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쉐프 조선을 부탁해!-158화 (158/327)

158. 거제도 하면 조선(造船)이지.

거제도에서 온 병선은 병조선(兵漕船)이었는데, 다른 이름으로는 맹선(猛船)이라고도 불리는 배였다.

조운선인 병조선에 상장(상부 구조물)을 설치하면 전선인 맹선이 되는 것이었다.

병조선의 종류는 대, 중, 소로 나뉘는데, 대 병조선은 80명을 태울 수 있었고, 중 병조선은 50명, 소 병조선은 30명을 태울 수 있었다.

이렇게 사람을 태우고도 1,000석에서 800석까지 화물을 실을 수 있었기에 병선으로뿐만 아니라 조운선으로도 쓸 수 있는 만능 배라고 할 수 있었다.

다만, 전선으로 개조되는 맹선은 본디 조운선으로 화물을 실을 수 있게 만들어졌기에 그 속도가 느렸다.

더구나 배 위에 누각을 쌓아 만드는 대형 왜선이 등장하자 크기에서 오는 이점도 사라져 대체재인 판옥선을 만들게 되었고, 그 이후 맹선은 본디 목적이었던 조운선으로 돌아가 조선 후기까지 내해 무역선으로 활동하게 되는 배였다.

이렇게 전선보다는 조운선으로 더 와 닿는 배였지만, 고기잡이를 위한 작은 배만 보다가 실제로 커다란 병조선을 보니 그 크기에 압도되었다.

“고령군(신숙주) 대감께 따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배에 오르시지요.”

거제도에 있는 경상우수영은 수군을 통제할 목적으로 만들어졌지만, 실제로는 도서와 해안가의 여러 현을 다스리는 통합 행정도 겸하는 곳이었다.

수군을 유지하기 위한 재화를 보내기보다는 이런 도서 해안가의 현에서 세금을 거두어 수군을 유지하라는 것이었다.

논밭이 별로 없는 도서의 작은 현에서 나오는 재화로 군선과 수군을 유지하다 보니 물자를 내륙에서 수급할 수밖에 없었고, 가까운 동래 부에 상인들이 많았기에 정기적으로 배가 오가며 재화를 수급할 수밖에 없었다.

“인수받을 배의 수부로 여덟 명을 데리고 오신 겁니까?”

우수영의 참군(參軍) 염호진은 제조 벼슬의 전원종과 그가 데리고 탄 이들의 면면을 살폈는데, 걱정이 될 수밖에 없었다.

“다들 어려 보이는데, 수군 출신은 아무도 없는 것이옵니까? 그것도 아니면, 조운선을 탄 경험 있는 자도 없는 것이옵니까?”

“다들 어려 보이지만, 어부로 물질하며 살던 이들이라 물 생활에는 문제가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거제도에서 수군에서 나이가 많아 나온 이들을 따로 뽑아 고용할 생각인데, 그렇게 신구(新舊)의 조화를 하려고 합니다.”

“아, 잘 생각하셨습니다. 누전선을 실제로 몰아본 수군 출신 노인들이 있는데, 그들을 고용하여 저 젊은이들에게 가르치면 될 것입니다. 어부 출신이니 빨리 배울 것입니다.”

“그런 경험 많은 수군을 참군께서 좀 소개해주시면 고맙겠소이다.”

“제가 사람은 알아봐 드리겠습니다. 다만, 경상 우수사로 계신 원철 대감 앞에서는 그 이야길 하시면 아니 됩니다.”

“그건 왜 그렇습니까?”

“그것이...”

참군 염호진은 말을 하려다 망설였는데, 배를 타고 가는 동안 뚜렷하게 할 일이 없다 보니 열심히 꼬드겨 입을 열게 만들었다.

“그것이, 원철 대감은 사사로운 탐심이 많아 수군들에게 나눠줘야 하는 곡식에 손을 대고 있습니다. 그걸 아는 수군 중에서 성격 콸콸한 이들이 수군을 그만두겠다고 했는데, 신량역천의 신분이기도 하거니와 거제도에는 다른 할 일이 없다 보니 망설이는 이들이 많습니다.”

“아하, 그런 상황에서 내가 경험 많은 수군을 소개해 달라고 이야길 하면 수군들이 갑자기 그만두게 되니 문제가 될 수 있다는 말이었군요.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다.”

“네. 거기다 제조 영감께 드릴 누전선과 관련해서도 뭔가를 많이 요구할 것입니다.”

“뭐 그건 이미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습니다.”

분명 나라님이 하사한 배였지만, 막상 배를 내놓아야 하는 수영에서는 마치 자기 재산을 내놓는 기분이 들 거라고 생각은 이미 하고 있었다.

***

“하하하. 이것이 한양에서 유명하다는 본자기라는 말이오? 정승들도 물건이 없어 구하기가 힘들다고 하던데, 이리 귀한 걸 선물로 준다니 고맙소이다.”

경상 우수사 원철은 백옥같이 뽀얀 본자기 세트에 기뻐했는데, 본자기가 효과가 있었는지 따로 걸리적거리는 것 없이 내게 하사된 누전선을 보여주었다.

“듣자 하니 누전선으로 상행을 하겠다고 하던데, 다른 배는 더 필요 없으시오? 병조선도 그렇고, 한 척 보다는 두 척, 두 척보다는 세 척으로 움직여야 그 운행이 쉬운 법이오.”

“다른 배가 더 있습니까? 그런데, 수영의 배를 사사로이...”

“사사로운 것이 아니오. 본시 배라는 것은 건조된 지 오래되면, 배 바닥에 잡다한 것이 달라붙게 되오. 그래서 그 배 바닥을 긁어주거나 불로 그을려 잡다한 것이 달라붙지 못하는 작업을 정기적으로 하오.”

원철의 말대로 배 밑바닥에 따개비나 홍합 같은 것들이 달라붙는 것은 현대의 배도 마찬가지였고, 그걸 전문적으로 처리해주는 다이버들도 있을 정도였다.

“문제는 그 불로 그을려 떼어주고 하다 보면 배의 밑바닥이 닳게 되어 바닥 전체를 고쳐주어야 하는 작업이 필요하오. 그래서 배를 뭍으로 올려 개삭(묵은 부품을 갈아 끼우는 행위)을 해주는데, 그때 뭍으로 올라온 배 중에서 군선으로 도저히 쓸 수 없는 배들이 생기게 되오.”

원철이 이야기하는 ‘개삭’을 쉽게 설명하면 3대의 배를 뭍으로 올려 개삭 하다 보면 자재가 부족한 경우 가장 상태가 좋지 않은 배에서 자재를 떼어내 다른 배에 붙이는 것이었다.

그러다 보면 자연적으로 폐선이 되는 배들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남은 폐선들을 다시 합쳐서 멀쩡한 새 배를 만들 수가 있는데, 그 배를 팔겠다는 것이오. 어떻소? 한 대 더하시겠소?”

기록에는 개삭 중 망실로 처리하는 배를 다시 조합해서 문서에 없는 배를 만들어 주겠다는 것이었다.

더구나 병조선으로 배를 교차하는 시기이니 보다 이렇게 개삭 망실로 처리되는 배들이 더 많을 터였다.

“가격만 맞다면야 하지 못할 이유는 없지요.”

“은자 100냥만 내시오. 그러면 방패선(작은 소형선으로 돌격선)까지 한 척 챙겨주겠소.”

은자 100냥이면 백미 200석이나 되는 거금인데, 문경 본가의 1년 세출과 맞먹는 금액이었다.

배를 운영해 무역을 한다면 쉽게 벌 수 있겠지만, 이걸 원철 혼자 다 먹는다고 생각되자 달라는 대로 다 줄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80냥에 수군에서 쓰는 쇠뇌까지 주십시오.”

“쇠뇌?”

“네. 동해안으로 내려오며 보니 동래와 가까운 울산에서도 왜구의 공격을 받은 마을이 있더군요. 그렇다면 배를 운영하더라도 왜구 놈들을 막을 방도가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흠. 쇠뇌는 군문의 물건인데...”

이미 수군에서는 고려 말 최무선의 업적으로 화포가 쓰이고 있었지만, 화약의 수급이 문제였기에 여전히 군선에는 강노가 달려있었다.

고려 시대, 원나라 지배기에는 쇠뇌의 제작법마저 잊어버렸었는데, 세종대왕 시절 항아리에 그려진 그림을 참고로 기술자들에게 다시 쇠뇌를 만들게 했었다.

하지만, 쇠뇌를 만드는 기술이 부활하였더라도 한번 끊긴 기술은 전국적으로 퍼지지 않았고, 결국 조선의 원거리 개인 무기는 국궁만이 남게 되는 것이 역사였다.

신라 시절에는 천보노(千步弩)라는 천보(약 1km)의 사정거리를 가진 쇠뇌를 만들 수 있어 그것으로 고구려와 당나라 군사를 물리쳤는데, 이 천보노의 기술을 당나라에서 탐을 내어 쇠뇌 기술자를 납치해서 갈 정도였다.

하지만, 고려 시대를 거치며 그런 기술을 다 잊어버리고, 배에서 쓰는 커다란 강노만이 남아 있다는 게 안타까울 뿐이었다.

“이제는 병조선으로 배가 바뀌고 강노대신 화포를 설치하는 것이 수군의 기본 무장이지 않소이까? 그러면 강노는 남아돌 것이 당연하니 그걸 저희에게 주는 것이 뭐가 문제가 되겠습니까?”

“흠. 하긴 남도 아니라 고령군의 손녀사위이니 책잡히지도 않겠구만. 그럼 85냥으로 합시다.”

“그러면 방패선을 두 척으로 주십시오.”

“허허. 상단을 한다더니 손해는 안 보는구만. 좋소이다. 참군이 증인이 되어주게나.”

불법이지만, 합법적(?)으로 누전선 한 척과 6~8명이 타는 방패선까지 두 척을 받아내었으니 나름 작은 선단(船團)을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

“배의 바닥에 기름과 석회 섞은 것을 바르는 것이오?”

누전선을 개삭(묵은 부품을 갈아끼우는 행위)하는 조선소로 오니, 이미 배의 바닥을 개삭 했는지 새로운 하판에 석회칠을 하고 있었다.

“네 나으리 배에 스며드는 물을 막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작업입니다요.”

피부가 검게 그을린 일꾼이 기름과 석회를 버무려 배의 하단에 손으로 석회를 바르고 있었는데, 바닷물이 스며들지 않게 손으로 덕지덕지 두껍게 바르고 있었다.

중국과 조선은 물론이고 일본 배도 이런 기름과 석회를 이용한 방수 작업을 했다.

하지만, 석회와 기름의 품질에 따라 그 방수 성능 차이가 컸고, 두껍게 바르면 바를수록 배가 무거워지는 단점도 있었다.

이런 기름과 석회를 버무린 것보다 더 좋은 방법이 있었는데, 바로 타르(Tar)를 배에 바르는 것이었다.

콜럼버스의 기함이었던 ‘산타 마리아’는 물론이고, 일본을 강제로 개항시킨 페리 제독의 기함 ‘포하탄(USS Pawhatan)’에도 타르가 발려졌다.

페리제독이 타고 온 포하탄을 ‘흑선’이라고 일본인들이 부른 것도 배 전체에 타르가 두텁게 발려서 검게 보였기 때문이었다.

근대에는 바닷물에 삭는 밧줄이나 나무, 철판에 무조건 타르를 덕지덕지 발랐는데, 타르를 바른 배와 바르지 않은 배의 상태 차이가 크게 났기에 무조건 타르를 바르는 것이 기본이었다.

목재로 만들어진 목선이 대항해시대를 거쳐 1900년 초까지 대양을 다닐 수 있었던 것이 바로 이 타르 덕분이었다.

문제는 이 타르를 뽑아내기 위해서는 대량의 나무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타르는 소나무 같은 침엽수의 유기물 수액이 분해 증류되며 만들어지는데, 이런 유기물 수액의 대표적인 것이 소나무 송진이었다.

보통은 10년생 소나무 한 그릇을 태워서 타르 3L 정도를 만드는데, 배수량 50t의 배 한 척에 100L의 타르가 들어가야 하니 배 한 척에 바르는 타르를 위해 대략 소나무 30그루를 잘라야 했다.

산림자원이 풍부하지 않은 조선에서는 타르를 덕지덕지 바르고 싶어도 바를 수가 없는 형편이었다.

고심하며 방법을 찾다 보니 배들을 개삭하고 남은 나무 자재들이 보였고, 배를 만들기 위해 목재 비축을 위한 통나무들도 보였다.

목재를 비축하기 위해 나무들의 가지와 껍질을 제거하며 나오는 폐목재들이 눈에 들어왔다.

“참군께서 나를 좀 도와주셔야겠소이다.”

참군 염호진은 뭔지 모르지만 도와준다고 했고, 염호진의 이름을 팔아 수영에서 화포를 제작하는 장인들에게 강철로 된 큰 드럼통과 작은 드럼통을 만들어 달라고 했다.

큰 드럼통의 아래에 구멍을 뚫고 연결하는 기다란 관도 강철로 만들어 달라고 했다.

원목을 제재하며 나오는 나뭇가지와 껍질을 모아 작은 드럼통에 꼼꼼히 채워 넣었다.

폐목재를 채운 드럼통을 거꾸로 해서 큰 드럼통에 넣곤, 뒤집힌 작은 드럼통과 큰 드럼통을 고정하기 위해 찰흙을 발라 불길이 바로 닿지 않게 만들었다.

이후 큰 드럼통과 작은 드럼통 사이의 틈에 나무를 넣곤 불을 지폈다.

“작은 철통 밖에서 난 불의 열기에 작은 철통에는 간접적으로 불기가 닿게 되네. 겉에서 타는 열기가 아무리 뜨거워도 불길이 작은 통 안으로 들어가지 않는 것이지. 대신에 철통의 온도가 오르게 되면 마치 녹아내리듯이 열기에 나무가 타게 되는데 이때 김이 나오게 되네. 그 김은 철통 아래에 달린 철관을 통해 나오게 되고 철관에서 식혀진 김은 검은색의 물이 되어 물통에 고이게 되네.”

원종의 말처럼 기다란 관을 통과한 김이 분해 증류되어 흰 김과 검은 타르 액체를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흰 김이 나오는 철관 바로 앞에 다시 기다란 철관을 1cm 차이로 설치해 두자 대류 현상으로 흰 김이 다시 철관으로 흘러갔다.

두 번째 철관을 통해 다시 분해 증류가 일어나고 철관의 끝에서는 남은 타르 성분이 관 끝에 모여 한 방울씩 떨어지기 시작했다.

사기그릇을 철관 아래에 놔두자 타르가 고이기 시작했다.

“헌데, 이 검은 물은 어디에 쓰는 겁니까?”

“배의 바닥에 바를 것입니다. 이렇게 검은 물을 바르면 바닷물이 침범하지 않아 기름과 석회를 섞은 것보다 더 저렴하게 방수가 될 것입니다.”

*

[작가의 말]

사실 돈만 있으면 배 밑에 옻칠을 해서 검게 만드는 것이 가장 방수에 좋습니다.

하지만, 옻칠은 석회에 기름이나 타르보다도 더 비싸다는 게 문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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