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5. 찜닭의 빈자리. (2)
김덕형은 입안에 들어온 고사리로 만든 면의 쫄깃함에 감탄했다.
묵도 아니고, 면도 아닌 처음 먹어보는 식감이었다.
“허허허. 내 삼십 여생은 헛살았구만. 이런 식감이 있었을 줄이야. 분명 고사리를 갈아서 만드는 것을 내 두 눈으로 보았는데, 어찌 고사리의 음습한 맛은 나지 않고, 닭의 풍성한 육향이 나는 것인가.”
김덕형은 양념이 배어 맛을 내는 당면에 감탄했다는 듯이 내 어깨를 두드렸다.
“어린 양반이 가수저라라는 음식을 잘했다고 제조의 직에 올랐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뭔가 다른 힘이 작용하지 않았을까 생각을 했었네. 이건 미안하구만.”
“아닙니다. 특별한 일이었기에 그런 오해를 살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허허. 마음도 넓구만. 제조의 직에 오른 것이 잡다한 다른 것이 아닌 요리 실력으로 이루어 낸 것이라는 걸 이제야 납득할 수 있을 것 같네. 아직 어린데, 어찌 이런 요리 실력을 갖춘 것인지 놀랄 놀자구만. 허허허.”
김덕형의 말처럼 어린 나이에 사옹원 제조가 된 것을 시기하고 의심하는 이들이 많을 것 같았다.
“이 근방을 지나가는 양반들은 대부분 내 집에서 묵어가는데, 그들에게 자네의 실력을 알려주고 이 찜닭을 뚝딱 만들어 낸 것을 알리겠네. 아마, 다들 이 찜닭을 먹으면 감탄할 수밖에 없을 것이네. 참. 이 지전을 잘라 만든 면은 뭐라고 불러야 하는가?”
“이 지전으로 만든 면의 이름은 호면(胡麺) 또는 당면(唐麵)으로 부르시면 됩니다.”
“호면? 당면? 그럼, 이 면은 신라 시절 당나라를 통해 들어온 것이로구만. 아마도 당나라와 연합하여 백제와 고구려를 멸한 이후 신라가 당을 몰아내면서 이 당면도 같이 몰아 내버린 것이겠구만. 그러니, 신라의 옛 땅 사람인 우리도 모르고 있었던 것이고.”
김덕형은 자신이 당면을 모르고 있었던 이유를 그럴듯하게 유추해 내었다.
하지만, 실제 당면의 역사는 그리 길지 않았다.
남아메리카의 고구마가 아시아로 전래 되어 전분을 대량으로 얻을 수 있게 된 이후에나 당면이 만들어졌기 때문이었다.
조선 사람들은 청나라 오랑캐들이 먹었다고 해서 호면(胡麺)이라 불렀고, 중국에서 들어왔다는 의미로 당면(唐麵)이라 부른 것이지 김덕형의 추론처럼 진짜 당나라 시대 때 들어온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김덕형의 말처럼 당면의 유래를 만드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았다.
당나라가 망하고 아예 실전되어 버린 것을 조선에서 재현했다고 하면 재미있을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 노계를 써서 고기가 많아진 것도 있지만, 이 당면을 넣어서 그런지 양이 불어난 것 같구만.”
김덕형은 혼자서 당면을 절반 넘게 먹었기에 찜닭의 양이 많아진 것을 체감하고 있었다.
사실, 조선 후기에 당면이 들어와 찜닭이나 여러 음식에 널리 쓰이게 된 이유도 양을 늘리기 쉽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양이 많고 배부르게 먹었다면 맛이 보통만 되어도 사람들은 만족했기에, 밀가루에 비해 저렴한 전분으로 만든 당면은 순대의 속이 되었고, 만두의 속이 되어 조선 음식에 깊게 파고들 수 있었다.
“그리고, 자네에게는 미안하지만, 이 찜닭을 한 번만 더 해주면 아니 되겠나? 어머니와 가족에게 먹이고 싶어서 그러네. 주상전하의 음식을 담당하는 사옹원의 제조가 한 음식이라면, 어머니도 입맛이 돌아오실 것 같아서 말이지.”
“흠. 그런 일이라면 해드려야지요. 이미 시간이 오후이니 길을 나서기도 늦은 시간이고. 하루 더 머물면서 저녁으로 해드리겠습니다.”
“하하하. 고맙네. 양이 많은 음식이니 몇 명 더 부르겠네.”
함박웃음을 지으며 나서는 김덕형을 보니 왠지 사람들을 많이 데리고 올 것 같아 노계를 네 마리 잡아 먼저 핏물을 빼고 한번 끓여 내었다.
오후 늦게 돌아온 김덕형은 근방에 사는 친척을 10여 명이나 데려왔는데, 미리 준비하기도 했고, 당면과 떡으로 양을 늘렸기에 찜닭이 부족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사람이 많아진 덕분에 천인천자문 책에 양반들의 글자를 쉽게 받아낼 수 있었으니 하루 늦어지는 일정이라도 크게 손해는 아니었다.
“아니, 어머니, 찜닭이 별로 마음에 안 드시는 겁니까? 다들 당면이 맛있다고 하는데, 왜 이렇게 많이 남기시는 것입니까?”
“나라님의 총애를 받는다는 제조 어른의 솜씨는 확실히 좋았단다. 다만, 내가 불공을 드리고 있지 않느냐.”
“아차! 제가 잊고 있었습니다.”
김덕형은 그저 맛있는 음식을 어머니에게 드시게 하고 싶어서 어머니와 친척들을 불러 모았지만, 어머니가 불공을 드리고 있다는 것은 잊고 있었던 것 같았다.
“고기를 먹지 않는 내가 여기에 있으면 분위기만 흐리니 이만 일어나마. 다들 즐겁게 먹게나.”
머리가 하얗게 센 노부인은 자리를 일어나려 했지만, 내가 얼른 말렸다.
“대부인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고기가 들어가지 않은 잡채(雜菜)를 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노부인은 뭔가 불편한 기색이었지만, 여러 채소가 섞여 있다는 잡채라는 이름에 다시 자리에 앉았다.
자리가 불편해 나가시려는 걸 말린 것 자체가 눈치가 없는 것일 수도 있었지만, 왠지 돌아가신 어머니 생각이 났고, 고사리 전분으로 만든 당면도 많았기에 잡채를 해서 드리고 싶었다.
“잡채라면 한양에서 몇 번 먹어본 적이 있는데, 그것도 이 당면처럼 중국에서 온 것이 아닌가?”
“이름이 잡채(雜菜)이긴 하지만, 여러 가지 채소를 모아 볶는 것은 그 근원이 명확하지 않습니다. 쌀을 솥에 익혀 먹는 것이 어디에서 유래되었는지 알 수 없는 것처럼 산과 들에 있는 풀을 불에 익혀 먹는 것 또한 그 유래를 알 수가 없습니다. 굳이 따지자면 신농씨(神農氏)가 그 근원이 아닌가 싶습니다.”
“하긴, 신농 염제(神農 炎帝)가 처음 농사를 짓고, 백초의 풀을 먹어보며 어떤 풀이 먹을 수 있는 풀인지 알아내셨다고 했으니, 그분이 맞겠구먼.”
양반들은 신농씨가 이민족인 강족이니 중국인이 아니라는 이야기부터 해서 진주 강씨가 신농의 후손이라는 이야기까지 말을 이어가기 시작했다.
그런 이야길 들으며 당면으로 잡채를 할 수 있게 얇게 채 썰듯이 지전을 썰었다. 사실 한국에서 당면하면 찜닭이나 순대에 들어가는 것보다 잡채에 들어가 있는 모습을 떠올리는 사람이 더 많다.
조선 후기에 먹고살기 힘들다 보니 순대에 들어가는 선지와 부산물보다 값싼 당면을 넣기 시작했고, 만두 속으로도 두부나 다른 재료를 아끼기 위해 들어가기 시작했듯이 잡채도 마찬가지였다.
여러 채소보다 당면이 저렴하기에 양을 늘리기 위해 당면을 넣기 시작했고, 그 당면 특유의 식감이 좋다 보니 주객이 전도되어 이제 한국 사람에게 잡채라고 하면, 자연스레 당면이 들어간 것을 떠올리게 되었다.
고사리를 광에서 찾을 때 미리 광을 둘러보며 재료를 파악해 두었기에 도라지와 박고지, 대파, 참버섯, 숙주, 아욱, 애호박, 당근을 채 썰어 들기름에 볶았다. 그러곤, 당면을 넣어 간장과 참기름을 뿌렸다.
간장으로 인해 갈색으로 물들어 가는 당면을 보니 짭조름한 맛이 생각나 먼저 집어 먹어보았는데, 푹 익지 않은 대파와 당근의 아삭거리는 식감으로 인해 별미 중의 별미로 다가왔다.
어묵이나 돼지고기 다짐육을 넣고, 까나리 액젓을 넣으면 더 맛있을 것 같았지만, 불공을 드리고 있다기에 고기류를 넣을 수 없다는 게 아쉬웠다.
하지만, 불교도를 위한 비건식을 만든다고 생각하자, 뭔가 요리하는 재미가 있었다.
그래서 도토리묵 말려둔 묵 말랭이를 고기 대신으로 넣었고, 된장을 물에 풀어 양념으로 추가해서 볶아 내었다.
마무리로 참기름을 뿌려 접시에 담아 올리니, 다들 윤기가 좔좔 흐르는 갈색의 먹음직스러운 잡채를 신기해했다.
“채소를 섞어 볶는 음식인데, 이 당면이 주가 되니 완전히 다른 음식이 되었구랴. 어디 맛을... 오오 이 채소의 아삭거리는 맛에 당면의 탱탱하게 씹히는 맛이라니. 하하하 좋구만 좋아!”
“나는 찜닭보다 이 잡채가 더 맛있는 거 같소. 채소의 깔끔하면서도 아삭거리는 식감이 왠지 찜닭의 무거운 맛을 내려주는 것 같아서 좋구만.”
“역시 나라님이 제조직을 내릴 만 하이. 내 오늘 입 호강을 제대로 하는구만. 하하하”
안동 김씨의 유전자가 그런 것인지 김덕형처럼 다들 호탕하게 음식을 먹으며 웃어대었고, 찜닭과 비교해 이 잡채에는 아삭거리는 채소가 있어서 백화주에 더 어울린다며 술을 들이붓는 이도 있었다.
하지만, 노부인은 마땅찮은 표정으로 겨우겨우 당면 잡채를 먹었다.
다른 이들의 찬사와는 달리 표정이 좋지 않은 노부인을 보고 있으니, 노부인의 얼굴과 턱 골격이 확연히 드러나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옷 밖으로 드러나 있는 손을 보니 핏줄이 튀어나와 있었고, 손등의 뼈와 근육도 움직이는 게 그대로 보였다.
노부인은 한복 때문에 보이지 않았지만, 삐쩍 말라 살이 없는 몸이었다.
“아, 혹시... 노부인께서는 치아가 불편하셔서 드시지 못하시는 것입니까?”
“응? 그러고 보니. 어머니 그때 아프다고 하신 잇몸이 아직 낫지 않으신 겁니까?”
“낫지 않은 것이 아니라, 이제 늙었으니 안 낫는 것이지. 제조께서 나를 위해 특별한 잡채를 해주었으나, 먹지 못해 미안하오. 내 치아가 빠지고 이 대신 씹을 잇몸도 아프기에 이 잡채의 아삭거리는 채소를 씹을 수가 없다오.”
노부인은 덤덤하게 이야기했는데, 그 덤덤함에 왠지 삶을 놓아 버린 것 같은 처연함과 자포자기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가슴에서 뭔가 욱하고 뭉치는 것 같았다.
조선 시대에는 양치질의 개념이 있긴 했으나 손가락에 소금을 묻혀 대충 씻는 것이 전부였고, 치아를 치료한다는 개념도 아예 없었다.
그저 치아가 썩어 빠지거나 하면 세월의 자연스러운 흐름이라 여기고 그 아픔을 받아들이며 고통을 감내할 뿐이었다.
치아가 빠지고, 잇몸이 허물어져 먹는 것을 제대로 먹지 못해 몸이 약해지면, 죽게 되는 것이기에 이 시대 사람들은 어금니가 빠지면 죽을 때가 온 거라고 생각했다.
아마도, 노부인이 불공을 드리고 있었다는 것도 자신의 죽음을 준비하기 위한 단계라는 생각이 들자 울컥하던 게 올라왔다.
“씹지 않고도 드실 수 있는 것을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치아가 없어 고기를 씹지 못하니 단백질을 섭취하지 못하였고, 제대로 씹지 않은 고기를 삼키게 되면 소화불량으로 고생까지 하게 되니, 노인들은 고기를 멀리하게 되었고, 자연스레 몸이 말라가며 죽는 것이었다.
조선 시대의 평균 수명에도 이 치아 문제가 영향을 끼쳤을 터였다.
잡채의 채소를 제대로 씹지 못한다면 채소의 숨을 더 죽여야 했고, 그러려면 볶는 것보다는 찌개처럼 푹 익혀 후루룩 마실 수 있는 음식이 되어야 했다.
“탕(湯)으로 가자.”
대만에도 채소들을 볶아서 먹는 음식이 많았는데, 그중에서 잡채탕(雜菜湯)이라는 음식이 있었다.
채소를 섞어서 볶고 거기에 물을 부어 만드는 음식인데, 여기에 당면을 넣으면 한국의 잡채에 물을 부어 끓인 것과 맛은 물론이고 비주얼도 같았다.
그리고, 뜨겁게 끓인 탕의 당면은 젓가락으로 집기만 해도 끊어질 정도로 부드러워지기에 노인들이 먹기에 알맞았다.
잡채의 큰 채소를 다시 작게 채 썰었고, 찜닭에 쓰였던 닭고기도 다짐육처럼 잘게 다져서 탕에 넣었다.
그리고, 다 된 탕 위에 생달걀을 까서 올렸는데, 뜨거운 탕의 열기에 흰자가 하얗게 익어갈 때 노부인에게 올려졌다.
“너무 부드러워 젓가락도 필요가 없으실 겁니다. 씹지 않고, 그냥 먹어도 다 소화가 될 수 있게 만든 음식이니 숟가락으로 퍼서 드시면 되옵니다.”
노부인은 숟가락을 들어 국물부터 떴는데, 간장과 다진 닭고기, 그리고 여러 채소가 만들어 낸 풍성한 국물맛이 입안을 적시자 마음이 편해졌다.
맛있는 국물에 잇몸이 아픈 것마저도 잊을 정도였다.
입맛이 살아나는 것 같자, 숟가락으로 당면과 채소를 떴는데, 당면이 어찌나 부드러운지 숟가락으로 떠는 것만으로 가닥가닥 끊어져 흩어졌다.
일반인이 이런 불은 당면을 먹는다면 불편해하고, 짜증 낼만 한 일이었지만, 치아가 없고, 잇몸이 아픈 노인의 입장에서는 이보다 더 좋을 수가 없었다.
노부인은 숟가락에 든 당면과 닭고기 조각을 우물거리며 씹어보다 삼켰는데, 입안에서 잘게 끊어진 당면과 최대한 잘게 다진 닭고기가 아무 부담 없이 넘어간 것 같았다.
“고맙소. 고마워. 내 이제 제대로 음식을 먹을 수 있을 것 같소이다.”
노부인은 제대로 된 음식을 먹게 된 것이 기뻤는지 숟가락을 놀렸는데, 그런 노부인의 모습을 지켜보는 아들 김덕형은 물론이고, 일가친척들도 눈시울이 붉어져서는 제대로 수저를 움직이지를 못했다.
“덕형이. 나도 저 고사리 지전 좀 나눠 주게나. 우리 어머니께도 해드려야겠네.”
“나도 좀 주게. 아니. 고사리 지전이라는 걸 어떻게 만드는지를 알려주게나. 아버지께 잡채탕을 해드려야겠어.”
김덕형은 내게 눈짓으로 알려줘도 되는지 물었는데, 나는 그저 고개를 끄덕여 동의를 해줬다.
그저 찜닭을 더 맛있게 만들고, 잡채 당면으로 불교도를 위한 비건식을 만드는 거라고 단순하게 생각했다. 그러나 이 당면 잡채가 치아가 없어 음식을 제대로 먹지 못하는 노인들에게 도움을 준다고 생각되자, 당면을 전국에 보급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