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쉐프 조선을 부탁해!-173화 (173/327)

173. 이것은 무슨 음식이냐?

보위에 오른 주상전하가 배를 곯고 있다고 하니 이보다 더 중한 일은 없었다.

내시들에게 끌려가듯이 수라간(水剌間)으로 움직였는데, 이제까지 음식을 했던 소주방(燒廚房)과는 그 격이 달랐다.

보통은 수라간과 소주방을 다 같이 임금의 음식을 하는 부엌으로 생각하지만, 수라간과 소주방은 엄연히 다른 곳이었다.

수라간은 왕이 먹는 음식을 ‘수라’라고 한 데서 기인한 이름으로 말 그대로 왕이 먹을 음식을 만드는 곳이었다.

수라는 ‘siüla’라는 몽골어에서 유래가 되었고, 몽골어로 요리나 밥을 뜻하는 말이었다.

고려 시대 원나라의 영향 아래 있으면서 자연스레 왕족인 몽골인들이 먹는 음식을 ‘수라’라고 지칭하였고, 그것이 조선까지 이어져 내려온 것이었다.

이에 반해 소주방은 불을 쓰는 주방이라는 뜻의 불태울 소(燒)자로 쓰기도 했지만, 소주방(小廚房)이라고 작은 주방이나 내주(內廚)라고도 쓰였다.

독자적인 공간보다는 전각에 딸린 작은 주방을 뜻하는 것이라고 봐야 했다.

수라간은 오직 왕을 위한 음식을 만드는 곳이었기에 입구를 지키는 병사도 따로 있었고, 숙수들도 이제까지 소주방에서 보았던 이들과는 다른 이들이 있었다.

수라간 숙수들의 얼굴은 모두 굳어있었는데, 국상 중이기도 했지만, 은연중에 예종의 옥체가 변색 되었다는 소문이 있다 보니 더 어두워진 것 같았다.

독살을 조사하라는 말이 떨어지면 수라간이나 소주방에서 일했던 이들은 모두 다 의금부에 끌려갈지도 몰랐기에 분위기가 어두운 게 어쩌면 당연했다.

숙수들에게 이제까지 성종에게 올린 죽을 물어보니 대부분이 흰 쌀로 죽을 끓이고, 그 위에 밤이나 잣을 으깨어 올린 것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다 흰죽이 물린다고 성종이 죽을 먹지 않자 숙수들도 흰쌀에 우유와 꿀을 넣어 끓인 타락죽을 올렸다고 했으니, 이들도 나름 고민해서 죽을 올린 것이었다.

사실, 용빼는 재주가 있더라도 흰죽과 채소만으로는 입맛이 떨어지고 마음이 뒤숭숭한 사람에게 좋은 맛의 감동을 주긴 힘들었다.

그저 해산물이나 육고기로 육수를 내어 그 육수로 죽을 끓이는 게 가장 현실적인 방법이었다.

그리고, 이런 죽을 성종은 최소 몇 개월은 더 먹어야 했다.

친자식은 아니기에 3년 상을 예법에 따라 전부 다 하지 않아도 되겠지만, 그래도 몇 개월 동안은 하루 한 끼 이상 흰죽을 먹으며 상을 치러야 했다.

문종이 세종대왕의 상을 치루고 병을 얻었듯이 이런 장례문화도 좀 줄이고 해야 할 것 같은데, 장례 기간을 줄이고 허례허식을 줄이자고 하면 바로 쌍놈 취급을 당할 것 같은 조선이라 나설 수가 없었다.

상주의 몸이 축나지 않게 음식이라도 제대로 먹어야 했는데, 상중에 잘 먹으면 그것도 불효로 보는 판이니 현대 장례식장처럼 돼지 수육에 육개장을 내어 주면 아주 난리가 날 터였다.

찬찬히 상중에 먹을 수 있는 음식들을 떠올려보는데, 이 시기의 일반 사가(私家) 상갓집에서 먹는 음식이 떠올랐다.

조선 시대에는 집안에 사람이 죽고 상을 치르면 키우던 개를 잡아 된장과 같이 끓인 개장국을 손님들에게 내주었는데, 이유를 가져다 붙이기로는 주인을 따라 개도 같이 죽인다는 그런 말도 있었고, 죽어서라도 주인을 위해 충성하는 개의 성향을 위해 개장국을 해서 손님을 맞는다는 말도 있었다.

그러던 것이 1970년 이후 한국이 도시화 되면서 개를 쉽게 잡을 수 없었고, 개를 키우지 않는 집에서 귀한 소고기로 장국을 끓여 손님들에게 대접하기 시작하자 상갓집의 음식도 변하기 시작했다.

상갓집 음식의 특성상 장례식 내내 팔팔 끓여야 했기에 고기가 질긴 소의 양지나 사태 같은 질긴 부위를 넣어 계속 끓였고, 얼큰하게 고춧가루가 들어가며 우리가 아는 육개장이 된 것이었다.

개고기로 만들어 주던 수육은 70년대 이후 흔해진 돼지고기로 수육을 하게 되었고, 자연스레 상갓집의 기본음식은 돼지 수육과 소고기 육개장이 되어 버렸다.

그러면서 상갓집에서 음식을 법도에 맞게 먹어야 한다는 예법도 자연스럽게 없어져 버렸다.

“훙서하신 전하와 보위에 오르신 전하의 입맛을 알기에 소인들도 춘봉가패의 다희라는 아낙에게 번이나 가수저라를 배웠었습니다. 그래서 전하의 입맛을 맞춰드릴 수가 있을 것 같았는데, 일거수일투족을 사관이 모두 기록하고 있다 보니 흰색 죽만 올릴 수밖에 없어 난감하던 차입니다.”

원종이 한양에 없는 동안 궐의 숙수들도 새로운 음식을 배우고 나름대로 노력은 한 것 같았다.

“죽 말고 다른 것을 올릴 수만 있다면 될 터인데... 사관들이 예법에 맞게 무조건 흰색의 죽이어야 한다고 하니. 방법이 없사옵니다. 제조 어른의 요리 실력이 천하 으뜸이라며 전하께서 제조 어른만 찾으며 죽을 드시지 않으시니 걱정입니다.”

성종이 내 요리 솜씨를 천하 으뜸이라고 말하며 숙수들을 여러 번 갈군 것 같았다.

그러다 보니 책임 숙수가 천하 으뜸이라고 이야기할 때 유독 그 단어에 힘을 주어 말하는 듯했다.

이런 성종의 기대에 부응해야 했기에 고민하는데, 겉으로는 흰죽으로 보이면서 흰죽이 아닌 음식이 생각났다.

그리고, 숙수들에게 왜 성종이 나를 천하 으뜸이라고 치켜세웠는지를 보여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사관들이 보았을 때 흰색의 죽으로 보이는 것을 만들어 보지. 생강을 찧어 즙을 내고, 자네는 갓 짜낸 우유를 가져오게나.”

“생강을 넣은 타락죽이옵니까?”

“아니네. 이제까지 자네들이 보지도, 듣지도, 맛보지도 못한 것을 만들어 주겠네.”

숙수들은 자신만만해하는 원종의 모습에 ‘어린놈이 어딜?’ 하는 거부감도 들었지만, 그런 듣도 보도 못한 음식으로 주상이 맛있게 식사해 준다면 그 천하 으뜸이라는 말도 인정해줄 수 있을 것 같긴 했다.

깨끗이 씻고, 껍질을 벗긴 생강을 잘게 찧어 면포로 감싸 생강즙을 짜내었다. 샛노란 색의 생강즙에는 설탕을 넣어 휘저어 주었다.

그러곤 밥그릇 종발 그릇에 생강즙을 넣고, 방금 짜낸 미지근한 우유를 종발 그릇에 찰랑찰랑하게 부어 주었다.

“가마솥에 찜을 할 수 있게 찜발을 걸고 물을 올리게.”

죽을 끓여야 하는데, 쌀은 쓰지도 않고, 소 젖만 넣어 찌겠다고 하니 숙수들은 어이가 없었다. 그가 한 말처럼 생전 처음 보는 죽 만드는 법이었다.

이걸로는 죽이 안된다고 말을 하고 싶었지만, 관직이 깡패다 보니 가마솥에 물을 올리고 불을 피워 시키는 대로 숙수들은 움직였다.

내시에게 예종의 제(祭) 앞을 지키고 있는 종친이 몇 명인지 확인하곤 우유가 담긴 종발 그릇 12개를 올리고 뚜껑을 닫았다.

“요리는 끝났네.”

생강즙에 방금 짠 우유를 넣고 찜기에 넣은 것만으로 요리가 끝났다고 하니 숙수들은 이게 정상적인 조리법인지 황당해했다.

숙수들이 당황해하는 것은 신경 쓰지 않고 원종은 불을 가늠하며 일각 동안 쪄내었고, 가마솥 뚜껑을 열자 종발 그릇에서 찰랑거리던 우유가 몽실몽실하게 굳어있었다.

“아주 잘 되었구만. 김이 솔솔 나는 것이 흰죽 같아 보이지 않는가?”

완전 흰색의 죽은 아니었지만, 먹음직스러운 연노랑 빛을 띠고 있는 것이 달걀노른자나 치자 물을 들인 죽으로 보였다.

뜨거운 종발 그릇 6개를 꺼내 밖의 차가운 눈으로 그릇의 열을 식혔고, 나머지 6개 그릇 중 다섯 개로 독상을 차리기 시작했다.

주상뿐만 아니라, 대비나 다른 이들도 먹어야 했기에 같이 올리는 것이었다.

“간장과 같은 양념은 필요 없네. 아무런 양념 없이 그냥 드시는 음식이니 그대로 올리면 될 것이네.”

나인들이 상을 들고 사라지자 다시 다섯 개의 상을 차려 겨울 찬바람과 눈으로 온도를 내린 종발 그릇을 올렸다.

추운 겨울바람에 얼 듯이 차가워진 음식을 수라상에 그대로 올린다는 것에 숙수들은 깜짝 놀랐다.

“차가운 음식을 올리는 것은 한여름 더위를 잊기 위해서이지 지금처럼 추운 겨울에 올리는 것은 아니 됩니다.”

“허허. 이것은 이렇게 먹어야 하는 음식이네.”

하지만, 숙수들은 완강하게 차가워진 음식을 올리면 안 된다고 막아섰다.

원종은 이들도 직접 먹어봐야 알겠구나 싶어 숙수들에게 따뜻한 종발에서 한 숟가락씩 떠먹게 했다.

숙수들은 몽실거리는 윗면에 숟가락을 가져다 대자, 마치 두붓물을 뜨는 것처럼 덩어리가 떠졌고, 그걸 한번 맛본 숙수들은 멍하게 종발 그릇을 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전 제조님 이것은 뭐라고 하는 음식이옵니까?”

“생유죽(生乳粥)이라고 하네. 어떤가? 생전 처음 보는 음식이지 않은가?”

“예. 이런 음식은 처음입니다. 주방에 들어온 지 수십 년이 되었지만, 생유죽이라는 음식이 있는지도 몰랐습니다.”

사실 경력이 오래된 숙수들도 생유죽을 모를 만했다.

찜기로 쪄낸 생유죽이란 음식은 바로 푸딩(pudding)이었기 때문이었다.

서양 음식인 푸딩이 생유죽이란 이름으로 조선에 알려지게 된 것이니 숙수들이 모르는 게 당연했다.

“그럼, 다시 이 차가워진 생유죽을 한 숟가락씩 먹어보게나.”

숙수들은 차가워진 생유죽을 한입 먹었는데, 왜 법도에 어긋나는데도 전 제조가 차가운 음식을 올리라고 한 것인지 알 것 같았다.

“한가지의 음식이 이리 온도에 따라 느낌이 달라지는 것이 너무 신기합니다.”

“그렇지? 그럼, 어서 주상전하와 종친들께 차가운 생유죽을 올리고 오게나.”

숙수들은 따뜻한 생유죽을 먹고 바로 차가워진 것을 먹어야 극적 대비가 더 커진다는 것을 직접 먹어보고 알았기에 나인들과 상을 들고 급히 움직였다.

내가 생유죽이라고 부른 이 ‘푸딩’이라는 이름은 이상하게 꼬인 이름이었다.

우리가 생각하는 몽실몽실하고 탱글탱글한 디저트 푸딩은 서양에 없는 음식 이름이었다.

서양에서 푸딩이라고 하면, 피로 만드는 블랙 푸딩(Black Pudding)을 먼저 떠올리는데, 바로 우리가 익히 아는 피순대가 바로 푸딩이란 이름의 유래였다.

돼지나 소의 피가 굳어 선지처럼 탱글거리는 굳힘을 가지는 것을 푸딩이라고 하다 보니, 젤라틴이나 한천을 넣어 만드는 달콤한 디저트도 그 탱글거림으로 인해 푸딩이라 명명되었다.

그래서 일본이나 한국, 중국에서 이르는 푸딩과 유럽, 북미에서 부르는 푸딩은 극과 극의 이미지였다.

아시아에서 먹는 디저트의 푸딩을 서양인들에게 설명할 때는 반드시 카라멜 푸딩(Caramel pudding)이라고 해야 카라멜 시럽이 올라간 달달한 디저트라고 알아들을 수 있었다.

이렇게 이름만으로도 혼동을 주는 음식이기에 아예 ‘생유죽’이라고 이름을 정한 것이었다.

생우유로 만드는 죽이란 의미이니 서양의 블랙 푸딩과는 이름에서 오는 혼동은 없을 터였다.

“제조 어른! 기뻐하십시오! 주상전하께서 아주 맛있게 다 드셨습니다! 그리고, 다시 한번 따뜻한 것과 차가운 것을 올리라고 하셨습니다!”

“다행이군. 자 그럼 이번엔 숙수들이 한번 해보시오. 내가 잘못된 점이 있으면 알려드리겠소이다.”

***

“전하 제(祭) 앞은 다른 종친에게 맡기고 식사를 좀 하시지요. 조반도 제대로 안 드셨고, 벌써 오후이옵니다.”

“흐음. 배는 고프나 그렇게 먹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구나. 또 죽이지 않느냐?”

“네 죽이긴 하오나. 오늘은 전하께서 찾으시던 전원종 제조가 도착하여 죽을 만들어 올렸사옵니다.”

“응? 전 제조가 왔는가?”

앞으로 성종이라 불리게 될 잘산군은 이제까지 자신을 실망시키지 않았던 원종이 만든 죽이라는 소리에 벌떡 일어나 옆방으로 움직였다.

이미 기미 상궁이 맛을 보기 위해 한 숟가락을 던 것 같았는데, 뭔가가 이상했다.

기미 상궁이 떴던 숟가락 자국이 사라지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자신의 상위에 놓인 것뿐만 아니라 대비마마나 왕비가 먹을 상에도 죽을 떠낸 자국이 사라지지 않고 있었다.

성종은 뭔가 특이한 죽이라는 생각에 바로 숟가락을 들어 연 노랑색의 죽을 한 숟가락 떴다.

“이건 두부 죽인 것이냐?”

숟가락으로 뜬 질감이 콩으로 만든 연두부와 같았다.

그래서 두부로 죽을 끓인 것인가 싶어 입에 천천히 죽을 넣었다.

하지만, 죽은 생각하고 있던 두부의 맛이 아니었다.

생강의 향긋한 향이 먼저 입안을 채웠고, 이후 담백하고 부드러운 식감이 느껴지며 단맛이 느껴졌다.

‘아, 이건 설탕의 맛이구나. 이렇게 설탕을 잘 쓰는 것을 보면 역시 전 제조가 만든 것이 확실하구나.’

성종은 설탕의 단맛으로 전 제조가 돌아왔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단맛을 느끼는 사이 입안에 들어왔던 죽은 녹은 것처럼 사라지고 없었다.

다시 한 숟가락을 떠먹으니 생강의 강한 향이 줄어들었고, 대신에 타락죽을 먹는 것 같은 우유의 고소한 맛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부드러운 식감을 느끼며 먹다 보니 정말 입 안에서 녹듯이 음식이 사라지는 것 같았다.

이제 대왕대비가 된 정희왕후도 따뜻한 생유죽을 한입 먹고는 그 부드러움과 고소함, 생강의 향기와 단맛에 감탄했다.

“주상. 이것은 도대체 무슨 죽입니까? 아니, 이게 죽이긴 한 겁니까? 이리 부드럽고 맛있는 죽이라니.”

제(祭) 앞을 벗어나 성종과 같이 따뜻한 푸딩을 먹은 이들은 이제까지 겪어보지 못한 부드러운 식감과 고소하며 달곰한 맛에 감탄했다.

“대왕대비마마. 전원종 제조가 만든 것으로 이름은 생유죽이라고 하옵니다. 그리고, 따뜻한 것을 다 드셨다면 이것을 드시라고 하는데, 차가운 생유죽입니다.”

“차가운 죽? 식은 죽 먹기라는 말이냐?”

*

[작가의 말]

사실, 아시아에서만 푸딩 디저트를 격조 있게 보고 있고, 외국에서는 디저트로 카라멜 푸딩을 즐겨 먹지는 않습니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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