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쉐프 조선을 부탁해!-122화 (122/327)

122. 보부상의 장점. (2)

전국 팔도에서 도기를 받아 가는 보부상이 늘어나는 만큼 전국에 흩어져 있는 도공들의 가족들도 보부상을 통해 한집 한집 분원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우선은 분원에서 구워낸 벽돌로 벽을 세워 지은 공동주택에 가족들을 모여 살게 했는데, 가족들 중 목장이 있자 자연스레 근방에 마을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물론, 가족을 데려오는 것이 공짜는 아니었지만, 그 비용이 도공이 직접 가서 데려오는 거 보다는 저렴할 터였다.

“전국에 거미줄처럼 유통망이 있으니 이건 편하구만. 박복이가 가족들의 호적을 만들면서 각 지역에서 나는 산물이나 특산품도 같이 조사하거라. 어디에 무엇이 부족하고, 무엇이 남아도는지를 알아야 장사하기 편할 것이다.”

“네. 헌데 가족들이 늘어나는 숫자가 장난이 아닙니다. 마을을 몇 곳이나 만들어야 할 것 같은데, 곡식이 떨어질 수도 있습니다.”

“그럼, 하삼도에서 최대한 구매해 와야지. 송상에게 내 미리 이야길 해두겠다.”

곡식이 많이 나는 전라도와 경상도에서 곡식을 사 오는걸 생각하니, 소달구지에 실어와야 하는 현실이 갑갑해졌다.

그리고, 내 배는 언제 나오는지 궁금했다.

기존의 누전선을 병조선(맹선)으로 교체하는 일이 경상 좌우 수영에서 진행되고 있었는데, 거기서 교체된 누전선을 내게 포상으로 예종이 내렸었다.

헌데, 3개월이 지났음에도 누전선에 대한 것은 아무런 소식이 없었다.

누전선도 알아보고 북경으로 떠나는 상행단의 일도 확인해 볼 겸 신숙주의 집으로 들어갔다.

“우선은 상행단에 50을 가져갈 생각이다. 네가 했듯이 30조는 황제 폐하에게 진상을 하고, 나머지 20조만 판매를 할 것이다.”

“하하하. 그렇게 하시면 될 겁니다. 그리고, 20조를 다 팔고 나서 구해달라고 하는 이들도 있을 터인데, 미리 선불을 받는 예약제를 하십시오.”

“오, 그러면 물건을 받기도 전에 돈을 주는 것이니 떼일 위험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일반 상행단이 아니지 않습니까? 조선 국왕의 재산을 관리하는 내수사가 상행의 주체이니 그런 생각은 하지 않을 것이옵니다.”

“내가 직접 가서 그렇게 하면 될 것인데, 이제는 늙어서 가지를 못하니 그게 아쉽구만.”

“저도 제가 어려 직접가지 못하니 그게 안타깝습니다.”

“하하하. 그래도 자네의 형이 의주에서 합류해서 가기로 했으니 자네가 가는 것이나 마찬가지이지.”

“그런데, 본자기를 판매한 이후 어떤 것을 사서 돌아오기로 한 것인지 결정을 하셨습니까요?”

“첫 상행이기도 하고, 중국은 은으로 거래를 하기도 하니 금, 은으로 대가를 받아 오기로 했네. 비단이나 향낭 같은 것을 사 오자는 말도 있었지만, 사치품은 모두 다 배제했네.”

“그럼, 오실 때 곡식으로 구매해 오는 것은 고려해 보셨습니까요?”

“곡식을 사 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해. 배를 이용해 산동에서 배로 옮겨 온다면 되겠지만, 해상으로 배를 낼 수 있는 방법이 없으니 곡식을 가져올 방법이 없어.”

아무리 신숙주라고 해도 명의 해상 봉쇄령은 어쩔 수가 없었다.

“그런데, 제 배는 언제 받을 수 있습니까? 전하께서 내리신 누전선 있지 않습니까. 하삼도에서 서울로 곡식을 실어 나르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데, 아직 아무 이야기가 없습니다.”

“아, 그렇군. 내 한번 알아보지.”

***

“가을에 자네의 배를 줄 수 있다고 하는군. 판옥선으로 교체하는 것이 쉽지 않은 모양이야.”

“그런데, 혹시 선부(船夫)들도 같이 주는 것입니까?”

“아니야, 선부는 따로 모아야 하네. 이제까지 누전선에는 수군이 탔었으니 수군 출신으로 뽑던지 아님 누전선을 타보았던 이들로 모아야 할 것이야.”

“흠. 그러면 배를 받기 전에 미리 내려가 있어야 되겠군요.”

“그렇지. 배가 생긴다고 하더라도 준비할 것이 많을 것이야.”

그러고 보니, 경상도에서 배를 받아 연습 삼아 전라도로 움직이고, 거기서 곡식을 싣고 한양으로 오는 데까지 보름 가까이 걸릴지 몰랐다.

보름도 제대로 된 수부들이 배에 탔을 때 걸리는 시간이었다.

그리고 부산에는 아는 지인도 없었기에 사람을 모으는 데 힘이 들 수도 있었다.

전국 어디에나 있는 보부상단을 통해 사람을 모을 수도 있겠지만, 일단은 부산에 내려가 수부나 수군들의 상황을 먼저 파악하는 게 좋을 것 같았다.

“누전선을 받아 제대로 운용하기 위해 직접 내려가 봐야 할 것 같습니다.”

“그렇게 하게. 온 김에 종희나 한번 보고 가거라? 듣기로는 이미 가패에서 보았다고 하던데. 혼인할 사이이기도 하니 자주 와서 만나도 될 것이다.”

“하하하. 그렇긴 하온데. 그냥 가패에서 보는 것이 좀 더 편할 것 같사옵니다. 그리고, 가끔 선물은 주고 있습니다.”

“그래, 자개가 들어가 있는 손잡이 잔을 보고 놀랐지. 전하께 진상한 것보다 더 좋아 보이는 본자기라니... 나도 그런 거 있으면 참 좋을 것 같은데 말이지.”

“돌아가면 바로 보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허허. 그래 그래야 손녀사위지.”

***

“달유는 착호갑사가 되려다 실패했던 사냥꾼들을 모아주게나. 숫자는 백 명이 넘어도 괜찮아.”

“백 명 이라굽쇼? 모으는 것이야 어렵지 않지만, 사냥꾼 백 명을 어디에 쓰시려고 하시는 겁니까요?”

“분원 일대의 해수 구제를 하려고 하네. 마을이 들어섬에 따라 산에 살던 야생동물들과 영역 싸움을 하게될 것이야. 그래서 아예 사냥꾼들로 이 근방 야생 동물을 미리 처리하려고 하는 것이야.”

“네 알겠습니다요.”

“그리고, 근방에 나무를 잘 키우는 이를 찾아보거라. 일을 맡길 것이 있다.”

“목장이 아니라 나무를 잘 키우는 사람이요? 그런 사람이 있습니까요?”

몇 명에게 물어보았지만, 다들 나무를 잘 키우는 사람이 어디 있냐고, 의아해했다.

현대 한국에선 흔한 원예산업이 오히려 조선 시대에는 희귀한 일을 하는 사람으로 치부되니 웃겼다.

그래서 전국을 돌아다니는 보부상들이 있는 곳에 가서 물어보니 보부상들도 나무를 잘 키우는 이를 알지 못했다.

“그럼, 감이나 사과, 배를 재배하는 과수원이 이 근방에는 없느냐?”

“사과나 배는 충청 이남으로 내려가야 그 나무를 심어 키우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요. 이 근방에는 감나무를 키우는 사람이 더러 있긴 있습니다.”

“오! 그럼 그 집으로 안내 좀 해주게나.”

보부상들의 도움으로 감나무를 키운다는 이를 찾아가니, 뭔가 허탈했다.

현대에서 보던 집약 과수로 감나무를 키우는 것이 아니라, 그저 집 주변으로 10여 그루의 나무를 심어서 키우는 것이 전부였다.

그것도 잔가지 치기나 줄기 관리를 못해서 감나무의 키가 5m에 달해 수확하기도 힘든 과수들이었다.

분명, 감이나 밤 같은 것은 조선 시대 초기에도 과수원으로 생산하여 소비되었다고 알고 있었는데, 그 소비가 이런 작은 규모였다면 답이 없었다.

그리고, 감나무를 키운 사람도, 그렇게 나무를 키우거나 과수를 키우는데, 지식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헛걸음한 것이었다.

그저 조선 시대의 과일은 자연 채집이 전부인 듯했다.

어쩔 수 없이 도공의 가족들 중에서 남자들을 불러 모았다.

“밭농사에 자신 있는 이 있는가?”

“화전을 일구어야 하는 것이옵니까요?”

“화전은 아니네. 화전을 하기 위해 태우는 나무가 아까워서도 우리는 화전을 하지 않네. 나무를 태우지 않고, 오히려 나무를 심어서 키우는 일이네.”

나무를 키운다는 내 말에 농부들은 이해를 하지를 못했다.

육림산업이라는 말 자체가 없다 보니 이들의 반응도 이해가 되긴 했다.

“산에서 주운 도토리를 밭에 심어 나무가 한자(약30cm) 길이로 자라나면 그걸 캐서 다시 산에 심는 일이네.”

“도토리는 묵으로 만들어 먹는 것을 아는데, 그렇게 나무를 심어서 먹을 것이 나겠습니까요? 그리고, 도토리나무는 어릴 때는 도토리를 맺지를 않습니다요. 나무가 10년은 되어야 도토리가 열립니다요.”

“잘 알고 있구만. 자네 이름이 뭐지?”

“광양에서 온 진석이라고 합니다요.”

“그래, 참나무인 도토리나무는 어느 정도 나무가 커져야 열매를 맺지. 헌데 자네들 여기에서 10년 이상 살기 위해 온 것 아닌가? 근시 일만 보자면 자네 말처럼 도토리나무가 아니라 금방 먹을 것이 나는 다른 나무나 곡식을 심어야 하지. 하지만, 10년 후 도토리를 심어 키운 참나무가 이 산을 다 뒤덮고 있다고 생각해 보게.”

원종은 눈앞에 보이는 소향산을 가리켰다.

도기를 굽는 분원 근방의 산이니만큼 나무가 다 베어져 민둥산이 되어 향나무가 많은 산이었다는 이름이 무색했다.

“저 산에 참나무가 가득하다면, 매년 도토리를 엄청나게 뿌려줄 것이네. 우리는 그 도토리로 묵도 만들어 먹고, 돼지나 염소를 키울 수도 있을것이네. 저 산 하나가 아니라 이 근방의 산들이 모두 다 참나무로 뒤덮인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그렇다면 나무를 심는 것만으로도 먹고 살 수 있다는 말입니까요?”

“물론이다. 나무를 심으면 그 나무의 그늘에 풀이 자라고, 그 풀숲에 벌레가 끼는 것이다. 그러면 그 벌레나 풀을 먹기 위해 까투리가 날아오고, 노루가 오게 될 것이다. 그리고, 까투리와 노루를 먹기 위해 살쾡이 같은 맹수도 오게 되겠지.”

숲이 있으므로 해서 생태계가 만들어진다는 것을 쉽게 설명하자 반 정도는 알아들은 것 같았다.

“숲이 있어야 동물이 살고, 그 동물을 잡아서 사람도 살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 쉽게 구할 수 있는 도토리를 밭에 심어 나무의 묘목을 키워내야 하는 것이다. 물론, 공짜는 아니다. 묘목 한 그루당 곡식을 줄 것이다. 나무를 키워 볼 사람 있느냐?”

“흠. 밭에 도토리 나무를 심어 키운다는 것이 아직 잘 이해가 가지 않지만, 제가 해보겠습니다요. 진짜 나무를 심고 하면 까투리가 날아오고 하는지 궁금합니다요.”

“까투리만 오겠느냐? 바람이 날라다 준 산나물의 씨앗도 나무의 그늘에서 자라게 될 것이다. 먹거리를 숲이 주는 것이다.”

“소인은 머루를 좋아하는데, 머루나무는 심으면 안 됩니까요?”

“된다. 씨를 구하기 쉬운 도토리나무를 예로 들었지만, 나중에 씨를 구할 수 있는 과일이라면 무엇을 심어도 될 것이다.”

“그렇다면 저도 하겠습니다요. 전 밤을 좋아 합니다요.”

“저는 대추를 좋아합니다요!”

다들 좋아하는 과일의 이름을 대며 나서자, 다섯 명을 뽑아 나무 씨앗을 심게 했는데, 지금 당장은 아무런 변화가 없겠지만, 잘라버린 나무 옆에 묘목을 심다 보면 자연스레 육림이 될 것이고, 숲이 우거지면 분원에서 소비되는 나무의 수급에도 도움이 될 터였다.

우리 강산 푸르게 푸르게~ 는 못해도, 이 근방 민둥산을 녹림으로 뒤덮기만 해도 충분했다.

***

“자네들은 조선의 기술을 지키기 위한 최전선에 와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네. 호랑이 늑대를 잡는 것은 물론이고, 때놈(되놈)들과 왜놈들도 같이 잡아야 하네.”

원종은 달유가 모아온 50여 인의 사냥꾼을 앞에 두고 연설을 했다.

“말씀 중에 죄송하오나. 여기가 변방도 아니고 해안가도 아닌데, 때놈이나 왜놈이 옵니까요?”

“이 분원의 도자기 기술을 훔쳐내기 위해 간자들이 올 것이네. 그 간자들이 때놈이나 왜놈일수도 있고, 돈에 넘어간 조선인일 수도 있네. 자네들이 막거나 잡아야 하는 이들이 바로 그런 간자들일세.”

착호갑사에 지원했다가 떨어졌던 사냥꾼들은 안정적인 일자리가 있다는 말에 찾아와 보니 사람을 사냥해야 한다는 말에 떨떠름했다.

하지만, 이어진 말을 듣고는 의욕이 불타올랐다.

“기술을 훔치러 오는 왜놈과 때놈을 잡는 이에게는 소 한 마리씩을 줄 것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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