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쉐프 조선을 부탁해!-137화 (137/327)

137. 내기. (1)

“내가 조선 상인들에게 초피(貂皮 족제비 털)을 사지 말라고 한 것은 맞소이다.”

“아니, 왜 그렇게 한 것이요? 우리 부락은 초피를 팔아야 양식과 의복을 살 수 있단 말이요. 설마, 인정(人情)을 줘야 한다는 말이오?”

“인정? 아! 뇌물이나 선물을 이야기하는 것이라면 그걸 받고자 내가 상인들을 막은 것이 아니오.”

“그럼, 무엇 때문이요? 가뜩이나 올해 의주로 상인들이 작게 온 것 같은데, 이러면 우리도 다른 수를 생각할 수밖에 없소. 우리는 생존이 걸린 일이란 말이오.”

여진족장 무찰라타는 병사를 일으켜 난이라도 일으킬 것처럼 눈에 힘을 주고 이야기를 했다.

“내가 조선 상인들에게 초피를 사지 못 하게 한 것은 인정(人情) 때문이 아니오. 조선 상인들과 초피를 파는 여진부족 모두를 위해서 그러는 것이오.”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요. 거래를 막는 게 서로를 위하는 일이라니.”

여진족장들은 말도 안 된다며 벌떡 일어서선 금방이라도 천막을 나가려고 했다.

“다들 흥분을 가라앉히고, 일단 내 말을 끝까지 들어 보시오. 지금 여기서 조선 상인들이 초피를 구매하여 평양이나 한양으로 내려가면 무조건 손해를 보게 되오. 그리고 큰 손해를 입은 상인들은 다시 일어설 수 없게 되어 내년에는 의주로 오고 싶어도 오지 못하게 될 것이오. 지금 초피를 사게 되면 조선 상인과 여진 부족 모두에게 화(禍)가 미치게 되기에 그 화를 막아 보고자 내가 나선 것이오.”

“흥! 왜 초피가 평양과 한양에서 손해를 보게 된다는 말이오? 겨울이 오면 옷을 만들어 입기 위해 늘 수요가 있는 법인데.”

“작년까지는 그 말이 맞았소. 하지만, 이젠 달라졌소이다. 삼돌아 내 나이기온 옷 두 벌을 모두 들고 오거라.”

원길은 의주로 오며 들고 온 나이기온 옷을 여진족장들에게 보여주고, 한 번씩 직접 입어보라고 했다.

여진족장들은 나이기온 패딩 속에 든 털의 푹신함에 놀라워했다.

“지금 조선에서는 이 옷이 겨울옷으로 팔리고 있소. 돈깨나 있다는 양반들은 이 옷을 다 샀다고 보면 될 것이요. 가격은 초피 가죽으로 만든 옷의 절반도 되지 않소이다. 그러니 다들 털가죽으로 만든 옷을 입지 않고, 이 나이기온을 사고 있으니, 지금 초피를 사게 되면 손해를 볼 수밖에 없는 것이오.”

여진족장들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무리 새로운 옷이 나왔다고 해도 초피의 부드럽고 고급스러운 질감을 싫어할 것 같진 않았기 때문이었다.

“내 말이 거짓말 같으면 평양에 사람을 보내어 송상 사람들에게 물어보시오. 매년 초피를 가장 많이 구매해 가던 송상이 올해에는 왜 의주로 오지 않았겠소?”

원길의 말을 들은 족장들은 그제야 송상이 오지 않은 것이나, 예년과 비교해서 남부에서 올라온 상인들 숫자가 적은 것이 우연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럼 이제는 가죽을 사는 상인들이 없어지는 것이오?”

“아마도 그렇게 될 것 같소이다. 아직 이 나이기온 옷이 중국에는 퍼지지 않았으니 중국 상인들은 초피를 구매할 것이오. 그러니 중국 상인들에게 초피를 팔도록 하시오. 직접 중국 땅으로 가는 것이 힘들다면, 북경으로 가는 조선의 국영 상단에 초피를 넘겨 중국에서 팔게 하는 것이 괜찮을 것이오.”

원길이 대안으로 중국과 조선의 국영상단 이야기를 했지만, 여진족장들은 머리가 아플 정도로 고민이 커질 수밖에 없었다.

늘 잡을 수 있는 족제비나 짐승의 털이 있었기에 겨우내 먹을 양식을 살 수 있었는데, 이제는 아예 사 간다는 사람이 없어진다고 하니 머리가 아플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저 나이기온이란 옷이 중국인들에게도 알려져 저것만 입게 된다면 초피가 더는 팔리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럼, 이제 우리는 뭘 해서 겨울을 날 수 있다는 말이오? 올해는 비축해 둔 것이 있기에 어떻게든 되겠지만, 내년, 내후년에는 초피나 다른 짐승의 가죽이 팔리지 않아 먹을 게 없으면 칼을 들고 약탈하는 방법밖에 없소.”

무찰라타의 말에 다른 여진족장들도 방법이 없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소나 양을 더 많이 키워보는 것은 어떠오? 거기서 나는 우유로 치선(治膳)과 수유(酥油) 만들어 파는 거요. 초피보다 가격은 싸지만, 가축을 늘리는 만큼 양을 늘려 만들 수 있으니 분명 돈이 될 것이오.”

“치선과 수유라...”

여진족의 족장들도 어떤 것이 치선이고 수유인지 정확하게는 몰랐다.

어떤 때는 치즈가 되고, 어떨 때는 버터가 되어 버릴 만큼 제조법이 체계적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사실 원길도 족장들과 마찬가지였다.

원종에게 듣기만 했지, 수유와 치선을 정확하게 구분하지 못했다. 그저, 소와 염소의 젖을 휘저어 만드는 것인데, 빵을 만들 때나 음식을 만들 때 쓰는 최상의 재료라고만 들었었다.

“조선에서는 달단(韃靼)들이 수유를 만들어 조정에 바치는데, 군역을 면해줄 정도로 수유를 중하게 여기오. 소와 염소를 늘려 수유를 만들어 판다면 수익이 날것이오. 그리고 내 말을 듣고 만든 수유가 팔리지 않는다면 내 동생의 상단에서 곡식으로 바꿔 줄 테니 믿고 한번 만들어 보시오.”

수유를 만들더라도 판매가 힘들 것 같았는데, 양식으로 바꿔주겠다고 하니 족장들도 머리를 굴려봤다.

분명, 수유는 소와 염소가 있으면 계속 만들어 낼 수 있었기에 판매처만 확실하다면 초피보다도 더 안정적일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초피 가격이 내려가더라도 내후년까지는 중국에 팔 수 있을 것 같으니 수익을 만들어 보며 버틸 수 있을 것 같았다.

“좋소. 내년에는 초피를 중국에 팔고, 조선에는 수유를 만들어 팔겠소. 대신에 수유를 매입해주겠다는 약조를 해주시오.”

“물론이오. 목사직을 걸고, 서약서를 쓰리다.”

원길은 그렇게 여진족 세 개 부족과 수유(酥油) 매입에 대한 서류를 만들어 날인했다.

“자 그럼, 먹고 살길이 생겼으니 고기나 구워 먹읍시다. 삼돌아 술과 고기를 내어 오거라!”

원길은 원종이 아내 편으로 보내준 철립의 챙에 고기를 올렸다.

[치이이익!]

철립 불판은 족장들과 이야기를 하며 오랜 시간 불에 달구어져서 그런지 고기를 올리자마자 요란한 소리를 내며 구워지기 시작했다.

“소고기는 살짝 덜 익어도 되니 어서 드시오. 이렇게 상추에 고기를 놓고, 식초에 절인 방풍 잎이나 깻잎을 넣어 먹으면 되오. 옳지 옳지. 그 위에 된장을 올려 먹으면 딱 좋소.”

무찰라타와 족장들은 원길이 알려준 대로 상추쌈을 싸 먹었는데, 처음에는 풀 쪼가리를 씹는 느낌이었다가, 쌈 채소가 갈라지며 봇물처럼 나오는 고기와 초절임의 풍취에 놀랐다.

쌈 채소와 함께 먹으니 고기만 먹었을 때 느꼈던 육향보다는 약했지만, 여러 맛이 섞여 한 번에 입안에서 뿜어져 나오니 그 다양한 맛에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평원을 넘나들며 먹었던 부족의 음식들과는 그 수준이 달랐다.

그리고, 된장이라는 것에 놀랐다.

무찰라타는 중국인들이나 조선인들이 콩으로 만들었다는 장을 먹는 걸 보곤 그게 맛있을 것 같아 자신도 한번 먹어봤었다.

하지만, 찍어 먹어본 된장의 맛은 이상한 떫은맛과 소금의 짠맛뿐이었다.

그때는 왜 이런 이상한 것을 먹느냐고 중국인과 조선인들을 업신여겼는데, 이 장이라는 것이 입안에서 고기와 채소를 만나자 완전히 다른 맛을 만들어 내었다.

‘이 된장의 맛은 마치 서로 다른 방향으로 달아나려는 두 마리의 야생말을 묶어주는 고삐와 같구나.’

구워진 고기의 진한 육향을 가진 고기 말과 밭에서 막 따왔기에 풍겨 나오는 풀 향의 상추 말이 입안에서 서로 다른 방향으로 날뛰고 있었다.

하지만, 이 된장이라는 것이 서로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는 두 말을 붙잡아 두고 있었다.

거기에 초절임 채소가 맛을 돋워주자, 둘을 붙잡아 두던 된장의 고삐가 조여졌다.

된장은 두 마리의 맛을 호흡 좋게 같이 달리는 쌍둥이 말처럼 맛의 균형을 잡아 주었다.

그렇게 호흡을 맞추어 달리던 쌈 말들은 입안을 맴돌다 목구멍 안으로 뛰어 들며 사라져 버렸다.

‘아!’

무찰라타는 다시 한번 입안에서 날뛰는 두 마리의 야생마가 그리워졌다.

어린 시절 길들이고 싶었으나 길들이지 못해 사촌 형들에게 양보했었던 젊은 날의 아쉬웠던 말들이 떠올랐다.

이 고기 쌈이라는 것이 그 말들에 대한 추억을 떠오르게 했고, 그런 아쉬움의 말들을 다시 붙잡아 음미할 수 있게 해주는 쌈의 맛에 반해 버렸다.

다시 한번 그 맛을 느끼기 위해 쌈을 싸먹으며 고기와 상추의 맛을 음미했다.

“다들 마음에 드는가 보오. 쌈을 먹을 때는 꼭 한입에 먹어야 하는 것을 기억하시오. 나눠 먹으면 한꺼번에 입안에서 터지는 그 맛을 느끼지 못할 것이오.”

원길은 여진족장들과 친해지기 위해서 일일이 상추쌈을 싸서 입에 넣어 주었는데, 나중에 수유 일이 잘못되거나 해서 여진족이 칼을 들고 난리를 친다고 해도 이런 잔정으로 인해 목숨은 살려주겠지 하는 생각이었다.

고기가 익으며 뿜어내는 기름은 철립 중앙의 움푹 들어간 곳으로 슬금슬금 흘러 모였는데, 거기에 물을 붓고 파를 썰어 넣고, 젓갈도 넣어 국으로 만들었다.

“여기에 밀 반죽을 떼 넣어 먹으면 고기의 기름 덕에 아주 부드러운 수제비가 되오.”

원길은 거기에 달걀도 하나 까 넣었는데, 수제비 계란국이 되어 그 구수한 냄새가 천막을 가득 채웠다.

“겨울에는 이 국물에 언 고기를 살짝 담가 국을 끓여 먹을 수 있소. 아니면 언 고기를 얇게 저며 이렇게 샤샥사샥 물에 흔들어 익힌 후 먹으면 되는 것이오.”

원길의 시범을 보자, 여진 족장들도 얇게 썬 고기를 뜨거운 국물에 휘저어 먹었는데, 두꺼운 고기와는 달리 얇은 고기를 국물에 휘저어 빨리 먹을 수 있었기에 다들 좋아했다.

“구워도 먹을 수 있고, 익은 국물을 만들어 먹을 수 있는 이 불판이 아주 마음에 드는데, 하나 얻을 수 없소?”

원길은 무찰라타의 말에 여진족 족장들에게 환심을 사기 위해 불판을 주고 싶었지만, 줄 수가 없었다.

“이게 무쇠로 만들어진 것이라 그대들에게 줄 수가 없소이다. 국법으로 병장기로 만들 수 있는 무쇠를 넘겨줄 수 없다는 것을 다들 알지 않소.”

“흥. 고기 구워 먹는 불판 하나도 마음대로 가져보지 못하는 상황이라니. 인정이 너무 없는 것 아니오. 기껏 이런 맛을 보게 해주었으면서, 집에서는 이런 맛을 볼 수 없다니 그건 너무한 거 아니오? 인정이 이리 없는 것이오?”

원길은 화기애애하게 고기쌈을 잘 먹다가 철립 불판으로 인해 다시 분위기가 이상해지자,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분명 나라에서는 병기를 만들 수 있는 무쇠를 넘겨주지 못하게 했지만, 고기쌈을 맛있게 싸 먹는 무찰라타가 불판을 녹여 무기를 만들까 싶은 마음도 있었다.

하지만, 사람의 마음은 모르는 것이었기에 거부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무턱대고 불판을 주지 않는다면 기껏 만들어진 좋은 관계가 다시 소원해질 것 같았다.

고민하던 원길은 좋은 방법을 생각해 내었다.

“그렇다면 이렇게 합시다. 나도 무쇠로 된 것을 그냥 주었다고 하면 징계를 받을 수 있으니 서로 내기를 합시다. 뭔가를 두고 서로 내기를 하였다고 하면 어느 정도 사정을 봐줄 것이오.”

말은 이렇게 했지만, 내기에서 이겨서 불판을 주지 않으면, 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나중에 족장들이 또 달라고 하더라도, 내기에서 너희가 졌잖느냐며 핑계를 댈 수 있었다.

무찰라타를 비롯해 여진족의 족장들은 원길의 내기하자는 말에 좋아했다.

평원의 남자들은 이런 내기와 시합을 아주 좋아했다.

“좋소! 그럼 어떤 내기를 할 것이요? 말을 타고 누가 먼저 다녀오는 내기요? 아니면 활을 쏘아 누가 더 가까이 날리는 내기요?”

“그런 평원의 내기는 내가 하면 무조건 질 것이 뻔하지 않소. 이 철립 불판이 걸린 내기이니 거기에 맞게 먹는 것으로 내기를 합시다. 어떻소?”

*

[작가의 말]

인정(人情)이라는 말을 사전에서 보면 ‘사람이 본래 가지고 있는 감정이나 심정, 남을 동정하는 따뜻한 마음’이라고 나옵니다.

헌데, 그 아래 딸린 다른 뜻을 보면 ‘벼슬아치에게 몰래 주던 선물’이라는 뜻도 있습니다.

조선 시대 변방의 여진족들이 조선 조정에 공물을 바칠 때 변방의 고을 수령에게 뇌물을 주었는데, 그것을 상납인정(上納人情)이라고 하였습니다.

바쳐진 공물은 다시 한양으로 보내져 궐로 반입될 인정물(人情物)이라고 해서 다시 뇌물을 주어야 했고, 그런 뇌물 빨과 공물이 좋다면 조정에서 여진족에게 명예 관직을 내려 주었습니다.

이런 내용이 조선 중기 이기가 쓴 '송와잡설(松窩雜說)'이라는 책에 나옵니다.

송와잡설을 쓴 이기는 조선의 뇌물 풍습이 여진인들에게까지 퍼져 조선은 뇌물이 통하는 하찮은 곳이라고 업신여겨진다며 부끄러워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런 부끄러운 인정이 지금도 남아 있다는 것이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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