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쉐프 조선을 부탁해!-160화 (160/327)

160. 섬사람들. (2)

“내 말이 틀렸소? 섬 놈들은 신량역천(身良役賤)의 굴레와 멍에를 쓰고 평생을 수영의 수군이나 격군(노 젖는 병사)으로 살아야 하니, 건강해야 더 부려 먹을 수 있다고 보는 거 아니오?”

비꼬듯이 이야기하는 남자의 말에 뭐라고 반박을 해 주고 싶었지만, 참을 수밖에 없었다.

무병장수에 건강하다고 해도 평생을 수군이나 격군으로 살아야 한다면 그의 말마따나 억울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섬에 산다고 신량역천으로 묶어두었으면 수군이나 격군으로 살아도 처자식 먹여 살릴 수 있게 제대로 녹봉을 주기라도 하던지. 다섯 식구 겨우 굶어 죽지 않게 맞춰 주면서 건강하게 살라고 하니, 오래 살아 뭐 하겠소. 그저 윗사람들에게 부려 먹히기나 하지.”

말에 정도가 없자 김고도개가 나서려고 했지만, 그의 말에 틀린 말이 없었기에 김고도개를 막았다.

“여보, 그만 하세요. 이분들이랑은 상관이 없잖아요. 그리고, 지금 우리가 먹는 이것도 이분이 주신 거예요.”

“흥. 팔자 좋게 유람이나 다니는 꼬마 양반이 거지 같은 우리에게 적선한 것이겠지. 저 양반도 크면 다 같아지는 거야! 그저 우리 등골이나 빼먹으려고 할 거라고!”

큰소리를 내지른 털보 사내는 집 안으로 들어가 버렸는데 아낙과 그 어미가 결례에 대해 안절부절못했다.

“저이가 저런 사람이 아닌데, 죄송해요. 받아야 하는 녹봉이 나오지 않고... 집 지붕을 고치고 해야 하는데, 거기에도 세를 물리겠다고 하니 저리 화가 난 것이에요. 본성은 착한 사람인데... 죄송합니다.”

아낙의 말을 듣고 보니 수군으로 녹을 제때 받지 못한 것은 제쳐두고라도, 집을 고치는데도 세금을 내야 한다는 말에 어이가 없었다.

“집을 고치는데 세금을 낸다고?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정말로 집을 고치는데도 세금을 내는지 물어보려는데, 떠오르는 일이 있었다.

바로 이재수의 난. 다른 말로는 ‘신축민란(辛丑民亂)’이라 부르는 민란이 떠올랐다.

신축년(1901년) 제주도에서 일어난 민란인데, 그 민란의 원인이 관리의 가혹한 세금 때문이었다.

역사적으로는 가혹한 세금에 프랑스 선교사를 앞세운 천주교인들의 패악질이 더해져서 일어난 민란이라고 정의하지만, 그 최초 원인은 결국 세금 때문이었다.

한양에서 내려온 봉세관(捧稅官) 강봉헌이란 자는 제주도에 부임하자마자 이전에 폐지되었던 민포(民布)를 다시 징수하기 시작했었다.

그러곤, 집이 있으면 가옥세를 걷고 과실수를 키우면 수목세, 기르는 가축이 있으면 가축세, 고기를 잡는 어망이 있으면 어망세, 어망으로 고기를 잡으면 어장세, 지붕에 갈대를 얻으면 노위세를 걷었었다.

심지어는 가축에게 먹이는 잡초에 대해서도 세금을 걷었기에 제주도민들이 살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그리고, 그런 세금을 거두어들이는데 천방지축으로 날뛰는 천주교인들을 동원했다. 천주교인들이 폭력적으로 세금을 징수하자 민란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초가집의 지붕에 올리는 노위라는 갈대에 세금을 걷는 것은 진짜 TV 역사 스페셜 같은 프로그램에서만 보았는데, 실제 눈앞에서 갈대에 세금을 부친 것을 보니 내가 어이가 없었다.

유독 이런 가혹한 세금징수는 도서 지역에서 주로 일어났는데, 이는 섬이라는 지역적인 한계 때문이었다.

섬은 가두어진 세상이라 드나드는 배만 잘 관리하면 그 폐해가 밖으로 알려지지 않았기에 관리들이나 호족들이 더 악랄해질 수 있는 조건이 되는 것이었다.

직업적으로도 신분이 정해지는 신량역천의 굴레로 아예 섬에서 어부나 수군으로만 살아가게 만들어 버리니 섬사람들은 양식장에 가두어진 고기처럼 주는 밥만 먹고, 가축처럼 살아갈 수밖에 없었다.

그러한 자신들의 한계와 갈대에까지 걷어지는 세금에 분노하는 것이었기에 털보의 마음이 와 닿았다.

나를 업신여기는 말을 했더라도 화를 낼 수가 없었다.

이런 섬에서 이루어지는 폐해를 어디서부터 바꾸고 고쳐나가야 할지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광부나 어부, 도공 등등 신량역천에 묶인 이들의 대우를 좋게 해 주고, 산업 전반에 대한 인식 자체를 바꿔나가야 해결될 것 같았다. 하지만 섬에서 나오는 물자로 운영이 되는 수영이 있었기에 인식의 전환 같은 것으로는 답이 보이지 않았다.

현대처럼 중앙정부에서 나오는 돈으로 군대가 돌아가야 하는데, 무조건 그 지역에서 거두어들이는 것으로 운영을 하게 하니 섬사람들의 고혈을 뽑아 댈 수밖에 없었다.

뾰족한 답이 없자 해산물을 삶아 맛있게 좁쌀밥을 먹었음에도, 가슴이 답답하여 그 맛이 생각나지 않을 정도였다.

“이만 돌아가자꾸나. 그리고, 바깥양반에게 이야길 전해주게. 조만간에 상선에 탈 수군 출신을 뽑을 것인데, 그때 지원하라고 전해주게. 그리고, 남은 좁쌀은 다 가지게나.”

***

“도련님 저 싹수없는 털보 놈을 가까이 두고 괴롭히시려고 선원으로 뽑는 겁니까요?”

김고도개는 자신이 모시는 양반의 체면이 손상입은 것 같자 기분이 별로였는데, 그런 털보를 선원으로 뽑을 것처럼 원종이 이야기하자 아마도 옆에 두고 조질 것인가 싶었다.

“아니. 배를 타는 선원이면 저 털보처럼 성격이 칼칼해야지. 그래야 배를 타고 오랜 항해를 할 때 우울증에 걸리지 않고 질병에도 강한 법이야. 광부가 어두운 땅 밑에서 이틀 사흘 버티는 것처럼 배 타는 이도 물 위에서 파란 물과 하늘만 보며 버틸 수 있는 깡이 있어야 하거든.”

“그렇게 생각한다면야 도련님의 말이 맞는 것도 같습니다. 광산에서도 비리비리하고 조용한 성격보다는 성깔 있는 놈들이 적응을 잘하고, 잘 버팁니다.”

“끼리끼리 노는 법이니 저 털보와 같이 물질하는 놈들도 다 비슷하겠지. 그걸 아는 이들이 같은 배를 타면 힘든 일이 있어도 잘 헤쳐나갈 수 있을 것이야.”

날 좋은 날 맨눈으로 보이는 대마도나 이틀이면 가는 규슈지방은 문제가 아니었다.

사탕수수와 후추를 구하기 위해 저 멀리 태국이나 필리핀으로 가야 했기에, 몇 개월이 걸릴지도 모르는 긴 항해를 버틸 수 있는 깡다구가 있는 선원이 필요했다.

착한 선원보다는 깡이 있어서 어디서나 잘 적응하고 지기 싫어하는 천방지축 같은 이들이 필요했다.

그런 면에서 신량역천으로 묶인 섬사람들이 딱이었다.

섬에 갇혀 지내지 않고, 돌아다닐 수 있으며, 금전적으로 더 윤택한 삶을 보장해 준다면 아마 서로 배를 타려고 할 터였다.

***

개삭하는 조선소로 돌아오니 참군 염호진이 타르통을 보고 있었다.

타르가 대충 50~60ℓ는 모인 것 같았는데, 폐목재에서 판 자재를 모아 나무 상자 두 개를 만들게 했다.

상자의 바닥은 실제 배처럼 여러 판 자재를 붙여 만들었는데, 한 개는 기름과 석회를 버무려 바닥에 발랐고, 다른 한 개에는 타르를 발랐다.

타르를 바를 때도 두 번째 철관을 통해 나온 연하게 만들어진 타르를 먼저 바르고 그 위에 첫 번째로 나온 진한 타르를 발랐다.

사나흘을 말린 후 두 상자를 물에 띄웠는데, 기름과 석회를 섞어 바른 상자나 타르를 바른 상자나 물이 새지 않는 것은 같았다.

“허허 신기하구만. 기름칠하지 않았는데, 방수가 되다니.”

“새로운 방법을 알았구만.”

배를 만들고 손보는 배 장인들이 신기해하며 타르의 효용에 감탄했지만, 막상 지금 쓰는 기름과 석회에서 타르로 바꾸려고 하지 않았다.

아마도 처음이란 리스크와 책임을 지려고 하지 않는 보신주의 때문인 것 같았다.

강제로 모든 배에 타르를 바르게 하기보다는 우선 내 배에 타르를 발라서 그 효용을 보여 주는 것이 가장 좋을 것 같았다.

그렇게 원래 받기로 했던 누전선 1척이 먼저 나왔고, 참군 염호진이 알아봐 준 나이 들어 은퇴한 수군 출신 노인들도 다섯을 구했다.

“참군께 또 부탁해야 할 것 같소이다. 누전선이 두 척에 방패선도 두 척 있다 보니 선원이 필요한데 선원을 구한다는 방을 붙여도 되겠소?”

“흠. 그렇게 공개적인 것은 아마도 우수사가 싫어할 것입니다. 제가 수군들에게 알음알음 알려서 나흘 후 선착장으로 모이라고 하겠습니다. 거기서 선원들을 뽑으시면 될 것입니다.”

“고맙소이다.”

***

“그니깐, 상선을 타면 수군보다 녹봉은 갑절로 주고, 물건을 팔아서 이득이 남으면 녹봉을 더 준다고? 그게 말이 되나?”

수염이 덥수룩하게 난 수군이 선창에 기대앉으며 말도 안 된다고 이야길 했다.

“마, 진짜라니깐 참군 나리께서 하는 말을 내 똑똑히 들었다니깐. 수군이나 격군으로 받는 녹의 갑절은 무조건 준다고 들었다니깐”

“갑절이 말이 되나? 글고, 왜 이득이 남는다고 뱃놈에게 주노? 그거 다 우리 속여서 배 태우려고 하는 거 라니깐.”

“아니라니깐. 새끼 진짜 속고만 살았나.”

“안 속는다 안 속아. 근데, 그거 말고 신량역천의 굴레를 벗어날 수도 있다는 말은 또 뭔데?”

“아, 그건 비밀인데...”

말을 하는 이는 정말 엄청난 비밀인양 주위를 살피며 입을 열었는데, 그런 모습 덕분에 주위에서 쉬고 있던 다른 수군들도 귀를 세웠다.

“그 상선이 한양에 있는 고관이 가지고 있는 배인데, 참군 나리 말로는 그 배에 타서 은근슬쩍 가족들과 내륙으로 갈 수도 있다고 하더라고.”

“진짜로? 그게 참말이가?”

“진짜라니깐.”

“그러고 보니 내도 들은 게 있다. 얼마 전에 웬 꼬마 양반이 하나 와가꼬 얼쩡거렸다이가. 그 양반이 우수사한테서 천은을 주고 배를 샀다고 카데.”

“맞다. 그 누전선 한 척에 개삭해서 만든거까지 몇 척을 샀다 카드라. 돈이 윽시로 많다고 봐야재.”

“그러면, 진짜 한양에 있는 고관 자제분이라면 거기 줄만 잘 서면 그 집 외거 노비로 해서 섬을 벗어날 수도 있는기가?”

“그렇다고 봐야지. 그래서 참군 나리가 내한테 몰래 알려준거 아니가.”

“참군 나리가 니가 뭐가 좋다고 니 한테만 알려줬겠노? 다 말한거겠지.”

“아, 털도 많은 새끼가 존니 부정적이네. 니는 그래 못 믿으면 선원에 지원하지마라. 우리는 할끼다.”

수군들은 삼삼오오 모여 참군 염호진이 알려주었다는 말을 주고받으며, 녹봉을 갑절로 준다는 게 진짜 믿을 만한지 서로 아웅다웅하며 이야기꽃을 피웠다.

하지만, 대부분의 수군은 녹봉이 갑절이 되는 거 보다 신량역천의 신분을 벗고 섬을 나갈 수 있냐 없냐에 더 관심을 가졌다.

소문처럼 진짜 상선의 선원이 되어 섬을 벗어 날수만 있다면 외거 노비가 되더라도 사는 것이 더 좋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부정적이라고 무시당한 털보 만철이는 왠지 좁쌀을 그냥 주고 갔던 그 꼬마 양반이 이야기 속의 그 사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분명 마누라가 이야기하기로는 선원을 모으는데 자신도 오라고 이야길 했다곤 하지만, 그날 노위(갈대) 세금 때문에 열 받아 쏘아붙였던 것이 떠올라 괜히 선착장으로 가는 것이 망설여지고 있었다.

자신더러 오라고 해서 선착장에 나갔는데 괜히 그날 말한 것 때문에 치욕을 당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제때 나오지 않는 녹봉과 다 쓰러져 가는 초가집임에도 마음대로 고치지도 못하는 현실을 생각하니 치욕을 당하더라도 상선의 선원을 모은다는 선착장으로 나가봐야 할 것 같았다.

“그래서, 상선 선원이 되는 조건은 뭔데?”

“니 안한다메.”

“아이다. 나도 지원할끼다. 상선 타는 선원이 되어서 한양이고 동래고 간에 이 지긋지긋한 섬 좀 벗어났으면 좋겠다.”

진심이 담긴 털보의 말에 다른 수군들도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

[작가의 말]

실제 조선 시대 섬에 사는 사람들은 대부분이 수영의 관할이었는데, 부임하는 절도사나 수사에 따라 세금이 달라졌기에 그저 좋은 관리가 부임하기만을 빌었다고 합니다.

섬의 특성상 폭정을 일삼고, 악한 짓을 해도 중앙에 전달되기 힘들었기에 섬 특유의 기질 같은 것도 발현되어 조선 시대 힘든 사람들 중에서도 가장 힘든 사람들이 섬사람들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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