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1. 태극선단. (1)
누전선에는 사람이 오를 수 있는 누옥이 있는데, 이른 아침에 그 누옥에 올랐다.
이미 참군 염호진이 누옥에 올라 있었는데, 선착장에 모여드는 수군들을 보고 있었다.
“참군께선 누전선 두 척과 방패선 두 척을 운영하는데 선원이 몇 명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전투가 아닌 조운선의 역할이라면 10명만 되어도 누전선을 움직이는 데 충분할 것입니다. 여유 있게 한다면 15명은 되어야 하고, 방패선은 혼자서도 움직일 수 있습니다.”
“그러면 최소 22명만 있어도 되는 것이군요.”
“이미 구한 어부 청년들도 있으니 오늘은 10여 명만 뽑을 것입니까?”
“그 반대입니다. 여유 있게 50명을 뽑을 생각입니다.”
“흠. 50명이나 되면 우수사가 뭐라고 할지도 모릅니다.”
“따로 뭔가를 챙겨주든지 해야겠지요.”
“헌데, 돈을 더 써가면서 선원들을 그리 모으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따로 배가 더 있는 것입니까?”
“지금은 다른 배가 없습니다. 다만, 가까운 왜는 물론이고, 저 멀리 떨어진 조왜국(爪哇國 인도네시아 자바의 왕국), 섬라곡국(暹羅斛國 태국), 안남(安南 베트남)까지도 배를 보낼 것입니다. 그렇게 먼 곳에 보내려면 선원들이 많이 필요할 것입니다.”
“단순한 조운선을 위탁받아 운영하실 생각이 아니군요. 헌데, 아무리 고령군(신숙주)이라고 해도 국법으로 금지가 되어 있을 터라 국외로 나갈 수가 없을 터인데요.”
“그것은 제가 해결할 수 있을 겁니다.”
“정말 그렇게 되어 저 멀리 나가볼 수 있게 된다면 저도 거기에 끼워 주십시오. 예전 유구에서 왔다는 도안(道安)이란 상인을 봤었는데, 기기묘묘한 동물들을 가지고 왔었습니다. 그것들이 너무 신기했기에 만져보고 싶었는데, 손도 못 대게 하더군요. 진짜 저 멀리 갈 수 있게 되면 그런 동물들을 한번 만져보고 싶습니다.”
“하하. 참군의 그 바램 내가 이루어 주겠습니다.”
참군 염호진과 이야기를 더 나누고 싶었지만, 해가 뜰 때쯤 모이라고 한 수군들이 선착장을 가득 모을 정도로 모여들었기에 시간을 미룰 수가 없었다.
누옥에서 내려오며 어떤 수군을 뽑아야 하는지를 염호진에게 물었다.
“여기에 모인 수군이라고 해도 실제 배를 움직이고 다룰 수 있는 이는 채 3할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건 아마도, 노를 젓는 격군이나 포수, 방패수 같은 싸우는 수군들이 많아서 그런 것이겠지요?”
“맞습니다. 편제가 있기에 모든 수군이 배를 움직일 수 있는 게 아닙니다.”
“그럼, 선원을 뽑을 때도 3할은 실제 배를 움직일 수 있는 이를 뽑아야 하는군요.”
“맞습니다. 저와 제 부하들은 모여든 수군들을 대부분 알고 있으니 얼마나 배를 다루는데 실력이 있는지를 알려 드릴 수 있을 것입니다.”
“저기 아는 얼굴이 하나 있는데, 저 털보는 혹시 아는 자입니까? 어깨가 벌어져 있고, 콧날이 있는 자 말입니다.”
“저자 말입니까? 만철이는 제가 알고 있습니다. 힘이 좋아 방패수로 있는데, 귀문 방패 두 개를 들고 설 수 있는 자입니다.”
어떻게 보면 인연이 있는 털보 만철이 배를 운영할 수 있는 수군이 아니라는 사실에 안타까웠다.
“만철이는 방패수 이기에 배를 움직이는 데 쓰지 못하지만, 상선이니 화물을 옮기고 하는 일에는 딱 일 겁니다.”
“그렇군요.”
그러고 보니 상선에 짐을 싣고 내리고 하는 일을 책임질 사람으로는 방패수가 딱 맞긴 했다.
무거운 방패를 들고 몇 시간이고 서 있어야 하는 방패수라면 화물을 싣고 내리는 보직에 맞는 인재였다.
“만철이와 인연이 있는 것 같으니 바로 합격시키도록 하겠습니다.”
염호진은 내가 만철이에게 관심이 있다는 걸 알자 바로 만철이를 합격자 명단에 올렸다.
참군 염호진의 도움으로 그렇게 뽑은 이가 50명이었는데, 청년 어부와 노인 다섯까지 하면 총 63명이나 되었다.
“우수사께는 어찌 말해야 합니까?”
***
“허허. 전 제조. 이건 심각한 문제요. 한 10여 명이라면야 아무 문제가 없겠지만, 50이나 상선에 쓰겠다고 데리고 간다면 수군의 배가 멈춰야 할 판이오. 수군을 그만두고 어부가 되거나 하는 것은 같은 신량역천의 신분 안에서 움직이는 것이기에 괜찮지만, 상선의 선원이 되는 것은 다른 문제요.”
우수사 원철은 곤란하다며 말을 했는데, 안된다고 딱 잘라 끊는 말은 아니었다. 뭔가 풀 수 있는 고리가 보였다.
“그럼 이렇게 생각을 해 보시지요. 수군으로 50명이 있으면 그 50명에 대한 녹봉을 줘야 할 것입니다. 헌데, 그 녹봉을 받아야 하는 이가 녹봉을 받지 않고, 제게 녹봉을 받아 가는 겁니다.”
“흐흠.”
원철도 수군들을 그렇게 내어주고 원래 있는 수군의 녹봉을 가로챌 생각을 이미 하고 있었기에 그리 새롭게 들리진 않았다.
“거기에 더해서, 제게 받는 녹봉에는 세금을 다시 걷을 수 있지요.”
하지만, 밖에서 벌어들인 돈에 다시 세금을 매길 수 있다는 말에 귀가 솔깃할 수밖에 없었다.
장부에 등록된 수군 50명에 대한 녹봉을 착복할 수 있고, 그 들이 밖에 서 벌어들인 돈에 다시 세금까지 걷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자 마음이 기울었다.
하지만, 더 큰 먹음직스러운 게 보였다.
“그냥 그들이 받는 임금을 내게 주시오. 그럼 내가 그들에게 나눠주겠소이다. 상선의 선원이라고는 하나, 수군에 적을 그대로 두는 것이니 그 임금을 내가 관리해서 선원들에게 지급하도록 하겠소이다.”
원철의 이야길 듣고 보니 하는 모양이 딱 현대판 인력 사무소였다.
이름은 다른 곳에 올리고 파견을 보내 들어오는 돈에서 수수료를 제하고 주는 인력 소장의 행태를 원철은 하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원철이 떼는 수수료는 아마도 절반을 넘을 터였다.
“하하하. 새로운 방식이군요. 그렇게 되면 제가 수군을 빌려 가게 되는 것이나 마찬가지겠군요. 뭐, 우수사께서 그렇게 원하시니 그렇게 하겠습니다.”
마음 같아서는 삭탈관직에 곤장을 때려 반병신으로 만들고 싶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물론, 그럴 힘이나 권세도 없었지만...
하지만, 그가 원하는 대로 선원들의 임금을 그에게 줄 생각도 없었다.
조선의 녹봉은 1년에 4번, 분기마다 주는 것이었기에 다음 녹봉은 1월이었다.
하지만, 내년이 오기 전에 조선에 큰 변이 일어나게 되고, 당상관들의 자리와 병권을 들고 있는 자들은 물갈이될 터였다.
녹봉을 줘야 하는 1월에는 다른 이가 우수사의 자리에 앉아 있을 터이니 수군 50명을 빼돌린 것을 의금부에 투서로 알려주면 될 것이었다.
그리고, 이런 50명의 녹봉으로는 큰 처벌이 안 될 수도 있기에 제대로 된 똥을 줘야 했다.
“그럼 이참에 배를 한 척 더 주시면 아니 되겠습니까? 뱃값은 내년 녹봉을 지급하는 시기에 천은으로 같이 드리겠습니다.”
“뭐, 망실되어 없어지는 배를 사 준다면야 좋지만, 지금 당장은 개삭으로 줄 수 있는 배가 없네.”
“그렇다면 지금 운행 중인 누전선을 먼저 제게 주시고, 개삭으로 누전선이 정리되면서 만들어지는 새 배를 다시 운영하시면 되지 않겠습니까? 대장(臺帳) 원부상으로는 그대로 인 것이지요.”
원부상 있어야 하는 배가 없어져서 상선으로 돈다는 것이 알려지게 되면 수군의 녹봉을 착복한 것과는 다른 급의 처벌이 따를 터였기에 함정을 파는 것이었다.
“흠. 그렇긴 한데, 그리 배가 급하게 필요한 이유가 있나?”
“하삼도의 곡식이 조운창으로 옮겨지는 시기가 지금이지 않습니까. 동래에서도 한양의 경원창(慶源倉)으로 곡식을 옮기게 되는데, 그 일에 끼어들어 볼까 합니다.”
“하긴 그렇지. 누전선 3척으로 조운을 옮기기만 해도 꽤 남는 장사이긴 하지. 그러면 계약금만 먼저 내도록 하게나. 그러면 배가 나올 때까지 참군 염호진이 맡은 배를 쓸 수 있게 해 주겠네.”
원철은 자기 나름대로 안전판을 만들기 위해 참군 염호진과 수군들까지 그대로 배를 맡겼다.
“그러면 이것은 계약서를 쓰도록 하지요.”
원종이 나서서 만든 계약서는 망실되어 처분되는 배를 개삭하여 인수하는 계약서였고, 이 계약서에 따르면 원종은 개삭으로 만들어지는 배를 인수하는 것이지. 수군에서 지금 운영하는 배를 가져가는 것이 아니었다.
나중에 문제가 생기더라도, 개삭되어 생긴 배라고 빠져나갈 구멍을 계약서로 만들어두었다.
***
“허허. 일이 이렇게 될 줄 꿈에도 몰랐습니다. 제조 어른과 같이 조운창의 일을 하게 될 줄이야.”
참군 염호진은 수군 일이 아닌 조운을 옮기는 일을 맡게 될 것 같자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나왔다.
본인의 가문이 한미하기에 이런 잡다한 일을 떠맡게 된 것이라 여기고 현실을 수긍했다.
“한데 배의 이름은 정해 두었습니까?”
“먼저 받은 누전선은 태극 1호라고 지었고, 보름 후 나올 두 번째 배는 태극 2호라 지었습니다. 방패선은 강산 1호, 2호로 지었습니다.”
“그럼 방패선은 내륙용으로 쓰시는 겁니까?”
“네. 낙동강을 타고 문경까지 올라갈 수 있기에 내륙교역에 방패선을 쓸 생각입니다.”
“그렇다면, 새로 뽑은 선원들의 손발을 맞추어 보고 바로 동래로 가야 하겠군요.”
누전선 3척이 갖추어지자, 참군 염호진이 태극 1, 2호에 선원들을 배치하기 시작했는데, 원래 맡았던 편제를 그대로 쓸 수 있게 했기에 금세 배치가 되었다.
이후 각 부문에서 하는 일을 설명해 주었는데, 이런 기록을 제대로 남기기만 한다면 새로 선원이 바꿨더라도 배치해서 일을 시키는 것을 매뉴얼화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저기가 관음포(觀音浦)입니다.”
배의 운영을 위해 남해까지 움직였는데, 염호진은 중요한 장소라고 지역을 알려주었다.
“전조 때 왜구가 배 120여 척을 끌고 와 함포(마산)를 공격하고 약탈을 했었습니다. 그때 해도원수(海道元帥) 정지 장군이 47척의 함선을 끌고 와 왜구들과 싸웠는데, 왜선 17척을 침몰시키고, 2천여 왜구들을 수장시키며 대승을 거두었던 곳입니다.”
염호진은 고려 말 있었던 관음포 대첩을 이야기하며, 당시 최무선이 배에서 직접 화포로 왜선들을 침몰시켰다고 화포의 대단함을 이야기했다.
물론, 관음포 대첩이 함포(艦砲)로 적을 물리친 최초의 해전이라는 것에는 의의가 있었지만, 정지 장군이란 이름을 듣보로 만들어 버릴 정도의 인물이 훗날 여기서 승리를 거두었었다.
바로 이순신 장군의 마지막 해전인 노량해전이 있었던 곳이 바로 이 관음포 앞바다였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훗날 관음포 앞바다는 이순신이 순국한 바다라는 뜻에서 ‘이락파(李落波)’라고도 부르며 정지 장군과 최무선의 관음포 대첩은 이순신 장군의 명량해전에 가려져 아는 사람도 몇 없게 되는 대첩이 되었다.
먼 훗날 임진왜란이란 것이 아예 일어나지 않게 왜구를 눌러줘야 했다. 그리고 그런 일에는 최무선이 만든 화포가 필수였다.
한양에 있는 최무선의 손자인 최공손이 할아버지가 쓴 ‘화약수련법’이란 책을 돌려받아서 연구를 하고 있는지 궁금했다.
누전선의 양쪽에 설치된 강노가 멋은 있어 보였지만, 최공손이 만드는 화포가 필요했다.
더 많은 화력! 화력 조선이 되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