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2. 소년 왕.
한명회는 이날 따라 꿈자리가 뒤숭숭하여 아침 일찍 일어나 품에 들어있는 따끈한 윗방 아기마저 돌려보내곤 앉아있었다.
그때 사랑채 밖에서 급하게 뛰어오는 소리가 들리자 한명회는 급히 의관을 정제했다.
“대감마님. 궐에서 사람이 왔사온데 아주 급한 일이라고 하옵니다.”
한명회는 방 밖으로 나오지 않고, 궐에서 온 이를 들였는데, 환관은 급하게 뛰어와 땀을 흘렸음에도 그의 입술은 겁에 질린 듯 시퍼레 있었다.
“전하께옵서 훙서(薨逝 죽음을 높이 이르는 말)하시어...”
“되었다. 오늘 꿈자리가 사나웠느니라. 춘만이 너는 지금 당장 잘산군께 가서 급한 일이라고 아뢰고, 궁으로 모시고 오거라. 잘산군께서 왜 그러냐고 물어보시더라도 답을 하지 말고 궁으로 가시면 아시게 될 것이라고 촌각을 다투는 일이라고 하거라.”
“네.”
한명회는 심복이자 청지기인 춘만을 잘산군에게 보낸 후 내시를 따라 궁으로 움직였다.
“자미당이 아니라 어디로 가시는 것입니까요?”
궁으로 들어온 한명회는 예종이 훙서한 자미당으로 가지 않고, 여인들이 머무는 중궁전으로 향했다.
그리고, 왕대비인 정희왕후의 처소에 이르자 내시를 들여보내었다.
잠시간 소란이 있었지만, 한명회가 처소 안으로 들어가니 정희왕후가 급히 옷을 입고 앉아 있었다.
“무슨 분란이기에 이리 이른 시간에 오시는 거요?”
“왕대비 마마 주상께서 훙서 하셨었기에 앞으로 어찌해야 할지 이야기를 드리러 왔사옵니다.”
왕대비 정희왕후는 갑작스러운 예종의 훙서 소식에 충격을 받았으나, 세조의 계유정난을 뒤에서 도왔을 정도로 강단이 있는 여성이었기에 금세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그럼, 어찌 이리 와 있는가? 사정전으로 가지 않고?”
“왕대비 마마와 훗날을 이야기하기 위해서이옵니다. 2년 전 5월에는 길주 지방의 호족이자 회령 절도사를 지낸 이시애가 함길도(함경도)에서 난을 일으켜 팔도가 혼란스러웠었습니다. 그리고, 작년에는 대왕(세조)이 훙서하시고, 주상이 보위에 올랐었습니다. 그리고, 채 2년이 되지 않아 다시 이런 일이 생겼사옵니다.”
정희왕후는 똑똑한 여인이었기에 한명회가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지 알 것 같았다.
“그래서, 상당 부원군은 어찌했으면 하는 것이오?”
“종법에 따르면 마땅히 주상의 장자인 제안대군이 전하의 뒤를 이어야 하나 제안대군의 연치가 이제 네 살이 옵니다. 근 몇 년 동안 혼란한 상황을 정리하고 오랜 시간 다스릴 수 있는 분이 보위에 오르셔야 하지 않겠사옵니까?”
한명회의 말은 문종에서 단종으로 이어진 장자제의 원칙이 유교가 원하는 장자제의 종실 법이었으나, 그전에 있었던 태종과 세종의 예도 있었기에 종실 법에 따른 장자 상속을 따르지 않겠다고 하는 말이었다.
정희왕후는 궁극적으로 한명회가 자신에게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의 눈을 통해 알 것 같았다.
종법을 지켜 제안대군을 보위에 올린다면, 자신의 남편이었던 세조가 했던 것처럼 피를 부르게 되리라는 것을 에둘러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었다.
태종과 세조.
그 두 왕은 자신보다 약하거나 어린 이가 왕이 되었을 때 그것을 힘으로 빼앗았다.
그리고 거기에는 많은 피가 흘렀었다.
제안 대군을 종법에 따라 왕위에 올리게 되면 그때와 같이 피가 흐르게 될 것이라고, 그 피를 흘리게 놔둘 것이냐고 한명회는 물어보는 것이었다.
“그럼, 상당 부원군은 누가 이 상황을 정리하고 오랜 시간 나라를 다스릴 수 있다고 보는 것이오?”
정희왕후는 예종의 형이자 일찍 죽은 의경세자의 장자 월산대군을 떠올렸다.
“그야 당연히 상황을 정리하고, 오랜 기간 나라를 안정적으로 다스릴 분은 왕대비 마마이시지요.”
“그게 무슨 말이오? 당나라의 측천무후처럼 되라는 말이오?”
“아니옵니다. 왕대비께서 대왕 대비마마가 되시어 어리신 전하를 수렴청정(垂簾聽政)하시게 될 것이니, 혼란한 상황을 정리하고, 오랜 시간 나라를 다스릴 사람은 왕대비 마마이실 겁니다. 안 그렇습니까?”
정희왕후는 한명회의 이런 올려주는 말에 기분이 좋아지려 했으나, 자신에게 수렴청정을 맡기겠다고 먼저 와서 이리 이야기하는 한명회의 꿍꿍이가 궁금했다.
“그럼 누구를 보위에 올리란 말이오?”
“종법에 따른 제안대군은 너무 어리고, 연치가 있는 월산대군은 몸이 약하옵니다. 그러니 잘산군이 어떠할는지요.”
국구(國舅 왕의 장인)로서 권력을 잡겠다는 의도가 노골적으로 담겨있는 말이었지만, 정희왕후는 그런 한명회의 말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종법을 따라 제안대군이나 장자인 월산대군을 보위에 올리면 잘산군의 장인인 한명회에 의해 피가 흐를 수도 있었다.
그런 피를 흘리지 않게 해달라는 말을 하는 한명회를 정희왕후는 따를 수밖에 없었다.
지아비인 세조로 인해 많은 피가 흘렀고, 많은 이들이 슬픔에 피눈물을 흘린 것을 알고 있었기에 법도에 맞지 않더라도 그의 말을 따라야 했다.
잘산군이 보위에 오르면 한명회가 있는 한 조선은 태평성대일 것이었다.
“알겠소. 그럼 도승지와 뒷일을 맡길 원상(阮相 국왕이 정상적인 국정 수행이 어려울 때 재상들로 구성된 임시로 국정을 의논하던 관직)들을 부르도록 하겠소.”
***
한명회가 예종이 졸한 자미당에 도착하자 얼마 후 죽은 예종의 시신을 사정전으로 옮기었다.
그러곤 법도에 따라 붉은 도끼 무늬가 새겨진 병풍을 세웠다.
이미 죽은 왕이나 죽기 직전의 왕을 사정전으로 옮기는 이유는 후궁의 처소에서 죽었을 경우, 상스러운 죽음이었다고 알려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이었고, 후궁에 의한 유언의 날조를 경계하기 위함이었다.
붉은색 도끼 무늬가 세워지는 이유도 피가 묻은 것같이 붉은 도끼날이 거짓을 말하는 자를 벌한다는 의미였다.
그리고 내의원의 의원이 와서 예종의 입과 코 사이에 햇솜을 올려 숨결에 따라 솜이 움직이는지를 확인했다.
이러한 절차를 촉광례(觸纊禮)라고 하는데, 솜이 움직이지 않는 것을 의원이 확인한 후에야 왕의 혼이 육신에서 빠져나가 훙서(薨逝)한 것으로 곡소리를 내는 것이었다.
상위복! 상위복! 상위복!
상선 안중경이 평상시 예종이 입던 웃옷을 들고 지붕 위로 올라가 옷을 흔들며 ‘상위복(上位復)’이라고 세 번 외쳤는데, 육신을 떠나간 혼이 다시 올 수 있으면 돌아오라고 초혼의식을 행하는 것이었다.
상선 안중경은 눈물을 흘리며 상위복을 크게 외쳤고, 예종의 웃옷을 지붕 아래로 던졌다. 그러자 밑에 대기하던 내시가 웃옷을 받아 들고 사정전 안으로 들어가 예종의 몸 위로 웃옷을 이불처럼 덮었다.
웃옷처럼 떠나간 영혼이 돌아와 다시 몸으로 들어가길 염원하는 기원행위였다.
그리고, 이렇게 부른 영혼이 명계에서 돌아올 수도 있기에 5일 동안은 그대로 자리에 눕혀두었는데, 이 기간에는 왕이 죽은 것이 아닌 잠을 자는 상태로 간주 되었다.
그래서, 이 잠이 든 5일 동안 후계문제가 정리되는 것이 기본이었는데, 정희왕후는 장례를 준비하는 국장도감(장례의 제도운영 담당), 빈전도감(왕이 누워있는 빈전의 관리 담당), 산릉도감(왕이 묻힐 왕릉을 담당)을 설치하라 이르고, 원상들을 불러 모았다.
고령군 신숙주, 상당군 한명회, 능성군 구치관, 영성군 최항, 창녕군 조석문, 영의정 홍윤성, 좌의정 윤자운, 우의정 김국광이 원상으로 사정전 문 밖에 모였다.
이 군(君)이란 칭호는 공신들에게 붙여지는 호칭인데, 결국, 계유정난에 공을 세운 훈구파의 권신들이 원상으로 그대로 선정된 것이었다.
***
“왕대비 마마 전하께서 갑작스레 훙서 하신 지라 유교(遺敎 유언)를 남기시지 못하셨습니다. 해서 왕대비 마마께서 보위에 오를 후세를 정해주시옵소서.”
신숙주는 원상들과 마주 앉은 정희왕후를 보며 물었다.
“황(晄)이 유교를 남기지 않았다고는 하지만, 내게 평소하던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아들(제안대군)은 어리고 또한 풍질(신경에 이상이 생겨 나타나는 온갖 병의 총칭)을 앓고 있으니 후사를 감당해 낼 수가 없다고요.”
“허면...”
신숙주는 평소 후사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는 정희왕후의 말에 놀랐다. 자기 아들에게 후사를 물려주지 않으려 했다는 말은 충격적이었기 때문이었다.
“선부(세조)의 적자가 본인과 세상을 일찍 떠난 형인 장(暲 의경세자)이 있으니, 형의 아들들에게 후사를 맡겨야겠다고 했습니다. 다만, 월산군 이정은 병이 많고 기질이 허약하여 아니 되고, 그 아우 잘산군 이혈은 그 기개와 도량이 숙성하고 우애하며 학문 또한 좋아하니 잘산군 이혈에게 후사를 맡기라고 했습니다.”
“아아!!”
정희왕후의 말에 원상들은 고개를 들어 한명회를 보았는데, 한명회가 가만히 있자, 다들 정희왕후의 말에 예종이 남긴 유교를 따라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신숙주는 돌아가는 것을 보니 한명회가 정희왕후와 이미 입을 맞췄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이런 유언도 둘이 만든 것으로 생각했다.
그 어느 아비가 자기 아들에게 물려주지 않고, 조카에게 종사를 물려주겠는가.
“허면, 속히 사람을 보내어 잘산군을 맞이하도록 하겠습니다.”
“이미 잘산군이 대궐 안에 도착했다고 아뢰어 왔으니 그대들이 잘산군을 맞이해주시면 되오.”
방금 막 후사가 정해졌는데, 잘산군은 이미 궐에 도착해 있다고 하니 원상들은 한명회와 정희왕후가 이미 모든 것을 정해두었고, 자신들은 그저 거수기 역할만 하면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거수기가 되었지만, 잘산군을 맞이하기 위해 사정전을 나섰다.
“근신 중인 구성군 이준이 문제이옵니다. 종친회에서 장자인 월산대군이 아닌 잘산군 전하를 보위에 올리는 것을 문제 삼을수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즉위식을 열 것이네.”
“오늘 말입니까?”
신숙주는 아무리 급해도 혼백이 돌아오는 5일을 기다리지 못하는 건가 싶었지만, 아직 군권은 구성군 이준을 따르는 이들이 잡고 있었기에 한명회의 말처럼 속전속결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되었다.
“그럼 준비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번갯불에 콩 볶아 먹듯이 선왕이 죽은 바로 그날 즉위식이 열리게 되었고, 이 소식을 그제야 들은 문무백관들은 예법의 부당함을 알았지만, 나서서 꾸짖는 자가 없었다.
그들도 장자 우선 원칙으로 제안 대군이나 월산대군이 즉위하게 되면 잘산군의 장인인 한명회에 의해 피 바람이 불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피바람이 불어닥칠 바에는 국정을 안정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잘산군이 보위에 올라 한명회의 그늘에서 평온하길 원했다.
그렇게 조선의 9대 왕 성종은 모두의 축하를 받으며 왕위에 올랐다.
***
죽은 예종의 몸을 쌀뜨물로 씻기고 9벌의 옷을 입히는 습(襲)을 행할 때 옥체가 변색 된 것을 보았다는 말이 돌았는데, 한겨울이었고 졸한지 이틀밖에 안 되었는데 옥체의 색이 변했으니 독살이라는 말이 떠돌았다.
하지만, 이제 조선에 도착하여 이런 이야기를 들은 원종은 독살이 아니라 패혈증이라고 생각했다.
패혈증의 주요 증상 중 하나가 사람의 세포가 세균에 점령당해 세포조직에 혈액이 돌지 않아 피부가 괴사하며 썩는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사망 후 세균이 온몸으로 번져 몸 색이 변한 것으로 생각했다.
원종은 신숙주에게 다녀온 이야기도 해야 했고, 나의 든든한 스폰서가 되어줘야 할 성종에게 인사도 해야 했기에 옷을 갈아입고 궁궐로 들어갔다.
예종이 누워있는 사정전 앞에서 곡을 했고, 시간이 지나 나를 찾는다는 나인을 따라 신숙주와 한명회를 만날 수 있었다.
“듣기로 중국 땅으로 가서 장사를 했다고?”
“네 상당군 어른. 눈이 그치고, 봄과 함께 오는 보릿고개를 쉬이 넘기고자 콩과 잡곡 등을 천여 석을 들고 왔나이다.”
“곡식을 들고 왔다? 후추나 설탕이 아니고?”
“네. 배를 타고 다녀오면 보릿고개가 한참일 때라고 생각하였사옵니다. 백성들은 배를 곯아가는데, 어찌 맛을 따져 설탕과 후추를 가져와 이득을 남기겠나이까? 이문을 보지 않더라도 천 석의 곡식이 아사(餓死)하는 백성들을 살리게 되니 그것이야말로 가장 큰 이문이라 생각이 되옵니다.”
“후후. 방금의 그 말이 네 불법을 감쇄시켜주었다.”
한명회는 신숙주에게 원종이 해금령을 어기고 밀무역을 하러 갔다고 이야길 들었었다.
그래서 신숙주를 믿고 오만방자함이 늘었구나 싶어 크게 꾸중을 하려 했었다.
하지만, 사사로이 이익을 얻지 않고, 백성들을 위해 곡식을 가져왔다는 말을 듣곤,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네가 가져온 천 석의 곡식은 보릿고개를 힘겹게 넘기는 백성들에게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니 이제는 주상전하의 배고픔을 해결해야 할 것이다.”
“네? 잘산군, 아니 주상전하께서 배가 고프시다니요?”
원종은 이제 왕이 된 잘산군이 배고파한다는 게 이해가 가지 않았다.
“며칠 동안 죽만 드셨는데, 이제 그 죽이 질려 죽을 드시지 못하고 계시네. 상중이라 원래 드시는 음식을 대신하여 흰 쌀죽만을 올려드렸는데, 타락죽(駝酪粥)만 조금 드시고 곡기를 끊으셨다.”
한명회의 말을 듣고 보니 세종대왕이 상중에도 고기를 먹을 수 있게 해라는 유언을 남긴 태종 이방원이 떠올랐다.
상중에는 고기나 양념이 강한 음식을 먹지 않는 것이 효라 여겼기에 성종도 죽만 먹다 질려 배를 곯고 있는 것 같았다.
“마침 자네가 돌아왔으니 전하의 입맛을 살릴 수 있게 맛있는 요리를 해주게나.”
상중에 흰색의 죽만 먹을 수 있고, 고기나 강한 양념이 들어가지 않은 것으로 성종의 입맛을 살려내야 했는데, 과연 죽으로 그게 가능할까 싶었다.
*
[작가의 말]
사실. 구성군 이준이 귀양 간것은 성종이 즉위한 이후입니다.
제 글에서는 근신을 당해 집 안에 있었던 것으로 설정을 잡았습니다.
실제로 한명회와 정희대왕대비가 성종을 하루 만에 즉위시킨 이유가 구성군 이준을 중심으로 한 종친 세력이 일어나 제안대군이나 월산대군을 즉위시켜야 한다고 나서지 못하게 전례 없이 훙서한 그날 바로 즉위를 시켰습니다.
한명회는 어떻게든 왕의 장인이 되어야 했으니깐요.
그리고, 예종이 독살이냐 아니냐 하는 부분은 알 수가 없습니다.
그래도 족질은 실록에 남아있기에 저 만의 상상으로 대청의 가시에 찔려 패혈증으로 예종이 죽고 성종이 왕위에 올랐다고 생각해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