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쉐프 조선을 부탁해!-131화 (131/327)

131. 그 남자의 사정. (1)

“김 진사는 집이 문경이라 가깝지만 우리는 봉화, 의성에서 오다 보니 좀 쉬어야 새재를 넘어갈 수 있을 것 같으이.”

“백화 여관이라는 곳에서 당나라의 합격 음식인 저제를 판다고 하는데, 그거나 먹고 가세나.”

“가을에 있다는 증광시(增廣試)에 합격할 수 있게 저제란 걸 먹어보세나.”

네 명의 양반들은 성균관 유생들이었는데, 가을에 증광시가 있다는 말에 급히 성균관으로 올라가는 길이었다.

봉화와 의성에서 온 이들은 여관의 깔끔함과 여관의 울타리 안에서 사람들이 물건을 사고파는 것에 감탄하는데, 문경 출신 김 진사 김재원은 낯익은 이를 보곤 급히 고갤 숙여 인사를 올렸다.

“어? 춘부장 어르신 아니십니까? 문경 향교의 김진원입니다. 원길이와 동문수학했습니다.”

“아 기억이 나는구나. 진사가 되어 성균관에 있다지?”

전기환은 몇 번 얼굴을 보았기에 기억을 해냈다.

“네. 지금도 증광시가 있다고 하여 올라가는 길입니다.”

한동네의 웃어른과 자식과 동문수학한 친우이니 서로가 덕담을 주고받았다.

“나리. 방값은 받지 않으오나, 음식은 시키셔야 합니다요. 4분 모두 저제로 준비를 하라고 이르면 되겠습니까요? 돼지 족발과 채소가 들어가며 값은 통보 1냥이나 오승포 1필입니다요.”

“가격은 좀 있구만. 그래도 합격 음식이니 그렇게 해주게.”

깔끔한 비단옷을 입은 세 명은 흔쾌히 음식을 시키는데, 김재원은 가격을 듣고 망설일 수밖에 없었다.

집안이 부유한 세 명과 달리 김재원의 집안은 가난했기 때문이었다.

부모님이 병으로 돌아가실 때 병구완하느라 가산을 처분하였기에 집안 사정이 곤궁하였다.

“김 진사의 값은 내 앞으로 달아두거라. 예전에 원길이가 네게 얻어먹은 게 많았다고 했으니 그걸 내가 갚는 거라고 생각하거라. 저제를 먹고 이번 증광시에는 꼭 급제하시게.”

전기환은 김재원의 가정 사정을 알기에 꼭 급제하라고 덕담을 해주고 여관을 내려갔다.

김재원도 올해는 꼭 걸릴 것이라고 이야길 했지만, 그의 말과는 다르게 성균관의 유생이라고 해도 대과에 급제하기는 힘든 일이었다.

먼저, 조선 시대에 진사가 되기 위해서는 향시(鄕試 초시)에 합격하여야 하는데, 각 도에서 500명을 뽑았고, 한양에서는 200명을 뽑았다.

그렇게 향시를 통과한 이는 예조에서 실시하는 복시(覆試)인 회시(會試)를 통해 100명의 진사가 선발되었다.

이 향시와 회시는 3년마다 정기적으로 열리는 식년시(式年試)와 수시로 실시된 증광시(增廣試)로 인해 거의 2년에 100명씩 진사가 배출되었다.

그렇게 배출된 진사는 성균관에 들어갈 수 있는 자격으로 백패(白牌)를 받았는데, 진사시에 합격한 것만으로도 역을 면제받는 특권을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사장(시와 문학 등 글 쓰는 것)을 논하여 뽑는 진사와 유교의 경전을 논하여 경학으로 뽑는 생원이 같은 방법으로 각각 2년에 100명씩 나왔기에 성균관 유생의 숫자도 엄청나게 불어났다.

실제 조선 시대의 생원과 진사의 배출과 관직 진출을 계산했을 때 6.4% 만이 벼슬을 했고, 나머지 93.6%는 벼슬을 하지 못했다.

이 6.4%도 진사시나 생원시 합격 후 음서로 관직에 나간 자들이 포함된 수치였기에 실제로는 진사, 생원시 합격자 중에서 대과에 급제하여 관직을 받은 이는 5% 미만이었을 거라는 통계가 있었다.

당연히 생원과 진사는 성균관의 학생일 뿐이었기에 녹봉이 없었고, 집이 부유하지 않으면 성균관에서 버티기도 힘든 일이었다.

원종도 아버지를 배웅하며 양반 4명 중에 김재원이 있다는 것을 보았고, 아버지가 대신 값을 치러주겠다는 것도 들었다.

그의 고단함을 알고 있었기에 원종은 음식에 더 신경을 쓸 수밖에 없었다.

“이보게 일하는 것들이 저 어르신에 굽신거리는 것을 보니 여기가 의주 목사인 전원길의 집안에서 운영하는 여관인가?”

“그런 듯하이. 제대로 경전도 모르는 이가 목사가 되어 벼락출세했다고 하더니, 천하게 객을 받아 돈을 버는 일을 하는구만.”

“그 동생도 사옹원 제조로 있다고 하던데, 그 뒷배가 얼마나 큰지 궁금하구만. 방으로 드세.”

김재원을 제외한 세 양반은 향시도 제대로 통과하지 못한 전원길이 무슨 건번이라는 것을 만들다가 중국을 다녀오고, 벼락출세하여 의주 목사가 된 일에 대해서 한참이나 이야기를 했다.

세 명 모두 향시에 급제했을 때만 해도 가문의 기대를 받았고, 금방이라도 급제하여 출사할거라 생각했지만, 성균관에서 10년 넘게 유생으로 있는 이들을 보고서는 위축이 되었었다.

그러다, 음서도 아닌 벼락출세로 당상관이 된 또래가 있다 보니 질투와 질시가 나오는 것이 어찌 보면 당연했다.

하지만, 또 그 이면에는 삼 형제 중 둘째도 8품관 봉사로 있으니 삼 형제가 모두 출사한 것이라 부럽기도 했다.

과정이야 다르다고 해도 결과만 보면 삼 형제 중 둘이나 당상관이 되었으니 문경 전씨가 문경의 최고 명문이라고 불러도 손색없었기 때문이었다.

질투와 부러움이 같이 치솟아 다들 말수가 줄어들었고, 나중에는 네 명이나 방 안에 있음에도 조용해졌다.

“나으리들 이것이 바로 당나라의 저제입니다요. 성균관 유생이시라는 말에 따로 엿도 준비를 하였습니다요. 이걸 드시고 장원급제하십시오!”

개인상이 나가고, 희재가 일일이 양념 소스 통으로 음식에 소스를 부어주자, 처음 보는 음식의 모습에 다들 놀랐다.

“이걸 혹시 누가 만든 건지 알 수 있는가? 사옹원의 제조로 있는 전원종 영감이 고안한 것인가?”

“아이고, 어떻게 아셨습니까요? 제조 영감님이 당나라의 과거 합격자를 붉은 색으로... 대자보로 써서... 그래서, 발음이 같은 족발로 이 음식을 만든 것입니다요. 그러니 과거 시험에 꼭 합격하십시오.”

“허허. 종2품인 제조가 만들어낸 음식이라니. 어디 이거 먹고 우리도 2품까지 올라가 당상관이 되어 봅시다.”

“오 이거 양념이 달콤하구만. 꿀이 들어간 듯하군.”

달콤한 맛과 밥을 같이 먹는 것이 어울리지 않을 것 같았지만, 찰지게 달라붙는 단맛이 의외로 밥과 어울렸다.

돼지 족발의 쫀득한 육질이 판에 구워지며 달달한 소스를 품게 되자 이제까지 들던 질투와 부러움에 속 쓰렸던 것들이 쑥 하고 내려가며 맛있다는 즐거움에 다들 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서도 김재원은 계속 말이 없었다.

***

“김 진사님. 인연이 있으신 분인 걸 알기에 따로 챙겼습니다요.”

희재는 도련님이 따로 챙겨주라고 한 새끼줄에 묶인 작은 항아리를 건네었다.

“항아리 백숙입니다요. 예전에 아주 잘 드셨다고 들었습니다요. 한양으로 가시는 길에 드십시오.”

“이야! 같은 동향 사람이라고 이리 챙겨주는구만. 문경으로 이사 와야겠구만. 시간이 급하니 어서 새재를 넘어가세나.”

다른 세 양반은 길을 재촉하는데, 김재원은 항아리 백숙을 받아 들고는 움직일 수가 없었다.

항아리 백숙이라는 말에 재작년 전원길의 손에 이끌려 먹어봤던 백숙을 떠올렸고, 이걸 맛있게 먹었던 처자식들이 생각나서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따로 백숙을 챙겨 주고 했던 것은 원길과 그 동생인 원종, 그리고 그날 직접 들고 배달해줬던 삼식이라는 노비만이 알고 있던 일이었다.

어쩌면 이 여관에 원종이 지켜보고 있을 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왜 내게 다시 백숙을 챙겨 주었는지 어느 정도 알 것 같았다.

“자네들 먼저 올라가게 나는 올라가는 것을 하루 늦춰야겠네.”

김재원은 다른 이의 말도 듣지 않고 바로 등을 돌려 길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같이 올라가 공부하기로 해놓고는 뭐야?”

세 양반은 백숙이 든 항아리를 양손에 조심스레 들고 내려가는 김재원의 모습에 황당해했다.

하지만, 길을 내려가는 김재원도 편한 마음이 아니었다.

머리가 복잡했다.

분명 학문의 깊이가 뛰어나지 않은데도, 이리 남을 위하는 원길과 원종의 모습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사람의 됨됨이는 경전을 읽고, 배우면 그 됨됨이도 군자가 된다고 믿었었다.

하지만, 문경 전씨들은 유학의 깊이가 그리 깊지 않았다. 그런데도 사람 됨됨이가 이러하니 이제껏 믿고 있던 유교 경전을 읽고 군자가 되는 것이 삶의 완성이라 여겼던 자신의 믿음이 흔들렸다.

두 형제를 생각하면 그러한 과정 없이도 사람의 됨됨이가 완성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항아리 백숙 한 그릇이 신념을 흔든 것이었다.

‘어쩌면 이런 됨됨이를 알기에 그 신숙주 대감이 손녀사위로 낙점을 했겠지.’

그리고, 막냇동생의 재주 덕에 두 형이 벼슬을 했다는 이야기도 떠올랐다.

한참 어린 친우의 동생은 주상전하를 배알하여 칭찬을 듣고 상을 받았고, 벼슬이 당상관에 이르렀는데, 자신은 진사 백패를 가진 게 전부라는 생각에 마음이 더 무거워졌다.

자신이 이제껏 목표로 두고 노력했던 유교 경전의 가치가 처자식에게 먹일 닭백숙보다 못하다는 생각에 머리가 복잡했다.

“아니, 한양 간다는 사람이 왜 돌아온 거예요?”

김재원의 아내는 대과를 위해 성균관으로 올라간다는 사람이 하루 만에 돌아와 항아리 백숙을 내미는 것에 놀란다.

마치 실성한 사람처럼 눈에 핏발이 서 있고, 넋 나간 것처럼 내미는 항아리를 받아 보니 뽀얀 살이 통통하게 올라있는 닭백숙이었다.

“어머나. 닭백숙이네요. 그럼, 전씨댁에서 가져온 거예요? 아이 좋아라. 얼른 끓일 테니 애들이랑 올라가 계세요.”

제대로 된 고기 구경을 못 해 본 아내는 기뻐하며 부엌으로 들어갔고, 이제 걷거나 뛰는 네 아이는 백숙이라는 소리에 먼저 부뚜막 근처에 몰려갔다.

“나는 먹고 왔으니 당신이나 아이들이 먹으시오.”

도포도 벗지 않고 멍하게 앉아 있으니, 처와 아이들이 소반상에 둘러앉아 항아리 백숙을 먹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제일 큰애가 벌써 6살이고 둘째도 5살이라 먹는 양이 늘었기에 백숙 한 그릇으로는 처와 아이 넷이 먹기에는 부족했다.

처는 없는 살림에 잡곡을 갈아 반죽하여 수제비를 떼 넣어 국물까지 다 먹었다.

“재작년에는 밀 반죽도 줬었는데 이번엔 안 줬네.”

김재원은 아내의 말을 듣고 눈물이 났지만, 겨우겨우 눈물을 참았다.

항아리를 들고 집으로 오며 떠올렸던 스승의 말이 떠올랐다.

성균관에 있다 보니 자신이 보았던 식년시의 급제자 답안지가 알게 모르게 전해졌고, 그렇게 급제자의 답안지와 자신의 답안지를 스승과 동문들에게 보였었다.

동문들은 물론이고 스승까지도 자신의 답안지가 더 의제에 어울리는 답이라고 입을 모았지만, 장원은커녕 급제도 되지 않았다.

그리고, 스승님의 힘써주지 못해 미안하다는 말이 가슴에 박혔었다.

대과의 불공정을 알았지만, 조금만 더 노력하면 급제자의 말미에라도 들 수 있을 거로 생각했었다.

하지만, 집에 도착해 처자식이 백숙을 먹는 것을 보고는 아무리 학문을 닦는다고 해도 급제하여 처자식에게 백숙을 배불리 먹이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밀 반죽이 없다며, 챙겨 주지 않은 것에 투정하는 아내의 말에 더 마음이 아팠다.

오랜 병에 효자 없고, 오랜 가난에 효부 없다는 말이 떠올랐다.

자애롭고, 베푸는 것을 좋아하던 처가 가난으로 인해 품성이 변할까 싶어 두려웠다.

계속 가난하다면 자라고 있는 아이들도 양반다운 품성을 잃고, 배고픔에 악다구니를 쓰며 먹을 것을 다투던 야인들처럼 될까 두려웠다.

‘포기하자... 아버지. 출사하여 가문을 빛내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김재원은 쇠뿔도 단김에 뽑으라는 말이 떠올라 갓과 도포를 던져버리고 망건도 풀었다. 맨머리에 상투를 튼 그대로 집을 나섰다.

“아부지가 우리 잘 먹는 걸 보고는 한 항아리 더 가지러 가신 거야.”

“와 그럼 우리 또 먹을 수 있는 거야? 헤헤헤.”

김재원의 등 뒤로는 토끼굴 같은 움막에서 들려오는 아이들의 웃음만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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