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2. 태극선단. (2)
“그런데 도련님. 제가 보기엔 다른 방법으로 배를 얻을 방법이 있는 것 같은데, 왜 무리하게 배를 요청해서 참군 나리의 기함까지 빌리려고 하시는 겁니까요?”
김고도개는 내가 무리해서 염호진의 기함까지 빌리려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입을 열었다.
“경상 우수영에서 개삭되어 만들어지는 배를 구매했듯이 경상 좌수영과 전라 좌, 우수영에 들려 개삭되어 남는 배를 그냥 구매하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요? 참군 나리가 같이 움직이게 되면 도련님의 본자기 사업에 지장이 있을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요?”
김고도개는 내가 본자기를 왜에 직접 가서 판매하거나 대마도에 가서 판매하겠다는 것을 알기에 밀무역을 감시하는 일도 하는 수군 장수를 데리고 있으면 안 되는 거 아니냐고 묻는 것이었다.
“조선 밖으로 나가는 것은 아직은 시기상조다. 왜나 다른 외국으로 나가는 것은 내년 하반기에나 가능할 것이다. 먼 바다로 나가는 것에는 준비해야 할 것이 많다. 그때까지는 근해 무역만 할 것이기에 참군이 있어도 상관이 없다. 아니, 오히려 참군이 같이 움직여 주기에 더 좋은 일만 있을 것이다.”
김고도개에게 답을 알려주면서도 나도 깨닫는 게 있었다.
오래된 누전선을 병조선으로 교체하는 작업은 경상 우수영뿐만 아니라 다른 수영에서도 진행되고 있는 일이었다.
그 말은 망실로 처리해서 없어질 배를 개삭해서 새로운 배로 뽑아낼 수 있다는 말이었다.
다른 수영을 돌면서 이처럼 개삭하여 나오는 배를 구매하겠다고 하면 수사들도 좋다고 하면서 팔 것 같았다.
그렇게 배를 모으다 보면 원양항해를 할 수 있는 선단을 꾸릴 수 있을 것 같았다.
조운선으로 곡식을 옮기고 다른 수영에도 들려 기름칠을 미리 하며 안면을 익혀야 할 것 같았다.
***
“드디어 동래다! 저기 춘봉 깃발이 꽂혀 있는 곳으로 배를 대면 된다.”
광안리 해변으로 흐르는 남천이 있었기에 남천동이라 불렸는데, 이 근처에 상단지점을 만든 이득을 이제야 보는 것 같았다.
누전선 세 척에 방패선 두 척까지 다섯 척의 배에서 거제도와 인근의 작은 섬에서 사들인 말린 건어물이 내려졌다.
배가 왔다는 소식에 뛰어나온 희재와 상단 사람들을 보니 부산 지점에는 별일 없었던 것 같았다.
“희재야 이 작은 배는 방패선이라고 하는데, 강산 1호와 강산 2호라고 이름을 붙였다. 여기 선원 4명과 건어물을 싣고 낙동강을 거슬러 문경까지 한번 가보거라.”
“문경까지요? 물을 거슬러 올라가는 게 되긴 되는 겁니까요?”
“낙동강은 수심이 깊고 유량이 많아 물살이 강하지는 않다. 바람의 힘만으로도 충분히 상류 지역까지 올라갈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내려올 때는 더 빨리 내려올 수 있을 것이고. 희재 네가 같이 배를 타고 거슬러 올라가 보고, 내려도 와보며 날짜를 계산해 보아라.”
“문경으로 갈 때는 건어물을 싣고 가고, 문경에서는 도자기나 다른 것을 두고 오면 수익을 낼 수 있을 것 같군요. 송상을 통하거나 아니면 왜인들과 개별로 해서 문경의 도자기들을 판매할 수 방법을 찾아보겠습니다요.”
“그래. 강산 1, 2호로 낙동강을 오가는 교역을 해보거라. 그 물길과 이문이 남는 물건들만 파악해도 왜관의 아침 시장에 기대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넵. 그럼, 저 큰 배 세척은 무엇을 실어 가시는 겁니까요?”
“우선은 섬들에 필요한 식량이 우선이고, 실과 바늘 면직물 같은 생활물건들이 될 것이다.”
“크게 돈이 안 되는 것들이로군요. 배가 유지나 될까 걱정이 됩니다.”
“네 말마따나 섬에서 나는 건어물을 사고파는 것은 큰돈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지금은 선원들의 수습 기간이니 어쩔 수가 없다. 선원 간 손발이 맞게 되면 조운창으로 가는 곡식을 실어 옮기는 것으로 이득을 볼 것이다.”
“아하. 그럼, 송상에게 미리 이야길 해두겠습니다. 송상도 배는 가지고 있는데, 수송에 힘들어 하더라고요.”
“그래. 네가 미리 송상이나 다른 상인들에게 조운창 일을 받는다고 알리고 운송일을 한다고 소문을 내거라. 삼식이는 어디쯤 왔다고 하더냐?”
“아마도, 이제 막 문경을 지나 내려오고 있을 것입니다요.”
“그래? 그러면, 금산이 너는 나와 몇몇을 모아 삼식이를 마중 나가자 구나. 이전의 습격 일도 있었고, 본자기가 돈이 된다는 걸 이제 다들 아니 삼식이의 상단을 노리는 자들이 늘었을 수도 있다.”
“네 장정들로 준비하겠습니다요.”
희재는 방패선을 타고 낙동강을 거슬러 올라가기 시작했고, 금산이와 나는 육로로 삼식이를 마중하기 위해 부산 지점을 나섰다.
***
“그게 정말이냐? 수군에서 쓰던 누전선이 두 척에 방패선도 두 척이나 있다고?”
“네 대방 어르신. 우수영의 누전선과 같이 들어왔는데, 몇 번을 비교해봐도 분명 누전선이었습니다요. 똑같았습니다요.”
“아니 시발. 가지고 싶어도 못 가지는 누전선을 어떻게 춘봉상단 놈들은 두 척이나 구한 것이지. 군선을 그리 쉽게 가지는 게 말이 되는 것이냐?”
동래 내상 박영철은 자신이 가지고 싶어했지만, 군선이라는 이유로 가지지 못했던 누전선이 춘봉 상단에 있다고 하자 열불이 났다.
대형 누전선에 한가득 곡식을 싣고 전라도와 황해도를 왕복하면 얼마나 큰 이익이 떨어지는지 잘 알고 있었기에 더 열불이 났다.
“아마도, 그 본자기라는 물건을 뇌물로 바치고 구한 것이 아니겠습니까요?”
“그랬겠지. 그러니 누전선을 구할 수 있었겠지. 그놈의 본자기. 써글.”
박영철은 자신과 연이 닿는 도자기 가마들에 다 연락을 해봐도 그렇게 흰색의 도자기는 구워내지 못한다는 말을 들었고, 오히려 그 본자기를 깨트려서 확인할 수 있게 본자기를 구해달라는 요청만 들었었다.
창원 고갯길에서 왜구로 분한 아랫것들이 제대로만 해줬어도 그 본자기가 다 자기 것인데 하는 생각이 들자 아랫배가 아파지는 박영철이었다.
“춘봉상단에선 그 누전선으로 조운창에 가는 곡식 운송일을 받는다고 하는데, 3천 석까지 받는다고 했답니다.”
“미친놈들. 누전선에 실을 수 있는 물량도 모르는구나 한 척에 1,500석을 실을 생각을 하다니. 500석이나 넘쳐 실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구나.”
“그만큼 조운이나 배에 대해 아는 이들이 없다는 이야기 아니겠습니까.”
“그렇겠지. 전에 보았을 때도 다들 어린놈들이고 제대로 상계에서 잔뼈가 굵은 이가 없어 보였어. 오올치! 그래! 너는 가서 우리가 한성 광흥창(廣興倉)까지 곡식을 보낸다고 운송을 의뢰하거라.”
“네? 광흥창에 보내는 것은 저희 선단으로도 가능한 일인데, 굳이 춘봉상단에...”
“이놈아! 진짜 일을 맡긴다는 것이 아니다. 형만이 너는 일전에 사두었던 묵은 좁쌀을...”
***
“도련님! 기뻐해 주십시오. 내상에서 한양 광흥창까지 좁쌀 800석을 옮겨 달라는 운송일이 들어와서 선적까지 마쳤습니다요.”
금산이와 삼식이를 마중하여 부산 남천동으로 오니, 울산 마을 출신인 삼정이가 기뻐하며 운송일이 들어왔다고 보고를 했다.
“내상에서? 내상의 누구에게 들어온 것이냐?”
“내상의 송만기라고 합니다. 광흥창에서 관리들의 녹봉으로 나갈 좁쌀이라고 하는데, 광흥창까지 좁쌀 싣고가는 일입니다.”
“송만기?”
내상이라고는 하지만, 내상은 동래에 기반을 둔 여러상인들의 집합체이다 보니 누구인지를 알 수가 없었다.
“관리들의 녹봉으로 나가야 하는 것이라면 빨리 가야겠구나. 삼식이가 가지고 온 본자기 10조를 태극 1호에 실어라. 이번에는 송상에게 10조만 넘기도록 해라.”
훗날 개삭되어 나오는 누전선을 쉽게 구매할 수 있게 수영의 수사들에게 기름칠을 해둬야 했는데, 본자기만한 기름칠이 없었다.
그리고, 본자기를 건네주며, 배를 만들기 위해 제재한 나무의 폐목재로 타르를 만들어 비축하는 것까지 부탁해야 했기에 뇌물을 쓸 수밖에 없었다.
“선원들은 며칠 잘 쉬었으니 내일 바로 출발할 수 있게 준비를 마치거라!”
***
“냐옹아! 어디 있느냐. 냐옹~ 냐옹~~”
방패수였던 만철이는 배의 화물담당이 되었는데, 큰소리를 꼬마 양반에게 했던 전력이 있다보니 김고도개란 상단 사람이 자신을 고깝게 여기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배에 태우는 고양이를 돌보는 것 같은 자지 구례 한 일을 떠맡게 되었는데, 이 고양이라는 놈을 돌보는 것이 말처럼 쉽지가 않았다.
곡식을 배에 실을 때 곡식 냄새를 맡고 쥐새끼가 같이 배에 오르는 경우가 있는데, 그런 쥐새끼를 잡기 위해 고양이도 꼭 같이 배에 태워야 했다.
하지만, 이 고양이란 놈은 물을 싫어하는 녀석이었기에 육지로 계속 도망치려고 했는데, 지금도 만철이의 눈을 피해 배의 창고로 숨어 버렸다.
그대로 고양이가 창고에 숨어 배에 그대로 있으면 되겠지만, 창고에 숨었다가 배에서 몰래 도망쳐 버리면 문제가 되니 만철이가 밤늦게까지 고양이를 찾는 것이었다.
“햐... 괜히 그날 열불이 나서 입을 터는 바람에 이 무슨 팔자에 없는 고양이 모시기냐고. 에혀. 이놈의 입.”
고등어껍질 같은 털가죽을 쓴 고양이를 배에서 모셔야 한다는 생각에 짜증이 났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부스럭, 촤르륵 촥촥.
창고 구석에서 뭔가를 긁는 소리에 조심스레 가니 좁쌀 가마니 사이에 고양이 놈이 뒷발로 뭔가를 차고 있었다.
“아니, 이 쌍놈이 좁쌀 위에다가 똥을 싼 거야?”
만철이 급하게 움직여 뒤처리 중인 고양이를 낚아챘는데, 고양이 놈은 왜 그러냐고 오히려 마주 째려보며 냥냥 거리며 발버둥을 쳤다.
“햐 이거 큰일이네. 관리들 녹봉으로 나갈 좁쌀이라던데, 이리 터져서 쌀이 흘러내리면 문제가 있겠는데.”
고양이의 목과 다리를 줄로 묶어 도망치지 못 하게 해두고는 솔 불을 비춰가며 짚 가마니를 손보려는데, 만철이의 손에 만져지는 좁쌀의 느낌이 뭔가 이상했다.
고양이 놈이 개처럼 다리를 들고 오줌을 싼 건가 싶을 정도로 좁쌀이 축축했다. 냄새를 맡아보니 퀴퀴함을 넘어 썩는 냄새가 풍겼다.
“햐 이 미친 고양이 새끼 죽으려고 좁쌀에 오줌을 싸?”
냄새나는 젖은 좁쌀을 그대로 두면 다른 좁쌀에도 문제가 생기기에 고양이 오줌에 젖은 좁쌀을 덜어내는데, 이게 한 되(1.8L) 가까이 덜어냈는데도 계속 좁쌀이 젖어 있었다.
“어? 이거 이러면 좆되는데.”
곡식을 한양에 있는 광흥창까지 싣고 가는데 빠르면 10여 일 늦으면 20여 일 걸리는 먼 길이었다.
그 기간 동안 젖은 좁쌀을 그대로 두면 상할 것이 눈에 뻔히 보였다.
그냥 모른 척할까. 내가 화물담당이긴 하지만, 짐을 실을 때는 육지 사람들이랑 같이 옮겼으니 내 책임이 아니잖아. 더구나 이걸 검수한 이도 육지 상단 사람이고.
괜히 이야기했다가는 고양이 관리를 잘못해서 이렇게 된 것이라고 욕은 욕대로 듣고, 기껏 선원이 된 것이 취소될지도 몰랐다.
그냥 모른 척 젖은 좁쌀을 집어넣고, 짚 가마니를 손보기만 하면 아무도 모를 터였다.
하지만, 이 좁쌀이 광흥창에서 관리들의 녹봉으로 지급된다는 이야기를 들었기에 쉽게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만철이 자신만 해도 10월에 받아야 하는 녹봉을 받지 못해 분노하지 않았던가. 더구나 겨우 받게 된 녹봉의 좁쌀이 젖어 있고 상해 있다면 그걸 받아 들었을 사람들의 실망감이나 분노가 어떨지도 생각이 되었다.
그저 모르는 척, 자신과 상관없는 척 좁쌀을 버려두고 선창을 벗어날 수가 없었다.
만철이는 한숨을 내쉬고는 묶어둔 고양이를 들고 김고도개에게 이야길 하기 위해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