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쉐프 조선을 부탁해!-139화 (139/327)

139. 선후(先後) 문제.

무찰라타는 의주 목사 전원길에게 미역국 끓이는 법을 배워 왔으나, 문제가 있었다.

1년에 3~4번 움직여야 하는 초원의 삶이었기에 간이 화덕에 조잡한 냄비를 올려 밥을 짓고 국을 끓이는 건 어떻게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나무 그릇과 숟가락, 젓가락이 없는 게 문제였고, 여진족은 불 가에 모여 앉아 고기를 나눠 먹었기에 원길처럼 차려 먹을 탁자가 없었다.

어쩔 수 없이, 부락의 의자란 의자를 다 모으고 큰 나무 보관 상자를 탁자처럼 놓고선 거기에 어머니들에게 드릴 밥과 국을 차렸다.

“조선의 관리에게 배운 것인데, 우리가 이제까지 먹던 것과는 그 맛이 다릅니다. 어머님들에게 맛을 보여주고 싶어 배워 왔습니다.”

무찰라타의 나이가 마흔이었기에 그의 어머니들은 대부분이 환갑을 바라보는 나이였는데, 물에 불려 후루룩 마실 수 있는 미역국을 다들 좋아했다.

그런 어머니들을 보고 무찰라타는 생각했다.

평상시 먹는 고깃국 물과는 다른 맛이었기에 어머니들이 잘 먹는 것도 있었지만, 이런 부드러운 음식이 많기에 조선의 노인들이 더 오래 사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었다.

“족장, 저걸 우리도 먹을 수 있소? 냄새가 아주 좋고, 엄청난데, 저 검고 흐물거리는 것이 뭐기에 저리 잘 먹는 거요?”

“우리도 좀 나눠 먹읍시다.”

평상시와는 다른 음식을 먹는 노인들의 모습에 부족민들이 같이 먹자고 했지만, 받아온 미역과 쌀은 10여 명이 먹을 분량밖에 되지 않았다.

부족장으로서 부족민들에게 별미인 쌀밥과 미역국을 만들어 먹이고 싶었으나, 그럴 여유가 없었다.

초피라도 다 팔렸다면 얼마간 쌀을 사 올 수 있었겠지만, 초피를 중국에 팔기 전에는 이번 겨울을 넘기기에도 사정이 빠듯했다.

“쌀밥은 이가 없는 노인들에게나 어울리는 음식이지. 이가 있는 여진인이라면 곡식보다는 고기를 먹어야 용맹해질 수 있지.”

돈주머니를 움켜쥐었다 말았다 하는 아비를 보곤 아들 무철호가 나섰다.

“다들 새로운 걸 먹고 싶어 하는 것은 알겠으나, 훌리가이 부족이 조선에게 멸족당하면서 그 빈 땅을 우리가 가져오며 타 부족에게 주었던 양이 많았소. 그러다 보니 부족민 모두가 밥과 국을 먹을 수 있게 할 재산이 없소.”

“그럼 옛날처럼 약탈해버립시다!”

“맞아. 조선을 털면 되는 거지.”

“훌리가이 부족이 왜 멸족 당했는지 잊었소?”

호전적으로 약탈하자고 외치던 이들이 조용해졌다.

훌리가이 부족의 족장 이만주는 명나라와 조선 양쪽에서 벼슬을 받고, 성과 이름도 받았으나 명나라가 북원과의 싸움에 한창일 때 요동을 약탈했었다.

그리고, 명나라의 추적을 피해 일족이 도망쳤으나, 이시애의 난을 평정하고 북상했던 남이 강순의 군대에 이만주와 훌리가이 부족이 멸족을 당했었다.

“일만에 달했던 훌리가이 부족을 멸족시킬 힘이 명과 조선에 있는데, 우리처럼 작은 부족이 약탈하면 어떻게 되겠소?”

“그럼, 초피도 안 팔리는데, 어떻게 하겠다는 거요? 올해는 비축된 것으로 겨우 넘긴다고 해도 내년은 뭐로 살 거요?”

약탈은 안 된다고 나섰던 아들 무철호가 이건 답하지 못했다.

“교역을 해야지. 평원에서는 말과 양이 흔하고, 조선에선 곡식이 흔하니, 서로 바꿔야지. 그게 약탈보다 못해 보이겠지만, 우리 같은 작은 부족은 그렇게 살아야 한다.”

“초원의 용맹을 버리자는 말이군. 쳇.”

부족민 중에서 저돌적인 몇몇이 약탈 없이 교역으로 살아야 한다는 말에 불만을 토했지만, 그들도 입으로만 떠들 뿐이었다.

훌리가이처럼 큰 대 부족도 몰살을 당하는 마당이니 마땅한 방법이 없었다.

그렇게 사람들은 흐지부지 흩어졌다.

“아버지가 무슨 생각을 하시는지 압니다. 저도 일족이 조선에 완전히 귀의하는 것을 생각해 봤었습니다.”

아들은 부족의 안정적인 발전을 위해 용맹을 포기해야 하는지 고민하는 아버지의 고민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정주(定住)하게 된 여진인들을 몇 만나봤었습니다. 농사를 하게 되면 안정적으로 농작물을 수확할 수 있다고 했지만, 실제로는 가뭄이 들거나 태풍이 강하게 오면 농작물의 절반도 수확하지 못한다고 합니다.”

“그렇지. 양과 말도 혹한에 얼어 죽을 수 있지만, 그런 농작물보다는 안정적이지.”

“네. 그래서 생각한 방안이 부족의 반은 조선 땅에서 농사를 짓고 나머지 반은 지금처럼 목초지를 찾아 움직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반반?”

“네. 목동이나 남자들은 목초지로 움직이고, 기운이 떨어진 남자들이나 여인들은 조선의 안전한 땅에서 농사를 짓든, 아니면 그 관리가 말한 수유를 만들든지 하는 겁니다. 지금 그 관리는 이제까지의 관리들과는 다르다고 들었는데, 그가 있을 때 하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무찰라타는 아들의 말에 고민이 되었다.

분명 목사라는 벼슬의 그자는 이제까지 겪어 보았던 조선의 관리와는 달랐다.

먼저 여진인들에게 손을 뻗쳐 손해 보지 않게 알려주었고, 같이 밥을 먹을 정도로 격식을 내려놓을 줄 아는 자였다.

“미역은 곡식보다 싸다고 하니, 그걸 좀 더 사오며 한번 이야길 해보겠다.”

***

원길은 무찰라타를 비롯한 여진인들이 말린 미역을 좋아해서 많이 사 가자 의주를 오가는 삼식이의 상단을 통해 말린 미역을 대량으로 거래하기 시작했다.

덕분에 요오드(아이오딘)부족으로 갑상선에 문제가 있던 여인들의 임신이 많아졌고, 아이들이 많이 태어나기 시작했다.

물론, 그 이유가 미역인지 알지 못할 뿐이었다.

그리고, 원길의 부인도 내기로 딴 암소의 젖을 매일 마셔서 그런지 아이가 들어섰다.

“원종이가 우유를 매일 끓여 먹으라고 하던데, 이게 확실히 영양가가 있는 모양이구나. 이 우유를 먹고 아기가 생기다니.”

“큰 도련님. 그럼, 여기 의주에도 왕십리처럼 농장을 차리는 게 어떻겠습니까요? 소를 늘려 키우고 우유로 수유를 만들어 낸다면, 충분히 수익이 나오지 않겠습니까요?”

미역을 가지고 온 삼식이의 말에 원길도 혹했다.

여진족들이 염소와 말을 풀어두고 목초지를 찾아 이리저리 움직였지만, 그렇게 하지 않고 조선에서 소를 키우듯이 가둬두고 풀을 베어 먹인다면 훨씬 더 쉬울 것 같았다.

“괜찮을 것 같구나. 일단 작게 한번 해보자.”

그렇게, 서로 필요가 있었던 원길과 무찰라타는 의주 외곽에 축사를 만들어 새끼가 있는 암소 4마리와 염소 20마리로 수유 농장을 만들었다.

여진인들은 풀을 베어 쇠죽을 쑤어 주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너무 억세서 소가 먹지 못하던 덤불도 끓여서 주면 소가 먹을 수 있다는 것에 놀라워했다.

그리고 콩을 수확하고 남은 콩대와 여러 곡식을 수확하고 남은 대를 모아 소와 염소의 먹이로 주는 것에 감탄했다.

“무찰라타 당신 부족은 농사를 짓는 것에 거부감이 없는 거요? 장계를 보고, 듣기도 했는데, 초원의 여진인들은 정주하는 것에 거부감이 있다고 하던데.”

“거부감이 있었지만, 미역국에 다 녹아 버렸고, 닭고기의 고소함에 잊어버렸소. 먹는 게 확 달라지다 보니 초원의 자유도 어느 정도는 잊히오.”

“하하하. 그 정도요?”

“양과 말고기만 먹던 이들이 전 목사가 알려준 여러 요리법을 알고는 다들 새로운 걸 먹을 수 있다는 것에 반했소. 오히려 일찍 정착하지 않은 걸 후회하는 판이오.”

“정착한 것에 다들 만족해서 다행이오. 그리고 연락이 왔는데, 한양에서 북경으로 가는 상행단이 출발했다고 하오. 아들을 상행단에 포함시킬 터이니 가지고 있는 초피를 모두 다 챙기시오.”

“알겠소.”

***

“전원길 목사는 따로 본자기를 가지고 가오?”

“네. 공신 부인께 드릴 것과 만귀비(萬貴妃)께 드릴 것을 따로 챙겼습니다.”

“다행이구만. 명 조정의 실세가 만귀비라고 하니 각별히 주의해 주시오.”

“여부가 있겠습니까.”

조선에서 처음으로 북경으로 가는 상행단을 이끄는 이는 예조판서 서거정(徐居正)이었는데, 젊은 시절 수양대군과 명나라를 다녀온 경력이 있었고, 시와 글이 높아 명나라 조정에서 그를 환대하는 이들이 많았다.

그래서 첫 상행단의 책임자로 뽑혔다.

“헌데 대감. 몇몇 여진 족장들이 중국과 교역할 물건을 들고 따르겠다고 하온데, 상행단 뒤에 붙여 따라오게 해도 되겠습니까?”

“본시 어느 정도의 길잡이로 여진인들이 따르는 것으로 아는데, 뭔가 특별한 것이 있는가?”

“초피를 비롯해 가죽을 좀 많이 들고 오다 보니 수레가 다섯 대 분량입니다.”

“다섯 대? 뭐가 그리 많은가?”

서거정은 조선의 상행단 수레가 7대인데, 여진족의 수레가 다섯 대라고 하자 의문을 가졌다.

이에 원길은 초피가 나이기온 옷 때문에 조선에 팔리지 않아 모든 가죽이 다 중국으로 팔아야 하는 사정을 설명했다.

“흠. 성하(城下)여진인들은 우리가 떠안아야 하니 어쩔 수 없군. 자네가 알아서 하게.”

상행단은 원래 가던 길이 아닌 돌아오면서 들리는 탕산성을 먼저 갔는데, 이는 공신 부인 한 씨를 만나 도움을 얻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공신 부인 한 씨는 북경으로 돌아갔다고 하여 만나지를 못했다.

그렇게 북경에 도착하자 문제가 생겼다.

북경에 입경했기에 황제인 성화제에게 인사를 올리려고 했으나, 명의 관리는 상행단이 사은사와 같은 정식 사절이 아니었기에 성화제에게 인사를 올릴 필요가 없다고 만나지 못하게 했다.

그것이 문제의 시발점이었다.

그래서 상행단의 책임자인 서거정은 조정의 실세라는 만귀비를 찾아가 인사를 올리고, 본자기를 선물로 올려 명나라의 대신들에게 본자기를 뿌리려고 했다.

하지만, 상행단의 부책임자인 한계희(韓繼禧)는 아무리 조정의 실세가 만귀비라고 하더라도, 성화제를 키우고 했던 공신 부인 한 씨에게 먼저 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물론, 한계희와 공신부인 한 씨가 먼 친척이기도 했고, 실세가 아무리 만귀비라도 황제에게 존경받는 한 씨가 웃어른이니 먼저 가야 하는 것이 맞았다.

하지만, 실세이자 권력을 잡고 있는 이가 시기와 질투가 많다는 만귀비였다는 게 문제였다.

서거정은 친인들에게 들은 것이 있기에 공신 부인에게 먼저 가게 되면 만귀비에게 책을 잡힐까 두려워했다.

상단의 책임자와 부책임자가 이걸로 다투다 보니 상행단을 따라온 상인이나 여진족들은 물건을 내다 팔수가 없어 마음이 급했고, 상인이나 여진족들과 친하게 지내는 원길에게 여러 말을 쏟아내었다.

결국 원길이 총대를 멨다.

“그럼 이렇게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전 목사 뭐가 어떻다는 것인가? 예법에 따라야 하는 것이네. 예법! 웃어른인 공신 부인 한 씨에게 먼저 가는 것이 당연한 것 아닌가?”

“네. 그게 맞을 겁니다. 헌데, 공신 부인께서 북경을 떠나 탕산성에 자주 있으셨던 이유가 청탁하는 이들을 피해서 탕산성에 계셨다고 들었습니다. 그것은...”

“맞아. 그것은 실세인 만귀비의 은근한 압력이 있었기에 자리를 비켜주신 거라는 말이지. 그러니 만귀비에게 먼저 가는 것이 당연하네.”

서거정은 원길이 자신의 편을 드는 것 같자 웃으며 만귀비에게 먼저 가야 한다고 확언을 했다.

“아니 되오! 나라를 위해 공녀가 되어 오셨던 분인데, 지금의 실세가 만귀비라고 그쪽을 먼저 찾아가는 것은 아니 되오. 언제든 쓰면 뱉고 달면 삼킨다는 소인배의 행태이지 않소. 공신 부인께서 얼마나 상심하시겠소?”

“하지만, 공신 부인께서는 선한 분이시니 우리가 만귀비에게 먼저 가도 이해해 줄 것이오.”

“그게 더 화가 난다는 말이오. 언제나 조선을 위해 희생하시는 공신 부인께 난 그렇게 할 수 없소. 그렇게 이해만 따지려고 한다면 서판서는 나를 밟고 가시오.”

서거정은 드러눕는 한계희에게 버럭 하려고 했지만, 세종시절 공녀로 보내진 공신 부인의 아픔을 알기에 화를 낼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렇게 하여 만귀비의 미움을 우리가 받을 수도 있소.”

“저어기... 그래서, 제 생각을 이야기해도 되겠습니까?”

다시 다투려는 둘 사이에 원길이 끼어들었다.

“제가 사람들의 눈을 피해 공신 부인께 가서 인사를 드리고 만귀비에게 먼저 갈 수밖에 없다는 것을 설명해 드리면 아니 되겠습니까? 공신 부인께서 그렇게 하라고 하신다면 공식적으로 만귀비에게 먼저 가고, 만귀비를 신경 쓰지 말고 자신에게 먼저 오라고 한다면 공신 부인께 먼저 가는 것으로 하시지요. 어떻습니까?”

“으음. 좋아. 그렇게 하면 비공식적으로 공신 부인께 먼저 가는 것이니 난 찬성하지.”

한계희는 비공식적이라도 먼저 방문하는 것이니 찬성을 했다.

“나도 좋네. 그럼 전 목사가 바로 움직이도록 하게.”

서거정도 공신 부인의 의향부터 확인하는 게 맞다 여겨 찬성했다.

***

“호호호 그게 그리 큰 걱정이었느냐?”

공신 부인 한 씨는 밤에 몰래 찾아온 원길의 이야기를 듣고는 한참을 웃었다.

“네. 저희는 공식 사절이 아니다 보니 최대한 책을 잡히지 않아야 하옵니다. 그러니 눈치를 볼 수밖에 없습니다.”

“나는 괜찮으니 만귀비에게 먼저 가거라. 사실 누가 먼저인 것은 만귀비도 따지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만귀비는 질투가 많은 사람이니 어찌 될지 알 수 없기도 하지. 만귀비에게 먼저 가거라.”

“네. 알겠사옵니다.”

“참. 만귀비에게 가더라도 네가 여기에 먼저 왔다는 것은 비밀로 해야 할 것이다.”

***

원길은 공신 부인의 허락을 맡고 저택을 나와 일행이 묵고 있는 곳으로 향하는데, 그런 원길에게 다가오는 이들이 있었다.

“공신 부인의 저택에서 나오는 것을 보았는데, 무엇 때문에 방문했는지 물어도 되겠소?”

“그렇게 묻는 그대들이 누구인지 먼저 물어도 되겠소?”

원길과 동행한 역관이 누구인지 물었다.

“동창(東廠)에서 나왔소. 저자는 조선인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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