식을 가져오는 것이 가능합니다. 배를 더 멀리 보내어 남경까지 간다면 더 많은 곡식을 더 저렴하게 사 오는 것도 가능할 것이옵니다.”
“허허허. 천하가 그리 넓고, 중국에는 그리 논밭이 많은 것이오?”
아직 중국을 가보지 못한 우참찬 노사신은 그 정도로 곡물이 난다는 중국의 생산량에 놀라워했다.
“하지만, 명의 해금령으로 인해 그렇게 교역을 하지 못하는 것 아니오?”
“맞습니다. 하지만 사행사를 이용하면 되옵니다. 저 멀리 유구의 사신단은 북경으로 사신단을 보낼 때 큰 배를 20척을 움직여 온다고 합니다. 왜구의 공격을 피하고자 20척을 가지고 온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돌아갈 때는 그 20척의 배에 한가득 짐을 실어 간다고 합니다.”
“허허. 20척의 배에 한가득이라.”
“우리 조선도 정식으로 가는 사행사의 경우에는 상인들이 봇짐을 매고 따라가고 있듯이 사행사에 붙어 가는 배를 늘리는 것은 명나라의 해금령에 접촉되지 않을 것입니다.”
다들 알게 모르게 사행사로 장사를 했기에 이익 계산을 하고 있었다.
“올겨울 눈이 많이 내려 봄에 나는 작물들이 늦게 올라올 것이고, 보릿고개가 더 빨리 찾아올 것이니 이번 사행사는 배로 가는 것을 생각해 봐야겠구만. 다른 의견 있나?”
이제까지 묵묵히 푸딩 아이스크림을 먹던 한명회가 배로 사행사를 보내자고 하자 다른 대관들도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를 했다.
공식적 사행사로 유구처럼 20척의 배로 가게 된다면 조선 팔도의 발전을 막고 있던 물류의 병목 현상이 한방에 뚫릴 수도 있을 것만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