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7. 요동을 치즈 향기로. (2)
“전 목사의 음식 솜씨가 다 동생에게 배운 거라고 했는데, 그 말이 진짜요?”
무찰라타는 아직 어려 보이는 원종이 뭔가를 만들려고 하는 모습에 의구심을 가졌다. 하지만, 원길의 말을 듣곤 신뢰할 수밖에 없었다.
“이제까지 우리가 우유로 만들었던 수유와 동생이 만든 수유의 차이를 보지 않았소? 사실 같은 수유라고 말하기 부끄러울 정도로 차이가 나지 않았소.”
“하긴, 그 이름을 유치주(乳峙姝)라고 따로 불렀으니, 마치 다른 우유로 만든 다른 물건 같았소이다.”
무찰라타는 이제까지 자신들이 해온 방법보다 더 편하고 더 잘 만들어지는 결과를 보았기에 돼지고기를 넘겨주었고, 처와 며느리가 앉아 있던 화덕자리를 비켜주라고 했다.
“붓 발을 가져오거라.”
원종은 붓을 들고 다닐 때 붓대나 모가 상하지 않게 말아두는 나무 발을 들고 오게 했다.
나무 발을 깨끗이 씻어 펴고 그 위로 돼지고기를 얇게 저며 펴기 시작했다.
그러곤, 삼식이가 가지고 온 치즈도 얇게 저며 잘라 돼지고기 위에 포개어 쌓았다. 김밥 재료를 쌓듯이 포갠 돼지고기와 치즈가 4층이 되자 김밥 말듯이 고기와 치즈를 돌돌 말기 시작했다.
힘주어 나무 발을 말았기에 이후 나무 발을 떼어냈는데도 둥근 모양이 그대로 유지가 되었다.
이렇게 돼지고기 치즈말이를 쌀 동안 삼식이는 솥뚜껑을 뒤집어 돼지고기 비계를 구워 기름을 만들어내었다.
“삼식아 달걀과 곡물가루도 그릇에 준비하거라.”
삼식이는 여진족 부락의 닭장으로 가서 잠자고 있는 암탉의 품속을 뒤져 달걀을 가져와 풀었고, 나로 인해 늘 들고 다니는 메밀가루도 그릇에 담아 준비를 완료했다.
“이 고기 말린 것에 달걀 물과 메밀가루를 묻혀 구우면 되는 것이지요?”
“그래. 이제 척하면 착이구나.”
“헤헤헤. 저도 상행을 하며 밥때가 되면 제가 직접 음식을 해서 애들에게 나눠주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요리를 하게 될 수밖에 없더라고요.”
무찰라타는 삼식이의 말에 의문이 들었다. 보통 음식을 하는 일은 부인들이 하는 일인데, 전 목사는 물론이고, 그 동생과 상단의 우두머리라는 자까지 직접 음식을 해서 나뉘어 준다고 하니 왜 그래야 하는지 의문이 들었다.
“전목사. 우두머리는 앞장서 지휘를 해야 하는데, 음식을 하고 나눠주는 일을 하게 되면 위신이 깎이지 않겠소? 그것은 여인들의 일이 아니오?”
“여인들의 일이라고 하찮게 여길 수도 있겠지만, 족장이나 책임자가 음식을 만들고 나눠주는 일을 하는 것은 조직에 도움이 되는 일이외다. 특히나, 이것은 공정(公正)에 관련된 것이오.”
“공정?”
“족장의 지시대로 사냥을 나가 곰을 잡았는데, 그것을 잘못 나누어주면 어찌 되겠소? 어떤 이는 가장 비싼 웅담을 받았고, 어떤 이는 가죽을, 어떤 이는 가장 맛있다는 곰 발바닥을 받았는데, 어떤 이는 가장 맛없는 곰의 곱창만 받았다면 문제가 생기지 않겠소?”
“그거야, 자신의 활약에 따라 나누는 것이겠지만, 활약을 했음에도 제대로 된 고기를 받지 못한다면 그건 우두머리에게 문제가 있는 것이오.”
“바로 그거요. 우두머리가 직접 모두에게 나눠주는 것을 공평하게 챙기겠다는 것이 바로 저 요리와 분배에 들어가 있는 것이오. 우두머리는 모두가 수긍하는 공정한 분배를 해줄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오. 그것의 첫 시작은 매 끼니 먹는 밥부터 시작이오.”
“밥부터 시작이라.”
“그렇소. 우두머리와 부하가 같은 자리에서 같은 음식을 먹고 이익도 공정하게 나눈다면 배신이 일어나지 않고, 서로를 신뢰하게 될 것이오. 그 시작이 바로 밥이오.”
“요리해서 먹이는 것이 배신과 신뢰에 관련된 것이라니...”
“우두머리가 직접 요리를 하며 자기 자식을 먹이는 마음으로 부하들을 먹인다면 그 어느 자식이 배신을 하겠소? 부모를 배신하는 이들이 몇이나 있겠소?”
“흐음.”
무찰라타는 우두머리가 요리를 하고 부하들을 자식 먹이듯이 먹인다는 말에 와닿는 게 있었다.
그러면서 즐겁게 요리하고 있는 원종과 삼식이를 보고 있으니 확실히 여진족의 주종관계와는 다른 뭔가가 느껴졌다.
그리고, 자신도 이 요리를 배워 자식들과 수하들에게 요리해서 먹여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삼식이는 원종이 말아준 돼지고기 치즈말이를 달걀 물에 적시고 메밀가루 그릇에 돌돌 굴려 메밀가루를 듬뿍 묻혔다.
그러곤, 돼지기름이 고여있는 솥뚜껑에 돼지고기 치즈말이를 넣었다.
챠라라라락~.
기름에 고기가 튀겨지는 소리가 나며 돼지고기 치즈말이의 색이 노랗게 익어가기 시작했다
“삼식아 안쪽으로 말린 고기가 익고, 치즈가 녹을 수 있게, 약간 과할 정도로 튀기듯이 구워내거라.”
빵가루도 입혔다면 맛이 더 있었겠지만, 빵가루로 만들 빵이 있을 턱이 없었다.
그저 메밀가루라도 마음대로 쓸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할 뿐이었다.
노랗고, 갈색으로 익어가며 먹음직스럽게 색이 입혀지고, 천막 집안 가득 돼지기름 향이 퍼져나가자 다들 입맛을 다시기 시작했다.
다 익은 롤 말이를 김밥 썰 듯이 원종이 썰어내니, 겹겹이 말린 고기와 그 사이에서 녹아내리는 치즈의 모습에 사람들은 홀린 것처럼 흘러내리는 치즈를 보았다.
썰린 것을 일부러 하나만 들어 올리자 치즈가 다른 조각과 헤어지기 싫은지 끈끈한 거미줄처럼 치즈가 늘어났다.
“오오! 저럴 수가!”
“분명 얇게 썰어 고기 위해 올릴 때는 딱딱한 느낌이었는데, 어찌 저리 부드럽게 늘어나는 것이지!”
“마치 꿀처럼 늘어나는구나.”
여진인들은 물론이고, 원길과 삼식이도 쭉쭉 늘어나는 치즈의 모습에 감탄했다.
“뜨거우니 식혀가면서 먹어 보십시오.”
두 개씩 롤 말이를 먹어 보라며 건네었는데, 다들 먹지는 않고, 늘어나는 치즈를 신기해하며 붙였다 떼었다 하며 늘어나는 치즈의 자태를 감상했다.
“참으로 신기하구만. 어찌 우유에서 이런 치즈라는 것이 나오는 것이지? 으음.”
무찰라타는 줄줄 흐르듯이 늘어나는 치즈에 감탄하며 롤 말이를 입에 넣었다. 돼지고기의 진한 향과 부드러운 우유의 향이 같이 입안을 휘젓자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였다.
이 맛을 좀 더 느끼고자 자연스레 눈이 감기며 맛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겹겹이 말린 돼지고기로 인해 질길 것 같았던 식감은 전혀 질기지 않았다. 얇게 저며서 기름에 튀기듯이 조리한 탓도 있겠지만, 고기들끼리 붙어 질겨질 뻔한 것을 치즈라는 녀석이 붙어 쫄깃함의 식감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쫄깃한 치즈말이를 씹으면 씹을수록 그 쫄깃함과 고기의 육즙과는 다른 고소한 풍미가 입안을 가득 채웠다.
‘아! 이대로 계속 씹고 싶구나.’
담백하고 고소한 풍미와 쫄깃한 식감에 계속 씹고 싶었지만, 음식은 자연스레 목으로 넘어갔고, 이 풍성한 맛을 계속 느끼고 싶어 얼른 하나 남은 치즈 말이를 입에 넣었다.
그러자, 다시 그 풍성한 맛이 입안을 가득 채웠고, 만족감이 들며 행복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까지 감고 있던 눈을 떠 다른 이들을 살피니 전 목사는 물론이고, 다른 이들의 얼굴도 자신처럼 행복감이 가득했다.
조금 전에 전원길 목사가 했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그래, 이런 맛있는 음식을 족장이 만들어 준다면, 배신을 할 수가 없겠구나. 이런 맛있는 음식을 한자리에서 같이 먹고 같은 맛을 공유했다는 것만으로도 가족과 같은 신뢰가 생길 수 있겠구나.
이제까지 평원의 신뢰는 처음에는 굳건한 신뢰로 시작하지만, 늘 종국에는 배신하고 원수가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 치즈라는 물건은 그 반대였다.
처음에는 그저 한 줌의 물과 같은 우유에 지나지 않았으나, 시간이 지나자 서로가 뭉쳐서 굳어지고 치즈라는 물건이 되었다.
치즈는 서로 떨어지지 않으려고 쫄깃하게 붙어 있으며 입에 들어가 먹히는데도 그 끈끈함을 가지고 헤어지지 않으려 하는 신뢰를 유지했다.
평원의 신뢰라는 것은 바로 이런 치즈와 같아야 했다.
처음 만났을 때는 그저 흐르는 우유 같은 사이라도 시간이 흘러 서로 신뢰하여 질긴 치즈가 되어야 했다.
초원의, 평원의, 아니 모든 야인(野人)에게 이런 신뢰가 있어야 했다.
그리고, 소를 키워서 정주인이 되려는 자신을 비웃던 다른 족장들에게 이 치즈의 맛을 보여주고 싶었다.
“소금물에 담그어 두었던 치즈를 꺼내야 한다고 하지 않았소이까?”
“하하하. 이 구운 것을 다 먹고 같이 작업하러 갑시다.”
여진족 족장 무찰라타는 물론이고, 다른 이들도 돼지고기 치즈말이 맛이 마음에 들었는지 치즈에 엄청 신경을 쓰기 시작했다.
다들 돼지고기 치즈말이를 맛있게 먹곤, 만들다 중단한 치즈를 만들기 시작했다.
소금물에서 뺀 치즈는 그 위, 아래로 판자를 두고 무거운 돌을 올려 물을 빼게 만들었다.
최대한 물을 뺀 이 치즈를 짧으면 보름, 길면 1년까지 통풍이 잘되는 곳에서 발효, 건조, 숙성시키면 중국은 물론이고 다른 해외에까지 들고 다니며 식량으로 쓸 수 있는 치즈가 되는 것이었다.
“치즈를 만들고 남은 이 물은 왜 안 버리는 것이오? 설마, 다른 곳에 쓸 수 있는 것이오?”
치즈 제조에 관심이 많아진 무찰라타가 치즈를 만들고 남은 유청(乳淸)을 가리켰다.
“이 유청에는 우유를 건더기와 물로 나누어 주는 성분이 아직까지 있으므로 다음 날 우유에 그대로 넣어주면 되오. 양이나 염소 새끼의 위에서 긁어 넣은 성분은 3~4번까지 재활용이 가능하오.”
“아, 다행이군. 이 치즈라는 것이 맛있긴 하지만, 만들기 위해 매일 염소나 양의 새끼를 잡아야 했다면 큰 문제가 될 뻔했소이다.”
“그렇게 3~4번 쓴 유청 물도 영양분이 많기에 절대 버리지 말고 돼지나 소에게 다시 먹이면 영양가가 높아 가축을 살찌게 할 겁니다.”
“오 정말, 우유는 버릴 것이 없구랴.”
***
게르에서 대충 잠을 자고 밤새 물을 뺀 치즈를 보니 처음 만든 치즈였음에도 잘 만들어진 것 같았다.
“이 치즈 덩어리는 바람이 잘 통하는 선반에 보관을 해주면 되는데, 사나흘에 한 번씩 돼지털로 만든 솔에 소금물을 묻혀 닦아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일주일이 지난 후에는 돼지털 솔에 들기름을 묻혀 겉에 기름칠도 해줘야 오래 보관할 수 있습니다.”
“소금물로 닦고, 기름을 칠해야 하니 일이 많구만.”
“귀찮더라도 반드시 해야 하는 일입니다. 곰팡이가 생기거나 썩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소금물로 닦고 기름을 칠해주면 이 흰색의 치즈가 점점 노르스름하게 변하며 풍미가 더 좋아지는데, 1년이 넘는 치즈의 풍미는 갓 만든 치즈와는 또 다른 맛을 안겨줄 겁니다.”
“오래될수록 깊어지는 맛이라는 거구랴. 알겠소. 소금물과 기름칠을 잘하도록 하겠소.”
“그럼, 오늘은 손바닥 크기가 아니라 사람 몸통만 한 크기의 치즈를 만들어 봅시다.”
“사람 몸통만 한? 왜 크게 만드는 것이오?”
“수율(收率: 투입 수에 대한 완성된 양품(良品)의 비율) 때문입니다. 관리를 아무리 잘한다고 해도 곰팡이가 슬거나 상할 수도 있는데, 그러면 잘못된 부분만 도려내고 재생을 할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크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렇군. 작게 만들면 재생할 방법이 없어지는 것이군.”
물론, 이 수율 문제도 있지만, 1년 동안 소금물과 기름칠을 한 치즈의 겉껍질은 딱딱해지고, 굳어 맛을 위해 먹는 치즈로서의 가치는 없어지게 되었다.
겉의 딱딱해진 껍질을 잘라내고 안의 촉촉하고 풍미 가득한 치즈 속을 먹어야 했기에 치즈는 둥글고 크게 만들수록 먹을 수 있는 부분이 많아지는 것이었다.
그날 오후 사람의 몸통만 한 큰 치즈를 4개 만들었고, 치즈를 보관하기 위한 선반을 만드는 법과 10도 내외의 온도와 통풍을 위해 산기슭에 보관소를 만드는 것도 알려주었다.
“상황을 봐야 알겠지만, 짧으면 3개월, 길면 1년 동안 치즈를 비축하도록 하십시오. 그러면 순서대로 만들어진 치즈를 북경이나 남경에 들고 가 비싸게 팔아 주겠소이다.”
조선 팔도에서 나는 물산을 모아 압록강 인근의 여진인들에게 팔고, 여진인들의 가죽과 은으로 대련과 위해의 곡식을 사서 조선으로 들고 가는 4각 무역 루트를 구상했는데, 생각지도 못한 교역품이 생겼기에 루트를 바꿔야 할 것 같았다.
여진인들이 만든 치즈를 북경에 팔아 수익을 얻는 루트도 추가해야 했다.
“그런데, 보관을 위해서는 온도와 바람을 위해 산기슭에 보관소를 만들라고 했는데, 산이 없는 곳은 어찌해야 하오?”
“저기 저 산에 만들면 되는데, 다른 곳에서도 치즈를 만들 겁니까?”
“그게 아니라 소를 먹이려면 목초지를 이동해야 해서 그렇소이다.”
그러고 보니, 낙농업으로 치즈와 버터를 만들려고 해도 소를 먹일 사료가 문제였다.
*
[작가의 말]
조선 시대 치즈와 버터를 뜻하는 수유를 그대로 쓰기에는 치즈와 버터의 구분이 안 되는 단어이기에 유치주(乳峙姝)라는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즈’ 말 자체가 한자에 없기에 차용을 못해 ‘주’로 했습니다.
버터를 만들 때는 다시 다른 비슷한 어휘의 단어를 쓰겠지만, 작중에선 친숙한 단어의 느낌 때문에 유치주와 치즈를 섞어서 쓰도록 하겠습니다요.
양해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