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8. 내기. (2)
“하하하! 먹는 내기라면 나도 좋아하는 내기요. 져 본 적이 없지. 그래 무엇을 먹는 내기를 할 것이요?”
무찰라타는 방금까지 불판에 고기를 구워 먹고 수제비까지 먹었지만, 더 먹을 수 있다며 호기를 부렸다.
“그런데, 내기라는 것은 서로가 무엇인가를 거는 것이 아니오? 나는 이 철립 불판을 걸었는데, 그대는 무엇을 내기에 걸 것이요?”
무찰라타는 무엇을 걸어야 할지 고민했다.
“뭐 가지고 싶은 게 있소? 말이 없던 것 같은데 말이 필요하시오?”
“말은 역참의 말을 써도 되니 필요가 없소이다. 그것보다는 젖이 많이 나오는 암소와 송아지나 한 마리 걸어주시오.”
무찰라타는 철립 불판과 암소의 가치를 비교하려 했지만, 자신이 지지 않으면 되는 일이었다.
“좋소! 그럼, 뭘 먹으면 되는 것이요?”
“내기는 간단하오. 내가 주는 한 움큼의 풀을 먹고 두 시진 안에 토하지 않으면 그대가 이긴 것이요.”
“한 움큼의 풀? 닭 한 마리도 아니고, 한 움큼의 풀? 지금 장난하오? 나를 뭐로 보고 이런 장난을 치는 것이요!”
“허허, 무찰라타 족장! 어찌 그리 생각이 짧소. 전 대인이 일부러 져주기 위해서 내기를 하는 것을 모르겠소?”
“면피를 위한 내기인데, 무찰라타는 어찌 그렇게 화를 내시오.”
무찰라타는 자신을 업신여긴다고 화를 내었는데, 다른 족장들의 말을 듣자, 그제야 생각 없이 화를 내었던 게 미안해서 얼굴이 붉어졌다.
병장기로 전용될 수 있어 무쇠로 된 것을 여진인들에게 주지 말라는 법을 내기라는 조건으로 은근슬쩍 넘어가려는 것인데, 그걸 못 알아챈 것이 부끄러웠다.
“흠흠. 화를 내어 미안하오. 그래 그 풀 한 움큼은 어디에 있소? 얼른 먹고 담소나 나누도록 합시다.”
원길은 여진족 족장들의 말을 듣고는 속으로 웃음이 났다.
자신은 분명 내기에서 이길 수 있기에 불판을 넘기지 않으려고 했는데, 이들은 무찰라타에게 져주기 위해 풀 한 움큼만 먹인다고 승부를 미리 예단하고 있었다.
‘한 움큼의 풀이라고 했지만, 그게 바다나물인 미역일 줄은 몰랐을 것이다.’
의주가 바닷가와 그리 멀지는 않았지만, 이쪽 바다에서는 미역이나 다시마를 먹는 이가 없어 건조 미역 자체를 구할 수 없었다.
이번에, 부인이 올라오며 미역 말린 것을 가져왔는데, 물에 넣으면 3~4배로 불어나는 것이 재미있다며 같이 국을 끓이고 했었다.
그 미친 듯이 불어나는 양을 알기에 미역 한 움큼이면 충분할 것 같았다.
“정말 이 딱딱한 풀 한 움큼을 내가 먹고 두 시진 동안 토하지 않으면 되는 것이요?”
무찰라타는 고기와 수제비를 이미 먹었지만, 이 정도의 말린 풀이라면 두 시진이 지나면 소화까지 다 시킬 수 있을 것 같았다.
“말린 풀이라 씹어 삼키기 힘드니 물 한 잔과 같이 먹으면 되오.”
무찰라타는 호기롭게 미역 말린 것을 입에 넣어 씹었는데, 의외로 잘 씹히지 않자 물과 함께 한 번에 삼켜 버렸다.
소금 간을 한 것 같은 짭짤한 맛이 느껴졌지만, 맛을 음미할 새도 없이 미역은 목구멍을 넘어가 버렸다.
“과연, 호기롭소. 그럼 이제 이 근방 관련으로 이야기나 합시다. 초피 외에도 이야기 할 것이 많소이다.”
여진 족장들은 이미 내기가 끝난 것 같았지만, 그래도 무찰라타가 이겨 불판을 들고 가는 것을 보기 위해 같이 어울려 놀았다.
무찰라타도 호기롭게 같이 앉아 이야길 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부터 뱃속이 이상해진다는 걸 느꼈다.
소화가 빨리 되게 하려고 술도 한 잔 마셔보고 트림도 일부러 했지만, 소화되어 내려가야 할 뱃속이 점점 불어나는 것 같은 불쾌감이 느껴졌고, 기분이 나빠졌다.
한 시진이 지났을 때쯤엔 식은땀이 나기 시작했고, 금방이라도 뱃속에 든 것이 올라올 것 같았다.
마치 여인네가 아이를 잉태한 것과 같이 뱃속에서 뭔가가 자라나고 있는 것을 느꼈다.
“무찰라타 족장 괜찮으시오? 얼굴이 허옇게 되었고, 땀이 너무 나는 것 같소.”
“내... 괜찮소... 내 잠시 밖에 나가 볼일을... 으에에엑! 크에엑!”
무찰라타는 일어서 나가려다 말고 뱃속에 든 것을 입으로 토해내기 시작했다.
한 번의 구토로 끝날 줄 알았으나 몇 번이고 토해냈고, 물에 불어난 미역과 더불어 오늘 먹었던 것들을 모두 다 토해냈다.
“옷에 튈라!”
다들 바닥에 엎드려 토하는 무찰라타를 피해 물러났는데, 토해내는 양이 엄청난 것을 보곤 다들 놀라워했다.
“이... 이러면 내기의 승자는 전 목사인 것이군? 자신 있게 내기를 하자고 한 이유가 있었구만.”
“설마, 말린 풀 한 움큼이 저리 크게 불어날 줄이야.”
“놀랍구만. 어찌 저렇게 불어나는 것이지? 저걸 모르고 있었던 무찰라타가 내기에 져버린 것이군.”
뱃속의 위액까지 다 토해내며 기력을 다 쏟았는지 마치 술 취한 사람처럼 무찰라타가 널브러지자 그의 병사들에게 데리고 가게 했다.
***
“내가 졌소.”
토하다 실려 간 무찰라타는 나흘 후에 돌아왔는데, 내기를 걸었던 암소 한 마리와 송아지를 데리고 왔다.
“속은 좀 괜찮소?”
“다 토해내고 났음에도 이틀은 제대로 뭘 먹을 수 없었소. 도대체 그, 풀은 무슨 풀이오? 조선의 텡그리라는 무당들이 만들어준 저주받은 풀이요? 어찌 그렇게 불어나는 것이요? 진짜 먹을 수 있는 풀이긴 했소?”
“하하하. 먹을 수 있는 나물이요. 바다나물의 한 종류인데, 우선 시간이 점심때이니 같이 낮상이나 합시다.”
무찰라타는 조선인들이 방에 앉아 작은 상에 밥을 먹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작은 상에 먹었기에 무릎을 접고 몸을 움츠려 먹어야 하는 게 불편해 귀찮아 거부하려 했다.
하지만, 자신이 알던 조선인들과는 다르게 큰 탁자에 음식이 차려지는 것을 보곤 마주 앉았다.
“우리 조선인들은 원래 개별 상에 차려 따로 밥을 먹었소이다. 허나, 내 동생이 말하길, 같은 상을 받아 같이 얼굴을 마주하고 밥을 먹게 되면 그 친근함이 커진다고 하더이다. 그래서 의주로 가게 되면, 독상을 하지 말고, 이렇게 탁자에 앉아 같이 식사하면 그것만으로도 서로 간의 신뢰가 생길 거라고 했소.”
“오! 그 동생이 혹시 여진인 어미에게서 난 동생이오? 그 동생의 말대로 평원에서는 불가에 같이 앉아 마주 먹고, 먹여주는 것이 친근감의 표현이오.”
원길도 의주로 와서 평원의 여진인들이 식사하는 것을 보았는데, 원종에게 미리 들었음에도 작은 소도로 고기를 직접 잘라 먹는 식사법을 보곤 놀랐었다.
숟가락, 젓가락 대신 작은 소도로 고기를 잘라 입 앞에 대어서 서로 먹여주었는데, 목 앞에 소도가 왔다 갔다 할 정도로 가깝게 앉아 식사를 했으니 서로가 신뢰한다는 것을 증명해주는 식사법이었다.
“내 동생은 한 배에서 난 동생이오.”
“신기하구려. 이제까지 조선인들은 그렇게 같이 어울려 먹는 것을 야만적이라고 했었는데, 어찌 그렇게 바뀐 것이오?”
“동생이 의주에 가서 여진인들과 어울려 살려면 그렇게 어느 정도는 법도를 허물어야 한다고 했소. 물론, 여진인들도 조선인들과 어울려 살려면 숟가락, 젓가락을 쓰는 법도를 배워야 한다고도 했소.”
“서로 하나씩 양보하고 타협하자는 말이로군. 이제까지 의주와 변경에 왔던 양반들이나 관리들과는 생각이 다른 것 같아 신기하오. 당신 같은 관리나 양반들이 많았다면 조선과 여진의 관계가 훨씬 더 좋은 관계가 되었을 것이오.”
어떻게 보면 압록강 근처에 살던 여진인이나 요동에 살던 여진인들이 조선이나 중국에 동화되지 못한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서로의 문화만을 강요하며 여진의 문화를 야만적이라고 하여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 컸었기에 여진족들로서는 자신의 문화를 버리고 무작정 동화되기가 힘들었을 터였다.
특히나, 관리나 양반들이 나서 여진인들과 어울려 놀며 문화로서 계도 하여야 했는데, 이제까지의 양반이나 관리들은 그런 융통성이 부족했고, 여진족의 풍습은 무조건 배제하려고 하다 보니, 힘에 밀려 조선의 땅으로 들어오는 이들을 제외하고는 조선에 동화되는 평원 사람들이 별로 없었다.
특히 먹는 것에서부터 차이가 나니 쉽사리 동화될 수가 없었다.
“고기 대신 이 밥과 국을 먹는 것이오. 그리고, 이 국이 당신이 고생한 미역이란 바다나물로 끓인 것이오.”
자신을 토하게 만든 나물로 끓인 국이라는 소리에 혐오하는 느낌이 들었지만, 뽀얀 흰 국물에 거무칙칙한 건더기가 들어 있는 모습이 신기하여 숟가락을 들었다.
“먼저 국물부터 한번 떠먹어 보시오. 그리고 미역을 먹어보면 그때와는 식감이 천지 차이로 날것이오.”
무찰라타는 며칠 전 호기롭던 모습과는 달리 조심스레 미역 국물을 떠먹었다.
“아!”
이제까지 먹었던 고기를 넣어 끓인 국과는 다른 맛의 국물이었다.
아니, 그냥 다른 맛이 아니라, 맛의 결이 달랐다.
흑마와 백마의 차이보다는 말과 소의 차이 같은 그런 느낌이었다.
처음 먹어보는 국물 맛이라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뭔가 고깃국과는 다른 것이 느껴졌다.
소금의 짠맛이 나는 것은 같았는데, 뭔가 흔히 먹는 소금의 맛이 아니었다.
평원의 고기를 넣어 끓인 국물은 뭔가 원초적인 국물의 맛이었다면, 이 미역이라는 바다나물로 끓인 국은 산뜻하고도 다른 무게감을 주는 국물의 맛이었다.
“이 국에는 고기가 안 들어가 있는 것이오?”
“고기는 들어가지 않았소. 말린 조개를 미역과 같이 넣어 끓인 국물이라 바다의 맛이 날거요. 아, 무찰라타는 바다를 본 적이 있소? 국을 끓인 데 들어간 미역과 조개는 바닷물 속에서 자라는 것이오.”
“한번 가보았소. 아, 그러고 보니...”
그제야 국물 맛의 결이 다르다는 것이 느껴진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산뜻한 국물 맛이 처음 바다를 보았을 때 맞아보았던 짠 내 나던 바닷바람의 맛과 닮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평원의 양과 염소, 말과 소의 고기가 최고라고 생각했었고, 간혹 먹는 늑대나 땅쥐 고기를 별미로 여겼었다.
하지만, 진짜 별미는 따로 있었다.
바다의 맛.
그 맛은 무찰라타가 이제까지 최고라고 여겼던 육고기 외에도 다른 먹을 수 있는 맛이 있다는 것을 알게 해준 최초의 맛이었다.
“미역국에 밥을 말아 먹어보시오. 그리고, 미역국을 끓일 때 조개 대신에 소고기를 잘게 썰어 넣어 먹으면 고기의 풍미가 또 국에 섞이니 그 맛 또한 일품이오.”
흰쌀밥을 미역국에 말아 먹어보자, 이게 또 맛이 확 달라졌다.
바다의 산뜻한 국물 맛이 육지에서 키운 곡물에 스며들어 담백한 곡식의 맛과 섞여 버리자 뭔가 든든한 음식이 되었다.
전원길 목사의 말처럼 미역국에 소나 말고기를 썰어 넣어 끓여 먹어보고 싶어졌다.
바다에서 나는 것과 육지에서 나는 것, 그리고, 육지에서 나고 자라 기름기가 채워진 고기의 맛이 섞여들면 어떤 맛일지 궁금했다.
“이 미역을 좀 줄 수 있소?”
“물론이오. 많이는 주지 못하지만, 그때 먹은 한 움큼이면 열 명이 먹을 수 있는 미역국이 될 것이오.”
“그게 열 명이나 먹을 수 있는 양이었소? 아니, 그런 흉악한 짓을 내게 한 것이오?”
“아니. 그때는 겨우 한 움큼이라고 해놓고는 이제는 딴말이오?”
“그때는 몰랐으니깐... 흠흠. 여튼 미역과 말린 조개를 좀 주시오.”
“아예 끓이는 법을 내가 알려주겠소. 재료가 같다고 다 같은 맛을 내는 것이 아니니 내가 같은 맛이 날 수 있도록 알려주겠소.”
원길은 무찰라타에게 미역을 물에 불리고, 끓이면서 간장과 참기름을 넣는 것까지 상세히 알려주었다.
그리고, 밥까지 지어서 국에 말아 먹을 수 있게 곡식도 주었으며, 소금 간보다 더 풍부한 맛을 내는 간장도 챙겨주었다.
신나게 집으로 돌아가는 무찰라타의 모습에 원길은 이제까지 조선이 여진족들을 동화시키려고 했던 방식이 잘못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의(仁義)나 예의(禮儀) 같은 공맹의 도를 가르쳐 야만스러움을 없애는 것보다는 조선의 식문화를 먼저 알려주어, 먼저 먹고 사는 것부터 같아지는 것이 먼저이지 않을까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