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1. 두 명의 왕.
“네가 본 것이 확실한 것이냐?”
“네, 전하. 분명 분경(분추경리의 준말)하는 이들이 사사로이 드나들고 있었으며 실제 홍문관 박사직과 호조 부사정의 직이 제수된 이가 있었습니다. 더불어 심부름 나왔던 심복이나 종을 잡아 자백도 받아 두었습니다.”
예종은 선전관 박한일이 올리는 장계를 읽어보고 한쪽에 따로 챙겨 두었다. 훗날 대신들을 압박할 때 비장의 한수로 쓸 생각이었다.
하지만, 다음 날 조회에서 고령군 신숙주와 우의정 김질을 비롯하여 구성군 이준, 호조판서 박중선, 이조판서 성임등의 공신과 종친들이 사사로이 분경했던 것의 죄를 청해왔다.
“전하. 전조에서부터 관습적으로 내려온 분경을 혁파하려 했으나, 사람의 인정과 은원을 바로 끊어낼 수 없었사옵니다. 이에 어쩔 수 없이 혈육의 정으로 분경하여 자리를 만들어 줄 수밖에 없었나이다. 전하께서 내리신 분경 금지의 명을 지키지 못했으니 벌을 내려주시옵소서.”
집안의 종이나 심복들이 선전관에게 붙잡혀 자백한 것을 알았기에 큰 벌을 피하고자 단체로 죄를 청하며 사함 받으려고 먼저 나선 것이었다.
이러한 집단행동을 예종은 예상하지 못했는데, 훈구파의 거두인 신숙주와 신진세력의 중심이자 근신 중인 구성군 이준이 모두 같이 죄를 청해오니 죄를 다스릴 수 없었다.
관직을 사고파는 분추경리(奔趨競利)를 어긴 것을 훗날 압박할 패로 들고 있고 싶었으나, 이리되어 버리니 예종은 분추경리의 패를 버릴 수밖에 없었다.
마음 같아서는 사사로이 관직을 사고파는 이들을 혁파할 수 좋은 기회라고 여겨졌지만, 초장에 너무 거물들이 걸려버렸고, 계파를 떠나 같이 움직일 줄을 몰랐던 것이었다.
‘내 실수였구나. 분경을 없애고자 족주(族誅 멸문의 다른 말)시키겠다고 하고, 당사자를 극형으로 다스리겠다고 한 형벌이 두 세력을 연합할 수 있게 만들어 주었구나.’
애초 처음부터 족주가 아니라 귀양보낸다고 했었다면 정치적 부담이 떠안더라도 여기 모인 이들을 모두 귀양 보내 힘의 균형추를 자신에게 가져올 수 있었을 터였다.
하지만, 초장에 기세를 잡기 위해 가혹한 형벌을 내세운 것이 독이 되어 돌아온 것이었다.
그리고, 자신이 가장 부담스러워하는 한명회가 분경 사건에 포함되지 않은 것이 아쉬웠다.
“다들 일어나시오. 전조부터 이어진 분경의 폐단을 이제 다 알았으니 앞으로는 분경을 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겠소. 그리고, 이러한 분추경리의 어명을 내렸음에도 미리 경고하고 단속했어야 할 사헌부에선 이러한 것들을 알아채지 못했다는 것이 크오. 해서 사헌부에 그 죄를 묻겠소.”
왕과 신하들 간의 힘 싸움에 가만히 있던 사헌부 지평 최경지 등이 터져나갔다. 의금부에 최경지가 가두어지는 것으로 분추경리의 사건은 마무리가 되었다.
이런 일이 있었으면 당연히 대신들은 몸을 사려야 하지만, 두 파벌이 같이 해 먹는다면 예종도 어쩔 수 없이 죄를 묻지 않는다는 것을 학습하게 되었다.
그래서 서로 눈치를 보며 분경을 계속할 수 있었다.
***
“하하하. 주상께서 경험이 없기에 이번에 이렇게 넘어간 것이네. 만약, 주상께서 연륜이 있었다면 고령군 자네도 저기 아래 해남이나 탐라의 골방으로 귀양 갔을 거네.”
한명회는 일이 재미있게 풀리자 한껏 기분이 좋았다.
그리고, 제대로 일 처리를 하지 못한 예종의 기분을 맞춰주고, 고개를 숙이고 있다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해 몸을 움직였다.
“상당 부원군(한명회)의 사직서는 허하지 않겠습니다. 아직 부족한 저의 옆에서 도와주십시오.”
“전하께서는 저를 남원 부원군(황희)처럼 두시고 싶으신 겁니까?”
“하하하. 그렇게 장수해 주신다면 저는 좋습니다.”
“허나, 소신은 남원 부원군처럼 재주가 없사옵니다. 전하의 옆에서 전하의 눈만 가리게 될 뿐이니 사직을 윤허해 주시옵소서.”
한명회는 분추경리의 사건이나 경저인의 일에 대한 것이 결국, 자신을 목표로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사직서를 내고 고개를 숙이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었다.
하지만 예종의 입장에서는 그를 내치면 안 되는 상황이었다.
어떻게든 아버지의 유산이나 다름없는 훈구파를 등에 업고, 신하들이 가진 힘을 빼앗아 자신의 힘으로 만들어야 했다.
그런 힘의 이동, 권력의 무게 중심이 자신에게 옮겨 왔다는 것을 다른 이들에게 보여 주기 위해서라도 한명회는 궐에 그대로 남아 있어야 했다.
궐에서 시들어가는 노류장화처럼 자신의 시대가 왔다는 것을 한명회의 구부러진 모습으로 보여 주어야 했다.
“상당 부원군이 제 옆에 있어 주기만 하셔도 제가 힘이 날 것 같습니다. 그러니 언제까지나 제 옆에 있어 주십시오.”
한때는 장인이기도 했기에 예종은 옆에 있어 달라고 사직서를 받지 않았다.
“허허허. 그렇다면 부족한 소신이 앞으로 더 노력하도록 하겠습니다.”
한명회 또한 이러한 예종의 마음을 알기에 고개를 숙이며 물러 나왔고, 고래 싸움에 새우등이 터져 의금부에 가두어졌던 사헌부 지평 최경지의 사함을 받아 내었다.
그리고 가을이 되어 각지에서 공납 물품이 한양으로 올라오기 시작하자, 대신들은 어찌해야 할지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예종의 명으로 대신들은 경저인을 두지 못 하게 했지만, 이미 분추경리의 사건을 겪어본 대신들은 예종의 명을 한 귀로 듣고 흘려버리고 말았다.
설령, 선전관에게 집안의 경저인이 잡히더라도 두 파벌이 뭉쳐 다시 죄를 청하게 되면 그저 유야무야(有耶無耶) 넘어가리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고래 싸움에 새우등이 한번 터져봤던 사헌부 지평 최경지는 다시 의금부에 끌려가기 싫어 암행 감찰을 했고, 대신들이 부리던 경저인들을 잡아 사헌부에 가두기 시작했다.
대신들은 사헌부에서는 경저인들을 잡아들이자, 이를 사해 줄 것을 요청하고, 죄를 빌기 위해 두 파벌이 다시 뭉쳤다.
“전하. 경저인으로 일어나는 폐단만을 보시고 경저인을 금하게 하셨으나, 이는 동전의 한 면만을 보시고 내린 판단이시옵니다. 공납 물품을 제때 납품하지 못할 경우 생기는 불이익이 크기에 지방민들은 그 불이익을 받지 않기 위해 경저인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옵니다.”
“맞사옵니다. 만약 경저인이 없다면 지방에서 공납이 도착하지 않아 벌을 내려야 하는 일이 몇 갑절이나 늘어나게 될 것이옵니다.”
“그래서. 경들은 지금 내 명을 어기고 경저인들을 쓴 것이 올바르다고 이야기하는 것이오?”
“하오나, 그런 경저인이 사라지게 되면 더 큰 문제가 생길 수도 있사옵니다.”
“내가 모든 경저인을 없애라고 하였소? 대신들이 하는 경저인을 금한 것이지 않소? 내 말이 틀렸소? 사헌부에서도 양인이 경저인으로 나서 대신 공납품을 대납하는 것은 단속하지 않았소.”
“그것은 아니오나. 한 폐단만을 보시고...”
“그만하시오. 그대들의 말처럼 경저인은 공납 물품을 받치는데 반드시 필요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하오. 하지만, 거기에 대신들의 아랫사람이 경저인으로 있다는 그것이 문제인 것이오. 그리고, 오늘 다들 온 것은 죄를 사함 받으려고 온 것이오? 아니면 내가 내린 어명을 거두어 달라고 온 것이오?”
분추경리 때처럼 죄를 청하러 온 것이라는 생각에 대신들은 고개를 숙였다.
“그대들의 말처럼 경저인은 필요하오. 허나, 납품되는 물품보다 몇 갑절씩 폭리를 취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오. 이런 폭리를 얻는 폐단을 없애기 위해 본보기로 사헌부에 잡힌 그대들의 경저인들은 참형(斬刑)에 처할 것이오. 이만 물러나시오.”
집안의 경저인들을 목 베겠다고 하자, 대신들은 깜짝 놀랐다.
돈을 굴리는 경저인의 일을 맡길 정도의 종이라면 단순한 종이 아니라, 심복이라고 봐야 했는데, 그런 심복들의 목을 자르겠다고 하니 다들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대신들은 예종에게 목숨만은 살려 달라고 간청했으나, 이미 경저인을 두는 자는 능지처참하겠다고 명을 내렸으니 물릴 수 없다며 경저인 11명을 참할 것이라고 했다.
결국, 대신들은 한명회의 집으로 몰려둘 수밖에 없었다.
***
“허허. 나라고 무슨 용빼는 재주가 있나. 주상이 뭘 하라고 하면 따라야 할 것이오. 지금은 그저 전하께서 내린 명을 따를 수밖에 없소이다.”
자신의 집으로 대신들이 모였지만, 한명회는 자기도 어쩔 수 없다며 모인 대신들을 다들 돌려보냈다.
“대신들의 불만이 저리 많은데, 그냥 있으시려고 하시는 겁니까?”
“가만히 있어야지. 아마, 내가 저들에게 뭐라고 말만 했어도 내일 의금부에서 사람이 나왔을 거네. 전하께서는 선전관을 아주 잘 쓰시는 분이야.”
한명회는 예종의 선전관들이 두렵다며 너스레를 떨었지만, 무서워하는 표정은 아니었다.
그리고 한명회는 다시 한번 사직서를 들고 예종을 찾아갔다.
“아니 되오. 부원군께서는 내 옆에 있어 주시오.”
“허나. 제가 계속 궐에 있다 보면 어제처럼 대신들이 소신에게 와 전하의 마음을 돌릴 수 있게 도와 달라고 매달리게 될 것이옵니다. 그런 모습이 자칫 역모를 꾀하는 것처럼 보이게 되면 아니 되지 않겠습니까?”
“하하하. 어찌 제가 그리 생각하겠습니까? 그런 걱정은 하지 마시지요.”
예종은 겉으로는 웃으며 절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라고 한명회를 달래었다.
그러면서 무슨 일이 있기만 하면 한명회를 찾아가 나서 주길 원하는 신료들에게 화가 났다.
그런 신료들의 모습을 보면 이 나라의 주인이 자신이 아니라 한명회로 보였기 때문이었다.
한명회는 역모로 몰려 죽기 싫어 이리 사직서를 들고 오는데, 실제 대소신료들은 자신을 따르지 않고, 무슨 일만 있으면 한명회를 찾아가 상의하고 청탁을 넣고 있으니, 조선의 주인이 이 씨가 아니라 한 씨인가 싶었다.
사직서를 반려하여 한명회를 돌려보냈지만, 예종은 속에서 열불이나 한겨울이었음에도 열을 식히기 위해 바람 부는 대청을 왔다 갔다 하며 열을 식혔다.
그리다 대청마루의 튀어나온 나무 가시에 발가락을 찔려 치료를 받았다.
이후로도 경저인에 대한 일로 대소신료들과 논쟁이 있었는데, 예종은 화가 날 때마다 열을 식히기 위해 찬 바람이 부는 대청을 이리저리 걸었으며 그러다 음력 1469년 11월 28일(양력 12월 31일) 아침 일어나지 못했다.
***
“상선어른 크... 큰일이 났사옵니다.”
“무슨 큰일?”
상선 안중경은 어릴 때부터 예종을 모시던 내시로 해도 뜨지 않은 이른 시간에 큰일이 났다고 자신을 깨운 환관에게 짜증을 내었다.
“전하께서... 전하께서 승하하셨습니다요. 어서 가보셔야 합니다요.”
승하하셨다는 말에 놀라 몸을 벌떡 일으킨 안중경은 냅다 내시의 뺨을 때렸다.
이제 고작 스무 살인 예종이 이리 갑자기 승하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네 이놈. 이 무슨 망발이냐!”
“아닙니다요. 정말입니다요. 주상전하께서 잠들어 계신 모습이 이상해 가까이 가서 보니 숨을 쉬지 않으셨습니다요. 흔들어 깨워도 일어나시지 않아 이리 급히 온 것입니다요.”
안중경은 그제야 진짜인가 싶어 급히 자미당으로 달려갔다.
젊은 내시의 말처럼 예종은 숨을 쉬지 않았고, 흔들어 깨워도 일어나지 않았다.
이미 입술이 파랗고, 피부의 온도도 차가워져 있어, 숨이 끊어진 지 한참이나 된 것 같았다.
이렇게 될 때까지 내시들은 무얼 했냐고 화를 내어야 했지만, 이 상황이 어이가 없어 머리가 혼란스러웠다.
“숙직한 승지와 대비마마께 아뢰기 위해 가겠습니다요.”
“그래... 아니! 아니, 잠시만 있거라.”
안중경은 머리를 굴렸다.
예종이 자는 중에 돌연히 졸한 것을 알아채지 못한 책임을 지고 자신은 물론이고 다른 이들도 참형을 당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예종의 어린 아들인 제안대군이 왕위에 오를 것인가를 생각했다.
“어제 숙진 승지가 누구더냐?”
“한계순과 정효상입니다.”
한계순은 유자광이 남이를 밀고할 때도 숙식을 섰던 승지였다.
남이의 역모와는 무게가 다른 이 일을 그에게 맡겨도 될까 고민이 되었다.
“다들 울지 말고 내 말을 듣거라. 너는 지금 상당부원군(한명회)에게 달려가거라.”
“네? 숙직을 한 승지나 대비마마가 아니굽쇼?”
“이제 우리 목을 붙이고 떼는 것은 상당 부원군의 손에 달릴 것이다. 아직 해가 떠오르지 않았으니 이 변고를 아는 이는 우리 환관밖에 없다. 모두가 살려면 상당 부원군에게 매달려야 한다. 다른 이들은 평시와 같게 움직이고, 너는 어서 상당 부원군께 가서 변고를 알리거라. 네 손에 우리의 목숨이 달린 것이다.”
*
[작가의 말]
사실 글에 예종이라고 부르는 것도 말이 안 됩니다.
예종은 사후 올리는 묘호란 이름이거든요. 하지만, 본명인 이황이라고 쓰기가 애매하기에 그냥 다들 아시는 묘호인 예종을 그대로 글에 사용합니다.
그리고, 이런 특산물 공납을 없애고 쌀이나 베로 납부하는 수미법은 선조 때 율곡 이이가 제창하게 됩니다.
이후 1608년에 경기도에 대동법이 시행되고 전국으로는 1708년에야 시행되었습니다.
그때까지도 화폐가 다 쓰이지 않았다는 것이 참으로 안타까울 따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