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쉐프 조선을 부탁해!-129화 (129/327)

129. 백화 여관. (2)

“그래. 돼지 족발이 합격을 기원하는 음식이지. 모가비는 과거라는 제도가 언제 만들어진 것인지 혹시 아는가?”

“그게 전조인 고려 때가 아닙니까요?”

“그래 우리 한반도에 들어온 것은 전조 때가 맞지만, 중국의 수나라 때 처음 만들어진 제도네. 그걸 전조인 고려가 좋은 제도인 것 같다고 도입한 것이지.”

“그런데, 전에 한양에서 재주를 부릴 때 보니 한양의 과거장에서는 엿을 팔고, 선비들도 그 엿을 사 먹던데, 과거가 중국에서 들어오면서 엿을 먹는 것도 같이 들어온 겁니까요? 돼지족발은 시험장에서 먹기 힘들 것인데.”

“과거 시험장에서 엿을 먹는 것은 우리 조선의 문화로 중국에서 들어온 게 아니네. 중국에서 합격 음식으로 돼지 족발을 먹게 된 이유는 당나라에서는 시험 급제자의 이름과 답안지 제목을 붉은색의 먹으로 써서 대안탑이라는 탑 앞에 내 붙였는데, 그렇게 쓴 대자보를 주제(朱題)라고 불렀다고 하네. 그 주제란 한자는 중국말로 ‘주티’로 발음이 되고, 그 주티와 발음이 같은 저제(猪蹄)가 시험 합격의 음식이 된 거라네.”

“주티? 저제? 중국 말은 전혀 모르겠습니다요.”

“하하하. 중국말은 몰라도 되네. 그래서 당나라의 선비들은 자신의 이름이 붉은색으로 쓰여 주제(朱題)에 올라가길 기원하며 같은 발음으로 읽히는 저제(猪蹄) 돼지 족발을 먹었던 것이지. 그러니 이러한 것을 강조해서 과거 보러 가는 선비들에게 돼지 족발을 팔면 되는 것이야.”

“그렇다면, 엿도 같이 팔지요. 조선의 합격 음식도 같이 팔아야지요.”

“그래. 하지만, 우선은 사람들이 와야지. 현수막을 붙여 선전했으니 기다려 보세나. 그리고, 돼지 족발을 언제든 사 올 수 있게 백정들에게 연통이나 넣어 두게.”

현수막을 붙이고, 돼지족발을 파는 걸 준비하는 동안에 여관을 개조하는 작업에 들어갔다.

문경 가마에서 벽돌을 다시 들고 와 커다란 창고를 짓게 했고, 넓게 울타리를 치는 한편 탁자 같은 매대를 목장에게 만들게 했다.

그러면서 안성으로 사람을 보내 붓과 벼루 같은 문방사우를 사 오게 시켰다.

“여기에 이런 매대는 왜 만드시는 겁니까요? 그리고, 울타리를 이리 넓게 치시는 이유를 모르겠습니다요.”

모가비는 손님을 기다려 보자고 해놓고는 갑자기 건물을 올리고, 필요 없어 보이는 울타리까지 치는 것을 보고 의문을 가졌다.

“울타리는 거기까지가 여관의 땅이라는 것을 알리기 위해서지. 그리고 재인 무리에서 가장 잘생기고 예쁘게 생긴 남녀를 뽑게나. 그들에게 매대를 맡길 것이네. 방설환과 포촉을 파는 매대이니 솔찬히 판매가 될 게야.”

여관 옆에 물건을 파는 매대를 만들고 넓게 울타리를 치는 것에 재인 무리의 모가비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으나, 잔머리가 있고 눈치가 빠른 희재는 달랐다.

“도련님 설마, 여기서 난전을 여실 생각이십니까?”

“맞다. 역시 희재 너는 보는 것이 다르구나. 여기서 여관의 이름처럼 백 가지 물건을 파는 여관을 만들 것이다.”

“그러면 문제가 없겠습니까요? 난전을 임의로 열게 되면 문제가 되지 않습니까요?”

“이건 난전은 난전이되 난전이 아니지. 하루를 묵게 된 여관 앞마당에서 서로 필요한 물건을 교환하는 것이니 난전이라고 볼 수 있지만, 울타리 안이니 난전이 아닌것이지. 그리고, 그런 사람들 사이로 인근의 사람들이 와서 물건을 사 가는 것을 막지 않을 뿐이다.”

“흠. 따지고 들면 난전이지만, 울타리 안 집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니 난전은 또 아니고. 뭔가 아리송 합니다요.”

“그래. 그거다. 법을 이용하는 것이다. 그리고, 여의치 않으면 울타리 안에서 물건을 파는 이들을 모두 내 사람으로 바꾸면 난전이 아니라, 그냥 공랑 점포가 확대된 것이니 그 누구도 뭐라고 하지 못할 것이다.”

“오! 여러 물건을 파는 보부상들에게 물건을 받거나 위탁받아 노비들에게 팔게 한다면 모습은 난전의 모습이지만, 난전이 아니게 되는 것이군요. 좋은 방법입니다요. 여관이 주가 아니고, 난전이 주가 되는 형식의 여관이라니.”

희재는 하나를 알려주면 바로 다음 것을 알아챘는데, 좀 얍삽한 면이 없지 않아 있지만, 그래도 일을 맡길만했다.

“여기서 백화 여관이 잘된다면 한양에도 이런 방식의 백화 여관을 만들 것이니 너도 여기서 돌아가는 것을 잘 확인하거라.”

이렇게 여관 앞마당을 통해 물건을 파는 난전 정도라면 신숙주의 뒷배로 어떻게든 계속 운영이 가능할 터였다.

어쩌면 이런 난전을 가장 원하는 사람이 신숙주였기에 오히려 몇 개를 더 만들어서 전국에 보급하자고 할지도 몰랐다.

하지만, 지금 당장이 문제였다.

사람이 와야 창고든 난전이든 운영이 되는 것이었다.

“금산아. 가까운 임방에 가서 여기에 묵는 보부상 100명에게 방설환 세 알씩을 준다고 알리고 오거라. 그리고, 모가비는 풍양 오일장에 가서 말을 퍼트릴 이들을 좀 뽑아주오.”

“말을 퍼트릴 이들이라니요?”

“입소문을 퍼트려야 하지 않겠는가. 만길 할아범과 석동이가 만든 포촉을 여기서 사서 오일장에 팔기만 해도 돈이 된다는 이야기와 방설환을 여기서 사서 먹었는데, 배앓이가 나았다는 그런 입소문이 필요한 것이네.”

“오! 그렇다면 얼굴이 두꺼운 놈이 필요하겠군요. 얼른 준비하겠습니다요.”

사실, 먹는장사든 파는 장사든 홍보마케팅의 첫 단계는 입소문 바이럴마케팅이었다.

그런 입소문을 내는 데는 오일장 같은 곳이 지금 상황에서는 가장 좋았다.

소문을 듣고, 문경새재의 입구에 있는 이 백화 여관으로 꼭 와야 하는 이유를 만들어 주는 것이 지금 필요했다.

***

“방물을 팔아줄 테니 맡기라는 겁니까요?”

“그렇네. 저기 매대를 보면 알겠지만, 자네가 물건을 위탁하면 내 사람들이 자네의 물건을 팔아 줄 것이네.”

방물 중에서도 바늘과 실, 골무 같은 바느질 용품을 파는 안칠은 하루를 묵으면 방설환을 준다는 말에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에 새재를 바로 넘지 않고 하루를 묵었다.

그리고, 보부상의 증표인 채장을 보여주며 위탁판매를 해주겠다는 주인장을 보곤 자신의 밑천이나 마찬가지인 방물을 넘겨줄 수 있는지를 고민했다.

“다른 보부상에게 양반이 보부상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긴 했는데, 그분이 맞습니까요?”

“맞네. 자네가 위탁하는 물건의 가격을 알려주게. 그러면 우리가 그 가격에 1푼의 이문을 붙여 팔아주겠네. 자네는 방물을 들고 이리저리 다니지 않아도 되고 우리는 1푼의 이문을 챙길 수 있으니 서로가 이득이지 않겠는가?”

안칠은 그냥 자신의 방물을 다 사서 그쪽이 팔면 안 되냐고 이야기하고 싶었지만, 그렇게는 하지 않는 것 같았다.

그리고 곰곰이 따지고 보니, 자신에게는 손해가 생기는 일이 아니었다. 설령 위탁 맡긴 물건이 팔리지 않더라도, 여기서 들고 있어 주니 창고에 물건을 맡기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손해가 없이 이득만 있다면 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좋습니다. 언문으로 물건의 품목이나 가격을 써서 판매를 맡기겠습니다요.”

“좋군. 진기야. 위탁판매 계약서를 쓰거라.”

방물장수 안칠 뿐만 아니라, 거울 장수, 빗 장수, 소금 장수까지 보부상의 임방을 통해 들른 이들은 자신들의 물건을 팔아달라며 계약서를 썼다.

그렇게 여관의 울타리 안쪽으로 물건들이 하나하나 쌓이기 시작하자 오일장의 입소문을 내기 전인데도 사람들이 한둘씩 오기 시작했다.

***

“정말인가? 이 포촉을 새재 입구에 있는 백화여관에서 샀다고? 쌀 서 말은 줘야 사는 포촉을 두말에 샀다고?”

“허허, 속고만 살았나? 그렇데두 거기 안 마당에는 오일장도 아닌데, 백 가지 물건이 들어차서 언제든지 가서 물건을 살 수 있다네.”

“그런 게 있을 수가 있는가? 처음 들어보는구먼.”

“자네 방설환 이야기는 들어봤나? 그 약을 만드신 양반네가 그 백화 여관을 만들었다고 하네. 언제든지 가면 바로 방설환을 구할 수 있다고 하더라고.”

“오, 그 양반네라면 믿을 만하지. 그런데 진짜 백 가지 물건을 파는 게 맞나?”

“맞대도. 오일장에 나오지 않는 밀촉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야기는 끝난 거지.”

“하긴. 그렇구만. 날랜 걸음이면 풍양에서 하루거리니 한번 가봐야겠구먼.”

그렇게 입소문을 퍼트리고, 오일장 날짜를 잘못 알아 낭패였던 이들이 하나둘 백화 여관으로 오기 시작했다.

“여기에 붓과 종이를 판다고 하던데. 있나?”

김해 사람인 이근종은 스승의 부름을 받고 수원으로 올라가는 길이었는데, 봇짐이 비에 젖으며 종이와 붓이 붙어버렸었다.

그걸 억지로 떼어내다 붓의 모까지 틀어져 버리자 붓과 종이를 구하고 있었다.

수원으로 가는 길이라 풍양 오일장에서 구해볼까 했는데, 양반들이나 쓰는 붓과 종이가 오일장에는 없었다.

그러다, 우연히 백화 여관의 이야길 듣고 와본 것이었다.

“네. 문방사우는 물론이고, 사서오경까지도 있습니다요.”

“도서도 판다는 말인가?”

“네. 비싸고 귀한 책은 갖춰두지 못하지만, 사서삼경은 갖춰두고 있습니다. 그 외에도 구하시는 물건이 있으시면 그것도 구해드릴 수 있습니다요.”

“허허. 이런 곳이 있는 줄은 몰랐구만. 오늘은 붓과 종이만 필요하네. 좀 보여주게나.”

“네. 족제비 털로 만든 황모필, 다람쥐 털로 만든 청서필, 염소 털로 만든 양호필, 토끼 털로 만든 토모필까지 있습니다요.”

개수가 많지는 않았지만, 비싼 황모필과 저렴한 토모필까지 다양하게 펼쳐놓자, 이근종은 이곳으로 오길 잘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건을 파는 이들은 옷 위에 청색의 조끼를 깔끔하게 입었고, 조끼의 왼쪽에는 언문으로 자신의 이름까지 쓰여져 있었기에 왠지 모르게 신뢰가 갔다.

“종이는 백면지(白綿紙)와 고정지(藁精紙), 유목지(柳木紙)만 보유하고 있습니다요.”

“청서필 하나와 백면지 스무 장을 주게나.”

“그럼, 값은 뭐로 치르시겠습니까요?”

“오승포네.”

“그렇다면, 저기 입구로 가셔서 값을 치르시면 됩니다.”

이근종은 상인이 직접 값을 받지 않고, 다른 이가 가격표를 보고 셈을 하며 오승포를 받는 것이 특이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물건값을 깎지 않고, 급하게 구한 물건값치고는 바가지를 쓴 것 같지도 않아 나름대로 만족하게 물건을 구매했다.

“선비님들. 혹시 한양으로 대과를 보러 가시는 것입니까요? 그렇다면 저희 백화 여관에 묵으시면서 합격 음식이라는 저제(猪蹄)를 드셔보시는 게 어떻겠습니까요?”

“저제? 돼지 족발을 말함인가?”

“네. 맞습니다요. 이 저제라는 음식은 당나라에서부터 시작된 것으로...”

계산대를 맡은 삼청이는 모가비에게 전해 들은 이야기를 신나게 이야기했다.

“허허. 그런 이야기가 있었는지 처음 알았군. 허나, 우리는 대과를 보러 가는 것이 아니네. 스승님이 불러 급하게 수원으로 올라가는 길이네.”

“아, 그렇습니까? 그렇다면 더더욱 돼지 족발을 드셔야 합니다요. 발굽이 달린 짐승들이 네 다리로 땅을 짚고 다니기에 그 짐승의 정기가 네 다리에 몰리게 되어 있습니다. 급하게 수원으로 올라가셔야 한다면 그런 짐승의 정기가 쏠린 족발을 먹어야 더 빨리 걸어가실 수 있는 것입니다.”

“하하하. 이놈 입심이 장난이 아니구나. 그렇지 않아도 힘이 좀 들었는데, 한번 그 정기가 제대로 쏠려있다는 족발을 한번 먹어보마.”

“네. 절대 후회하지 않으실 겁니다요. 현동아! 선비님들이 여관에 묵으신단다. 어서 안내해드려라!.”

보부상이 아닌 선비가 처음으로 백화 여관에 묵게 되었다는 소식에 원종이 부엌으로 뛰어갔다.

“족발은?”

“삼청이가 입을 잘 털어서 족발도 주문했습니다요.”

“좋아. 아주 특별하게 내어주지.”

*

[작가의 말]

우리나라에서도 엿이나 떡이 합격 음식이 된 이유도 합격자를 발표하는 방(대자보)을 붙일 때 엿이나 떡처럼 찰싹 달라붙으라는 의미로 엿과 떡이 합격 음식이 되었습니다.

이 달라붙는 것에 대한 명확한 문헌상의 근거는 없습니다만, 조선왕조실록에는 과거 보는 선비들이 엿을 먹었다고 하고, 과장에서도 엿을 팔았다고 쓰여있으니 확실히 합격을 위한 음식은 맞습니다.

아마도, 당이 들어간 음식을 먹고 힘내라는 의미로 주지 않았나 싶습니다.

참고로 수험생에게 엿과 같이 주는 팥이 들어간 찹쌀떡은 한국 전통 떡이 아니라 일제시대 일본에서 들어온 떡입니다.

다이후쿠 모찌(大福餅)라고 하는데 대복병. 큰 복을 받는 떡이라는 의미입니다.

일본에서도 큰 복을 받아 합격하라는 의미로 주는 떡이다 보니 일제 시대 조선에서도 합격 선물로 찹쌀떡을 주게 되었고, 자연스레 우리나라의 합격선물이 되어 버렸습니다.

일본에서도 센터 시험을 볼 때가 오면 한국처럼 엿과 찹쌀떡처럼 붙으라고 합격의 기쁨을 가지라는 의미로 엿과 찹쌀떡을 줍니다.

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먹는 음식이 있는데 바로 돈가스입니다.

승리를 뜻하는 한자인 승(勝)자의 일본 발음이 가츠(かつ)로 돈가스의 ‘가츠’와 같아서 돈가스나 돈가스를 올린 덮밥 가츠동을 먹는다고 합니다.

이 돈가스 썰은 여러 만화나 드라마에서 자주 언급이 되는 합격 음식의 클리쉐와 같습니다.

중국은 당나라 시대에는 글에 나온 것처럼 돼지 족발을 합격 음식으로 먹었지만, 요즘은 중국의 수능시험인 가오카오(高考) 시험 때 주로 주고받는 것은 장원떡(狀元餠)이라고 하는 장원쫑(壯元粽)을 줍니다.

보통 대나무에 찹쌀을 넣어 찐 대통밥이나 찰밥을 대나무 잎으로 싸서 만드는 음식인데 밥과 떡의 중간쯤 되는 음식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6월에 치는 가오카오 시험에 왜 쫑쯔(粽子)를 먹는지는 문헌적 자료가 없지만, 중국 전통 명절인 단오와 관련이 있다고들 합니다.

중국의 단오절이 6월에 있는데, 이 쫑쯔가 단오절 때 먹던 음식이라 같은 달에 있는 가오카오 시험의 합격 음식이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물론, 중국의 단오는 초나라 시인인 굴원(屈原)을 기리는 명절인데, 우리나라의 단오와는 이름만 같지 전혀 다른 명절입니다.

하지만, 계속 단오를 훔쳤니 굴원을 훔쳐가니 뭐니 중국 애들이 이야기하는데, 사실 굴원이라는 사람을 아는 한국인이 과연 몇 명이나 있을까 싶습니다. 준다고 해도 안 하는데...

그리고 쫑즈가 합격 음식이 된 다른 썰로는 중국말로 시험에 붙거나 합격했다고 할 때 쓰는 동사가 가운데 중(中)인데, 이게 발음이 쫑이라고 난답니다.

그래서 합격의 쫑즈를 먹어야 한다고 해서 가오카오 시험 때 쫑즈를 먹는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제는 한, 중, 일 다 초콜릿, 사탕을 많이 주고받습니다.

고열량 에너지가 최고인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고열량 족발보쌈 세트를 시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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