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쉐프 조선을 부탁해!-159화 (159/327)

159. 섬사람들. (1)

“저 검은 물이 하판의 방수를 해준다는 것입니까?”

참군 염호진은 물론이고, 배를 만드는 장인들마저 저깟 나무를 태워 나오는 검은 물이 어떻게 방수 효과를 줄 수 있냐며 미심쩍어했다.

“저 검은 물을 외국에서는 타르(Tar)라고 부르는데, 기름과 석회를 섞은 것보다 방수 성능도 뛰어나고 가격도 더 저렴할 것입니다. 타르에 대해 다들 의구심을 가지시니 배에 바르기 전에 나무에 발라 방수 성능을 보여드리겠습니다.”

배에 바를 타르를 뽑기 위해 제재하고 나오는 폐목재를 모아 몇 번이나 타르를 추출하는 작업을 했다. 철관을 통해 검은 타르 물이 나오는 게 신기했지만, 그것도 몇 번이나 반복하니 보고 있는 것도 시간 낭비, 열 낭비였다.

실제 배를 타야 하는 어부 출신 청년들은 배를 수리하는 일에 보조로 붙어 배의 구조와 수리에 대한 것을 배웠는데, 나와 진기, 언년이는 할 게 없었다.

“이 철통 위에 가로로 나무를 치고, 생선과 해산물을 매달아 훈제를 하자구나. 이 불을 그냥 날리기엔 너무 아깝구나.”

그래서 타르 드럼통에 불을 지펴놓고는 거제도 뻘밭을 돌아다니며 해산물을 채집했다. 타르를 뽑으면서 그 열기로 훈제 해산물을 만들 수 있으면 일거양득이었기 때문이었다.

거제도의 갯벌은 서해의 갯벌처럼 넓게 펼쳐지지도 않았고, 뻘 흙도 그리 곱지 않았지만, 조개와 개불이 사는 것은 비슷했다.

“언년아 이 두 구멍이 보이느냐? 개불은 뻘 밑에 숨을 때 들어가는 구멍과 나가는 구멍을 두 개 판단다. 한마디로 이 두 구멍이 연결되어 있고, 그 연결된 구멍 사이에 개불이 있다는 말이다. 그래서 삽으로 이 두 구멍의 사이를 파주면 된단다.”

진기와 언년이에게 시범을 보이며 삽질을 했는데, 다섯 번 정도 삽질을 하자 개불이 보였다.

얼른 손을 뻗어 잡으니 손에 물컹한 느낌이 느껴졌다. 개불을 잡아당기니 구멍에서 질질 끌려 나왔는데, 그 모양이 누가 보던 이상야릇했다.

“이 축 늘어진 모양이 오뉴월 개의 불알과 닮았다고 해서 이름이 개불이라고 붙었단다.”

개불은 자신이 싱싱하다는 것을 자랑하려는 듯이 몸을 부풀렸는데, 그래봤자 개불이었다.

“형님. 이 개불알처럼 생긴 흉측한 녀석을 진짜 먹는 것입니까?”

“그럼. 얼마나 쫄깃하고 맛있는데. 이 녀석과 해삼, 멍게까지 하면 횟집 서비스 삼형제로 그 어디서도 꿀리지 않는 전채요리라고 할 수 있지.”

“네? 서비스요? 그건 뭔가요?”

“흠흠. 결의(決意)라고 이해하거라. 그 세 가지가 결의가 삼 형제처럼 뭉쳐서 나오게 되면, 없던 입맛도 살아난다는 뜻이다.”

“오! 그 정도로 맛이 있는 것입니까요?”

“그럼.”

우릴 따라 나온 김고도개에게 삽질을 시켜 개불과 조개를 한 움큼 이상씩 잡았다.

“멍게와 해삼은 우리가 못 잡으니 해녀들에게 사러 가자꾸나.”

해녀 하면 가장 유명한 제주도 해녀만 생각할 수 있지만, 대부분의 남해안과 도서에는 해녀들이 있었다.

물론, 그런 해녀들도 대부분이 제주도에서 도망쳐 나온 유민들의 후손이거나 유민들에게 물질을 배운 사람들이었다.

제주도에서 먹고 살기 힘들다고 도망쳐 나오는 유민들이 많았는데, 곡식이 부족한 것도 있지만, 그것보다는 진상으로 바쳐야 하는 공물 때문에 도망을 치는 이들이 많았다.

역대 조선의 왕은 물론이고 고려의 왕 중에도 싫어하는 이들이 없었던 ‘전복’이 바로 문제의 원흉이었다.

전복을 채취하여 한양에 올려야 했는데, 그 수량이 줄지 않고, 매년 늘어나는 것이 문제였다.

그로 인해 제주도의 해녀나 포작인(鮑作人)들이 그 수량을 채울 수 없을 때는 도망을 칠 수밖에 없었다.

포작인이란 남자 해녀를 말하는데, 평화로울 때는 해산물을 채취하여 공물을 바쳤고 위급 시에는 수군이나 노 젓는 격군으로도 징발이 되는 만능 마린보이라 할 수 있었다.

관에서는 남자인 포작인에게 좀 더 깊은 곳으로 잠수하여 전복과 소라 같은 비싼 해산물을 채취하게 하였는데, 사망률이 높고 힘든 일이라 제주도를 탈출하거나 후세를 두지 않아 조선 후기쯤에는 자연스레 없어져 버렸다.

공물을 없애고 쌀로 세금을 내는 대동법이 1600년대 시행되며 전국적으로는 1700년대 정착이 되었지만, 제주도의 전복 같은 경우에는 그 특별성을 인정받아 대동법 이후로도 공물로 계속 진상되었기에 해녀들의 고통은 근대까지 이어졌었다.

물론, 정조가 이런 공납의 고통과 잠수병으로 인해 고통받는 해녀들의 이야기를 듣곤 그 좋아하던 전복을 먹지 않았다는 미담도 있지만, 대부분의 왕이나 양반들은 해녀나 포작인의 고통에 대해서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도련님. 저기 해녀들이 있는데, 해삼과 멍게는 어느 정도 사 올까요?”

갯벌이 없는 돌 해변에 해녀들이 몇 명 앉아 불을 쬐고 있는 게 보였다.

“이 좁쌀로 살 수 있는 만큼 사 오너라.”

몸집이 작은 언년이의 어깨에 좁쌀을 얹어 주었는데, 내가 직접 해녀들에게 가지 못하는 이유가 있었다.

해녀들은 물질할 때 옷을 다 벗고 물질을 했기에 남자들이 가까이 갈 수가 없었다.

현대에는 검은색 고무와 PVC로 만든 잠수복에 오리발, 물안경을 끼고 물질을 하지만, 이 시대 해녀는 맨몸에 바위에 붙은 해산물을 떼기 위한 쇠꼬챙이가 장비의 전부였다.

옷을 다 벗고 잠수한다는 해녀의 이미지가 성적으로 자극을 줄 수도 있겠지만, 이것도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

옷을 입고 물에 들어가면 옷이 몸에 달라붙어 활동이 제한되고, 물에 젖은 옷은 무거워져 오히려 몸을 물속으로 끌어당기게 되니 옷을 벗고 하는 것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더구나, 젖은 옷을 입고 물 밖으로 나오면 체온을 빼앗기게 되어 저체온증이나 감기에 더 노출될 수밖에 없었으니 옷을 입는 것보다는 알몸이 오히려 나았다.

그렇기에 해녀들은 물질을 하기 전에 바닷가에 모닥불을 피워두고, 물질을 하고 나면 옷을 다 벗은 채로 불 가에 앉아 몸을 말리고 체온을 조절했는데, 그때는 사내들이 그 근처도 가지 못했다.

“도련님. 이 좁쌀만큼 다 줄 수 있는 해산물이 지금 없데요. 해삼 두 마리에 멍게가 10여 마리밖에 없다고 하는데요. 해녀의 집으로 가면 말린 건어물이 있어 그거까지 하면 값을 맞출 수 있다네요. 어떻게 할까요?”

“건어물이 있다면 나도 좋지. 그럼, 가보자꾸나.”

건어물이 있다는 해녀의 집으로 향했는데, 해녀의 집은 다 무너질 것 같은 초가집이었다.

집에는 네다섯 살 된 남자아이 둘과 허리가 굽어진 할머니가 짚을 꼬아 뭔가를 만들고 있었는데, 대충 봐도 살림살이가 어떤지 알 것 같았다.

“나으리. 건어물을 다해도 좁쌀값을 치를 수 없을 것 같습니다요. 분명히 더 있었는데...”

해녀는 좁쌀이 탐이나 괜히 바꿔주겠다고 집까지 왔는데, 그만큼 해물이 없자 안절부절못했다.

“그럼 되는대로 주시게나. 그리고 건어물을 사서 가기보다는 여기서 밥을 먹자구나.”

얼굴에 살은 없는데 배는 볼록하게 튀어나온 아이들을 보니 도저히 그냥 갈 수가 없었다.

김고도개가 지고 있던 솥을 내려 좁쌀을 안쳤는데, 건네받은 말린 소라와 고둥의 살을 다져 솥에 같이 넣었다.

좁쌀밥에 멍게와 해삼을 회 쳐서 먹으려 했는데, 우리를 보는 아이들의 볼록 나온 배를 보니 그냥 생것으로 먹으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서 지역에서는 생선은 물론이고 이런 해물도 모두 날로 먹는 게 기본이었는데, 왠지 아이들의 볼록 나온 배에도 기생충이 있을 것 같아서 날로 먹는 것 말고, 익혀 먹는 맛을 알려줘야 할 것 같았다.

더구나 한여름 더운 날씨에 해산물을 잘못 먹고 식중독에 걸려 죽는 일도 조선 시대에는 많았기에 날것을 익혀 먹는 그런 식문화를 퍼트려야 했다.

그렇게 익혀 먹는 식문화가 퍼지면 자연스레 ‘디스토마(distoma)’ 같은 기생충으로 인한 피해도 줄어들 터였다.

“부엌에 다른 솥이 있으면 물 좀 받아 끓여주게나.”

갯벌에서 잡은 개불을 먼저 물에 씻어 몸의 앞뒤를 잘라주었는데, 검붉은색의 피가 쏟아지듯이 나왔다.

“이게 보기에는 좋지 않지만, 이렇게 배를 길게 갈라 내장만 뽑아내면 바로 먹을 수 있네.”

10여 마리 잡았던 개불을 일일이 손질했고, 두 마리 있던 해삼도 개불처럼 몸의 앞뒤를 잘라주고, 길게 배를 갈랐다.

그러자 주황색의 물컹한 내장이 흘러내렸는데, 그런 해삼의 내장을 보며 입맛만 다시었다.

해삼도 고급 식재료였지만, 해삼 내장이야말로 고급 중의 고급 식재료였다.

일본에서는 해삼 내장으로 만든 젓갈이 따로 있을 정도로 인기가 많았고 한국에서도 없어서 못 먹는 재료였다. 하지만 오늘은 익혀 먹어야 한다는 것을 알리고 싶었기에 그냥 버릴 수밖에 없었다.

“해삼은 개불과 달리 이 끝에 딱딱한 이빨이 있으니 이 이빨을 꼭 제거해 줘야 하네. 멍게는 뿌리가 있는 다리 부분과 붉게 솟아오른 이 촉수들을 잘라주면 되네.”

멍게의 위아래를 잘라내고 배를 가르자 노란색과 주황색의 먹음직스러운 멍게살이 나왔다.

멍게 살을 갈라 넓게 펴자 주황색 사이로 검은 두 개의 혹 같은 것이 나왔다.

“이 검게 튀어나온 이것은 멍게의 심장이고 나머지 작은 것은 멍게의 똥이네. 검은 것을 다 제거하고 먹으면 좋지만, 삶아 먹을 것이니 그냥 똥만 제거하고 먹도록 하지.”

해녀는 바로 생으로 먹어야 맛있는 것을 뜨거운 물에 삶게 하는 양반의 처사를 이해하지 못했다.

싱싱한 바다향이 듬뿍 나는 해물을 펄펄 끓는 물에 삶아 바다향을 날려버리는 바보짓 같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공짜로 좁쌀밥을 나눠주겠다고 그릇을 챙겨오라는 말에 그런 불만은 사라져 버렸다.

좁쌀밥이 다 되고, 끓는 물에 삶은 해산물도 꺼내어 상이 차려졌다.

귀퉁이가 떨어져 있는 개다리소반 상이라도 있었기에 원종 혼자 상을 받았고, 나머지는 박으로 만든 그릇에 좁쌀밥과 삶은 해산물을 받아들었다.

“시장이 찬이니 어서들 먹게나.”

진기는 박으로 된 그릇을 받아 들고는 가장 먼저 개불을 숟가락으로 퍼서 입으로 가져갔다. 개의 늘어진 불알 같은 생김새였던 것이 칼로 다져져 사각형으로 되어 있으니 시각적인 거부감은 없었다.

개불 조각을 입 안으로 넣자마자 바닷바람 냄새 같은 해물 향이 풍겨 나왔다. 그리고, 제대로 씹어 보자 쫀득쫀득한 질감에 놀랐다.

‘이거 뭔가 예전에 먹었던 돼지 껍질과 비슷한 식감인데. 아니 더 질긴가.’

그렇게 엄청 맛있다는 맛은 느껴지지 않았지만, 개불 특유의 쫄깃한 식감과 해산물 특유의 짠맛이 있었기에 좁쌀밥과는 은근히 잘 어울렸다.

진기는 이런 맛이라면 개불의 생김새와는 상관없이 계속 채집해서 먹을 수 있을 것 같았고, 불에 구워 먹으면 어떤 맛일지도 궁금했다.

그러곤 삶은 해삼도 입으로 넣었는데, 이건 개불과는 또 다른 식감을 안겨주었다. 쫄깃한 것이 이빨이 아플 정도로 질긴 것 같으면서도 오독거리는 오돌뼈 같은 게 씹히며 해산물의 향을 뿜어내니 별미였다.

해삼을 한 번 더 먹어 보고 싶었지만, 원래 두 마리밖에 안 되었기에 어쩔 수 없이 노랗고 주황색인 멍게를 입으로 가져갔다.

처음 형님이 멍게를 갈랐을 때는 홍시가 안에 들어있는 건가 싶었다.

하지만, 그 갈라진 뱃속에서 풍겨오는 바다의 냄새에 홍시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 먹어 보니, 개불이나 해삼보다 이 멍게라는 녀석이 가장 맛있게 느껴졌다.

개불이나 해삼에 비해 부드럽게 씹히는 식감이 가장 좋았고, 씹을수록 고소한 짠맛이 나는 것 같았기에 가장 마음에 들었다.

좁쌀밥에 멍게살을 올려 먹으니 육고기가 부럽지 않을 정도였다.

“형님 이 멍게가 가장 맛있습니다. 이제야, 형님이 갯벌에서 이야기한 그 서비스 삼형제의 맛을 알 것 같습니다. 서로가 위해주지는 않지만, 쫄깃한 식감을 가지고 있고 씹을수록 바다 내음이 나는 것이 부모가 다르고 외모가 달라도 형제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 그래. 그렇게도 볼 수 있지.”

괜히 횟집에서 회가 나오기 전에 서비스로 나오는 것이라고 해서 힘들어져 버렸다.

이래서 애들 앞에서는 말조심하라는 말이 내려오는구나 싶었다.

진기가 삶은 해산물에 아주 만족했기에 해산물을 자주 먹는 해녀와 그녀의 아이들, 시어머니의 반응도 궁금했는데, 해녀는 아주 놀라고 있었다.

싱싱한 해물을 물에 삶으면 막연히 해물이 품고 있던 바다향이 끓는 물에 날아갈 것으로 생각했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에 놀라워했다.

“저 아이들의 배를 보면 못 먹어서 나온 것일 수도 있지만, 어릴 때 생선회를 잘못 먹으면 뱃속에 충(蟲)이 생겨 저리될 수도 있네. 배 속에 충이 있으면 건강하게 크지 못하게 되고, 단명하게 되는 것이니 될 수 있으면 생선이나 해물을 먹을 때 구워 먹거나 삶아 먹이고, 생것을 먹지 않도록 하게나.”

아이가 건강하지 못하게 크고, 단명하게 될 수 있다고 이야길 하니 해녀는 물론이고 허리 굽은 노파도 깜짝 놀랐다.

그러곤 앞으로는 생것을 먹이지 않고 삶아서 먹이겠다고 이야길 했다.

“다들 먹어봤겠지만, 해물을 삶아 먹는다고 그 맛이 떨어지거나 하지 않네. 그러니 섬사람들에게 건강하게 무병장수하려면 해산물을 삶아 먹으라고 알리도록 하게.”

“그렇게 천것들이 건강해지면 양반네들이 부려 먹을 놈들이 많아지니 삶아 먹는 것을 널리 퍼트리는 겁니까? 오래 살면 뭐 합니까? 그저 섬에 갇혀 격군이나 하다 뒈질 운명인데.”

집 마당으로 들어오는 사내가 삐딱하게 이야길 했는데, 밤송이처럼 억센 수염이 얼굴을 뒤덮은 마초 냄새가 나는 남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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