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 백화 여관. (3)
“언년아. 황동 냄비에 물을 올려라!”
무쇠로 만들어진 부엌의 큰 솥이 아닌 금방 물을 끓일 수 있는 황동 냄비를 화덕에 올렸다.
“도련님. 돼지족발이라면, 전에 멧돼지를 잡았을 때 했던 그 약선족발을 하시는 건가요? 그러면 한약재를 본가에서 가져와야 할 터인데요. 여관에는 약재가 없어요.”
“돼지족발이지만 숙지황이나 당귀를 넣어 만드는 약선 족발이 아니다. 여관에 손님이 와서 기다리는데, 언제 몇 시간을 푹 끓여 만들겠느냐.”
예전에 멧돼지를 잡았을 때는 집에서 가족끼리 먹는 것이라 몇 시간이나 푹 삶아서 먹을 수가 있었다.
하지만, 여관에서 손님이 와서 요리를 주문하는데, 몇 시간을 기다리라고 할 수는 없었다.
돼지족발이라고 하면 캐러멜과 팔각, 노두유 간장으로 만드는 족발 요리가 정석처럼 떠올랐지만, 장사가 잘 안될 때는 미리 만들어 둘 수가 없었다.
돼지족발로 30분 이내 할 수 있는 요리라야 주문에 맞춰 팔 수가 있었다.
“그런데 도련님. 돼지족발은 어디에 있는 건가요?”
언년이는 족발로 요리를 하려면 돼지족발이 있어야 할 터인데, 오늘 여관으로 들어오는 식재료에서 돼지족발이 들어온 것을 보지 못했기에 걱정을 했다.
언년이의 이런 걱정과 고민은 냉장고가 없는 시대였기에 당연했다.
원종도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민을 했었고 해결책으로 생각해낸 것이 항아리 훈제였다.
문경의 도공에게 큰 항아리를 만들게 했는데, 항아리의 바닥에는 한 뼘 크기의 구멍을 뚫고, 항아리의 입구에는 물건을 걸 수 있는 고리를 만들어 달라고 했다.
항아리의 입구에는 돼지족발을 걸고, 항아리의 안에는 불붙은 화로를 넣어 훈연을 시키는 것이었다.
이후 항아리의 뚜껑을 덮고, 틈새에 진흙을 발라 연기가 나오지 않게 해두면 끝이었다.
그렇게 하면 안에서 타는 화로의 열이 항아리에서 계속 돌게 되어 그 복사열과 연기에 돼지족발이 훈연 되는 것이었다.
훈연 되며 수분이 쫙 빠진 돼지족발은 그냥 걸어두어도 보름 이상 상하지 않았기에 손님이 오지 않더라도 식재료를 보관할 수 있었다.
그러다 주문이 들어오면 훈연 된 족발을 다시 한번 끓는 물에 삶아주면 되는 것이었다.
끓는 물에 훈연으로 바짝 말라 있던 족발이 들어가니 돼지고기가 물을 머금으며 부피가 커지기 시작했다.
고기와는 반대로 지방이 주를 이루고 있는 돼지 껍질은 물을 흡수하지 않아 크기가 그대로였고, 부피 차이로 인해 자연스레 족발의 고기와 껍질이 분리되었다.
“족발에서 껍질을 모두 떼어내고 한입에 먹을 수 있게 고기도 뼈에서 발라내거라.”
원종은 젓가락으로 집어 먹을 수 있는 크기로 뼈에서 고기를 분리했다.
“뚜껑 판을 화덕에 올리고 들기름을 치거라.”
냄비는 끓이는 용도이기에 빨리 끓을 수 있는 황동으로 만들었지만, 고기를 굽는 것이 주가 되는 뚜껑 판은 그 반대였다.
고기 굽는 판은 두껍게 만들어야 했는데, 고기를 구울 때는 온도가 일정해야 했기에 뚜껑 판을 만들 때 두께를 3cm나 되게 만들었다.
그래야 판에 고기가 올라갈 때 순간적으로 판의 온도가 내려가는 것을 막을 수 있었다.
뚜껑 판에 열이 올라오자 손질된 고기를 바로 판에 올렸다.
[파파파팍!]
고기에 물기가 있었기에 달구어진 들기름과 만나 물이 튀겨지며 양 사방으로 기름이 튀었다.
얼른 덮개로 덮어 기름이 튀어나오지 못 하게 했고, 물기가 다 튀겨져 없어진 듯 보이자 다시 덮개를 열어 고기들을 뒤집어 주었다.
“고기를 뒤집고 나서는 그 옆으로 깐 마늘을 그대로 넣고, 잘라둔 파도 넣어서 구워주면 된다. 나중에 텃밭에 뿌려두었던 회회총(양파)이 나면 회회총도 마늘과 같이 넣어 주면 된다.”
챠라라라락~ 하는 소리를 내며 고기와 채소가 맛있게 익어 가자 고기와 채소를 판 한쪽으로 밀어내곤 간장과 된장 조금 그리고 꿀을 넣었다.
판에 있던 기름과 고기와 채소에서 나온 육수가 합쳐져 있던 곳에 간장과 꿀이 들어가자 마치 스테이크 소스처럼 색이 갈색으로 변하며 뻑뻑해졌다.
버터와 생크림을 넣으면 제대로 된 양식 스테이크 소스가 될 터였지만, 물만 넣어 줄 뿐이었다.
“이제 이 물이 줄어들 때까지 졸여주면 되는 것이다.”
덮개를 덮었고, 가끔 고기를 뒤집어 주며 간장과 꿀 소스가 졸기만을 기다렸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며, 간장과 된장이 만들어낸 먹음직스러운 캐러멜 색상이 족발 고기에도 입혀졌다.
“이제 익은 고기는 접시에 담고, 같이 구워진 마늘과 파를 그 옆에 놓아주면 된다.”
원종은 마음 같아서는 후추도 팍팍 쳐주고 싶었지만, 그렇게 하면 음식을 팔 때마다 오히려 손해가 날 것 같았다.
“도련님. 흰색의 그릇에 먹음직스러운 갈색의 고기와 채소가 놓이자 더 먹음직스러운 것 같아요.”
언년이가 맛있어 보인다고 군침을 삼키고 있는 것을 보니 돼지족발 스테이크도 조선사람들에게 먹힐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네가 먹을 것은 내일 해주도록 하마. 그리고, 판에 남은 이 양념 국물을 작은 주전자에 담거라.”
“아! 주토피아처럼 족발 요리를 앞에 낼 때 그때 이 양념을 부어주라는 거군요.”
“그렇지. 그런 보여주기가 음식에는 꼭 필요한 것이다. 그리고 양념을 위에 붓고는 얇게 다진 파와 깻잎을 올려주면 된다. 이제 음식을 내어가거라.”
혹시 몰라 잔머리가 좋은 희재에게 음식을 내어가게 했는데, 선비 둘은 각각 독상을 받고는 특이한 밥상에 신기해했다.
밥상에 밥과 멀건 된장국이 있었고, 그 앞에 큰 접시 가득 갈색 고기와 채소가 볶아진 것처럼 올려져 있으니 어떻게 먹어야 할지 몰랐다.
“돼지족발이 너비아니처럼 나오거나, 석쇠에 구워 나올 줄 알았는데, 이런 음식은 또 처음이구만.”
“당나라의 저제를 조선에 맞게 만든 것입니다요. 이렇게 양념을 부어서 양념에 흥건하게 찍어 드시면 되옵니다.”
희재가 주전자에서 소스 양념을 족발 스테이크 위에 뿌려주고는 그 위로 채를 썬 깻잎과 파를 올려주었다.
“이제 드셔보시지요.”
선비들은 젓가락을 들어 족발 고기를 맛을 보는데, 달짝지근하면서 풍요로운 육질의 탄력감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허허. 돼지고기기에 냄새가 심할 거라 생각했는데, 하나도 나지 않고, 은은한 불향이 느껴지니 소고기보다 더 맛이 있는 것 같구나.”
“그러게. 붓을 살 때만 해도 합격 음식이라는 소리에 돼지족발을 한번 먹어볼까 했는데, 이거 안 먹었다면 아쉬울 뻔했어. 이 채소와 함께 먹어보게 정말 맛있구만.”
방안에서 선비 두 명이 극찬하며 먹는 소릴 들으니 포크와 나이프 없이 젓가락만으로 먹을 수 있는 조선 스타일의 스테이크가 조선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진 것 같았다.
늘 손님이 많이 오는 게 아니라면 현대식 족발처럼 오랜 시간 동안 삶아가며 맛을 입히는 음식은 장사에 적합하지 않았다.
훈연해서 보존 기간을 늘리고, 스테이크 형식으로 구워가며 맛을 입히는 조리방식이라면 손님이 뜸한 곳에서도 가게를 유지할 수 있을 터였다.
“다른 반찬 없이 이 돼지족발만으로도 배가 차고 든든하구만. 나중에 동향 후배들이 과거 보러 갈 때는 꼭 이것을 먹어보라고 해야겠구먼.”
“그러고 보니 붓을 팔던 그놈 말처럼 돼지족발을 먹고 있으니 피로가 풀리는 것 같구만. 네발짐승은 정기가 아래로 내려가 다리에 쌓인다고 하더니 나도 온몸의 말단으로 피가 통하는 듯이 몸이 풀리는 것 같구만.”
“그런데, 이방은 자네와 나만 자면 되는가?”
“그렇다고 하더군. 여기 백화 여관은 양반들이 묵는 방과 천것들이 묵는 방이 따로 있다고 하더군.”
“오, 그러면 방값을 내야 하는가? 보통 묵는 곳에서는 방값을 받지 않는데, 여긴 우리만 쓰게 되면 방값을 내야 하는 거 아닌가?”
“지금은 돼지족발만 시켜 먹으면 방값이 공짜라고 하더군. 그런데, 이렇게 깨끗한 이불에 베개까지 있다면, 돈을 내라고 해도 묵을 수 있을 것 같구만.”
“주위에 반가나 절이 없는 곳이라면 여기에 올 수밖에 없을 것도 같구만. 헌데 자네 돈 좀 여유가 있다면 여기서 파는 포촉을 좀 사게나. 여기서 1냥 하는 포촉이 수원에 가면 2냥 이상하네. 10여 개만 사서 가도 경비가 빠질 거네.”
“그런가? 그렇지 않아도 스승님댁에 기제사가 있으니 몇 개 사드려야 겠구만.”
이근종은 그렇게 다음 날 아침 포촉을 사서 문경새재를 넘어가려 했는데, 아침부터 포촉을 사기 위해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금촉이 있다고 해서 왔네. 금촉 두 자루만 팔게나.”
“20냥(약 40만 원)입니다요. 백미 두 가마나 오승포 20필을 주셔야 합니다요.”
“20냥? 백미 두 가마? 싸구만. 저기서 계산하면 되는가?”
제사를 지내는 데 쓰는 최상급 초인 누런색의 금촉이 두 자루에 20냥이라고 하자 다른 양반들도 급하게 사 갔다.
포촉을 사서 가려던 이근종은 비상금으로 들고 있던 은붙이까지 다 써가며 금촉과 포촉을 샀다.
그리고, 이런 양반들의 모습을 전기환도 보고 있었다.
막내아들이 문경에 와서도 집에 붙어있지 않고, 여관과 가마를 돌아다니며 일만 하자 도대체 무슨 일을 하는가 싶어 온 것이었다.
헌데, 문경과 상주의 안면 있는 양반들이 쌀과 포를 들고 와 초를 사는 것을 보자 뿌듯하면서도 걱정이 되었다.
“초는 제대로 진상을 하고 있는 것이냐?”
“네. 양봉하는 만길 노인이 손자와 같이 초를 만들 때 붉은 용촉을 따로 만들게 시켰습니다. 금촉도 한명회와 다른 대신들에게 선물로 보내고 있습니다.”
“흠. 그렇다면 다행이지만, 이렇게 장사가 잘된다면 분명 말이 나올 것이다. 아무리 신 대감의 손녀사위라고 해도 분명 말이 나올 것이다.”
전기환은 여러 사화를 보며 살아왔기에 세 아들이 모두 벼슬에 나가 있는 것이 늘 불안했다.
그러다 보니 초를 만들어 과도하게 돈을 버는 것 같자 혹여나 질투를 받을까 염려가 되었다.
“네. 그래서 올겨울에는 아예 양봉하는 방법을 조정에 올릴 생각이옵니다.”
“조정에? 오, 그래. 그 방법이 좋겠구나. 초를 만들 밀랍을 쉽게 얻는 방법을 공개한다면 다른 이들도 나설 것이고, 질시를 받지 않겠지. 생각을 잘하였구나.”
“혼자서 크게 남기기보다는 널리 알려져 다 같이 벌면은 좋은 것이지요.”
원종은 아버지의 걱정이 무엇 때문인지 알기에 아예 양봉의 노하우를 조정에 알리겠다고 이야길 했다.
조선 사람들이 솔 불에 의지해서 밤을 지새우는 걸 처음 보았을 때부터 초를 만드는 노하우를 언젠가는 공개해야겠다고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광산에서 뒤통수를 한번 맞았기에 그냥 막 퍼주기식으로 양봉의 노하우를 풀 생각은 없었다.
분봉하는 법이나, 회전력으로 꿀을 빼는 원심분리기의 제작법, 낙동강뿐만 아니라 금강이나 영산강을 따라 올라가며 양봉하는 방법들을 알려주는 조건으로 초에 대한 전매권을 받을 생각이었다.
물론, 초에 대한 전매권을 혼자 다 가지게 되면 삼키지 못할 물건이었지만, 소금처럼 종친들에게만 만들고 할 수 있는 권한을 주게 한다면 그 판매권을 보부상과 내가 다 가져오는 방법이 있었다.
그런 작업을 위해서 한양에서 초를 만들어 파는 이들보다 20% 이상 저렴하게 초를 팔며 시장을 교란시켜야 했다.
이 양초 전매도 누군가에게 맡기면 좋은데, 맡길만한 사람이 없었다.
잔머리가 빠르고 눈치도 있는 희재가 딱이었지만, 양반이나 대군들을 상대해야 했기에 신분이 걸림돌이었다.
그렇다고 큰형을 부를 수도 없었고, 영덕으로 장가를 갔기에 바닷가 쪽 일을 맡길 예정인 작은 형을 쓸 수도 없었다.
“도련님. 오늘도 양반 나리가 백화 여관에 묵어가신답니다. 오늘은 4명입니다요.”
*
[작가의 말]
실제 조선의 주막에서는 방값을 받지 않았다고 합니다.
(주막이라는 것이 생긴 것도 17세기 이후이고 그 전에는 주막이라는 것이 아예 없었다고 합니다.)
주막에서는 음식값만 내면 방은 무료로 빌려주었는데, 그러다 보니 한 방에 10여 명이 잘 때도 있었고, 반상의 도리도 방안에서는 무시가 되어 양반과 상놈이 같은 방에서 잤다고 합니다.
그러다 보니 공짜 방에 청소가 제대로 될 리 없었고, 이와 벼룩이 어마어마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조선말 일본의 료칸이 들어오고, 서양식 호텔이 생기면서 방값을 받는 문화가 정착되며 방값에 대한 개념이 생겼다고 합니다.
양반들은 같은 양반의 집이나 절에서 공짜로 묵었다고 하는데, 이것도 조선 후기 양반의 수가 많아지자 공짜로 묵고 가는 객이 너무 늘어 양반들도 객을 받지 않을 정도가 되었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