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쉐프 조선을 부탁해!-141화 (141/327)

141. 고향 음식. (2)

“내어선방(內御膳房)으로 가기 위해서는 눈을 가리겠소. 궐내의 규칙이니 이해 바라오.”

우렁이 국수를 만들기 위해 재료를 가지러 가는데, 태감 왕직이 눈을 가렸다.

“어선방도 두 곳으로 나뉘는데, 내어선방은 황제 폐하와 황족의 음식을 만드는 곳이고, 외어선방(外御膳房)은 궐내에 있는 관리들과 연회 음식을 만드는 곳이오. 그만큼 중요한 곳이다 보니 외인의 경우에는 가는 길을 알지 못하게 눈을 가리오.”

가마에 태워져 한참을 움직인 끝에 어느 건물 앞에 내렸는데, 원길의 눈에 수십 아니 수백 명의 인원이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멀리서나마 황제에게 올리는 음식이 보였는데, 그 가짓수나 분량이 상상을 초월했다.

군왕과 황제의 차이를 밥상으로 체감했다.

“우렁이와 같은 재료는 저쪽이오.”

제대로 구경하지 못하고 자리를 옮기니 코로 물비린내가 훅 풍겨왔다.

“응? 이번에는 어디에서 숙수를 데리고 온 것이오?”

“조선에서 온 숙수요.”

“오! 동이족의 숙수라면 또 알 수 없겠구만. 저기 우렁이와 남부에서 올라온 식재료가 있으니 챙겨가시오.”

식재료 담당 태감의 말을 들어보니 이미 수십 명의 숙수가 우렁이 국수에 도전했던 것 같았다.

원길은 여러 식재료를 보면서 고민을 할 수밖에 없었다.

이미 자신보다 앞선 숙수들이 우렁이 국수를 만들었을 터인데, 그때 그 맛을 재현하지 못했다면, 뭔가 시작부터 잘못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재료인 우렁이가 호광성에서 온 것이 아니었기에 지역에 따라 맛이 다른 건가 싶어 이리저리 우렁이를 고르고 있으니 젊어 보이는 태감이 다가왔다.

“우렁이가 문제가 아닐 거요. 나도 우렁이로 국물을 내어봤으나 맛이 없기도 없었고, 요족 출신들이 이야기하는 흰 국물이 나오지도 않았소. 아마도 우렁이 외에도 뭔가가 더 들어갈 거요.”

“흰 국물? 다른 태감들에게는 그저 삭힌 냄새가 난다는 것만 들었는데, 뭔가 더 아시는 것이 있소? 아, 나는 조선에서 온 전원길이라 하오.”

“조선 사람인 걸 알고 있소이다. 난 산동 사람 임정덕이오. 집이 음식을 파는 일을 해서 요리를 어깨너머로 배웠는데, 태감이 된 이후로는 여기에 배치가 되었소. 뭐, 덕분에 서창 태감들에게 시달려 몇 번이나 우렁이 국수를 만들어 바쳤소. 그리고 결과는 알 거요.”

“몇 번이나 해줬다면 뭔가 이야길 더 하지 않던가요?”

“몇 번이나 해줬으나... 그저 그때 그 맛이 아니라고 하더군. 자기들 요족의 맛이 아니라고.”

“휴... 까다롭구랴. 제대로 설명도 해주지 않고 해달라고 하니...”

“그래서 숙수들이 다 실패한 거요. 어렸을 때 만드는 것을 보고 먹어봤으니 추억의 맛이 더해져 아마 당신도 실패할 거요.”

“흠. 그럼 국물이 흰색이었다는 것 말고는 다른 것은 없었습니까? 보통 흰 국물이라고 하면 고기 뼈를 고아내어야 흰 국물이 나오는 것인데. 무엇으로 국물을 내라는 그런 것도 없습니까?”

“흰 국물이 걸쭉했다고 하는데, 그럴 정도로 국물을 내려면 돼지나 소뼈를 고아야 하는데, 그렇게 했던 숙수들의 국수도 그 맛이 아니라고 했소.”

원길은 임정덕이란 태감의 말을 들을수록 답이 없다는 걸 느꼈다.

흰 국물이라는 것에 맞추었음에도 그 국물이 아니라고 하니 답이 없었다.

‘원종이 녀석이 있었다면, 분명히 답을 알아냈을 것 같은데...’

원종이를 생각하다 보니, 기상천외하던 원종의 요리 방식에 답이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기상천외한 것도 알고 보면 멀리 있지 않았다는 걸 기억했다.

이 우렁이 국수도 그럴지도 몰랐다.

“아, 혹시 호광성의 요족들은 나름대로 잘 살았습니까? 예를 들자면 추수 전에도 소를 잡아서 먹을 정도의 그런 것 말입니다.”

“보통 화북이 밭에서 밀 농사를 짓고, 남부의 따뜻한 성들은 논에서 쌀농사를 한다고 하오. 호광성은 1년에 2번씩 쌀농사를 한다고 하는데, 아무리 그래도 마음대로 소를 잡아먹고 할 만큼 부유하지는 않았을 거요.”

임정덕의 말을 듣고, 왕직과 다른 요족 출신 태감들에게 물어도 마찬가지였다. 소와 돼지를 마음대로 잡아먹을 만큼 부유하지 않았다고 했다.

‘소 돼지로 국물을 내지 않았다면 어떻게 흰 국물을 만들어 낸 것이지?’

의주에서 미역국을 끓이며 조개만으로도 국을 끓여도 뽀얀 흰 국물이 나온다는 것을 알았기에 우렁이에게서도 그런 국물이 나올 것 같았는데, 조개류로 만들어 내는 흰 국물은 그렇게 걸쭉하게 나올 수가 없었다.

고민하는 원길의 눈에 우렁이의 등판에 작은 우렁이들이 붙어있는 게 보였다.

‘그래, 우렁이도 크는 시간이 필요하지... 큰 우렁이를 국수에 썼다면 수확하는 그 시기까지 우렁이가 논에 있었을 것이다. 그러면 그때 국물을 낼 수 있을 만한 게 논에 있었나.’

고민하던 원길의 머릿속을 스치는 게 하나 있었다.

‘그래, 논 장어! 드렁허리!’

논에서 벼를 수확하기 위해 물을 빼면 우렁이와 함께 나오는 녀석이 있었다.

바로 논 장어였다.

민물장어보다는 크기가 작았지만, 몸통이 더 두꺼워 오히려 살이 더 많은 놈이었다.

진흙을 헤집고 다니기에 논두렁을 헐어 버린다고 이름이 드렁허리로 붙을 정도였는데, 그놈이라면 삶았을 때 퍽퍽하고 흰 국물을 만들어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혹시, 우렁이 국수를 하는데, 장어를 쓴 사람이 있었습니까? 정확하게는 논 장어라 불리는 선어(鱓魚)말입니다.”

“그걸 쓰는 자는 없었소. 그걸 써보려고 하는 거라면 저쪽에 있소.”

이제까지 우렁이 국수에 논 장어를 쓴 사람이 없었다고 하는 것을 보니 요리를 만들 때 그 조건이나 환경을 고려해서 만든 사람이 여태까진 없었던 것 같았다.

그렇게 우렁이와 논 장어, 쌀가루를 챙기니, 임정덕이 취두부를 챙겨주었다.

“그 삭힌 냄새는 이 취두부가 맞다고 했으니 이걸 챙겨가시오.”

원길은 취두부를 처음 보았는데, 그 쿰쿰하게 삭힌 냄새에 절로 인상이 찡그려졌다.

***

“장어의 살을 벗겨내어 머리와 뼈로 국물을 만들어낸다고?”

만귀비는 멀쩡한 논 장어의 살을 도려내고 뼈와 머리만 냄비에 집어넣는 모습을 흥미로워했다.

“네. 다른 태감에게 듣기로는 흰 국물이라고 해서 소와 돼지의 뼈를 생각했었습니다. 허나, 그게 아니라고 하여 우렁이와 같은 논에서 살아가는 논 장어로 국물을 내기로 했습니다.”

“흠. 같이 어울려 사는 사이라면 한 그릇에 들어가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군.”

자금성에는 여러 향신료가 많았기에 원길은 후춧가루도 듬뿍 뿌렸고, 마늘과 생강, 파도 듬뿍 넣어 국물을 우렸다.

그렇게 우렁이와 논 장어로 국물을 내는 동안 쌀가루와 밀가루를 섞어 면을 만들기 시작했다.

요족들이 사는 남부에서는 분명 쌀가루로만 면을 만들었을 테지만, 쌀가루로만 만들게 되면 찰기가 부족해져 식감이 좋지 않았으므로 밀가루를 섞었다.

그렇게 면 반죽을 만들어 태감들의 도움으로 면을 뽑았고, 국물이 우러나기만을 기다렸다.

‘국물은 이 국물이면 된다곤 하지만, 그 삭힌 냄새가 문제인데.’

원길은 삭힌 두부를 꺼내었는데, 회색의 진흙이 묻은 것처럼 겉모습이 별로였다.

한 개를 집어 먹어보니, 부드러운 식담은 괜찮았지만, 홍어처럼 코를 타고 넘어오는 꼬릿한 냄새가 식욕을 잃어버리게 만들었다.

“왕태감은 이 취두부를 즐겨 먹습니까? 요족에도 이 취두부가 있습니까?”

“취두부는 없소. 다만, 비슷한 맛을 내는 것을 우렁이 국수에 올려주셨소. 그 구린 냄새는 취두부와 비슷했소.”

취두부와 냄새가 비슷한 음식을 국수에 올렸다는 말에 원길은 고민하다, 벗겨둔 논 장어의 살과 취두부를 섞었다.

요족들이 이야기하는 그 구린 냄새가 왠지 남도에서 먹는 홍어와 같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지금은 논 장어의 살을 삭힐 방법이 없었기에 장어 살을 으깨 취두부와 섞어 뭉치니 나름 괜찮은 모양이 나왔다.

그걸 달걀 물을 입혀 구우니 냄새가 확연히 줄어들었다.

고명까지 완성되니 이제 국물만 제대로 나오면 되는 것이었다.

한 시간 넘게 끓여낸 국물은 논 장어의 기름기가 녹아서 그런 것인지 국물 자체가 걸쭉해져 있었다.

“오오! 그래! 이 냄새야. 이거! 이렇게 흰 국물이 걸쭉했다고.”

“맞아. 이게 식으면 탱글탱글해졌었던 기억이 난다.”

요리하는 것을 옆에서 보던 요족 출신 태감들은 그제야 국물이 어떠했는지 떠올렸다며 이번엔 진짜 우렁이 국수를 먹을 수 있을 것 같다고 눈물까지 글썽거렸다.

원길은 그릇을 4개 내어 삶은 쌀국수 면을 넣었고, 국물을 그릇에 부었다.

간을 맞추고 고명을 올린 이후 그냥 두 그릇을 올렸고, 나머지 두 그릇에는 쌀로 만들었다는 식초를 한 숟가락만큼 부어서 올렸다.

식초가 뜨거운 국물에 들어가자 고깃국물 냄새가 시큼한 냄새를 풍겨내었다.

만귀비가 먹기 전에 왕직이 두 그릇 다 기미를 보았는데, 그는 입을 벌리고선 눈만으로 이게 맞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의 그런 표정에 다른 태감들도 이제야 고향에서 먹었던 그 우렁이 국수를 먹을 수 있게 되었다는 생각에 마음이 들떴다.

“이게 너희 고향인 호광의 맛이냐?”

만귀비는 한 젓가락을 먹어보더니 그대로 젓가락을 놓았다.

“네. 귀비마마. 저희의 고향에서 나던 그 시큼한 냄새가 바로 이 냄새였습니다. 이제야 찾았습니다.”

“그토록 찾더니 드디어 찾았구나. 하지만, 나는 별로구나. 너희들이나 먹도록 해라.”

만귀비는 그대로 그릇을 물렸는데, 표정을 보니 뭘 이런 것을 그리워했냐는 그런 표정이었다.

하지만, 자신의 수족과 같은 서창의 태감들이 고향의 맛이라며 눈물까지 흘리며 먹자, 주인된 입장에서는 그럭저럭 기분이 좋았다.

“우리 하화족(夏華族)은 등용문(登龍門)의 고사로 인해 잉어를 귀한 요릿감으로 중시했는데, 너희들 요족은 저 논 장어를 중시 여겼구나.”

“네. 귀비마마. 쌀농사를 지었으니 그 논에 살고 있는 논 장어를 중히 여기고, 국수를 만들어 먹을 때도 넣었다는 것을 미리 알았다면 이리 고생하지 않았을 터였습니다.”

“그것이 용의 후손인 하화족과 너희 요족의 차이인 것이지. 잉어는 진취적이고, 두려움이 없기에 등용문을 올라 용이 되려고 하는데, 논 장어는 논바닥을 기어 다니며 논두렁에 숨으려고만 하니 산속으로 도망쳤던 너희 요족과 딱 알맞기는 하구나.”

만귀비의 요족 전체를 깎아내리는 말을 듣곤 원길이 너무 심한 것 아닌가 싶었지만, 서창의 태감들은 전혀 상관이 없다는 듯이 그저 웃으며 만귀비의 말이 맞다고 고개를 조아리기만 했다.

그런 모습을 보니, 뭔가 서글펐다.

자기 민족을 깎아내리는 욕을 한 것이나 마찬가지인데도 웃으며 고갤 숙이는 태감들의 모습에 상행단으로 와서 명의 관료와 귀비에게 굽신거리는 자신들의 모습이 투영되었다.

부랄 없는 태감이나 부랄 있는 조선의 양반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만귀비가 자신의 수족이라는 서창의 태감들을 챙겨주고는 있지만, 그것이 그저 필요에 의한 것이지 진정한 군신(君臣)의 관계는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조선에서 온 이들이 태감들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었으니 상을 내리도록 하마, 그래 원하는 것이 있느냐?”

“송구하오나...”

원길은 우렁이 국수를 해내었다는 성취감보다는 씁쓸한 마음이 더 크기에 필요 없다고 하고 싶었다.

하지만, 서거정이 소매를 당기며 말을 막았다.

*

[작가의 말]

이미 뤄쓰펀을 알고 계신 분들이 많으시군요 ^^;;

2020년 후반부터 2021년 초반부까지 한국 드라마에 중국 음식 PPL을 엄청나게 했었던 때가 있었습니다.

여신강* 이나 빈센* 드라마에 간편식 제품으로 중국 라면이나 훠궈가 나왔었습니다.

그때 뤄쓰펀(螺蛳粉) 봉지면이 한국에 정식으로 수입이 되어 몇몇 소매점에 비치가 되었었습니다.

마트에도 한국 라면 옆에 잘 보이는 곳에 비치가 되었는데, 예전 중국 이우에서 먹었던 기억이 나서 저도 사 먹어봤습니다.

특유의 그 꼬롬한 발 냄새(?)가 잘 구현되었더군요 ㅎㅎ

뤄쓰펀 말고도 마라탕면, 쏸라펀, 홍유면 등등 중국 즉석 식품이 엄청나게 수입되었기에 알아보니 뒷광고인지 유튜브나 블로그로 중국 라면 먹는 후기가 엄청나게 올라오더군요.

유통사가 수입하며 이런 뒷작업을 한 것인지 전국 마트에 깔리는 시기와 겹치더군요.

헌데,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그때 조선구마*가 터지면서 전국 오프라인 매장에 깔릴 예정이던 중국 봉지면들이 올 스톱되며 귀신같이 유튜브나 블로그에 올라오던 중국 라면 후기들도 딱 끊기더군요.

이후 마트에서 잘 보이는 한국 라면 옆 매대에서 구석 일본 라면 옆으로 자리를 옮기더군요.

저도 그 이후로는 당기지 않아 안 사 먹었는데, 그때를 생각하면 뭔가 보이지 않는 손이 우리가 먹는 것까지 손을 쓰려는 것 같아 씁쓸해지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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